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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둔갑술'…찬성한 의원들은 법안 내용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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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둔갑술'…찬성한 의원들은 법안 내용 알까?

[기고] 죽은 박종희법안이 공성진 몸 빌려 부활한 '금융지주회사법'

지난 22일 국회에서는 '의회 폭거'가 일어났다. 한나라당은 야당의 저지를 쪽수로 물리치고 국회 본회의장을 점거한 뒤 신문법과 방송법, IPTV법 등 '미디어 3법'과 '금융지주회사법'을 일괄상정 해 날치기 통과시켰다.

이 과정의 불법성에 대한 논란마저 불거지고 있다. 핵심법안인 방송법이 1차 투표에서 의결정족수 부족으로 부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재투표를 종용하여 통과시키는 코미디 같은 상황이 연출됐다. 더욱 심각한 것은 한나라당이 정족수를 채우지 못한 상황에서 일부 의원들이 다른 의원의 자리에서 대리투표를 한 사실도 드러났다. 이는 입법기관인 국회는 물론 국회의원에 대한 심각한 자기배반 행위이자, 명백한 범죄행위에 다름 아니다.

더 황당한 것은 이날 한나라당이 저지른 '둔갑술'이다. 한나라당은 금융지주회사법을 통과시키면서 국회 입법 사상 전무후무하게 남을 둔갑술로 날치기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관련 법의 변태 과정을 세밀하게 관찰해 온 금융노조가 통과된 법안의 정확한 내용을 알아내기 위해 며칠을 소비해야 할 정도였으니, 찬성표를 던진 의원들은 무슨 내용의 법안인지 제대로 알고 표를 던졌을까?

정부입법이든 의원입법이든 통상 법안이 통과하기 위해서는 해당 상임위원회의 심의와 법사위 심사를 거친 뒤 본회의에 상정되어 표결로 처리되는 것이 제대로 된 절차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날 처리된 '금융지주회사법'은 긴급을 다투는 사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절차를 밟지 않았다. 게다가 금융지주회사법은 그동안 숱한 변태 과정을 거듭했다.

▲ 한나라당은 금융지주회사법을 통과시키면서 국회 입법 사상 전무후무하게 남을 둔갑술로 날치기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찬성표를 던진 의원들은 무슨 내용의 법안인지 제대로 알고 표를 던졌을까? ⓒ프레시안

정부가 처음 금융지주회사법을 입법 예고한 것은 지난해 10월이었다. 하지만 정부는 무슨 이유에선지 행정입법 절차를 포기하고 한나라당 박종희 의원과 공성진 의원을 통해 의원입법 형태로 금융지주회사법을 발의했다. 정부입법의 경우 의원발의 보다 훨씬 복잡한 과정과 시간이 소요되며 그 과정에서 금산분리 완화에 대한 반대 여론이 확산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할 뿐이다.

아무튼, 이렇게 만들어진 박종희 의원의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은 은행지주회사에 대한 산업자본의 보유비율을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공성진 의원의 법안은 은행을 제외한 보험사, 증권사, 자산운용사 등으로 이루어진 금융지주회사를 허용하고 이들 비은행 지주회사가 제조업과 금융회사를 동시에 지배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공성진 의원은 자신이 발의한 법안이 '삼성 특혜법'이라는 비판에 직면하자 자신이 발의한 법안을 돌연 철회하고 자신의 법안에 박종희 의원 안의 내용을 수치만 바꿔 삽입한 제2의 공성진 법안을 다시 만들었다. 두 법안 중 하나라도 부결될 경우를 가정한 안전장치였던 셈이다.

그리고 지난 4월 30일 박종희 의원안은 본회의에서 부결됐고, 남은 것은 제2의 공성진 의원안 뿐이었다.

놀라운 것은 지난 22일 본회의에서 통과된 안이 박종희 의원이 발의한 법안이었다는 것이다. 이윤성 국회 부의장이 박종희 의원이 발의한 금융지주회사법 수정안을 상정한다고 밝히는 순간, 잘못 들은 것은 아닌지 귀를 의심해야 할 지경이었다. 이미 부결된 법안을 다시 상정한다?

뒤늦게 통과된 법안을 입수해 분석해 보니 이 법안은 일종의 '둔갑'이었다. 공성진 법안에 과거 부결된 박종희 법안이 교묘하게 끼워넣어져 있었다. 그리고 대표발의자 이름만 은근슬쩍 박종희 의원으로 바꾼 것이다.

죽은 박종희가 공성진의 몸을 빌려 부활한 셈이었다. 단언컨대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일부 한나라당 국회의원을 제외하면 그 법안의 정체를 아는 국회 의원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홍길동과 손오공이 부럽지 않은 둔갑술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오늘날 유행하는 마술처럼 둔갑술은 결국 눈속임에 지나지 않는다. 이날 공성진 의원과 박종희 의원은 서로 '바꿔치기'와 '끼워넣기'를 통해 국민들을 속였다. 이번에 통과된 180페이지나 되는 막대한 분량의 금융지주회사법 수정안은 박종희 의원이 발의했다 부결된 내용과 공성진 의원이 철회했던 독소조항들이 수치만 조금씩 달리해서 들어가 있다. 더구나 비은행지주회사의 특례에는 그동안 어떤 개정안에도 없었던 내용도 포함됐다. 상호저축은행지주회사까지 금산분리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 그것이다.

의원 입법을 흔히들 '청부 입법'이라고 한다. 미디어법과 금융지주회사법은 청부 입법의 전형을 보여준 사례라 할 만하다. 통과 자체가 목적인 법안 앞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은 거수기에 불과했다. 이쯤 되면 국회 의원더러 눈을 감고 투표를 하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숱한 변태 과정을 거쳐 통과된 금융지주회사법이 향후 파리가 되어 국민경제를 어지럽힐지 아니면 나비가 되어 세상을 아름답게 할지 지켜볼 일이다. 그러나 그에 앞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갖은 편법과 불법을 동원했던 한나라당 의원들, 특히 박종희 의원과 공성진 의원의 이름 석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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