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개헌절 경축식에서 임채정 국회의장은 '87년 헌법'은 그 정치적 수명을 다했다며 개헌 필요성을 강조했다. 임 의장은 이와 함께 국회의장 자문기구로 '헌법조사연구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공언했다.
임 의장의 발언은 차치하고서라도 학계, 시민단체, 정치권 등 각계에서 개헌논의가 점점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분과별로 개헌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헌법학회는 지난 달 23일 중간보고에 이어 곧 연구결과 보고서를 낼 예정이고 전경련을 필두로 한 재계도 개헌에 관한 공식 의견을 곧 제출할 것으로 알려졌다.
대체적으로 '87년 헌법을 손볼 필요가 있다'는 점에는 의견이 일치하고 있지만 한 꺼풀 벗겨보면 그 속내는 대단히 복잡하다. 정략적 접근이라는 비판을 우려하는 정치권은 학계나 시민단체 등 민간이 총대를 메주길 바라지만, 개헌을 찬성하는 진영에서도 개혁과 보수가 갈라지고 있다. 개혁적 진영은 '경제 민주화 조항 강화, 기본권의 확대, 헌법재판소 등 과도한 사법권의 재조정' 등을 바라는 반면 재계를 비롯한 보수 진영은 '경제 민주화 조항 삭제, 자유권의 강화 및 평등권의 축소' 등 을 주장하고 있다. 한마디로 '바꾸자'는 점만 동의할 뿐 방향은 정반대인 것이다.
반면 고려대 최장집 교수는 "제도 개혁이 능사가 아니다"며 "오히려 현 집권세력의 실정을 가리는 기회로 작동할 것"이라며 개헌 자체를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일부 진보진영도 "현재 사회적 역관계나 국회의원들의 성향으로 볼 때 현 시점의 개헌은 보수적 그것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지금은 개헌이 아니라 오히려 호헌을 이야기 할 때"라는 입장이다.
정치권으로 눈을 돌려보면 먼저 여당과 민주당 등 정계개편을 통한 '판 흔들기'를 기대하는 쪽은 개헌에 적극적이다. 이들은 "힘들면 권력구조라만이라도 바꾸자"며 이른바 '원포인트 개헌'을 제기하기도 했다. 반면 '이대로 쭉'을 기대하는 한나라당은 그 필요성은 공감하면서도 차기 정권이나 18대 국회로 개헌논의를 미루자는 쪽이다.
찬반 양론이 모두 그럴듯한 논리를 대고 있지만, 적어도 정치권 내에서 진행되는 개헌논의는 정략적이라는 혐의에서 자유롭지 않다. 여당의 경우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대선 당시 '2006년까지 개헌준비를 완료하겠다'고 공언했음에도 불구하고 탄핵 직후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달성하고선 올해 초에 이르기까지 헌법에 대한 진지한 접근은 거의 없었다. 그러다가 여당의 완패로 끝난 5.31 지방선거 이후 개헌논의가 쏟아진 점을 감안하면 그 의도는 여러 모로 의심받기에 충분하다.
한나라당도 마찬가지다. 차기 대통령의 임기 시작과 동시에 개헌논의를 진행하자는 게 골자다. 그러나 앞선 3명의 민선 대통령이 모두 개헌을 이야기하고 당선됐지만 임기 시작과 동시에 그 약속이 공수표로 돌아갔다는 점을 감안하면 '순진하거나, 하지 말자'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 게다가 지난 2005년 개헌을 연구하는 모임을 꾸려 보고서를 발간하고 "2006년에는 반드시 헌법개정특위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까지 폈던 한 의원이 최근 "판을 흔들려는 여당 쪽의 개헌논의에 말려들면 안된다"고 주장한 것은 그 속내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드러내고 있다.
그렇다고 개헌론에 나름대로 진지하게 접근해 온 일부 의원들의 목소리까지 의미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개헌논의가 본격화되기 이전부터 국회 헌법포럼을 구성해 7차례의 연속 세미나를 진행해 온 열린우리당 이상경 의원도 그 중 한 명이다.
