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민중사>(클리퍼드 코너 지음, 김명진·최형섭·안성우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는 책에서 다루는 시기의 폭으로 보나 저자가 펼치는 주장으로 보나 꽤나 야심찬 저작이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과학의 민중사>는 선사시대부터 20세기까지 과학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보통 사람 혹은 '민중'을 과학사의 정당한 구성원으로 자리매김하고자 한다. 그동안 숱한 교과서나 대중서적에서 그려 온 과학의 역사가 코페르니쿠스, 뉴턴, 아인슈타인 같은 천재들과 그들의 비범한 발상으로 점철되어 있었다면, 이 책은 그 이면에 이름 모를 수많은 민중이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근대 과학의 성과는 오로지 천재들의 손으로 빚어진 결과물이 아니라 "비천한 노동자들이 만들어 낸 거대한 토대에 의해 지탱되며, 그것과 떨어져서는 존재할 수 없는 정교한 세공품"(16쪽)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의 의도는 단지 위인들로 붐비는 과학사에 민중이라는 또 하나의 행위자 범주를 '보태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별다른 고려 없이 그저 다양한 사례로 과학사의 '빈자리'를 메우고 있는 것도 아니다. 저자는 한 발 더 나아가서 기존의 과학사가 사상, 정신노동을 우위에 두는 지배계층과 엘리트의 시각에 얽매여 있다고 비판하고, 대체로 육체노동에 종사했고 문맹에 가까웠던 피지배계층과 민중을 과학사의 주인공으로 삼는 대안적인 과학사 서술을 시도한다. 정신노동과 육체노동, 말과 행위, 이론과 실천, 학자와 장인,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 엘리트와 민중을 가르는 강고한 이분법 위에서 이전의 과학사가 주로 전자에 치중했다면, 이 책은 의도적으로 그 반대편에 서서 양자 간의 대립과 갈등을 드러내고 후자의 측면이 과학의 증진에 어떠한 기여를 했는지를 선명하게 부각시키고자 한다.
이런 이분법 구도는 과학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퍽 낯이 익은 것이다. 이 구도는 한때 과학사학계를 풍미했던 내적 과학사와 외적 과학사 구분과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1930년대부터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과학사학계에서는 과학의 지성적, 내적 측면을 강조해 온 내적 과학사 진영과 사회, 경제적 요인이 과학에 영향을 미친다는 외적 과학사 진영이 대립해 왔고, 냉전의 맥락에서 한동안 학계의 주류는 과학의 자율성, 중립적 이상에 더욱 부합하는 내적 과학사에 몰두했다. 앞서 저자가 언급한 기존의 과학사 서술은 바로 이런 내적 과학사 서술과 높은 친연성을 보이고, 그렇다면 저자가 비판의 표적으로 삼는 대상은 정확히 말하면 이런 내적 과학사의 입장을 체화한 대중 과학사 서적들이 될 터이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그 반대편에 서겠다는 저자의 언명은 외적 과학사 서술에 바탕을 두겠다는 말로 읽을 수 있다.
과연 이 책의 내용은 전반적으로 외적 과학사의 대표자라고 할 수 있는 버널, 보리스 헤센, 조지프 니덤, 에드거 질셀, 벤저민 패링턴과 같은 인물들의 저작에 노골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외적 과학사 서술에서 익히 제기되어 온 주장들에 인류학이나 과학사에서 가져 온 최근의 연구 성과를 덧대는 식으로 서술이 이루어지고 있다. 책 곳곳에서 드러나는 여러 주장들 가운데서도 반복적으로 되풀이되는 주장 중 하나는 과학에서 창조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측면이 대체로 민중으로부터 유래했다는 주장이다. 저자는 버널의 정의를 따라 과학을 "자연에 관한 지식과 여기 연관된 지식 생산 활동"(27쪽)으로 폭넓게 정의하면서, 과학에서 주목할 만한 혁신은 상인, 장인, 항해자와 같은 민중의 삶으로부터 나온 경우가 많다는 점을 다양한 사례로 뒷받침한다. 이러한 혁신은 자연에 관한 세부적 정보의 축적에 국한되지 않으며, 그런 정보들을 체계화해서 활용하는 단계로 나아가기도 했다.
