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을 통해 성숙해진 사고
서양 사상을 종합하여 근대적인 사고의 틀을 제시한 18세기 독일의 위대한 철학자인 칸트는 '철학'을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대신에 '철학함'은 배울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철학함'은 철학적 학설을 답습하며 배운 그대로 암기하는 학습이 아닙니다. 그는 자신의 이성을 사용하여 용감하게 생각하는 활동을 '철학함'이라고 본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책에 이름을 붙일 때도 학설이나 이론보다는 '비판' 또는 '기초공사'라는 말을 선호합니다. 그래서 그의 유명한 삼부작인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비판'에 모두 '비판'이라는 독특한 이름이 붙어 있는 것입니다. 비판이라는 단어는 철학은 이론이기보다는 생각의 활동이라는 그의 신념을 보여줍니다.
우리 18세의 고등학생들이 철학적 이론을 앵무새처럼 배우기보다는 철학함을 배우는 것이 이번 철학캠프를 열게 된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그래서 매번 강평할 때마다 문제의식을 갖고 글쓰기를 하라고 계속 강조했던 것입니다. 문제의식이 없는 글은 철학적인 글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번 캠프를 마치고 학생들이 보내준 글은 전에 없이 뚜렷한 문제의식을 보여주면서도 글의 기본 형식과 구성에서도 성공적인 면모를 보여줍니다. 학생들이 짧은 캠프였지만 강렬한 체험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여섯 번의 강의를 통해 제시된 철학적인 화두를 통해서 문제의식을 키우고 캠프의 체험으로 자신의 삶과 우리의 세계를 이해하고 싶은 열망이 강렬해진 학생들의 마음이 스스로 사고하는 힘을 얻은 듯합니다.
문제의식이 빛나는 글!
이번에는 세 편의 글을 우수상으로 선정했습니다. 5강 후기로는 정다은 학생의 글, 6강 후기로는 심상욱 학생의 글, 그리고 전체 후기로는 김한올 학생의 글을 뽑았습니다. 세 편 모두 문제의식을 잘 서술하려고 노력한 점이 돋보입니다. 다만 냉철한 개념적인 생각으로 발전하는 것은 미래의 과제일 것입니다.
정다은 학생의 글은 "오늘까지만 해도 너무도 평화로워 보이던 주변이 부당한 일로 가득 차 있을지도 모른다."에서 나타나듯이 행복하고 평화로운 사회의 모습 뒷면에 얼마나 부조리가 있는지를 책과 강연을 통해 체험하면서 스스로 사회의 모순을 자각하게 됨을(-->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이 글은 우리나라의 산업화 초기에 희생을 강요받은 사람들의 비참한 이야기인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라는 책과 이런 문제점들을 마르크스적인 사회비판과 연결하여 명쾌하게 설명해주신 이순웅 교수님의 철학적 분석을 잘 파악하여 자신의 이야기로 풀이한 점이 좋습니다. 물론 아직 이론적인 체계를 가지고 사회와 세계를 분석하기에 어려운 점도 솔직히 토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각의 체험은 한번으로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계속해서 독서를 통해 체험의 깊이와 이론적 체계를 다듬어 나가야 합니다.
심상욱 학생의 글은 이론적인 분석에 자신의 문제의식을 결합한 것이 장점입니다. "5강에서 사회 속의 나, 즉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의 삶의 방향을 잡기 위해서는 세계를 알아야 함을 다뤘다면 6강에서는 '나를 아는 것' 이 곧 '세계를 아는 것'임을 말한다."에서 미래의 철학 교수를 꿈꾸는 사람답게 이 학생의 인식틀이 체계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체계성은 그가 '데미안'의 핵심주제인 나를 찢는 투쟁을 통해 진정한 나를 찾는 것이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임을 제대로 이해한 것을 보여줍니다. "후에 내가 철학 교수가 된다면 이런 의미 있는 곳에서 내가 느낀 것처럼 청소년들이 철학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는 말처럼 계속해서 철학 공부에 정진해서 미래에 좋은 철학 교수가 되어 방황하는 청소년들에게 진정한 멘토가 되기를 바랍니다.