이 의원이 소논문에 가까운 장문의 글을 <프레시안>에 보내왔다. "지금 당장 개헌을 공론화 할 때"라는 주장은 역시 여당 의원답다. 그러나 판사 출신으로서 지금까지 진행된 개헌 논의를 충실히 정리했고, 개헌론자의 입장을 비교적 객관화하려 애쓴 흔적이 엿보인다. 개헌론에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는 도움이 될만한 자료라는 판단에서 전문을 게재한다. <편집자>
1. 지금 왜 개헌인가?
여기저기서 개헌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 물론 개헌 자체에 대한 회의적 시각도 있고, 다음 정권에서 개헌을 해야 한다는 일부 야당의 주장도 있다. 국민들은 개헌문제에 별 관심이 없거나 개헌 논의 자체에 의혹의 눈길을 보내는 경우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국민들 중 상당수가 개헌 논의에 부정적 반응을 보이는 것은 우리 역사를 되돌아 볼 때 수긍할 수 있는 측면이 많다. 지금까지 9차례의 개헌 중 7~8차례의 개헌이 집권자의 장기집권을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었다는 점에서 국민들에게는 개헌이 부정적으로 각인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어도 제9차 개헌(1987년 헌법개정)과 앞으로의 개헌 논의가 장기집권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제 그 누구도 과거 권위주의 체제로 회귀하려고 시도할 수도 없고 그렇게 되는 것을 국민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의 개헌과 관련된 논의를 막연히 장기집권 시도라는 이유로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보아서는 안될 것이다.
개헌에 대한 논의가 확산되는 이유는 단순하다. 개헌이 필요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왜 개헌이 필요한가? 한마디로 말하면 우리의 헌법현실, 헌법적 환경과 헌법규범 간에 괴리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헌법을 비롯한 모든 법규범은 현실을 법적으로 규율하는데,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현실에 터잡아, 현실을 반영하여 제정되어야 한다. 법규범과 법현실 사이에는 메울 수 없는 틈이 늘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지만, 그 틈(간극)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벌어지면 현실을 규율하는 법규범은 현실에 맞게 개정되어야 한다. 헌법도 마찬가지다. 과거 우리 헌법은 사실상 규범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였다. 칼 뢰벤슈타인의 표현을 빌리면 '장식적 헌법'이었다. 헌법은 현실을 반영하지도, 따라서 현실을 규율하고 통제할 수도 없는 장식품에 불과했던 것이다. 비유적으로 표현하자면 어린이에게 화려한 장식품으로 치장된 어른 옷을 입힌 꼴이었다. 그러나 우리사회가 민주화되면서 우리 헌법은 정치, 사회, 경제 등 모든 영역을 규율하는 명실상부한 '규범적 헌법'으로 바뀌었다. 이제 '헌법이 말하는 단계'(Constitution speaks)가 된 것이다. 현행 헌법은 우리 몸의 사이즈에 꼭 맞지는 않지만 걸치고 다닐 수 있는 그런 단계까지 발전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개정된 지 20년이 된 현행 헌법은 부분적으로 우리 몸과 맞지 않는 부분도 있고 기능적으로 불편한 부분도 있다. 제9차 개헌이 이뤄진 1987년 이후 우리의 현실이 많이 변화되었기 때문이다. 진전된 남북관계와 탈냉전을 포함한 국제적 상황의 변화, 세계화라는 거대한 변화의 물결과 정보화 사회의 도래, 수 차례의 여소야대 정부의 문제점을 경험한 점 등이 그것이다. 1987년 헌법이 권위주의 체제의 종식과 민주정부의 수립, 장기집권의 방지 등을 최우선 순위에 두었지만 이제는 국정의 안정적 운영과 정치의 효율성 등과 같은 가치도 헌법에 반영되어야 한다는 요구도 개헌 필요성의 목록에 추가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현행 헌법에 문제가 있다면 헌법개정에 대한 논의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고 바람직한 것이다. 개헌의 내용에 대해서는 당연히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개헌의 시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개헌의 내용과 시기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많을수록, 개헌논의는 빨리 시작하는 것이 좋다고 확신한다. 활발한 개헌 논의를 통해서 비로소 개헌시기의 적절성도, 개헌의 내용과 방향도 바르게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헌법은 되도록 고치면 안된다고 하면서 미국헌법의 예를 든다. 그러나 미국헌법은 사실상 헌법개정을 불가능하도록 만들어 놓은 헌법개정절차 때문에 개헌이 이뤄지지 못한 것이지 미국헌법이 완벽하거나 개헌의 필요성이 없어서 개헌이 안된 것이 아니다. 로버트 달과 같은 미국의 저명한 정치학자를 비롯한 많은 미국의 지식인들은 개헌을 거의 불가능하도록 한 미국헌법에 굉장히 비판적이다. 독일이나 스위스의 경우는 50여 년 동안 수십 차례의 개헌을 하면서 헌법을 다듬어 왔다. 헌법개정을 자주 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는 각국의 여러 가지 사정에 따라 다르다. 헌법을 자주 고치는 것을 문제 삼을 수도 없고, 헌법을 고치지 않고 원형 그대로 고수하는 것을 마냥 부러워 할 필요도 없다. 헌법이나 제도는 필요할 때 고치면 되는 것이다.
