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혹스럽기도 하고 이해하기도 힘들다.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를 둘러싸고 좌충우돌하는 한국 정당들의 모습이 그렇다는 말이다. 정치학에서는 후보선출이 정당과 여타 조직을 가르는 정당의 핵심 기능이라고 말한다. 이익집단이나 운동도 정당처럼 선거경쟁과 정책결정에 영향을 미치지만, 그들이 공직 후보를 직접 선출하는 경우는 없다. 오직 정당만이 자신을 대표하는 후보를 뽑아 선거에 내세우고, 그들을 구심점으로 선거운동을 전개하며, 선거 후엔 당선된 후보들을 통해 당의 이념과 정책을 실현코자 한다. 그런 의미에서 후보선출은 단지 정당만의 소관 사항일 뿐 아니라 그들의 선거경쟁력과 정책실적을 좌우할 인물을 뽑는다는 의미에서 정당에게 가장 중요한 작업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국 정당들은 풀뿌리 자치의 기반이 되는 기초선거에서 그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지 않겠다고 경쟁하고 있다.
이제 갓 정당 활동을 시작한 새정치연합은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를 위해 자신부터 모범을 보이겠다고 공언한다. 제1야당을 자임하는 민주당도 당원 투표로 정당공천 폐지를 결정하더니 새누리당의 호응이 없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당공천 폐지에 반대하는 새누리당이라고 해서 다를 것도 없다. 그들은 공천 폐지 대신 개방형 국민경선제로 자기당 후보를 뽑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 역시 당과 무관한 일반 시민이 당의 후보를 결정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사실상 공천권을 포기한 것처럼 보인다. 왜 한국 정당은 자신들 고유의 권한이자 역할을 포기하겠다는 건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누군가는 한국 정당의 공천 문제를 모르고 하는 순진한 생각이라며 타박할지도 모르겠다. “돈 공천”, “밀실 공천”, “낙하산 공천”, “지방정치의 중앙정치 예속” 등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럼에도 정당공천 폐지 주장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왜 그런지 쉬운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어린 아이를 둔 부모들에게 가장 큰 고민거리 중 하나는 아이를 좋은 유치원에 보내는 것이다. 비교적 훌륭한 시설과 선생님을 갖추고도 저렴한 공립 유치원에 보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한데 그 수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공립 신청에서 탈락한 많은 부모들은 유치원비에 상당한 부담을 느끼면서도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을 사립 유치원에 보낸다. 이것만이 아니다. 사립 유치원 등록에서조차 경쟁이 치열한 경우가 많아 좋은 사립에 보내기도 어렵거니와 설령 운이 좋아 보낸 경우에도 원장이 영어 교육비다 특별 활동비다 하며 다른 부대 비용을 요구해도 그대로 납부할 수밖에 없다. 이래저래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아이 교육비로 가계 부담만 점점 더 커진다.
그런데 이와 같은 문제를 두고 누군가 이런 대안을 제시한다고 생각해 보라. “돈 많은 사람들에게나 이로운 현재의 유치원 제도를 폐지하자. 어떤 선생님도 원장도 부모만큼 아이를 잘 돌봐줄 수는 없다. 그러니 예전처럼 적어도 초등학교 전까지는 부모들이 직접 아이를 키우도록 하자.” 상식을 갖춘 사람이라면 누구도 이런 제안에 공감하지 않을 것이다. 정당공천에 문제가 많으니 폐지하자는 주장과 유치원 제도에 문제가 많으니 폐지하자는 주장이 나에게는 전혀 다르게 보이지 않는다. 사회적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제도임에도 그로부터 문제가 발생한다면, 먼저 문제의 원인을 확인하고 해결 방법을 찾아보는 게 순리지, 문제가 심각하다며 제도 자체를 없애자는 것은 전혀 합리적인 접근이 아니다. 그런 논리대로라면, 광역의원과 단체장, 국회의원과 대통령 후보선출에도 유사한 문제들이 있고 현재의 국회도 대통령도 정당도 문제가 많다고들 하는데, 그 모든 민주주의의 기본적인 제도들도 폐지하자는 게 과연 바람직한 대안일까?
현대 국가와 같은 대규모 공동체에서 정당 없는 민주주의를 상상하기는 어렵다. 정당은 선거에 나서는 후보와 정책 대안의 수를 줄임으로써 유권자의 선택을 유의미하게 만든다. 법률 제정과 정부 운용에 요구되는 의회 다수의 지지도 정당이 없다면 확보하기도 유지하기도 어렵다. 정부와 의회 실적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것도 꾸준히 지속되는 정당이 반복되는 선거에서 유권자의 지지를 얻고자 경쟁할 때만 가능한 일이다. 혹시 이런 말들이 뭘 뜻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면, 정당 없이 선거가 치러지고 의회가 구성되고 대통령이 정부를 운영하는 상황을 상상해보면 된다. 수천수만의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 공약을 갖고 선거에 나서고, 각기 다른 견해와 성향, 태도를 가진 수십수백의 대표들이 법률과 조례, 규칙을 만들겠다며 언제 끝날지도 모를 협상을 벌이고, 그런 의원들과 아무런 정치적 연계도 없는 대통령이 행정부를 통할한다고 할 때 상황은 혼란을 넘어 절망에 다다를 것이다.
