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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깊습니다. 새벽빛이 보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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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밤이 깊습니다. 새벽빛이 보이십니까

[기고] 길 떠나신 수경 스님께 드리는 편지

수경스님, 밤이 깊습니다.
이 시간 어디서 잠 못 드는 밤을 지새우고 계십니까.
스님이 어디 계신지도 모르면서 허공에 이 편지를 띄웁니다.
화계사 주지도, 불교환경연대 대표도, 그리고 조계종 승적도 모두 던지고 떠나셨습니다.
'다시 길을 떠나며'라는 남기신 글에 당신에게 돌아올 비난과 비판, 실망, 원망 모두를 약으로 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스님 떠나신 자리가 큰 탓에 뒷말들이 무성합니다.
허공에라도 편지를 띄워야 짧지 않은 세월, 세간의 인연을 맺어온 사람의 도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수경스님, 왜 이 때입니까.
이명박 대통령이 4대강 사업을 중단한다고, 하다 못해 수정한다고 했습니까?
조계종 총무원에서 4대강 사업 저지에 뜻을 함께 하겠다고 했습니까?
모든 것이 꽉 막힌듯한 이 때, 스님께서는 모든 걸 내려놓고 떠나셨습니다.
뒤에 남은 모든 이들에게 깊이 생각해 보자는 화두를 던지고 떠나셨습니다.

스님이 떠나신 14일, 이명박 대통령은 대국민 연설에서 4대강 사업을 변함없이 강행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이명박 정권은 4대강 사업을 즉시 중지 폐기하라.
이명박 정권은 부정부패를 척결하라.
이명박 정권은 재벌과 부자가 아닌 서민과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하라."
그렇게 요구하면서 문수스님께서 소신공양하신 것에 대한 응답이었습니다.

▲ 문수 스님 추도식에 참석한 수경 스님 ⓒ프레시안
지난 5일 문수스님 추도식에서 스님께서는 이렇게 호소하셨습니다.

"이명박 대통령님,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런데 어찌 눈도 깜짝하지 않으십니까? 강의 숨통을 자르면서, 온갖 생명을 짓밟는 것으로도 모자라 사람의 목숨까지 가져가고도 이토록 냉담하십니까? 이럴 수는 없습니다....이제 그만 하십시오. 더 이상 국민들을 힘들고 지치게 하지 마시고, 국민이 당신을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는 상황으로 몰고 가지 말아 주십시오."

스님은 또한 당신께서 속했던 조계종단 수뇌부가 4대강 저지에 입장을 분명히 하지 않고 더욱이 문수스님 추도식을 조계사에서 종단장으로 치르지 않도록 한 조처에 대해 "더 이상 정권의 하수인 노릇 하지 말라"고 꾸짖으시면서 "제발 중답게 살자"고 호소하셨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더 이상 저처럼 거리로 나서는 수행자가 없게 해 달라.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저는 당장 바랑 지고 산골로 돌아가 촌로로 살겠다"면서 울먹이셨습니다.

이 시각까지 스님의 그런 호소에 대해서 조계종 수뇌부의 반응은 없습니다.

스님께서는 지난 10여년 동안 지리산 댐 문제로, 새만금 3보1배 순례로, 4대강운하 반대 오체투지 순례로, 다시 4대강 죽이기 반대운동으로 수고를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무릎연골이 닳아 없어지고 온 몸에 깊은 병이 들었습니다. 심신이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심신 상태로 길 떠나시면서 남기신 글에 "대접받는 중노릇을 해서는 안된다"는 글귀를 맨 앞에 써놓으셨습니다. 초심 학인 시절, 어른 스님으로부터 늘 듣던 소리였는데 지금 당신이 그런 중노릇을 하고 있고 당신으로서는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노라고 고백하셨습니다.

환경운동이나 NGO단체에 관여하면서 모두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한 시절을 보냈는데 그것도 하나의 권력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으며 당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무슨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에 빠졌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환경생태운동과 같은 시민사회운동을 어려운 여건 속에서 벌여나가는 활동가들에게 불편한 진실을 제기하신 것입니다. 정치권력과 대척점에 서있어 고통을 겪기도 하지만 또 하나의 권력을 행사하기도 하며 옳은 일을 한다는 확신 때문에 독선과 오만이 따를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계십니다.