김한올 학생의 글은 자신의 생각의 변화를 미세하게 표현하는 문학적인 서술 능력이 뛰어난 장점이 있습니다. 철학캠프 전체 과정 속에서 자신의 생각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가장 잘 묘사해줍니다. "여섯 개의 강의를 통해 이번 철학 캠프가 나에게 가르쳐 주었던 것처럼 나는 생각을 생각하며 살아가고 싶다."라고 말한 것처럼 이 학생이 계속해서 책을 읽으며 생각하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생각을 생각한다는 것은 곧 반성적인 생각을 말합니다. 반성을 통해 인간을 자각을 하고 자신의 삶과 세상을 진정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18세의 고등학생이 입시공부와 소비주의에 찌들어 그냥 관습적인 생각과 세상에 물든 생각에 맴도는 삶에서 벗어나 스스로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이 이번 철학캠프의 진정한 목적인 것입니다. 김한올 학생은 이런 목적을 잘 체험했고 이 체험을 잘 표현했습니다.
1. '5강 조세희의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소유냐, 존재냐' 후기- 정다은
2012년 1월 31일, 논산 상상마당의 세미나실에서 18세를 위한 철학 캠프 제 5강이 시작되었다. 이번 강의는 이순옹(-->이순웅) 교수님께서 해주셨다.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많은 학교들이 이 책을 필독도서로 선정하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 읽어본 책이다. 이 책이 널리 읽히는 이유는 우리나라의 산업화 시대를 너무나도 잘 묘사해서가 아닐까? 책을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흠칫하게 된다. 공원(공장 노동자)들의 비참한 생활상이, 최저 생계비도 확보하기 힘들어 하는 그들의 생활 모습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다가온다.
강의 내용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하 난쏘공)에서 공장 근로자들은 제대로 된 임금을 받지 못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작업 시간은 연장되기 일쑤고, 잠자는 시간조차 부족하며, 식사는 너무나도 초라하다. 부당한 해고는 기본이고, 노동조합과 깊게 관련될 경우 폭력을 당하기는 일쑤다. 더욱 황당한 사실은 법은 이 모든 행위들을 금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법과 근로자들과의 거리는 너무나도 멀다. 노동법(노동 수첩에 나와 있는 법들)으로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적을뿐더러, 회사는 이 기본적인 요구조차 무시한다.
이 모든 일이 왜 일어났던 것일까?
자본주의 사회의 특징 중 하나가 '상품'을 중요시 한다는 것이다. 이 상품은 재화로 사고 팔 수 있는 것으로, 노동력도 이에 포함된다. 즉, 재화는 상품을 가질 수 있는 수단으로, 부의 원천이다. 이것을 많이 갖고 있는 이들이 누구인가? 바로 자본가들이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면서 상품을 소비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전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일을 해서, 다시 말해 노동력을 자본가에게 주면서 그 대가로 재화를 받는 것도 상품을 소비하기 위해서이다. 그만큼 중요한 것이 상품이다. 이 상품의 생산과 소비를 쥐락펴락 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 바로 자본가다.
우리는 보통 현실에 변화를 원할 때, 좀 더 제대로 된 '정치인'을 찾는다. 하지만, 이런 시도 자체가 어쩌면 근본적으로 잘못 된 것이 아닐까? 정치인도 결국 자본주의 사회를 살고 있다. 그 또한 재화와 상품을 중요시한다. 자본가들에게 맞서고자 하는 정치인들도, 결국 한 발짝, 두 발짝 물러날 수밖에 없다.
나의 느낌
'난쏘공'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든 감정은 연민과 부끄러움이었다. "사람처럼 살고 싶어서 그래요." 영수는 말했다. 예전에 한 철학 강의에서 "사람은 자신을 사람답다고 인식할 때 진정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라고 했다. 영수는 지금 자신을 '사람답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나라에는, 아니 내가 살고 있는 성남의 외각 지역에는 판잣집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나는 그들을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적이 있던가? TV에는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위한 모금 프로그램들이 종종 나온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재미없다면서 다른 오락 프로그램으로 채널을 돌리지 않았던가? 사랑의 열매와 크리스마스실을 사면서 단 한번이라도 진정으로 불우 이웃을 생각해보았던가? 나 자신이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교수님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들이 나라를, 세계를 좌지우지 하고 있다고 하셨다. 그들은 그들만의 특권을 향유하고 있고, 우리를 그 반열에 참여시켜주려 하지 않는다. 우리는 더 적극적으로 알아야 한다. 그래서 이 사회의 지도층들이 정당한지, 배후에서 누군가가 조종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알아나가야 한다. 교수님의 강의를 얼핏 들은 사람은 "뭐야, 인생은 정말 허무하네. 아무리 노력해도 성공을 못한다는 말이네?"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교수님이 끝에 언급하셨듯이, 우리는 공부를 해야 한다. 그래서 이 사회의 부조리에 맞서 싸울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그러나 공부를 하면서도, 우리는 이론만 아는 '헛똑똑이'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언제나 경각심을 가지고, 주변을 둘러보자. 오늘까지만 해도 너무도 평화로워 보이던 주변이 부당한 일로 가득 차 있을지도 모른다.