정당에게 후보선출이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까닭은, 정당이 그런 권한을 갖지 않고서는 자기에게 주어진 어떤 역할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선 정당이 공천을 하지 않으면, 정치를 하고 싶은 사람들이 그런 정당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이유가 크게 줄어든다. 이럴 경우엔 사실 정당 조직 자체를 유지하기도 어렵다. 뿐만 아니라 하나의 공직을 두고 경쟁하는 수많은 후보들이 저마다 A당, B당 후보라 주장해도 막을 방도가 없다. 이렇게 되면 사실상 누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투표장으로 가야하는 불행한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의회 운용 또한 마찬가지다. 아무리 같은 이념, 같은 비전을 공유하는 같은 당 소속 의원들이라 해도 사안에 따라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질 가능성은 늘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정당이 의회 활동에서 일관된 정책 노선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정당 규율을 따르지 않는 의원들에 대해서는 다음 선거 공천에서 불이익을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낙후된 지방 정치에 활력을 불어넣으려는 사람들의 불만과 바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정당공천을 받기 위해서는 특별 당비든 뭐든 상당 금액을 제공해야 하는 현실, 지역 국회의원의 자의적이고 일방적인 후보 지명, 그에 따른 지방 정치의 중앙 정치 예속은 분명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특히 영호남과 같이 공천이 곧 당선을 의미하는 지역에서 이런 문제들은 더욱 심각한 양태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의 해법은 정당공천 폐지가 아니라 정당 조직을 강화하고 정당 간 경쟁을 활성화하는 데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럽 정당의 경험에서 보듯 정당 조직이 체계적으로 분업화되고 안정적인 위계 구조를 갖는 조건에서, 후보선출은 돈이나 인맥보다 그 당의 활동에 얼마나 헌신해왔는가로 결정될 것이다. (오해 없길 바란다. 이 말은 돈이나 인맥이 정당 활동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또한 지방 정치에서도 정당 간 경쟁이 치열하다면, 중앙당이나 국회의원이 돈이 많다거나 자기 사람이란 이유만으로 형편없는 인물을 후보로 내세우지 못할 것이다. 정당 간 지지율 격차가 크지 않은 조건에서 그런 인물의 공천은 곧 선거 패배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물론 현재의 ‘지역1당체제’를 극복하거나 유력한 제3정당을 만드는 일이 결코 쉬운 과제는 아니다. 그러나 공천 문제를 해결하고 지방 정치를 활성화하겠다는 명분으로 정당공천을 폐지할 경우, 정당의 조직적 지원을 받지 못하는 후보 개개인은 지역 토호나 거대 이익집단과의 경쟁에서 패배할 가능성이 더 높다.
지난 대통령선거를 거치면서 정치인의 특권이나 기존 정당의 기득권을 문제 삼는 언술들을 과거보다 훨씬 더 자주 보게 된다. 정당공천 문제도 큰 틀에서 보면 부패하고 무능한 기성 정당이 자신들의 핵심 기득권인 공천권부터 내려놔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런 접근은 문제의 근원(根源)을 찾기보다 그 문제가 낳은 부수적 현상을 원인으로 치환해 오히려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정당이 문제고, 정당 기득권이 부패와 비리와 분열을 낳는다는 주장은 비단 한국뿐 아니라 다른 여러 나라에서도 흔히 언급되곤 하는 진단이다. 그러나 그런 반정당적 견해에 대해 사뮤엘 헌팅턴은 이렇게 논박했다.
“정당에 반대하는 주장은 정당 자체에 대한 반대라기보다 ‘약한’ 정당에 대한 반대이다. 부패, 분열, 불안정 등은 강한 정당체제가 아니라 약한 정당체제를 특징짓는 요소들이다. … 정당은 부패의 유인을 제공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강력한 정당의 발전은 파편화된 사적 이익을 제도화된 공적 이익으로 대체한다. … 정당의 해악이란 사실 정당이 존재하지 않거나 매우 약한 시기에 유행하는, 파편화되고 혼란스런 파벌정치, 분파정치의 해악이다. 이 문제의 해법은 정치적 조직화에 있다. 그리고 현대화 과정에 있는 나라에서 정치적 조직화란 정당의 조직화를 의미한다.”
그나저나 큰일이다. 내년이면 나도 큰 애를 유치원에 보내야 하는데, 없는 살림에 어떻게 감당할지 벌써부터 고민이다. 집사람은 우리 동네 공립 유치원을 늘려 달라고 구청에 민원도 내봤다는데 정해진 규칙만 곧이곧대로 따르는 공무원들 반응은 여전히 냉담하기만 하다. 이런 사정에 귀 기울일 만한 구의원이 있다면 표로 보답하겠다며 당당히 요구할 수도 있겠는데, 내가 사는 서초구 임대아파트 주변엔 서민을 대표하겠다는 정당의 구의원도 지구당도 찾아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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