스님께서는 "이번 지방선거의 야당 지지는 '순수한' 야당 지지가 아니라는 것을 야당 정치인 여러분들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에 대한 불신을 야당에 대한 지지로 오해하지 말고 하루 빨리 대안을 보여 주십시오"라고 문수스님 추도식에서 말씀 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여당이나 보수진영이라고 해서 모두 환경생태를 파괴하고 뭇 생명을 죽이는 4대강 사업을 무조건 지지하는 것은 아니며 야당이나 진보진영도 4대강 사업을 반대하지만 마음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가진 인사들이 일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여야든, 보수-진보든 어떤 정파도 이제는 4대강과 같은 유구한 생태환경을 인간의 편익과 효율만을 위해서 빠른 시일 안에 파괴하는 일은 용납될 수 없는 행위라는 것에 합의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바로 자연의 품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종교의 입장은 어머니 자연이 자식 인간의 손으로 파괴되고 더럽혀지는 것을 용납할 수 없고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죽은 어머니 품에서 자식도 죽어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다는 입장인 것입니다.

스님께서는 우리 국민도 모두 이런 자세를 이해하시고 지지해 주실 때, 4대강을 비롯한 아름다운 우리 금수강산을 지켜내고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셨습니다.

그렇다고 스님을 헐뜯는 인사들이 주장하듯이, 스님의 입장이 생태자연을 일점일획도 건드려는 안된다는 것이 아님을 우리 모두는 압니다.

스님께서는 남긴 글 마지막에 이렇게 쓰셨습니다.
"번다했습니다
이제 저는 다시 길을 떠납니다
어느 따뜻한 겨울,
바위 옆에서 졸다 죽고 싶습니다."

스님께 드리는 편지를 마무리하면서 제가 아는 문우가 보내준 강경화 시인의 시를 함께 보냅니다.

머무르지 않음

강경화

그래 어떠랴, 저 비 오는 안개 속에
속 깊이 푸르른 나무들
저 홀로 고요한들.
보는 이 아무도 없어 외로움인들 어떠랴,
아름다움이 저 홀로 빛난들
그래서 허무함인들 어떠랴, 그래, 어떠랴,
새로운 시간을 위해
시간을 버리며 휘저으며 떠나간 사람들
다시는 오지 않은들 어떠랴,
영영 잊는다 한들 어떠랴, 바람이여,
이제 나는 일어설 수 있는데
이제 나는 떠날 수 있는데.
해가 진들, 시간이 멈춘들 어떠랴, 강물이여,
이제 나는 흘러갈 수 있는데
이제 나는 머물지 않을 수 있는데!

<이제 나는 머물지 않을 수 있는데>(2010, 모아드림)


※ 이 글을 읽으신 분들에게 덧붙여 말씀드립니다.

스님께서는 문수스님의 소신공양을 보시면서 자신을 깊이 되돌아볼 계기를 가지신듯합니다. 지난해 초부터 스님께서는 몇몇 지인들과 말씀 나누시면서 운동도, 주지자리도 모두 내놓고 환속해서 두메로 들어가 농사를 지어볼 까 생각한다고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몇 곳을 둘러보시면서 장소를 물색하셨다고도 했습니다. 그 때 만류했습니다. 그러나 깊은 생각 끝에 내려진 스님의 이번 결정은 되돌이키기 어려워 보입니다.

15일 낮 스님을 걱정하는 지인 몇 사람이 모였습니다. 심신이 극도로 위태로운 상태인 수경스님이 길 떠나신 것이 걱정스럽고 안타깝고 슬픈 일이지만 스님의 결정을 존중하고 스님을 수소문하지 않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스님께서 스스로 무너지는 생태자연을 그대로 두고 보실 수 없어 다시 나타나실 때까지 기다리자고 합의했습니다. 우리 자신이 스님이 되어서 노력하자는 다짐과 함께.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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