다만 개헌에 대해 논의할 때 몇가지 주의할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헌법은 우리의 근본법이고 기본법이기 때문에 개정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외국의 제도를 깊이 연구하고, 그것이 우리의 환경과 풍토에서 잘 작동될 수 있을지, 제도가 정착될 때까지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이 얼마나 큰지 등에 대해 충분한 검토를 한 후 헌법개정 논의를 해야 함은 물론이다. 또한 개헌 논의가 사회적 갈등과 혼란을 증폭시키는 계기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점을 우려하고 있는 것 같다. 이 문제는 뒤에서 다시 언급하겠지만, 헌법적 문제에 대한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기구를 국회에 설치하고 그 기구에서 충분한 논의를 통해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2. 헌법 무엇을, 어떻게 고칠 것인가?
가. 현행 헌법 중 무엇을 어떻게 고칠 것인가에 대해서는 가히 백가쟁명이라고 할 만큼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 헌법 총강부터 시작해서 기본권, 권력구조, 영토조항, 경제조항까지 헌법 전반에 걸쳐 개정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기왕의 논의된 내용을 중심으로 개략적으로 살펴보자.
기본권 부분에서는 가장 먼저 기본권의 주체를 국민에서 시민으로 바꾸자는 의견이 많다. 현행 헌법은 기본권의 주체를 국민으로 한정하고 있는데 이는 국제화, 개방화의 시대적 흐름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외국인의 기본권 주체성을 헌법 스스로 명시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최극 세계 각 국 헌법의 흐름이다). 수많은 외국인들이 내한하고 정주하고 있는 현실을 외면하면서 외국인과 무국적자의 기본권 문제를 입법정책이나 국제법의 문제로 남겨두고 있는 것은 확실히 문제다. 독일기본법처럼 기본권 목록의 표제를 '국민의 권리와 의무'에서 '기본권'으로 바꾸고, 그 안에 인간이면 누구나 향유할 수 있는 인간의 권리와 국적자만이 향유할 수 있는 권리를 구분하여 규율하는 방법을 참조하여 개정할 수 있을 것 같다. 현행 헌법의 기본권 조항 중에는 국가배상청구권의 부당한 제한, 언론, 출판의 행정적 통제를 위한 근거조항 등 개폐해야 할 조항 들도 있다. 또한 헌법학자들의 해석으로 인정되어 온 기본권, 예컨대 생명권, 신체를 훼손당하지 않을 권리, 개인정보자결권(자기정보통제권), 정보의 자유와 정보사회에 대한 참여권 등을 헌법에 명시적으로 규정하자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는 것 같다. 일각에서는 남녀의 실질적 평등, 출신지역에 의한 차별금지의 명시, 양심을 이유로 한 대체복무제도의 도입, 정치적 망명권, 소송구조청구권, 노인, 청소년, 장애인의 주체적 지위의 보장 등 현행 헌법의 관련 조항을 더욱 강화하자는 논의도 있다.
