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가 시작 된 지 한 달 하고도 열흘이 지났지만 '초짜 시의원'으로 좌충우돌하며 보낸 시간이 너무나 길게 느껴진다. 그동안 메모했던 글들을 보면 무슨 말을 할까 며칠을 고민해도 정리하지 못할 만큼 하고 싶은 말도 많다.
우리 울산시의회는 19명의 의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15명이 한나라당 소속이고 민주노동당은 지난 3대보다 1명이 더 당선돼 4명이 들어가 있다. 나는 이것도 심하다 싶은데 다른 지역은 더 하단다. 하여튼 우리는 각각 산업건설위, 교육사회위, 내무위, 운영위 등의 상임위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그동안 시당 차원에서 시의회 활동에 대해 다각도의 평가를 해 온 터라 선거가 끝나자마자 구의원을 포함한 17명의 당선자들은 전반기 활동에 대한 목표도 세우고 상임위 배정, 의정지원단 구성, 의원회의 체계, 공통사업 설정, 의정포럼 계획을 마련해 의정활동을 시작했다.
7월에는 업무파악을 위한 집행부 업무보고가 있었고 9월 중순부터야 회기가 시작되기 때문에 다들 8월은 '정치방학'이라고 말했다. 의원별 당직근무 일정도 나왔다. 하지만 당직근무가 아니라도 업무보고 때 요구한 자료와 보고서조차 정리가 되지 않아 나뿐만 아니라 다른 민노당 의원들도 휴가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사실 유급제가 시행되면서 지방의원들에 대한 시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은 상황이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의회활동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한나라당 의원들에게서도 심심찮게 나오곤 했다. 그래서 제일 먼저 8월 의원별 당직근무 일정이 나온 것이다. 그 다음엔 상임위별 '선진지역 의회 견학'이 잡혔다. 내가 속한 내무위원회는 8월 10일 하루 서울시의회를 방문한다는 계획을 사무처에서 가져 왔더랬다.
나는 서울시의회에서 시행하고 있는 '행정사무감사 인턴제'에 대단히 관심이 많았다. 의정 활동을 잘하곤 싶은데 보좌관이 없다보니 제대로 일을 하기가 영 어렵다. 민노당은 이 문제를 당 차원에서 해결하기로 결정했고 부족한 재정 때문에 일단 시의원 4명에게 1명의 의정지원 담당자를 배치했다. 그러다 보니 아직 지방의원 보좌관제도 혹은 서울시의 인턴제도에 대해선 제대로 알지도 못한 상황이었다.
직접 본 행정사무감사 인턴제는 대단히 파격적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의원 개인사무실을 둘러보면서 놀라워들 하기도 했다.
그런데 가장 눈에 띈 건 따로 있었다. 바로 의원 사무실 문에 붙여져 있는 의원 명패였다. 파란색 바탕에 한글 이름, 그 아래 영문 이름이 박혀 있었다. 그 순간 잊고 있었던 한문 명패가 생각났다. 놀란 모습으로 서 있었는데 누군가 "우리도 저렇게 바꾸자"며 "사진 찍어라"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임기가 시작되기 전인 지난 6월에 당선자 오리엔테이션이 있었다. 의회 사무처에서 보고를 하면서 이번 임기부터는 명패가 한글과 한문 두 가지를 양면으로 쓰는데 의원들만 그렇게 하고 돈이 많이 드니까 집행부는 한문을 그대로 쓰겠다고 말했다. 윤종오 의원이 "민노당 의원들이 4년 동안 요구했는데 그거 하나 깔끔하게 못하냐"고 항의했다. 하지만 한나라당 의원들은 다 한글로 바꾸자는 우리 의견에 끝까지 동의하지 않았고 초선 의원도 반이 넘으니 차차 의논해서 정하자며 결정을 미뤘다.
결국 본회의장에 의원들 이름은 한문과 한글 양면으로 올려져 있고 맞은 편 집행부 자리에는 부서 이름이 한문으로 꽉 차 있었다. 집행부 조직표는 담당자 이름까지 다 한문이다. 한글로 바꿔달라고 요구하니 7월말 인사이동 후에야 다시 만들어 주겠단다.
권위의식, 시대에 뒤떨어진 무뚝뚝한 분위기, 답답한 의회 모습은 이렇게 아주 '사소한' 것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의원이라고 하면 검은 명패, 검은 양복, 금 뱃지가 먼저 떠오른다. 그래서 명패 하나부터 바꾸자고 요구해 왔는데 서울시의회를 보고서야 다른 사람들의 마음도 바뀐 것이다.
나에겐 서울시의회 방문을 통해 동료 의원들을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사실 기존의 관행을 버리고 뭔가 새로운 것을 시도한다는 것은 엄청난 두려움에 다름 아니다. 우리가 먼저 변하지 못하고 다른 누가 먼저 변하는 것을 보고서야 결정했었다. 그래서 늘 선진지역 견학을 중요하게 여겼다는 것을 바보같이 이제야 깨달았다.
박이현숙 의원(44)은 사무직 노동자 출신으로 울산에서 노동운동과 여성운동을 하다 여성도 정치를 해야 한다는 믿음으로 시의원에 출마했습니다. 시민과 함께 하는 정치가 어떤 것인지 의회 안에서 풀어낼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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