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이 무섭다. 민심의 무서움을 보여준 국민이 이번 6.2지방선거의 승자다. 여야가 경쟁하고 국민은 심판이나 보는 존재라는 고정관념을 이제는 버려야 한다. 국민은 여야 정당들보다 더 역동적으로 행동하고 여야 정당들보다 더 전략적으로 행동한다.
국민이 승자라면 패자는 한나라당이다. 대통령의 높은 지지도, 민주당을 여유 있게 앞서는 정당 지지도, 그리고 북풍과 색깔공세로 압승이 예고되었던 선거에서 졌으니만큼 이번의 패배는 충격적이다. 충청권의 참패로 세종시 재추진은 사실상 물 건너갔고 경남에서의 패배로 4대강 사업의 중추인 낙동강 치수정비사업의 전도도 불투명해졌다.
박근혜 대표의 대항마로 거론되면서 이번 선거를 대권도전의 발판으로 삼으려 했던 정몽준 대표의 낙마나, 이기긴 했으나 진거나 다름없는 오세훈 후보의 상처뿐인 승리도 한나라당으로서는 뼈아픈 손실이다.
사정이 이러하기 때문에 '김문수의 승리'는 더욱 값지다. 선거 중반전을 아연 긴장시킨 '역전단일화'의 주역 유시민의 강력한 추격세를 막아낸 김문수의 힘은 그가 'TK에 기반을 둔 수도권 단체장'이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이력을 거의 그대로 빼다 박았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된다. 많은 사람들, 특히 친이계 사람들이 박근혜 전 대표에 맞설 수 있는 대안주자의 가능성을 김문수한테서 보는 이유일 것이다.
6.2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은 일단 승자다. 민주당은 국민과 함께 승자의 반열에 섰다. 그러나 민주당의 승리는 유보적이고 제한적이다. 국민의 선택이 이명박 정부의 견제에 방점을 찍은 것이지 민주당의 승리에 방점을 찍은 것은 아니라는 뜻에서다.
민주당은 이번 선거를 치루면서 지도부의 정치적 무기력증과 전략부재를 여과 없이 노출했다. 서울 25개 구 중 21개 지역에서 승리했음에도 서울시장에서 패배한 것은 민주당 지도부와 한명숙 후보캠프의 전략적 오류와 정치적 무능 말고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그러므로 한명숙 후보와 민주당 지도부는 "선거는 졌지만 국민은 승리한 것"이라며 간발의 패배를 아쉬워할 것이 아니라 질 수 없는 선거, 넉넉하게 이길 수 있는 선거를 이기지 못한 데 대해 깊은 반성적 성찰을 선행해야 할 것이다.
여권이 선거 패배의 원인을 진단하고 표심에 투영된 민심을 수렴해 새로운 정치기획으로 전환시켜 내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번만큼은 제대로 진단하고 제대로 기획했으면 한다.
먼저 민심을 읽고 민심에 부응하는 국정운영 청사진을 다시 점검하고 그에 걸맞은 인사쇄신을 해야 제대로 된 국정쇄신이지 몇 사람한테 선거패배의 책임을 지워 인사조치하는 것을 국정쇄신이라 할 수는 없겠기 때문이다.
정부는 당장 천안함 사태에 대한 후속 대처와 경제위기극복에 전력투구하는 한편 세종시 문제 같은 묵혀둔 숙제를 처리해야 할 상황이므로 시간이 별로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과제들은 시간이 촉박해서 처리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국민적 동의와 여·야 간 합의가 없어서 어려운 것이다. 국정운영기조를 국민통합적 방향으로 전환하지 않고는 감당할 수 없는 과제들인 것이다.
선거 다음날 집권당 지도부는 총사퇴하고 대통령 실장은 사의를 표명했다. 여당은 7년 만에 비상대책위원회체제를 가동했고 여권 전체는 일종의 비상대기 상태에 돌입했다. 여당 참패라는 선거 결과에 따른 불가피한 선택일 것이다. 그렇다고 이 같은 비상체제가 모든 문제를 일거에 풀어주지는 않는다. 정확한 진단과 올바른 대안모색이 문제해결의 핵심이다.
야권의 표정은 전체적으로 밝아 보인다. 선거에서 승리한 민주당도, 유시민을 앞세운 국민참여당도, 명분을 내주고 실리를 챙긴 민노당도 밝은 표정들이다. 명분도, 실리도 잃게 생긴 진보신당의 처지가 딱하고 여전히 존재감이 없는 창조한국당의 어정쩡한 모습이 눈에 걸리지만 어쩌랴 선거는 끝나고 '논공행상'에는 피도 눈물도 없는 법이다.
민주당은 내각 총사퇴를 선거 후 정국의 첫 번째 이슈로 제기했다. 선거승리를 부각시키고 정국주도권을 공세적으로 행사하겠다는 취지로 이해하지만 한나라당 지도부의 총사퇴가 가시화된 상황에서 어차피 단행하지 않을 수 없는 인사쇄신을 첫 번째 이슈로 제기하는 민주당의 행보에서 승자의 품격과 여유를 느끼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선거 후 정국의 키워드는 단연 통합이다. 정부 여당은 국민통합과 통합적 국정운영에 대해 그리고 야권은 야권통합과 수권전망에 대한 비전을 만들어 가야 한다. 그것이 민심에 부응하는 길이고 국민과 함께 미래를 만들어 가는 길이다. 갈등과 대결보다는 쇄신과 통합의 경쟁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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