2. '6강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나를 찾기 위해 나를 찢는 투쟁' 후기-심상욱
5강에서 사회 속의 나, 즉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의 삶의 방향을 잡기 위해서는 세계를 알아야 함을 다뤘다면 6강에서는 '나를 아는 것' 이 곧 '세계를 아는 것'임을 말한다.
6강에는 김성우 교수님께서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라는 책을 통해 '참된 나를 찾는 과정'에 대해 이야기 하셨다. '참된 나'를 찾기에 앞서, 우리가 두 가지의 세계 속에 살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밝은 세계와 어두운 세계 속에 살고 있다. 이 두 세계는 반대의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분리될 수 없다. 우리는 자신을 밝은 세계에 가두는 경향이 있다. 어두운 세계에 대한 경계와 두려움을 갖고 어두운 세계를 바라본다. 그러다보니 어두운 세계는 좋지 않은 세계, 즉 악의 세계라는 인식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이원론적인 생각은 '진정한 나'를 찾는 것을 방해하고 자신을 '기존의 나'에 가둔다. 장자의 <제물론>에서, 참된 도에는 유일하고 절대적인 것이 없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서, 문둥병 환자와 미인을 비교한 다는 것이 우리의 눈에는 이상한 대조지만 참된 도의 입장에서는 하나인 것이다. 만물이 하나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본다면 아름다움도 문화적 편견에 따른 인간만의 환상이게 된다. 인간이 만든 (남천스님이 베어버린)고양이인 것이다. 그리고 고양이에 집착함으로써 진정한 참모습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참된 나'를 황금에 비유한다면 '기존의 나'는 구리인 것이다. '참된 나'가 되기 위해서는 성숙, 깨달음, 자각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 과정에는 자기 자신에 대한 부정, '기존의 나'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굳이 힘들게 자신을 찾아야 하는가? 인간은 일회적이고 특별하기 때문이다. 즉, 이 세상에 두 번 다시 같은 운명을 갖고 같은 사람으로 태어날 수 없기 때문에 '나'의 삶이 소중하고 값진 것이다. 인간의 삶은 자기 자신의 되기 위한 노력의 과정이다.
헤세는 자신을 찾는 일을 투쟁이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새가 알을 깨고 나오는 것에 비유한다. 하나의 세계를 깨뜨리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 과정 속에서 밝은 세계 속에 자신을 가두는 것들과의 투쟁을 벌여야 한다. 알을 깨고 나가는 것, 싱클레어가 유년시절의 밝은 세상에서 어두운 세계로 들어가는 것, 그 것을 바로 초월이라고 한다. 초월의 첫 단계는 회의와 절망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5강에서 배운 내용과 연결 될 것 같다. 유년의 밝은 세계에서 부조리한 어두운 세계(자본주의 사회)로 가는 과정이다. 그렇게 본다면 나는 지금 19세, 알을 깨고 나와야 하기 전 단계에 있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이 중요한 시점에 알을 깨고 나올 것인가, 아니면 알을 깨고 나오는 것의 힘듦과 투쟁의 과정 속에서 편함을 위해 현실과 타협할 것인가의 문제는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 5강을 강의하신 교수님께서 "너희들이 아직 사회를 겪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이 강의가 더 가치 있는 거야"라고 말씀하신 것이 생각났다. 아직 겪어 보지 않은 절망과 좌절을 지금부터 계속해서 치열하게 고민해 봄으로써 알을 깨고 나왔을 때 느낄 절망과 좌절을 대비하는 것이다.
