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평화연대·메디피스에서 활동 중인 김태언 씨가 팔레스타인 현지에서 지난 22일(현지시각) 있었던 이스라엘군의 팔레스타인인 체포 현장을 다녀왔습니다. 이스라엘은 이번 사건이 수배자이자 하마스의 무장 대원인 함자 아부헤이자 씨를 체포하기 위해 벌인 작전이며 그가 팔레스타인 내에서 군사 거물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현지에서는 아부헤이자 씨가 하마스 대원이었다는 것 외에 특별히 저지른 범죄가 없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군의 작전과 아부헤이자씨 죽음의 실상, 그리고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는 팔레스타인 현지 분위기를 돌아봤습니다.<편집자>
3월 22일 토요일 오전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제닌시는 새벽부터 총소리와 앰뷸런스 소리로 뒤덮였다. 이어 주변 모스크(이슬람 사원)의 스피커에서는 당일 이스라엘군에 살해된 3명의 팔레스타인 사망자에 대한 이야기와 그들의 장례식, 그리고 뒤이은 행진에 대한 안내가 잇따랐다.
미국의 중재로 시작해 오는 4월을 기한으로 한 팔레스타인-이스라엘의 평화협상은 여전히 교착 상태에 놓여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팔레스타인의 긴장감은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최근 들어 그 어느 때보다 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스라엘군에 살해되고 있다. 우연이라고 보기에는 그 빈도와 타이밍이 너무나 절묘하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에 대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분노 역시 증가하고 있으며, 이러한 긴장감은 복잡한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심각한 가능성을 열고 있다. 게다가 서안의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는 이스라엘에 호재가 될만한 내부적 정치세력 다툼이 한창 진행 중이다.
높아진 긴장상황 속에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에 세 번째 인티파다(무장봉기)가 발생할지, 가자지구를 향한 또 다른 대규모 학살이 일어날지 여러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는 가운데 발생한 이번 이스라엘군의 제닌 난민촌 공격은 최근 발생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군사공격 중 가장 대규모에 속한다. 필자는 해당 사건이 발생한 제닌 난민촌을 방문해 목격자들의 증언을 듣고 사건을 재구성해보았다.
제닌 난민촌 공격의 실상
2014년 3월 22일 토요일 오전 2시 30분 이스라엘 특수군부대 신베트 요원들은 제닌 난민촌에 지명수배된 팔레스타인인 함자 아부헤이자 씨의 집을 포위했다. 그들은 해당 주택 주변 3채의 집을 강제 점령해 거주민들을 억류하고 옥상을 확보한 뒤, 오전 3시경 이스라엘 군은 제닌 난민촌을 통하는 모든 길로 탱크를 몰고 들어와 제닌 난민촌을 봉쇄했다.
▲ 함자 아부헤이자씨가 포위됐던 주택에서 발견된 탄피들 ⓒ김태언
함자 아부헤이자 씨가 포위된 집에서 이스라엘군은 민간인에 대한 투항권고를 했고, 이에 따라 건물 안에는 함자 1명만 남게 되었다. 이 건물에 이스라엘군은 각종 미사일, 유탄, 총을 발사했고 함자는 M-16을 가지고 마지막까지 투항하다 2층 창문을 통해 뛰어내렸다. 이스라엘군이 일부러 열어둔 건물 옆길을 따라 5미터를 도망치던 함자는 주변 지역을 완벽히 포위한 이스라엘군의 무차별 총격을 받아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함자의 죄목은 불법 총기소지 및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활동이었다. 21살의 함자는 8번의 무기징역 형을 선고받아 이스라엘 감옥에서 투옥 중인 아버지가 있었고, 그가 직접 저지른 범죄는 총을 들고 하마스 로고와 함께 찍은 사진이 전부였다. 그가 사망한 걸 확인한 이스라엘 군부대는 오전 6시경부터 서서히 철수하기 시작했고, 함자의 시체를 옮기려 도우던 팔레스타인 2명은 그 자리에서 이스라엘군 저격수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5시간의 군사공격 동안 3명이 사망하고 12명이 부상당했다.
살해된 팔레스타인 청년, 군사 거물?
사건이 종료된 이후에도 난민촌은 아직 당일 아침의 여파가 가시지 않은 상황이었다. 팔레스타인의 모든 난민촌이 그러하듯 제닌 난민촌은 제닌시 외각에 위치한, 인구밀도가 높은 건물들이 많은 도시의 일부였다. 사건이 일어난 현장은 청소를 한 이후임에도 도로와 벽에 피해자의 핏자국이 튀어있었다. 이스라엘군이 점거했던 건물은 문이 부서져 있었고, 옥상엔 그들이 쏜 수백 발의 5.56밀리 탄피와 유탄 탄피가 흩뿌려져 있었다.
피해자가 머물던 건물은 겉보기엔 창문가에만 부서진 흔적을 볼 수 있었으나, 건물 내부는 초토화되어 있었다. 유탄, 미사일 파편이 휩쓸고 간 흔적이 1층과 2층 벽과 천정에 가득했으며, 피해자가 머물던 건물 2층은 성한 구석이 한 곳도 없었다. 늦은 오후임에도 여러 언론 매체 기자들이 현장을 기웃거리고 있었으며, 부서진 건물 잔해를 활발하게 오가는 이는 동네 꼬마들뿐이었다. 여러 언론에는 함자 아부헤이자 씨가 팔레스타인의 군사 거물로 보도되고 있지만, 실제 주변 인사들은 그를 21살의 무기를 소지한 어린 열성 하마스 멤버로 기억하고 있었다.
▲ 이스라엘군에 의해 초토화된 민간주택 ⓒ김태언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뿌리 깊은 팔레스타인 정부에 대한 불신
제닌 시는 팔레스타인 관할구역인 Area A에 속한다. 이스라엘군은 정부 군부대 200미터 옆에 위치한 제닌 난민촌의 6개 루트로 진격, 팔레스타인군의 아무런 저항 없이 효과적으로 팔레스타인 청년 3명을 살해하고 돌아갔다. 이렇듯 자국민을 보호하지 못하는 팔레스타인 정부의 무능함을 보여주는 사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며,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런 이유로 그들 정부에 대해 분노하고 불신한지 오래다.
1994년 이후 팔레스타인을 지배해온 PA(Palestine Authority) 정부는 미국과 이스라엘 정부의 다루기 쉬운 대화상대로 인식됐다. 이 때문에 PA는 국제사회에서 팔레스타인을 대표하는 유일한 정부로 인정돼 이들을 통해 많은 국제 자금이 오가고 있다. 팔레스타인 정부는 부패로 유명할 뿐 아니라 이스라엘 정부에 협력해 자국민을 체포하고 살해되도록 방치하는데 일조했다고 많은 비난을 받고 있다. 그들은 공식 석상에서 이스라엘을 향해 비난을 퍼붓지만 실제 많은 부분에서 이스라엘정부에 협조해 팔레스타인의 입지를 좁히는데 앞장 서는 식민정부라 비난을 받고, 이번 사건을 통해 보면 알 수 있듯 실제 그런 역할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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