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6년 11월 05일 04시 48분
홈
오피니언
정치
경제
사회
세계
문화
Books
전국
스페셜
협동조합
김기협
40세 나이에 교수직을 그만둔 후 20여 년간 독학으로 문명교섭사를 공부해 온 역사학자. 서울대학교 이공계 수석 입학 뒤 사학과로 전과한 독특한 이력이 있다. 프레시안 장기 연재를 바탕으로 <해방일기>, <뉴라이트 비판>, <페리스코프>, <망국의 역사, 조선을 읽다> 등의 책을 썼다. 프레시안 창간 때부터 거시적 관점에서 역사와 한국 사회를 조망하는 글을 꾸준히 쓰고 있다. <역사 앞에서>의 저자 김성칠 교수가 부친이다.
달만 쳐다보지 말고 손가락도 들여다보라!
[김기협의 퇴각 일기] 여덟 번째 이야기
1969년 내가 사학과로 전과할 때 서울 문리대 사학과가 국사학과, 동양사학과, 서양사학과로 분과되고 있었다. 그 해 신입생은 분과된 각 학과로 지원해 제1회 입학생이 되었는데, 2학년으로 전과한 나는 사학과의 마지막 회에 끼어들었다. 사학과 학생들은 기존 커리큘럼에 따라 학점을 이수하고 국-동-서 중 어느 분야라도 골라 졸업논문을 쓰게 되어 있었다. 분과
김기협 역사학자
40세에 교수직을 떠난 이유
[김기협의 퇴각 일기] 일곱 번째 이야기
내 여권에는 이름이 'Orun Kihyup Kim'으로 되어 있다. 1983년 첫 여권 발급을 신청할 때 정한 이름이다. 두 형이 1970년대 초반에 미국으로 유학 갔는데, 원래 이름의 발음을 알파벳으로 적는 통상적인 방법으로 이름을 만들었다. 그런데 'Ki Bong Kim'과 'Ki Mok Kim'이 같은 시기에 버클리에서 지내는 동안 이름 때문에 불편을
중국어의 '동세서점(東勢西漸)'?
[김기협의 퇴각일기] 여섯 번째 이야기
작년 봄 중국어를 공부할 마음이 바짝 들었다. 중국사를 전공으로 택한 후 50년 동안 중국어 공부할 생각이 늘 있었지만, 다른 일 제쳐놓고 매달릴 만큼 절박한 마음이 든 적은 없었다. 읽는 데 별 지장이 없는 만큼, (중국어에서 번역한 책도 두 권 있다) 회화는 형편 따라 천천히 익혀 나갈 수 있으려니 하는 정도 생각을 늘 갖고 있었다. 내가 대학 제도 안
"나는 왜 이렇게 말을 못 할까?"
[김기협의 퇴각일기] 다섯 번째 이야기
몇 주일 전 한 YTN 기자로부터 불쑥 전화가 왔다. '김수환 추기경 10주기' 특집을 만드는 데 나를 인터뷰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왜 나를? 알고 보니, 추기경님에 관한 글을 검색해 본 가운데 내가 예전에 쓴 글에서 흥미로운 시각을 많이 찾을 수 있었다고 했다. 특히 추기경 선종 얼마 후 프레시안에 올린 글의 사진 설명이 인상적이었다며 그 설명도 내가 쓴
연변, 아내 고향이 내 고향!
[김기협의 퇴각일기] 네 번째 이야기
'제2의 고향'이란 말을 흔히 하는데, 지금은 '제1의 고향'도 없는 사람이 많은 세상이다. 나도 고향이 없는 사람이다. 아버지 고향은 경상도 영천, 어머니는 충청도 아산에서 출생해 함경도 덕원에서(지금은 강원도 천내) 성장했고, 서울에서 만난 두 분이 서울에서 나를 낳으셨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에 아버지 고향을 처음 찾은 것이 고등학교 졸업할
가톨릭교인이 된 사연
[김기협의 퇴각일기] 세 번째 이야기
2년 전, 68세 나이에 세례를 받고 기독교인이 되었다. 아는 사람들이 모두 뜻밖의 일로 받아들인다. 나 자신에게도 뜻밖의 일이다. 어려서부터 동양적 취향을 보였고, 전공도 중국사로 하게 되었다. 철든 뒤로는 합리주의에 깊이 물들어 '신앙'이란 것을 갖게 될 것 같지 않았다. 학생 시절 불교를 가까이해서 절 살림에 꽤 익숙해졌지만, '종교'로 받아들일 마음
"제자여, 역모를 꾸며라!"
[김기협의 퇴각일기] 신영복 선생의 글을 번역하며 '사제관계'를 생각하다
'퇴각일기' 연재를 시작하면서 조마우로 군을 제자로 거둔 이야기를 적었다. 적으면서 마음 한 구석이 켕겼다. 남에게 스승 노릇 하겠다고 나서면서 그 노릇이 어떻게 하는 건지 내가 알기나 하는 건가? 돌이켜 보면, 평생을 통해 이분이 내 '스승'이라고 공언할 만한 당당한 사제관계를 맺은 일이 없다. 마음속으로 가르침을 얻으며 '선생님'으로 모셔 온 분은 많지
'퇴각하는 삶'을 생각하며
[김기협의 퇴각일기] 연재를 시작하며
나의 휴대용 서재 원톄쥔 (김진공 역) 백년의 급진정위안 푸 (윤지산 윤태준 역) 법가, 절대권력의 기술김시종 (윤여일 역) 조선과 일본에 살다이태진 조선유교사회사론패트릭 스미스 (노시내 역) 다른 누군가의 세기강상중 (이경덕 역) 동북아시아 공동의 집을 향하여논픽션그룹 실록 역사논픽션 3-1운동권보드래 3월 1일의 밤이병한 유라시아 견문 3, 리스본에서
'시시한 역사'를 위하여
[프레시안 books] <시시한 역사, 아버지> 우일문
역사학을 전공하면서도 큰 흐름 살피기만 좋아해서 과학문명사 방면을 공부하던 내가 뒤늦게 한국 현대사에 관심을 갖고 '지금 여기' 사람들 모습을 파고들게 된 계기는 아버지가 만들어준 것이다. 철들기 전에 돌아가신 그분의 일기를 어머니께 넘겨받은 것이 38살 때였고, 그 일기를 통해 아버지의 실제 모습을 그리다 보니 그분이 처해 있던 시대상을 살펴보게 되었다.
북한의 새로운 길, 대화 넓히는 길이기를
[기고] 트럼프만 바라보는 길, 그리고 새로운 길
2018년 한 해 동안 북한을 둘러싸고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그 변화를 통해 1945년 이래의 남북 간 긴장을 벗어나 '한반도 평화'를 이룰 희망이 크게 일어났다. 이 방향의 변화는 2019년에도 계속해서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그 변화가 어떤 방식으로 일어날지는 지금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2018년의 변화가 북한의 주동으로 일어난 것이고 남한, 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