이와 같은 주장은 15세기에서 18세기에 이르는 과학 혁명기에 대해 서술하는 장에서 특히 강렬하게 표현되고 있다. 저자는 질셀의 연구에 입각해서 과학 혁명기에 출현한 근대 과학을 특징짓는 태도와 방법이 사실 농민이나 장인과 같은 민중에게서 비롯되었다고 평가한다. 장인들은 작업장에서 대상을 직접 관찰하면서 자연에 대한 지식을 쌓고 시행착오를 통해 그것을 정교화했으며, 이처럼 고대 문헌이 아니라 직접 경험을 통해 지식을 획득하는 "경험적 방법"이 근대 과학의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인쇄술의 발달과 함께 장인과 농민의 방대한 실용지식을 수록한 저작들이 활발히 유통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이런 '출판시장'에서 확인할 수 있는 이상, 즉 지식이란 유용하며 협력을 통해 발전한다는 생각이 훗날 베이컨에게서 볼 수 있는 과학관의 선조라고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 하나의 주장은 앞의 주장에 비해 조금 더 거친데, 지배계층과 엘리트가 이러한 혁신의 수용을 방해하거나 지연시키는 역할을 하곤 했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민중이 일군 과학적 혁신이 차차 지배 엘리트에게 포섭, 전유되었다는 것이다.가령 인도의 이름 없는 한 서기에 의해 발명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무역 상인들에 의해 세계 곳곳으로 전파되었을 0이라는 기호는 유럽 수학자들의 반대 때문에 한동안 유럽에 자리를 잡지 못했고, 항해자들이 항해 경험을 바탕으로 지속적으로 개량하던 해도는 왕실이 해도 독점권을 내세우면서 점차 개량의 속도가 늦춰지게 되었다고 평가한다. 뿐만 아니라 지배계층과 엘리트는 다양한 방식으로 민중의 지식을 포섭했다. 유럽 항해자들이 항해술에 해박한 폴리네시아인들을 납치해 도선사로 삼거나 아메리카에 처음 진출한 유럽인들이 원주민들을 이용해 내륙지도를 작성했던 사례가 날 것 그대로의 전유를 보여주는 예라면, 병기창의 장인들과 교류하며 각종 엔지니어링 지식과 기법을 습득하고 연구에 대한 영감을 얻었던 갈릴레오는 한결 부드러운 전유에 해당할 것이다.
이처럼 <과학의 민중사>는 잊혀진 외적 과학사 전통에 기대어 대중 과학서적에 나타나는 편향을 극복하려는 노력의 소산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노력이 만족스럽다고 볼 수 있을까? 이 책이 과거의 과학사 전통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 자체는 별다른 시빗거리가 못 될 것이다. 오히려 잘만 이루어진다면 잊혀진 과거의 과학사 전통에서 취할 수 있는 부분을 취하는 것은 장려되어야 할 일인지도 모르고, 전적으로 그것에만 의존하는 것도 아니어서 비교적 최근의 과학사 연구 성과도 꽤 활용하고 있다.
문제는 저자가 과거의 외적 과학사 연구를 현재의 맥락에 맞춰 다듬어서 제시하기보다 자신의 논지와 부합하기만 한다면 무엇이든 끌어오기에 급급하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에서는 과거의 과학사학자들이 취했던 낡은 과학관이나 현재주의적 관점조차 그대로 반복되는 부분이 군데군데 눈에 띄며, 뒷부분으로 가면 갈수록 도무지 저자가 내놓는 주장과 사례들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불분명한 측면들이 계속해서 독자의 발목을 잡는다. 이 책은 대중적 판본의 속류 내적 과학사가 가져오는 폐해를 시정하기 위해 그와 정반대의 속류 외적 과학사를 해독제로 제시하는 듯이 보인다. 과연 이런 방법이 과학의 역사에 대한 균형 잡힌 서술에 기여할 수 있을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또 한 가지 아쉬운 부분은 이 책의 정치적 함의와 관련이 있다. 엄밀한 역사 서술을 희생시키면서까지 민중사 서술을 밀어붙인 결과는, 어쩌면 과학의 집단적 성격이 가장 잘 드러날 수도 있는 현대 과학에서 민중의 역할이 매우 부차적인 수준에 머무르게 된다는 점이다. 그의 구도를 따르자면 나타나는 자연스런 귀결이겠지만, 과학이 민중의 손을 벗어나 소수 엘리트에게 독점되는 "체제 변화"를 겪게 된 과학 혁명기 이후에 대한 서술에서는 점차 민중의 역할이 축소된다. 과거에 자연지식의 형성과 전파에 큰 역할을 하던 민중이 20세기에 들어서면 과학 '외부'로 밀려나 거대과학에 대한 맹목적 지지나 과학을 대상으로 한 사회운동과 저항의 형태로만 모습을 드러낸다.
게다가 저자가 20세기에서 발견하는 민중의 '흔적'은 외려 그의 서술에 깔려 있는 이분법이 과연 기댈만한 틀인지에 대한 의구심을 증폭시킨다. 저자는 레이첼 카슨을 과학에 저항하는 "민중의 작가"로 표현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과학 부정행위를 보도하는 탐사 보도 기자들, 전략방위구상을 반대한 "우려하는 과학자 동맹(Union of Concerned Scientists)", 반핵운동을 지원한 "사회적 책임을 위한 의사회(Physicians for Social Responsibility)"를 지배계층에 복무하는 거대과학의 반대편에 놓는다. 마찬가지로 저자가 현대 과학에서도 여전히 창의적인 측면은 민중으로부터 나타난다는 근거로 드는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 컴퓨터 프로그래머의 예는 민중과 엘리트라는 저자의 이분법 구도에 잘 들어맞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오히려 이러한 사례들은 이 책이 바탕으로 하는 이분법이 (적어도 현대 과학에 대해서만큼은) 유효한 틀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과학의 민중사>는 분명 대중 과학사 저술 시장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하는 책이다. 보통 사람들도 과학에 기여해 왔다는 점을 보여주는 다양한 연구 성과를 모아 쉽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형태로 펴낸 것만으로도 쉽게 넘볼 수 없는 일을 해낸 셈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 책은 안과 밖의 이분법을 넘어선 ‘균형 잡힌’ 과학사 서술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지 다시 고민하게 만드는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이 종점이 아닌 또 다른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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