참된 자기로 가는 길을 방해하는 것이 있다. 좋았던 과거에 집착하는 것이다. 좋았던 과거를 생각하고 과거를 향한 그리움 속에 사는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매우 공감이 된다. 나도 내가 약간 이런 낭만주의적인 경향이 있다. 자신의 진정한 꿈이 아닌 단순히 이상의 모습을 한 과거 속에 사는 것이다. 나는 내가 이런 경향이 있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고치기는 매우 힘들었다. 이런 과거 속에 들어가는 순간에 내가 자유로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어떤 좋았던 과거에 대한 그리움을 머릿속에서 지우기가 힘들고 계속해서 떠올랐다. 어쩌면 지금까지 이것이 날 진정한 나로 향하는 길을 막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까지도 나는 이런 문제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제 확실히 이런 낭만주의가 나를 가로막는 것임을 알았고 계속 고민하며 진정한 나를 향해 알을 깨나가야 할 나의 과제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초월의 지혜가 하강의 사랑과 결합해야 한다. 초월에는 하강이 필요한 것이다.
중간에 내용을 빼먹은 부분도 있지만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것에 대해서 많은 것을 배운 강의였다. 이 강의를 시작하기 전에 교수님께서 하덕규의 <가시나무 새>라는 노래를 들려주셨다. 나중에 알아봐서 안 것이지만 가시나무 새는 전설 속 새로 일생에 한번 운다고 한다. 그 새의 울음소리는 어떤 소리보다 아름답다고 한다. 새는 둥지를 떠나서 가시나무를 찾아가고 찾으면 몸을 날린다. 죽어가는 새는 그 고통을 초월하면서 아름다운 노래를 부른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와 목숨을 맞바꾸는 것이다. 여기서 가장 훌륭한 것은 위대한 고통을 치워야(-->치러야) 얻을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나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많은 나 또래의 혹은 나이가 많은 사람일지라도 초월을 향한 위대한 고통을 느끼지 못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 6강의 주제가 '참된 나를 찾기 위해 나를 찢는 투쟁'이듯이 진정한 자신을 찾기 위해서는 위대한 고통도 이겨내야 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18세를 위한 철학캠프'는 나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거점이 될 것 같다. 10대의 마지막이자 사회로 나아가기 전 문턱에 있는 중요한 시점에 있어서 더욱 그러한 것 같다. 1강에서는 "삶의 방식,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2강에서는 "현대인은 왜 소외되는가?", 3강에서는 "왜 우리는 사회정의를 말하는가?", 4강에서는 "미란 무엇인가?", 5강에서는 "자본주의 사회, 어떻게 살 것인가?", 6강에서는 "참된 자신, 어떻게 찾아갈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개인적으로는 6강의 내용이 인상 깊고 많이 와 닿은 것 같다. 이번 캠프를 통해서 여러 가지 삶에 있어서 중요한 과제들을 안고 가는 것 같고, 그 과제들은 계속해서 치열한 고민을 통해 알아가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 캠프가 나에게 있어 데미안 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싱클레어에게 자기 자신을 찾아 가는 길에 이정표를 제시해 주는 안내자이자 멘토로서의 역할을 데미안이 하듯이, '18세를 위한 철학캠프'가 나에게 그런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많은 것을 배웠고 많은 것을 느꼈다. 앞으로도 '18세를 위한 철학캠프'가 계속 될 것이라 하셨는데, 이 정도라면 앞으로의 2회, 3회……. 계속 잘 될 것 같고 나중에 18세가 아니더라도 기회가 된다면 참여하고 싶다. 그리고 후에 내가 철학 교수가 된다면 이런 의미 있는 곳에서 내가 느낀 것처럼 청소년들이 철학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
3. '18세의 철학캠프' 전체 후기-김한올 학생
철학 캠프를 다녀온 지도 꽤 지났다. 사실 철학 캠프를 마지막 날 조원들과 같이 울며 서로 꼭 만나자고 입이 닳도록 말했지만 학교에 다시 나가고 할 일을 하다 보니 기억이 조금은 흐릿해졌다. 처음에는 걱정이 좀 많았다. 사교적이지 않은 나로서는 강의를 듣는 거야 문제없었지만 조원들과 친해지는 것은 조금 힘들 거라는 생각을 먼저 했다. 그 모든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는 논산에서의 1박 2일과 졸린 눈 비벼가며 조원들과 함께했던 게임이 그립기만하다.
