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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전 한 '변호인'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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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전 한 '변호인'을 생각한다

[기고] 영화 '변호인'과 현실의 인권변호사들

전두환 독재정권의 용공 조작 '부림사건'

요즈음 송강호 주연의 영화 <변호인>이 전무후무한 흥행을 이어가고 있어 화제다. 이 영화는 소곤소곤 입소문을 타고 불과 개봉 20여일 만에 800만 관객을 끌어들였다. 영화계 사람들은, 이 속도라면 <변호인>이 천만 관객 돌파는 물론 역대 최대 관객을 동원한 <아바타>(1365만)를 뛰어넘을 것으로 조심스럽게 예측한다.

이 영화는 학벌도, 배경도 없는 상고 출신의 한 변호사가 우연찮게 시국사건을 맡으면서 인권변호사로 변모해 가는 상황을 밀도 있게 그리고 있다. 기득권 사회의 따돌림 속에서 등기·세금 전문 변호사로 돈만을 좇던 주인공이 한 시국사건의 변호를 맡으면서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 태어나는 것이다. 기승전결의 짜임새 있는 시나리오와 송강호, 곽도원, 임시완, 김영애 등 출연 배우들의 열연 외에, 이 영화가 흥행에 성공한 데는 다른 외부적 요인도 작용했을 것이다.

우선 이 영화의 모티브가 전두환 독재정권 초기의 대표적 용공조작사건인 '부림사건'이라는 점, 그리고 그 피의자들을 변호한 사람이 비운의 고 노무현 대통령이라는 실제적 상황이 대중의 관심을 모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30여 년 전 전두환 독재정권의 폭압통치가 곧바로 헌법 유린과 국민 무시, 상식의 부정으로 이어지고 있는 오늘의 현실에 분노한 국민들의 울림이 일파만파 파동 쳐 수많은 사람들이 영화관을 찾았으리라 생각된다.

('부림사건'은 '부산의 학림(學林) 사건'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명칭이다. 1981년 3월 출범한 제5공화국의 군사독재 정권이 집권 초기에 통치기반을 확보하고자 민주화운동 세력을 탄압하던 시기에 일어난 용공 조작사건이다. 1981년 9월 부산 지검 공안 책임자인 최병국 검사의 지휘 하에 부산 지역의 양서협동조합을 통하여 사회과학 독서모임을 하던 학생·교사·회사원 등 22명을 영장 없이 체포한 뒤, 짧게는 20일에서 길게는 63일 동안 불법으로 감금하며 구타는 물론 '물 고문'과 '통닭구이 고문' 등 살인적 고문을 가하였다. 당시 부산에서 세금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던 고 노무현 대통령은 이 사건의 변호를 맡으면서 인권변호사로 거듭 난다. 편집자)

'변호인의 길'을 걸어간 변호사들

▲ 영화 <변호인>에서 변호사 송우석(완쪽)이 국밥집 주인 최순애(가운데)와 함께 부림사건에 연루된 최순애의 아들 진우를 면회하는 장면. ⓒ위더스필름


왜 '변호사'가 아니고 '변호인'인가? 변호사는 '일정한 법적 자격을 가지고 의뢰자를 위해 민사·형사 소송에 관하여 활동하며 기타 일반 법률사무를 다루는 전문적 직업법률종사자'를 말한다. 법정에서 '민사사건을 맡은 변호사'는 '소송대리인'이고, '형사 피고인의 변호를 맡은 변호사'는 '변호인'이라 한다. 곧 형사사건으로 인신을 구속당하여 자기방어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위해 법률적 지식을 동원하여 그 사람에게 유리하도록 주장하고 도와주는 사람이 변호인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모든 변호사는 변호인이 될 수 있다. 소정의 수임료를 받고 형법 등에 규정된 형사범을 변호하면 변호인인 것이다. 그러나 일반 형사범에 대해서는 그냥 변호인으로 수임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영화 <변호인>의 송우석 변호사처럼 독재정권 시절 권력과 관련된 사건을 수임하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했다. 재판 수임이 줄어들어 부의 축적은커녕 사무실 유지조차 못할 수도 있고, 심지어 신변의 위험까지 감수해야 했다.

영화에서의 송우석 변호사처럼, 현실에서도 부와 명예가 안정적으로 보장되는 '변호사의 길'을 버리고 불편하고 고단한 '변호인의 길'을 걸어간 분들도 여럿 있다. 일제하에서 독립운동, 노동·농민운동 관련 사건들을 끈질기게 조사하고 집중 변호한 김병로·이인·허헌 변호사, 이승만·박정희 독재정권에 맞서 투쟁한 이병린·이병용·홍남순·박세경·이태영 변호사, 박정희·전두환 독재정권 하의 수많은 시국사건을 도맡아 변호했던 이돈명·황인철·홍성우·한승헌·조준희·조영래 변호사 등이 그분들이다.