권력구조와 관련된 논의도 다양하다. 현행 대통령제를 존치할 것이냐 여부부터 논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의원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도 대안으로 일각에서 주장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어느 제도나 장·단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고, '유일한 최상의' 정부 형태는 없다는 것이 각국의 헌정 경험으로부터 도출된 결론이므로 이론적으로 어느 정부 형태가 더 좋다는 논쟁은 큰 의미가 없다고 본다. 다수의 국민들과 학자(정치학자, 헌법학자)들이 대통령제를 지지하고 있는 점, 우리가 대통령제를 50년 이상 운용―50년의 경험을 통해 미국식 대통령제는 한국화 되었다 ― 하면서 얻은 경험이 우리의 큰 자산이라 점, 다시 의원내각제 등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면 그것이 작동되지 않는 데 따른 혼란과 함께 상당 기간 적응과정의 비용을 감내해야 한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대통령제를 계속 유지하되 문제가 있는 부분을 개선해 가는 쪽으로 논의가 진행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대통령제를 유지한다 하더라도 권력구조 관련 규정 중 개정해야 할 부분이 많이 있는 것 같다. 5년 단임제를 4년 중임제로 바꾸는 문제부터 시작해서, 결선투표제, 국무총리제 존치문제(부통령제 신설 문제와 관련됨), 정부의 법률안 제출권과 예산편성권 문제(미국식의 순수대통령제에서는 정부에게 법률안 제출권이 없고 예산편성권도 국회에 있다), 감사원의 국회 이관 문제, 국회의 양원제 도입 문제, 수직적 권력분립 문제로서의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사이의 권한배분 문제, 나아가 사법부의 제반 문제들(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구성방식을 변경하는 문제, 최종적 헌법재판기관을 일원화하는 문제 등) 등 헌법개정 과정에서 제기될 이슈들이 많이 있다.
경제헌법도 치열한 논쟁이 예상되는 부분이다. 경제에 관한 국가의 광범위한 규제와 개입을 가능케 한 현행 헌법은 세계화로 인해 경제의 탈국가화, 경제단위로서의 국가의 탈중심화 경향이 심화되고 있는 오늘의 현실에 비추어 볼 때 부적절하므로 이러한 규제조항을 삭제하자는 주장이 있는 반면, 오히려 국가의 경제에 대한 규제와 개입에 대한 규정을 강화하자는 주장, 토지공개념을 위한 헌법적 근거조항을 신설하자는 주장 등도 있다.
영토조항과 관련해서도 논란이 예상된다. 헌법 제3조의 영토조항과 헌법 제4조의 평화통일 조항이 서로 충돌하므로 이를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유력하게 제기되고 있는 반면(영토조항 삭제론, 전면개정론, 단서추가개정론 등), 위 두 조항 간에 모순이 없으므로 영토조항을 개정할 필요성이 없다는 견해도 설득력을 얻고 있는 실정이다.
통일과 관련하여 북한과 북한주민, 탈북자의 지위문제 등을 헌법에 명시하자는 주장(이는 영토조항의 문제와 연결된다)부터, 통일의 방식, 과정, 절차에 대한 문제나 헌법상 수용할 수 있는 통일의 내용이나 형태의 한계를 헌법에 명시하자는 주장, 최소한 통일의 과정에서 통일의 형태와 내용에 대한 최종적 결정은 국민투표에 의할 것임을 규정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 그리고 통일헌법의 제정에 대한 근거규정을 둘 필요성을 역설하는 주장 등이 제기되고 있다.
나. 위에서 간단하게 정리한 것만을 보아도 현행 헌법 중 개정이 필요하다고 논의되는 것들은 헌법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게 산재해 있다. 물론 위에서 언급한 것들을 다 개정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헌법개정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면 위와 같은 논점들이 제기될 것이고 그에 대한 치열한 논쟁이 벌어질 것은 명약관화하다. 헌법개정은 충분한 의견수렴과 연구를 거쳐 신중하게 이뤄져야 하므로 위에서 본 여러 가지 주장들은 심도 깊은 토론을 거쳐 결론을 내려야 할 것이다.
다만 헌법개정 사항 중에는 비교적 연구와 논의가 많이 이루어졌고 여·야간의 합의뿐만 아니라 국민의 동의를 받기 쉬운 것이 있는 반면, 헌법논의가 시작되면 치열한 이념논쟁이 예상되어 쉽게 합의가 어려운, 그래서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갖고 논의를 거쳐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해야 할 헌법조항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전자에 해당하는 경우로는 기본권 조항의 일부 개정사항, 권력구조 중 대통령의 4년 중임제와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동시선거 문제 등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후자의 대표적 예로는 영토조항, 경제조항 등을 들 수 있겠다.
