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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을 밤, 가파도에서 특별한 콘서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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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을 밤, 가파도에서 특별한 콘서트가…

[현장] '찾아가는 가족 콘서트' 가파도

바람이 불어옵니다. 향긋한 바다 냄새가 납니다. 제주에 도착한 그때부터 어떤 흥얼거림이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햇살 속에 파르르 퍼지는 아이들의 재재거림, 웅숭깊은 여인네 노래 소리, 할머니의 자장가 소리. 무언지 분간할 수 없는 그 소리들은 바람의 결을 타고 귓가를 서성이다 돌아가곤 했습니다.

모슬포항에서 다시 배를 타고 도착한 곳은 가파도 가파초등학교. 조금 있으면 이곳에서 근사한 공연이 시작될 것입니다. 2004년 여주 당현분교를 시작으로 전국의 작은 학교들을 찾아다닌 '찾아가는 가족콘서트'의 60번째 공연입니다. 열두 명의 아이들을 위해 삼십 명 남짓의 사람들이 기타와 장비들을 둘러메고 온 것입니다.

사람들이 무대를 준비하고 장비들을 설치하고 노래 연습을 하느라 분주한 사이, 나는 조금 멀찍이 떨어진 정글짐 위에 홀로 앉아 있었습니다. 나랑 같이 놀래? 말간 눈을 가진 다섯 살 은우가 내게 손을 내밉니다. 은우의 손에는 채 여물지 않은 자두만한 풋수박이 들려 있네요. 이건 애기수박이야, 이따가 나랑 나눠 먹자.

풋수박을 받아든 순간 내 가슴 속에 뜨끈한 기운이 솟아납니다. 따끈따끈한 군고구마나 호빵 같은 걸 가슴에 품고 있는 느낌입니다. 마침 마임이스트 고재경의 익살스러운 연기로 '찾아가는 가족 콘서트'의 문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은우의 조막손에 이끌려 무대로 향합니다.

종려나무와 야자나무가 무대장치, 조명은 달빛과 별빛, 풀벌레 울음소리와 파도소리가 배경음악입니다. 서울에서 온 공연팀은 비눗방울 아저씨 마사시의 비눗방을 연기와 세대를 넘어 동요를 노래하는 '철부지'들의 동요메들리, 가수 강산에의 구수하면서도 열정적인 노래를 준비했습니다.

이것만 있는 게 아닙니다. 이 무대를 위해 가파초등학교 아이들은 며칠 동안 방과 후 노래연습을 해왔습니다. 기억을 더듬어 '오빠생각'을 부르는 학부모들의 얼굴이 긴장된 듯 달뜬 듯 발갛습니다. 한복을 차려입고 장구소리에 맞춰 '오돌또기'와 '니영나영'을 부르는 가파도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어찌나 곱고 어여쁜지요.

여기 가파도 사람들은 가파도를 닮았습니다. 오래전 하멜이라는 네델란드인이 가파도를 카펫라고 표현했다지요. 카펫처럼 따뜻하고 잘 익은 감자처럼 포근포근한, 때 묻지 않은 고즈넉한 섬 가파도. 나는 다시 다섯 살 은우의 조막손이 내 가슴에 넣어주었던 뜨거운 기운을 느낍니다. 그리고 아까부터 들려왔던 알 수 없던 소리의 정체를 알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내 머리를 쓰다듬는 위안의 손길이며 첫사랑의 설렘 그 심장박동 소리였습니다.

작은 학교를 찾아 떠나는 '찾아가는 가족 콘서트'는 그저 시골마을 아이들을 위한 공연이 아니었습니다. 누군가 찾아와서 공연보따리를 풀어놓는 일방적인 공연도 아닙니다. 그곳의 온 주민들과 함께 준비하고 소통하는 공연, 모두가 누군가의 애기수박이 되는 공연, 그래서 각자의 가슴에 뜨거운 군고구마 하나씩 품고 돌아가는 공연입니다. 무대가 끝나고 난 후, 고샅길을 따라 걷고 있는 내 가슴엔 집어등이 환하게 솟아올랐습니다.

▲ 가파초등학교 어린이와 함께한 고재경의 마임 공연. ⓒ프레시안

▲ 오쿠다 마사시의 비눗방울 마임 공연. ⓒ프레시안

▲ 철부지. ⓒ프레시안

▲ 강산에. ⓒ프레시안

▲ 제주민요를 노래하는 가파도 할아버지, 할머니. ⓒ프레시안

▲ 가파초등학교 전교생 합창. ⓒ프레시안

▲ 모든 출연진이 함께한 대합창.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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