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신명이시여, 대자대비 부처님이시여, 생명의 주인이시요 만유의 창조주이신 하느님 아버지시여,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이시여."
"간절히 비나니, 오늘 저희의 기도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온전한 생명의 근원으로 돌아가게 하는 수행과 성찰의 첫걸음이 되게 하소서."
순례에 참여한 4대 종단(불교, 원불교, 천주교, 개신교) 성직자 대표들은 합동 기도문을 낭독했다. 모시는 대상은 달라도 기도의 내용은 한마음 한뜻이었다. 지난 100일 동안 생명의 강을 따라 참회와 성찰의 걸음을 하늘에 고하는 자리였다.
순례단은 '생명의 강 모심 선언문'을 통해 "이명박 정부가 하루 빨리 '한반도 운하 백지화'를 선언하고 진정으로 국민을 섬기기"를 호소하고, "'운하 백지화 촉구 천만인 서명운동', '60만 명의 인간 띠 잇기' 같은 생명평화운동에 적극 동참할 것"을 다짐하며 국민에게 감사의 큰절을 올렸다.
강물이 바로 내 몸이다 : 100일 순례 소감을 듣다
100일 도보순례가 끝나기 전에 순례단원들을 찾았다. 예상보다 기간이 늘어나 자리를 비운 순례단원도 있었고 이들을 응원하러 새롭게 합류한 얼굴도 보였다. 출발 때부터 건강이 나빴던 수경 스님과 이필완 목사 등 순례 중에 쓰러졌다는 얘기까지 들어서 걱정했으나 크게 아픈 이는 없어 다행이었다. 순례단원 모두 몸은 지쳐있었지만 평온한 미소로 맞아주었다.
"우리가 여기 떠날 때는 얼음이 얼어 있었던 것 같은데..."
"그때 보았던 철새들도 안 보이고"
얼어붙은 강을 따라 대운하 반대 순례길에 나섰던 종교인 생명평화 순례단(생명의강을모시는사람들)이 5월 20일 서울에 도착했다. 다시 찾은 한강은 완연한 봄기운으로 순례단을 맞았다. 순례단은 김포 한강하구에서 낙동강 을숙도를 거쳐 영산강, 금강을 지나 다시 한강을 따라 올라왔다. 장장 삼천 리 길. 지난 2월 12일 김포 애기봉을 출발한지 99일 만이다.
"100일 걸어서 대운하는 물 건너 간 줄 알았더니..."
순례단이 서울에 막 입성할 때 공교롭게도 정부의 '4대강 정비 사업'이 발표됐다. 그동안 대운하 사업 반대여론에 불씨를 지피며 동력을 제공해왔던 순례단으로서는 힘이 빠질 수밖에 없는 소식이었다.
이필완 목사(당당뉴스 대표)는 "100일이 지났어도 정부의 입장이 별로 달라진 것 같지 않아서 발걸음이 그렇게 가볍지 않다"며 개탄했다. 이어 그는 정부의 말 바꾸기를 비판했다. "운하 정책을 추진하는 사람들이 우리처럼 강을 구석구석 걸어서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아마 그러면 단순히 경제적 논리, 일자리 창출, 국운 융성의 까닭으로 추진되는 대운하 사업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그들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순례단이 100일 동안 무사한 게 강이 지켜준 것 같다는 이원규 총괄팀장(시인)도 "100일 걸어서 대운하는 물 건너 간 줄 알았더니, 완전 수장된 줄 알았더니 아직도 그 미련을, 망상을 못 버리는 몇몇 소수 위정자들이 있어 답답하"고 "대운하가 재앙이 아니고 자신들의 정치적 생명에 재앙을 자초하는 걸로 보인다"며 안타까워했다.
운하 예정지인 강 구석구석을 발로 눈으로 담아 온 순례단원들을 순례 100일 째 되는 날 여의도 부근에서 만났다. 두어 달 만에 다시 본 순례단원들의 얼굴은 봄볕에 타 검게 그을려 있었다. 점심 식사를 끝내고 짧은 휴식시간. 순례단원들 몇몇은 벤치와 풀밭에 누워 100일간의 노숙 생활로 지친 몸을 추스르고 있었다.
