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박기현(backgugo@naver.com) |
낭만이 비집고 들어갈 틈 없는 뻑뻑한 삶
간혹 가난은 낭만을 내포한다. 다양한 매체 속 궁상의 청춘들은 언어, 행위를 통해 배고픔에 대한 일말의 동경을 유도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연극은 바로 보나 모로 보나 도대체 부러워할만한 구석이 없다. 이건 짜증나도록 리얼한 연극의 태도에서 비롯된다. 곧 우리의 모습이나 무대 위 인물들의 모습이나 다르지 않다는 거다. 우리가 스스로를 바라보며 부러워할 일이 없지 않은가. 우리는 절대로 그들이, 그러니까 우리 자신이 부럽지 않다.
배달기사 남편과 마트점원 아내는 빠듯한 월급과 통장에 남아있는 120만원으로 매우 '평범하게' 살아간다. 그들의 삶에 '리조트와 와인, 크리스털로 된 식탁과 휴양지의 바다' 따위가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러나 '말'로는 늘 존재한다. 욕실의 '월풀과 멋진 자동차' 역시 부재하지만 혀끝에는 남아있다. 아슬아슬한 건지 안전한 건지 모를 이들의 삶에 기어코 '임신'이라는 사건이 터진다. 그야말로 사건이다. 아내는 배속의 콩알만 한 태아가 선물이랍시고 귀여운 이벤트를 준비했건만 남편의 표정은 떨떠름하다. 아내의 머릿속에는 귀여운 아이가 있고 남편의 머릿속에는 숫자가 가득하다. 나가는 숫자와 들어오는 숫자가 도저히 균형을 이루지 못한다.
사실 이들의 자잘한 충돌은 처음부터 존재해왔다. 부부라는 관계가 그렇듯 사소하다고 판단되는 것들은 쉽사리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는다. 차가운 것과 뜨거운 것이 적당히 섞여 하나의 형태로 흘러왔다. 그러나 소비하는 또 하나의 생명이 탄생하기에 이르자 날카로워지고 예민해진다. 이는 매우 일상적이면서도 연극적인 제스처다. 아내는 서럽도록 울지만 남편은 '울지 마라, 보기 싫다'고 말한다. 남편은 생활비가 왜 이리도 많이 나가냐며 지적질을 서슴지 않지만 아내는 '화장실 불이나 제대로 끄고 다니라'며 일침을 가한다.
가난해서 군더더기 없이 담백해진 연극
| ▲ ⓒ박기현(backgugo@naver.com) |
연극에서 가장 큰 행운이라 부를만한 사건은 매우 사소하다. 음주단속에 걸린 남편이 그대로 잘리지 않고 다른 부서로 옮겨지며 계속 일을 할 수 있게 됐다는 것, 이것이 연극 처음부터 끝까지 중 유일한 행운이다. 이 행운으로 분위기전환이 된 인물들은 거대한 희망을 품는 대신 '에라이, 살아보지 뭐'의 태도를 취한다. 멋들어지게 불러지지 않는 남편의 색소폰 소리는 이 모든 삶과 닮았다. 매끄럽지는 않으나 어쨌든 소리를 낸다. 깔끔하고 명쾌한 음은 없지만 모든 음표들이 모여 연주 비슷한 형태로 드러난다. 차를 타고 시원한 고속도로를 달리는 대신 어설프게 차려입은 하이힐로 비포장도로를 걷는 고달픔이 우리와 같은 표정을 걸치고 무대 위에 있다.
매우 단조로운 서사의 '경남 창녕군 길곡면'은 놀라울 정도의 흡입력을 자랑한다. 일상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연출의 뚝심과 배우들의 섬세함이 극을 단단하게 만든다. 사투리 역시 리얼함과 유머를 동시에 배가시킨다. 관객들에게 눈길한 번 주지 않는 인물들은 그저 무대 위에서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 관객은 그들을 사랑하기 마지않는다. 그것은 관객 자신의 삶에 대한 연민과 애정이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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