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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지닌 세 가지 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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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지닌 세 가지 컬러!

[人 스테이지] 자신의 포지션을 누구보다 잘 아는 발레리나 박세은

국립발레단에 한 송이 꽃이 피었다. 가지각색의 화려한 꽃들이 만발한 국립발레단에 귀엽고 상큼한 어린 꽃 한 송이가 곱게 자라나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박세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계 3대 발레단 중 하나인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ABT)'의 'ABTⅡ'에서 활약했던 그녀가 이제는 고국 무대로 방향을 틀었다. 그것도 어린 시절 자신을 지켜봐주었던 최태지 단장 곁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지금이 너무 행복하단다.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있어 좋고, 어린 시절 꿈꾸었던 국립발레단에서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ABTⅡ'에서 그냥 돌아오지 않았다. 스스로 어려움을 극복하는 법과 자신을 컨트롤 할 수 있는 한층 성숙된 여유로움으로 우리 곁에 돌아왔다.

▲ ⓒ뉴스테이지

◈ PINK

"한국에 온 이후로 가족들과 함께 지낼 수 있어 너무 기쁘고 감사해요." 그녀의 첫마디였다. 발레리나 박세은의 미소는 1년 전에나 지금이나 여전히 사랑스러웠다. 그녀에게 한국에 돌아온 특별한 계기를 물었다. "최태지 단장님의 영향이 제일 컸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국립발레단 문화학교를 다녔는데 당시 단장님이 저를 많이 도와주셨어요. 그리고 언젠가는 한국에서 발레단 생활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제야 꿈을 이루게 된 거죠." 발레리나 박세은은 문화학교에 다닐 당시, 시험에서 유급을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피나는 노력을 감행했다. 결국 2007년 스위스 로잔 국제발레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ABT)'의 세컨드 컴퍼니인 'ABTⅡ'에 들어갈 수 있었다.

발레리나 박세은은 'ABTⅡ'에서도 놓치기 싫은 무용수였다. "ABTⅡ에서 1년을 마치고 사실 학교로 돌아갈까 생각했었어요. 그때 감독님이 '너 없이는 안 된다'며 극구 말리시는 거예요. 그래서 1년은 더 생각하기로 하고 남았어요. 이번에도 감독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감독님은 '한국에서 경험을 쌓는 것도 중요하다'면서 '나중에라도 꼭 왔으면 한다'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녀는 아직 어리기에 여러 가지 경험을 쌓을 필요가 있다. 어쩌면 그녀를 위해서도 이번 국립발레단에서의 경험이 무척 좋은 기회일 것이다.

▲ ⓒ뉴스테이지

"국립발레단에 처음 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언니들이 너무 잘해줘요. 다들 친언니처럼 잘 챙겨줘서 가족 같은 분위기에요. 그래서 매일매일 즐겁게 무용하고 있어요." 국립발레단 단원들 모두 발레리나 박세은을 친동생처럼 아껴준다고 한다. 사실 처음엔 조금 낯설기도 할 테지만, 그녀는 시종일관 밝은 웃음으로 국립발레단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 GREEN

국립발레단은 'ABTⅡ' 생활과 많이 다를 것이다.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물었다. 그녀는 "무용수들에게 배려를 많이 해주는 것 같아요. 오히려 무용에 대한 지원은 ABTⅡ보다 국립발레단이 더 나은 것 같아요. 분장도구도 따로 있고, 각자 의상도 맞춰 주고, 혜택이 많아서 사실 처음엔 놀랐어요. 특히 지방 공연이 많은 것은 ABTⅡ와 비슷한 거 같아요. 그래서 별 차이를 못 느껴요. 지금 너무 만족해요"라고 말하는 그녀에게서 국립발레단에 대한 강한 애착이 느껴졌다. 불과 몇 달 지내지 않았지만, 국립발레단에 어느새 적응되어 가는 모습을 알 수 있었다.

