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한국 진보 정당 운동사>는 현재로서의 역사, 미완성의 역사를 다루고 있음을 금방 알아 챌 수 있다. 이 책은 진보 정당의 화려한 등장과 갑작스런 몰락의 충격이 아직 가시지 않은 요즘, 다가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 의미 있는 성적을 기대하기 어려운 현실에 직면한 이 때, 진보 정치가 역사적 전환기를 맞은 것이 확실해 보이는 이 시점에 진보 정당을 왜 만들려 했으며, 그것이 왜 그토록 어려운 과제였는지, 진보 정당을 세우려는 사람들은 무엇을 고민했으며, 왜 실패는 여전히 되풀이 되는지 그 사정을 내부에서 들여다볼 수 있게 해준다. 바로 그 때문에 진보 정치를 통한 한국 정치의 성장, 민주주의의 질적 발전을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사색과 성찰의 계기를 제공해 준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출간은 시의 적절했다고 할 수 있다.
방황이 끝나면 역사가 시작되고, 역사가 끝나면 방황이 시작된다고 했던가. 이 책은 방황을 끝낸 진보 정당의 역사적 기록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의 역사가 마침표를 찍고 방황하는 오늘의 기록이자 당대 한국 정치의 한계와 과제를 생생하게 증언하는 현장 보고서이기도 하다. 한국 현대 정치사는 불모의 땅에 진보 정당의 뿌리를 심으려는 지난한 투쟁의 역사이다. 진보 정당을 세우는 일은 냉전 체제, 반공 이데올로기, 보수 헤게모니라는 악조건과 맞서야 하는 험난한 도전의 길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한국 전쟁부터 오늘날까지 진보 정당 운동사를 '역사적 단절기', '정치적 모색기', '정치적 실험기', '독자적 정립기', '새로운 모색기'의 다섯 시기로 구분하고 있다.
| ▲ <한국 진보 정당 운동사>(조현연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 ⓒ프레시안 |
한국전쟁 이후 이 시기까지 46년이라는 긴 세월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은 책의 절반밖에 차지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진보 정당이 지속성을 지니지 못한 채 일시적 국면에 부상하고 곧 침몰하는 불연속성을 나타낸 것과 관련이 있는 같다. 그 때문에 다섯 시기 구분에도 불구하고 실은 민주노동당 창당 이전과 이후 두 시기로 나눠도 무방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이 책의 나머지 절반은 민주노동당의 등장과 쇠락으로 채워져 있는데 그 까닭이 합당해 보인다.
독자적 정립기는 국민승리21의 결성과 이 조직의 발전 형태인 민주노동당이 창당하고, 2004년 총선을 통해 민주노동당이 원내에 진출하는 등 진보 정당 사상 가장 화려한 시기이자 낙관론이 지배했던, 짦은 황금기였다. 민주노동당은 노동자, 농민, 서민의 대중 기반을 가졌다는 점에서 소수의 지식인 혹은 운동권 인사 중심 결사체였던 이전 진보 정당과는 달랐다. 민생 중심의 생활 정치 강조는 진보 정당의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높이기도 했다. 그러나 원내 정당으로서 활동은 점차 활력을 잃어갔고, 당 내부는 정파 및 노선 갈등에 휩싸이면서 급속히 쇠락하다 결국, 2007년 대선 참패를 거치면서 분당을 하고는 오늘에 이르렀다.
저자는 진보 정당이 몰락하는, 한국 정치사에서 의미 있는 시기를 역설적이게도 새로운 모색기라는 낭만적 이름을 붙여 주었다. 그의 낙관주의가 엿보인다. 이는 아마도 민주노동당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국민승리 21의 대선공약 개발단 간사를 시작으로 민주노동당에 깊이 간여해온 참여적 관찰자의 입장이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게다가 그는 진보신당의 정책위원회 의장이다. 그는 새로운 진보를 내세운 진보 정당의 간부로서 분당이 새로운 모색을 위한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어야 한다고 믿는 게 틀림없다.
진보 정당사에서 관찰되는 또 다른 특징은 역사 자체가 운동에서 정당으로 진화하는 과정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군사정권 시절은 변혁 운동이 주도했다면, 민주화 이후에는 민중이 자기의 정당을 가져야 한다는 자각과 함께 운동적 자산을 정당으로 이전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운동은 민중을 조직하고 정권을 대체해 한국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점에서 정당과 다르지 않지만, 정당이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받아들이고, 권력 정치에 참여하며, 순수와 열정, 도덕적 의무감을 토대로 한 활동이 아닌 현실 정치의 게임을 수용하고, 조직적 안정, 인적 자원의 재생산을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는 분명 성격이 다르다. 그러나 운동에서 정당으로의 전환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매우 긴 시간을 경과해야 했고 그로 인해 운동과 정당은 상당 기간 병행되었으며 그 때문에 중첩을 피할 수 없었다. 그 이행 과정은 아직 종료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진보 정당은 여전히 조직 문화에서 운동의 유산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민주노동당의 쇠락과 분당 원인의 하나이기도 하다.