"늦잠 좀 자보는 것이 소원, 원래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데..."
도보순례를 하면서 5편의 시를 썼다는 박남준 시인은 "늦잠 좀 자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웃으며 얘기했다. 그는 "강물이 맑고 푸르면 몸도 좋아지고, 오염되고 신음하고 있는 강을 지나갈 때는 몸도 아주 힘들고 실제로 아프기도 했다. '강물이 바로 내 몸이다'는 생각을 많이 하면서 걸었다"며 소회를 밝혔다.
달콤한 휴식시간이 끝나고 다시 순례가 시작 됐다. 생명평화의 깃발을 든 기수가 앞장서고 순례단과 일반 참가자들이 그 뒤를 이었다. 그리고 행렬의 맨 끝에 수경 스님(불교환경연대 상임대표)이 걸었다. 다리가 아파 혼자 맨 뒤로 쳐졌다. 순례 행렬이 중간에 끊기 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묵언 순례 중인 수경 스님에게 무릎이 괜찮냐고 조심스레 물었다. 그는 "참고 가는 거지 뭐. 오후에 통증이 좀 심해"라며 담담하게 답했지만, 그래도 이제 순례가 거의 끝나간다는 기자의 말에는 "끝이 아니고 시작이야.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며 걸음을 재촉했다.
"새만금을 지날 때는 다 울었어요"
"어쨌든 시작되기 전에 이번엔 막아야 한다"
수경 스님은 지난 2003년 새만금 갯벌을 살리기 위해 전북 부안에서 서울까지 삼보일배를 했던 주인공이다. 그는 이번 순례길에 꿈속에서라도 제발 피해가고 싶었던 죽음의 새만금을 다시 둘러보았다. 그리고 목숨을 바칠 각오를 다졌다. (☞관련기사 : "대운하는 '새만금 망령'의 자식일 뿐")
이필완 목사는 "새만금을 지날 때는 다 울었다. 사막화돼버린 갯벌 그 속에 있는 생명들이 통째로 죽어가고 있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며 "참혹했다. 한반도 대운하도 결국 우리 인간들의 손에 의해서, 오만한 손에 의해서 그렇게 너른 자연이 참화를 입을 거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경고했다. 그는 "다행히도 이번 일은 아직 시작이 안 됐다"며 "어쨌든 시작되기 전에 이번엔 막아야 된다. 한번 시작되면 막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천막생활 오래하니까 아우, 형님 다 되더라고요"
사실 이번 순례는 종교적인 측면에서는 실험적인 시도였다. 그동안 종교 간의 신학적인 교류는 있었지만 그 영역을 실생활 속으로 확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순례단 스스로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이라며 좋은 사례가 될 거라고 평가했다.
현장 진행을 담당한 이원규 총괄팀장은 "천막생활 오래하니까 아우, 형님 다 되더라"며 비종교인의 입장에서 답답할 때도 있었지만 "강을 살리고자하는 대의에 종교들도 함께 해주는 모습들이 참 보기 좋았다"고 밝혔다.
이필완 목사는 종교인들이 함께 의견을 모아 문제점을 얘기하는 것에 대해 "국민들이 참 좋은 모습을 느끼지 않았을까 생각한다"며 "이번 순례 중에 얻은 수확 중에 하나"라고 평가했다.
한편 아쉬운 점도 밝혔다. 이 목사는 개신교가 아직 타종교에 비해 문제의식이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그는 "제일 갑갑한 건 장로인 이명박 대통령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반대하지 않으려고 하는 그런 정서"라며 "이명박 정권이 실패한다면 개신교가 부담해야 할 몫은 굉장히 클 거다. 오히려 개신교 내에서 이명박 장로 대통령을 향해서 정말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해 분명하게 얘기해줘야 된다"고 꼬집었다.
기획 : 박사야
영상취재 : 최진훈
편집 : 최진훈
제작 : 인디코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