그녀에게도 막상 한국에 돌아왔을 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고 한다. 그녀는 "미국에서 함께 지냈던 룸메이트 친구가 많이 생각나요. 흑인 여자애인데 너무 착해요. 함께 지내는 동안 한 번도 싸운 적이 없어요. 덕분에 영어도 많이 늘었고요. 그 친구랑 쉬는 날이면 한인 타운에 있는 찜질방도 다녀오고, 뮤지컬, 영화도 많이 봤어요.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 친구에요"라며 안타까운 마음을 살짝 내비쳤다. 그녀는 말을 마치면서도 친구에 대한 그리움에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또한 발레리나 박세은은 미국에서 힘들었던 이야기도 전해주었다. "미국에서 가장 힘든 점이었다면 음식이에요. 뉴욕에 있을 때는 한인 타운을 자주 이용했어요. 친구들이 한국음식을 좋아해서 자주 갔었거든요. 그런데 다른 지방에 투어갈때는 음식이 맞지 않아 많이 힘들었어요. 그때 살도 많이 찐 것 같아요."

▲ ⓒ뉴스테이지

이윽고 그녀는 "외국 무용수들에게 한 가지 아상한 점이 있어요. 그들은 절대 크림 스파게티를 먹지 않는다는 거예요. 오히려 먹으면 다들 이상하게 쳐다봐요. 샐러드도 살 안찌는 시저 샐러드를 즐겨 먹고요. 우유도 지방이 없는 제품으로 먹어요. 사탕이나 젤리는 생각지도 않아요. 예전에 거기서 초콜릿을 먹었는데 다들 눈치를 주는 거예요. 그 이후로는 절대 먹지 않았어요. 특히 어떤 무용수가 무용하다가 힘들어서 쓰러지면 다들 위로하기는커녕 '네가 안 먹어서 그런 거야. 그러니깐 잘 좀 먹어!'라며 오히려 야단을 쳐요. 모두들 안 먹어서 쓰러지는 것 마냥 취급하는 거예요. 그 정도로 먹는 것에 민감해요" 라고 말하며 자신과 다른 외국 무용수들의 모습을 전해줄때 얼굴에 활기를 띄었다.

◈ RED

발레리나 박세은은 자신의 롤모델로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ABT)의 '줄리안 머피'를 뽑았다. "정말 대단해요. 그 무용수는 볼 때마다 놀라워요. 정말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요. 리허설이 있을 때는 줄리안 머피 스케줄에 맞춰 직접 보러가기도 했어요. 사실 그녀는 상체가 너무 커서 가냘픈 이미지는 아니에요. 그러나 무대에서는 너무나 가냘프게 보여요. 무대에서 오히려 돋보이는 무용수죠. 정말 신비로워요. 예전에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ABT)가 한국에서 '돈키호테'를 공연할 때였어요. 저희 아빠에게 가까이서 보고 싶다고 조르니깐 제일 비싼 티켓으로 뽑아주셨어요. 그래서 맨 앞자리에서 봤는데 환상, 그 자체였어요. 후회 되지 않게 잘 본 것 같아요." 그녀의 꿈은 '줄리안 머피'처럼 무대에서 돋보이는 무용수가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지금 자신이 어떤 위치에 서야 하는지 스스로 알고 있다.

발레리나 박세은은 국립발레단에서 '군무(꼬르 드 발레)'부터 단계를 밟아나갈 계획이다. "단장님께서 좋은 무용수가 되려면 아래서부터 차근차근 배워나가야 한다고 하셨어요. 그 말에 너무 믿음이 가요. 군무를 하지 않고는 군무를 이해할 수 없어요. 그래서 군무를 해본 무용수들은 주역이 되더라도 군무를 잘 이끌어 나갈 수 있어요. 아직 어리기 때문에 여러 가지 경험을 해 보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그녀는 자신을 너무나도 잘 아는 무용수다. 지금은 자신을 낮추며 겸손히 배우는 자세로 임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제 여러 가지 춤을 춰보고 싶어요. 아직 못해본 것도 많기 때문에 다양하게 배웠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배우는 게 가장 즐거워요."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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