그렇게 많은 시간을 상상마당에서 보낸 것이 아닌데도 철학 캠프 없는 화요일은 내게 조금 허전하다. 아마도 잔뜩 기대하며 다음 강의의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남아있어서가 아닌가 싶다.
이번 철학 캠프가 좋았던 것은 '책'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보통 철학 수업이라고 하면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로부터 시작된다. 세계는 무엇으로 이루어졌냐는 질문과 함께 아주 처음부터 철학자들의 사상을 살펴보는 것이다. 물론 여러 철학자들을 만나볼 수 있다는 면에서 이것은 아주 유용한 수업일 수도 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참여한 수업보다는 친숙하게 다가오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 철학 캠프에 참여하기로 마음을 먹고 강의 내용을 살펴보았을 때, 나는 그 중 반이 넘는 책을 이미 읽었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내 안에 떠오른 감정은 실망이 아니었다. 대신 더 큰 호기심이 나를 채웠다. 돌아봤을 때 나는 책의 대략적인 내용만 기억하고 있을 뿐 책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 책들 속에서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 보지 못했던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면서 철학 강의에 대한 큰 기대감을 갖곤 했다.
6강의 즐거운 강의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4강, <금각사>에 관한 것이었다. 나는 <금각사>라는 책을 모르고 있었다. 철학 강의를 계기로 읽게 된 이 책은 내 인생의 정말 소중한 책이 되었다. 아직도 나는 책의 세심한 묘사들과 여러 아름다운 비유적인 표현들을 잊을 수 없다. 심지어는 '가장 아름다운 문장이 무엇이었냐'는 교수님의 질문에 맞는 답을 찾기 위해 25개가 넘는 문장을 메모해놓았을 정도였다. 그 중 한 문장을 이야기해 보자면 이렇다.
'그러나 우이코의 얼굴은 세계를 거부하고 있었다. 달빛은 그녀의 이마와 콧등과 얼굴 위에 가차 없이 흘러내리고 있었으나, 부동의 얼굴은 다만 그 빛에 씻기고 있었다. 조금만 눈을 움직이고 조금만 입을 움직인다면, 그녀가 거부하려는 세계는 그것을 기회로 한꺼번에 밀어닥치리라.'(<금각사>, 18)
나도 나름 철학에 관심이 많은지라 철학 도서를 많이 찾아 읽어봤었다. 책의 앞부분의 내용은 거의 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이기 때문에 플라톤의 이데아론은 꽤 자세하게 알고 있었다. 하지만 교수님이 니체의 해체론을 들어 '미'를 설명하셨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마치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에서 동굴 밖으로 나온 지식인과 같았다. 니체의 해체론을 이해하는 것은 조금 어려웠던 것 같다. 솔직히 지금도 강의 내용을 훑어보지만 잘 모르는 부분이 많다. 강의를 들으면서 생각한 것은 꼭 철학자들을 순차적으로 공부할 필요가 없겠구나, 하는 것이었다. 사실 나는 프로이트나 융, 마르크스 등과 같은 철학자들의 생각을 알고 싶었는데 책을 꼭 앞에서 읽다가 포기하다보니 그들을 접할 기회가 많이 없었다. 늦기 전에 얼른 새로운 생각들을 살펴보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철학 캠프를 통해 내가 배운 점이 있다면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는데도 무엇을 생각하려하는 습관이 생겼다는 것이다. 내가 책에서 살펴보지 못했던 것들이 너무 많았음을 깨닫고 그 후부터는 보이는 것 이외의 존재하는 것을 찾아보려 노력하고 있다. 물론 그것이 쉽지만은 않다. 몸에 밴 습관 때문인지 나는 또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내 자신을 종종 발견한다. 하지만 나는 분명 그러한 시도 자체가 의미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일단 내가 모르는 것을 인지한다면 그것을 조금이라도 더 알기위해 노력할 것이기 때문이다. 여섯 개의 강의를 통해 이번 철학 캠프가 나에게 가르쳐 주었던 것처럼 나는 생각을 생각하며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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