야당이 17대 국회에서는 개헌 논의를 할 수 없다는 강경입장이고, 또 국민들 사이에서도 쉽게 합의점에 도달하기 어려운 개헌 사항이 있다면, 개헌논의를 둘로 나누어 접근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으로 보인다. 개헌논의를 합리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해본다.
① 개헌 논의의 시기 : 개헌논의는 바로 시작한다. 한나라당은 18대 국회에서 개헌논의를 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18대 국회에서 할 수 있는 개헌논의라면 지금 못할 이유가 없다. 개헌 논의 자체가 불필요하다면 모를까 개헌이 필요하다면 개헌논의 자체를 미룰 이유가 없다. 김영삼정부나 김대중정부, 그리고 현 정부 모두 대선 전에 개헌에 관해 말했지만 막상 집권 후에는 개헌논의를 꺼내지 아니하였다. 이번 17대 국회에서도 개원 초부터 많은 의원들이 개헌의 필요성을 말했지만 아직까지도 본격적인 개헌논의를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18대 국회의 경우에도 비슷하게 재현될 것이다.
개헌이 필요하다면 개헌 논의를 회피하거나 봉쇄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개헌논의를 하다가 개헌의 필요성이 없거나 개헌시기가 부적절하다고 판명되면, 또는 개헌내용에 합의를 못하면 개헌을 하지 않을 수 있지만, 논의 자체를 회피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한 것이다.
② 개헌 논의의 틀 : 국회에 개헌특위를 만들어 개헌에 대한 제반 사항을 논의한다. 시민사회의 다양한 개헌논의를 수렴하기 위해서 국회에 헌법특위 내지 헌법조사위원회를 만들고 여기에 다양한 전문가들을 자문위원으로 위촉해서, 충분한 기간(예컨대 5년 내지 10년)을 두고 각계 각층의 의견을 듣고 연구하고 토론한다. 그리고 여기서 작성된 보고서를 기초로 하여 헌법개정의 방향을 논의한다.
③ 장단기 개헌 논의사항의 구분 : 비교적 쉽게 합의할 수 있는 부분과 장기적 연구과제를 구분하여 접근한다. 대통령의 4년 중임제와 대선, 총선 시기를 일치시키는 문제는 상당히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고, 기본권 조항도 큰 이견없이 여·야간의 합의나 국민들의 동의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견되므로 이번에 개헌하기로 합의할 수 있고, 권력구조 중 더 숙고가 필요한 부분과 이념논쟁이 예상되는 영토조항, 경제조항 등은 국회 헌법특위에서 장기적 과제로 정한 후 충분히 논의해서 결정한다.
④ 여야의 합의 : 국회 개헌특위와 장단기 개헌 사항을 구분하여 접근한다는 것에 대해 여야가 합의한 후 본격적으로 개헌문제를 논의한다.
3.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 왜 시급한 문제인가?
위에서 개헌 사항을 지금 바로 개헌해야 할 부분과 장기적으로 논의해서 결론을 낼 부분으로 나누면서 전자로 기본권 조항과 권력구조 중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을 들었다. 혹자는 기본권 조항은 그렇다 치고 대통령 4년 중임제와 대통령과 국회의원 동시선거가 왜 그렇게 급하고 중요한 문제냐고 물을 것이다. 그에 대한 대답은 다음과 같다.
현행 대통령의 5년 단임제는 1987년 당시의 특성을 반영한 제도다. 1987년은 민주화로의 이행기였고 이때 가장 중요한 문제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직접 대통령을 뽑는 것(대통령 직선제)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장기집권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두가지를 충족하기 위해 '대통령직선제'와 '5년 단임제'를 채택했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20년이 지났다. 이제는 권위주의 체제로 회귀할 것을 걱정할 단계는 확실히 지났다. 문제는 5년 단임제가 구조적으로 안고 있는 국정운영의 불안정성과 비효율성이다.
5년 단임제의 문제 중의 하나는 대통령의 재신임 가능성이 없어, 다시 말해 단임으로 끝나기 때문에 레임덕 현상이 너무 빨리 온다는 것이다. 심하게 말하면 임기 시작과 함께 시작되는 레임덕 때문에 대통령이 자신의 비전과 정책을 펴나가기가 매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또 하나의 문제로는,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해 국민이 심판할 기회가 없다는 것이다. 단임제는 민주주의 핵심원리 중 하나는 책임성의 원리를 확보하기 힘들다는 약점을 갖는다.
