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6년 11월 05일 04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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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협
40세 나이에 교수직을 그만둔 후 20여 년간 독학으로 문명교섭사를 공부해 온 역사학자. 서울대학교 이공계 수석 입학 뒤 사학과로 전과한 독특한 이력이 있다. 프레시안 장기 연재를 바탕으로 <해방일기>, <뉴라이트 비판>, <페리스코프>, <망국의 역사, 조선을 읽다> 등의 책을 썼다. 프레시안 창간 때부터 거시적 관점에서 역사와 한국 사회를 조망하는 글을 꾸준히 쓰고 있다. <역사 앞에서>의 저자 김성칠 교수가 부친이다.
중국이 홍콩에서 얻는 것
[김기협의 퇴각일기] 열아홉 번째 이야기
1990년 여름 계명대학을 떠나고 몇 달 후 중앙일보사 동서문제연구소에 객원연구원으로 이름을 걸어놓으면서 국제관계에 관심을 키우기 시작했다. 교수직에 있는 동안에는 현실문제에 관심이 적었다. '역사학자'의 의미를 좁게 생각하고 지낸 것이다. 그러다 신문사에 이름을 걸고 지내게 되니, 지금 세상 돌아가는 모양에 마음을 쓰게 되었다. 현실문제 중 국제관계로 관
김기협 역사학자
10년 전과 달라진 북한 관광
[김기협의 퇴각일기] 열일곱번 째 이야기
6월 14일 06:00 버스로 연길 출발. 07:40 화룡(和龍)시 공안국 출입경관리국에서 출국 수속. 10:00 고성리(古城里) 구안(口岸)에서 입국 수속. 11:00~13:30 조선 삼장리 구안에서 삼지연까지 버스로 이동. 15:30 점심식사 후 삼지연 혁명성지를 참관하고 평양행 비행기 탑승. 17:00 평양 도착 후 만경대와 김일성광장을 구경하고 저녁
문재인의 '평화' 연설을 듣고, 김영삼의 취임사를 꺼내들다
[김기협의 퇴각일기] 열여섯 번째 이야기
지난주 문재인 대통령의 스웨덴 의회 연설에서 '신뢰'란 말이 마음에 크게 남았다. 중계를 볼 때는 가볍게 들렸는데, 연설문을 다시 읽어보면서 그 의미가 무척 의미심장하게 생각되었다. 그는 세 가지 방향(또는 층위)에서 '신뢰'를 말했다. 첫째 국민 간의 신뢰. 평화롭게 잘 살고자 하는 마음을 모두가 갖고 있다는 믿음 위에서 오해를 줄이고 이해를 넓힘으로써
산샤(三峽) 댐을 바라보는 굴원(屈原)의 시선
[김기협의 퇴각일기] 열다섯 번째 이야기
내게 이번 여행의 중심 주제는 단연 장강(長江, 창장)이었다. 예전에는 양자강(揚子江, 양즈장)이란 이름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것은 장강 하류 지역에서만 부르던 이름이라고 한다. 선교사 등 서양인들이 하류 지역에서 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에 그 이름으로 외부에 알려지게 된 것이라고. '장강'을 '양자강'으로 근년까지 우리 사회에서 인식해 온 사실이 두 나라 사
관광객의 눈으로 본 중국의 '소강(小康)'
[김기협의 퇴각일기] 열네 번째 이야기
20여 년 전 하이텔 어느 게시판에서 논쟁을 벌이다가 화가 난 한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 "당신은 조직 활동이라고는 아무것도 못할 사람이요!" 악담으로 한 말씀이 내게는 덕담으로 들렸기 때문에 기억에 깊이 남은 말인데 이번 여행을 다녀오며 절실하게 떠올랐다. 나는 정말 조직 활동 싫다! 여러 사람과 긴 시간 함께 지내는 일이 29년 전 대학을 떠난 이후
안경이여, 잘 있거라!
[김기협의 퇴각일기] 열세 번째 이야기
여행 다니며 구경을 잘 하려면 안경을 써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안경을 꺼내 봤다. 지난 2년 동안 안경을 전혀 쓰지 않고 살았다. 중학교 때 흑판 보기가 힘들어져 시력을 측정하니 양쪽 다 0.1이 나와 쓰기 시작한 안경은 내 몸의 일부가 되었다. 책 볼 때와 잠잘 때 외에는 거의 안경을 벗는 일 없이 수십 년을 살았다. 그러다 몇 해 전부터 안경과
43시간, 중국 대륙을 달리는 겁나는 기차여행
[김기협의 퇴각일기] 열두 번째 이야기
5월 23일. 07:18분 연길을 떠나 11시에 창춘(長春)역에서 집결, 12:05분 출발 열차에 탑승. 25일. 07:18분 충칭(重慶)역 도착. 몇 군데 구경한 후 버스로 3백여 공리(公里, 킬로미터) 동쪽의 언스(恩施) 투자족-먀오족 자치주로 이동. 26일. 언스 일대 관광. 27일. 언스 일대 관광 후 완저우(萬州) 부두로 가서 19:00분 출항하는
'문명의 위기' 앞에서 '적응주의'를 생각한다
[김기협의 퇴각일기] 열한 번째 이야기
영국의 한 친구에게 오랜만에 근황을 적어 보내다가 지금 쓰고 있는 글이 'Retreat Diary'라고 했다. 쓰면서 생각하니 '퇴각일기'보다 '피정일기'로 읽힐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퇴각(退却)'에 '피정(避靜)'의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데 생각이 미쳤다. 일상생활의 틀을 벗어나 마음을 다듬는 시간을 가진다는 의미에서 피정
제주살이 10년
[김기협의 퇴각일기] 열 번째 이야기
1990년 여름 교수직을 떠난 뒤, 얼마 동안 프랑스에서 자료 조사를 하고 돌아온 후 제주도에 자리 잡았다. 몇 가지 이유가 어울려 작용했다. 첫째, 자연을 가까이하며 살고 싶었다. 그 무렵 유럽에 많이 가서 지내보는 동안 한국의 도시 생활이 너무 자연과 격리되어 있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케임브리지 같은 소도시는 말할 것 없고, 파리 같은 대도시의 환경도
'반전유인(盤前有人)'의 바둑 자세
[김기협의 퇴각일기] 아홉 번째 이야기
이번 연길 체류 중 한 가지 일과가 자리 잡았다. 마작(麻雀)이다. 아내와 언니 세 분, 4자매가 별다른 사정 없으면 점심 후에 큰언니댁에 모여 저녁 전까지 판을 벌이는데, 나는 후보 선수다. 주전 선수가 다 있을 때는 4시경에 가서 휴식 원하는 분을 교체해 드린다. 한 분이 사정이 있으면 나도 선발 선수로 뛰는데, 내 일하는 시간을 보장해 주기 위해 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