박정희 독재정권의 용공 조작 '민청학련사건'

박정희 정권은 1972년 10월 17일 계엄령을 내리고 영구집권을 위해 국민의 기본권을 철저히 유린하는 유신헌법을 제정했다. 전국의 대학생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1973년 가을부터 유신헌법 철폐 시위를 벌였고, 종교인, 교수, 문인 등이 유신헌법 철폐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1974년이 되자 박정희 정권은 유신헌법 철폐를 주장하거나 서명운동을 주도하는 사람은 군법회의에 회부, 최고 사형에 처할 수 있다는 긴급조치 1호를 선포했다.

그 무시무시한 긴급조치 1호를 무시하고 1974년 4월 3일, 유신헌법 철폐를 주장하는 시위가 다시 전국 대학에서 동시다발로 일어났다. 소위 민청학련 사건이다. 시위는 크게 확산되지 못했지만, 박정희 정권은 이 사건을 빌미로 민주화 운동을 뿌리 뽑으려 했다. 중앙정보부는 지학순 주교, 박형규 목사, 김지하 시인 등 수많은 민주인사들을 구속했고, 6천여 명의 학생들을 연행, 그중 2백여 명을 북한의 지령을 받아 정부전복을 꾀하였다는 혐의로 기소했다.

긴급조치 4호로 비상군법회의가 설치되었고, 삼엄한 군사법정에서 학생들은 유신철폐, 민주회복의 순수한 주장이 중앙정보부의 고문과 구타로 북한의 지령을 받은 반국가 음모로 조작되었음을 폭로하였다. 황인철 변호사 등 변호인들은 중앙정보부원과 헌병들로만 채워진 군사법정에서 학생들을 변호하느라 고군분투했다. 육군 장성들로 구성된 재판관들은 피고인들의 진술을 듣는지 마는지 재판 내내 눈을 감고 있었다.

변호인, 재판 중에 구속되다

1974년 7월 9일은 1차로 재판을 받은 학생들에게 구형을 내리는 날이었다. 군 검찰은 학생들에게 가차 없이 중형을 구형했다. 이 날의 구형은 이러했다. 앞줄 사형, 두 번째 줄 무기, 세 번째 줄 징역 20년- 사형을 구형 받은 서울대생 김병곤은 '영광입니다'라고 하며 최후진술의 말머리를 열었다. 20대 초의 대학생들에게 사형, 무기 등 중형을 구형한 것에 큰 충격을 받은 한 변호인이 피울음의 변론을 폈다.

"-이 재판에 관계하며 법률 공부를 한 걸 후회한다. 이번 사건의 변호를 맡으면서 법은 정치의 시녀, 권력의 시녀라고 단정하게 되었다. 학생들을 내란죄, 국가보안법 위반, 반공법 위반, 대통령긴급조치 위반, 빨갱이로 몰아 사형이니 무기니 구형하고 있으니 이것은 법을 악용한 사법살인이다. -본 변호인은 기성세대이기 때문에, 그리고 직업상 이 자리에서 변론을 하고 있으나, 그렇지 않다면 차라리 피고인들과 뜻을 같이하여 피고인석에 앉고 싶다. 악법은 지키지 않아도 좋다. 악법과 정당하지 못한 법에 대하여는 저항할 수도 있고, 투쟁할 수도 있다."

중앙정보부는 그날 저녁 그 변호인을 바로 구속하였고, 그는 며칠 후 '소원대로' 피고인석에 앉게 되었다. 재판정에서 변론하던 변호인을 끌어내 구속한 세계 사법 사상 초유의 풍경이었다. 40년 전의 그 변호인, 박정희를 사살한 10.26사건의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도 변호했던 법조계의 원로 강신옥 변호사이다. 강신옥 변호사는 대통령긴급조치 위반, 법정모욕죄로 7년 징역형을 언도 받고 형을 살다가, 이듬해 2월에 형집행정지로 석방되었다.

영화와 현실, 두 개의 재판 장면

영화 <변호인>의 마지막 장면. 송우석 변호사는 자신이 열정적으로 변호한 용공조작사건을 무죄로 이끌어내지는 못했지만, 그 사건을 통해 자각한 힘으로, 1987년 6월항쟁을 모티브로 한 '백종철 고문치사' 항의시위에 앞장서다가 구속된다. 송우석 변호사의 재판에는 부산지방의 변호사 99명이 '변호인'으로 나선다.

1974년 현실의 장면. 강신옥 변호사는 자신이 열정적으로 변호한 대통령긴급조치 위반 피의자들을 무죄로 이끌기는커녕 자신도 대통령긴급조치 위반 피의자로 구속된다. 강신옥 변호사의 군법회의 재판에는 100명의 변호사가 '변호인'으로 나선다. 대법원은 6월항쟁 이후 강신옥 변호사에 대해 무죄판결을 내린다.

* 이 글은 <경인일보>에 실린 글을 필자가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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