진보 정당의 역사는 또한 자유주의적 보수 야당과 진보 정치 세력의 분화 과정이기도 하다. 자유주의적 보수 야당에 대한 비판적 지지와 진보 세력의 독자 정당 사이에서 수많은 고민과 갈등의 꽤 긴 시간을 통과해야 했던 경험은 이 책에 잘 정리되어 있다.
진보 세력은 군사 정권 아래에서는 결코 자기의 정치 조직을 가질 수 없었다. 그로 인해 자유주의적 야당이 진보 세력을 대표하는 역사적 인연이 맺어지게 된다. 자유주의적 야당은 정통성 확보를 위해, 진보 세력은 현실 정치 공간의 활용을 위해 일종의 상생을 했던 것이다. 자유주의적 야당은 진보 세력으로부터 새 피를 수혈하기도 했고, 진보적 의제를 넘겨받아 대여 공세에 활용하기도 하면서 일정한 동거 체제를 구축했다. 물론 그 대가는 진보 세력의 독립성과 정체성의 점진적 소멸이었다.
그러나 민주화 과정에서 야당이 보수성을 점차 강화해 가면서 동거 체제는 균열할 수밖에 없었고, 그로 인해 진보 세력 내부는 독자 정당과 비판적 지지로 대립되는 양상을 보였다. 결국, 민주노동당이 창당되었고, 이는 비판적 지지의 유산을 청산하는 신호가 되어야 마땅했지만, 자유주의적 야당과의 끈질긴 인연 때문에 여전히 두 정치 세력은 분리를 완결 짓지 못했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선거철만 되면 단일화, 연합 논의가 부상하고 자유주의적 야당과 진보 정당의 지지가 동반 등락하며 시민들이 상호 대체 관계라기보다는 보완 관계로 인식한다는 사실은 역사적 동거가 끝나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진보 정당의 자립과 독립은 아직 멀었다.
이제는 한국 현대사에서 왜 그들은 진보 정당을 위한 고난의 행군을 계속해야 했는가, 한국 정치에서 진보 정당은 왜 필요한가라는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할 차례이다. 저자는 정당의 기능을 "다층적이고 다면적인 사회적 갈등을 표출시키고 그것을 민주적으로 조정해 냄으로써 궁극적으로 사회 통합을 유지하"(289쪽)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한국 정당 체제는 사회적 갈등을 올바로 대표하지 못하고 있다. 여야 정당이 있지만 모두 이념적 색깔이 유사한 보수 독점적 정당 체제이다. 따라서 이들 정당에 의해 대표되지 못하는 계층은 자기의 요구와 이익을 실현할 방법이 없다. 이런 체제는 "기본적으로 노동자와 서민의 요구와 이해를 배제하는 것을 특징으로(294쪽)"하기 때문이다. 또한 사회 상층의 이익을 편향적으로 대표하고 사회의 폭넓은 요구를 조직하지도 못하고, 지역주의 정치를 강화하게 된다. "즉 진보 정당의 성장과 발전을 통한 압박 없이는 기성 정당 정치의 변화를 결코 기대할 수 없으며 따라서 오늘의 위기를 극복할 수도 없고, 내일의 희망을 새롭게 만들어 낼 수도 없다.(295쪽)"
한마디로 진보 정당의 부재는 자기의 정치적 대표가 없는 수많은 시민의 존재를 증명한다. 이는 기득권을 위한 정치적 결정이 일상적으로 내려지고, 그 때문에 서민, 가난한 자, 소외된 자들의 삶이 위협 당해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진보 정당이 한국 정치에서 의미 있는 세력으로 존재하지 못해 불평등, 차별과 소외를 극복할 수 없다면, 그것은 다수가 사회적 시민권 상실 상태에 있다는 말과도 다르지 않다.
한국 정치는 이 같은 비정상성이 너무 오래 지속된 나머지 비정상을 정상으로 여기는 착시 현상도 만연해 있다. 당연히 그로 인해 민주주의는 질적으로 나빠졌고, 서민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누구도 자기의 권리를 대신 보장해주지 않는다. 자기의 정치 세력을 가져야 한다. 이것이 진보 정당이 필요한 이유이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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