5년 단임제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여소야대가 반복된다는 점이다. 정치학자들이 말하는 분할정부(divided government)가 반복됨으로써 대통령과 국회, 집권당과 야당의 관계를 항상 불안정하게 만들고 자주 교착상태나 마비상태로 만든다. 그래서 현재의 헌정제도로는 능력있고 안정적인 민주정부를 만들기 어렵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현행 헌법체제 하에서 4번의 대통령선거와 4번의 국회의원선거 결과는 분할정부, 즉 여소야대의 반복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여소야대 현상이 특정 정권의 문제나 리더십의 문제가 아니라 현행 헌법체제 하에서 발생할 개연성이 매우 높은 현상임을 경험적으로 보여준다 하겠다. 노태우 정부는 3당합당을 통해, 김영삼 정부는 의원 빼내오기를 통해 여소야대 상황을 타개했지만, 여소야대 상황에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초기의 경우 다수당인 야당의 강력한 비판과 공격 앞에 정부가 정상적인 작동이 불가능할 정도의 위기에 직면한 사실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비민주적 방법을 통해 정부를 작동시키는 것과 이러한 선택을 하지 않음으로써 무능한 정부가 되는 것 중에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대통령 5년단임제가 위와 같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면 이제 이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대안을 진지하게 모색해야 한다. 그 대안이 바로 대통령 4년 중임제와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동시선거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민주정부를 만들어 갈 수 있는 최소한의 제도적 기반을 갖게 될 것이다.
4. 글을 맺으며: 개헌은 우리의 미래를 위해 시급한 과제다.
개헌을 위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음을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건 사실이다. 그러나 개헌문제는 국민적 공감대가 저절로 형성될 수 있는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국회에서 개헌 문제를 공론화하고 언론에서 이 문제를 조명하면, 그리고 이런 과정을 통해 현행 헌법의 문제점이 드러나고 그에 대한 대안이 제시될 때 비로소 국민들이 숙고해서 판단하는 과정에서 여론이 형성되고 공감대가 만들어지는 이슈다. 헌법에 이러저러한 문제가 있으니 이렇게 고쳐보자고 문제제기를 해서 공론화하는 것은 국회의원의 책무라고 생각한다. 국민의 여론을 탓하면서 개헌논의를 회피하는 것은 책임있는 정치인의 자세가 아니다.
분명 우리 헌법에는 개정해야 할 부분이 있다. 문제가 있으면 고치면 된다. 제도는 필요할 때 고칠 수 있다. 물론 제도만 고친다고 모든 것이 바로 좋아진다고 낙관하지는 않는다. 헌법과 제도를 바꾼다고 우리 정치가 바로 좋은 정치로 바뀌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나는 제도중심적 접근, 제도만능주의에는 반대한다. 그러나 제도의 문제는 제도 자체로써 풀어야 한다는 지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우리가 더 나은 정치와 사회를 만들려는 의지가 있다면 권력구조 개편을 포함해 헌법논의를 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확신한다.
헌법은 우리 공동체가 지향하는 가치와 이상을 담은 문서(미래로서의 헌법)이고 정부와 국민, 체제의 성격과 운영을 규정하는 우리의 근본규범(근본법, 제도로서의 헌법)이다. 우리는 세계화의 격랑 속에서 생존하고 발전해야 하는 문제, 많은 사회적 갈등과 균열을 극복하고 사회통합을 이뤄야 하는 문제, 저출산고령화사회의 문제, 양극화의 문제 등 해결하기 쉽지 않은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난제들을 풀어가기 위해서라도 민주적 정부가 안정적으로 국정운영을 하고 정치의 책임성,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는 제도 디자인을 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급격한 환경변화와 지난 수십 년 동안 급격히 변화된 우리 사회의 필요에 맞추어 정치와 정부 형태를 효율화함으로써 21세기 한국의 발전과 안정을 기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좋은 헌법을 만드는 것은 우리 미래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더 이상 정략적 이유로 개헌논의를 미뤄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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