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신문이나 뉴스 보기가 꺼려진다는 사람이 많다. 하루도 빠짐없이 쏟아져 내리는 문제 앞에 무력감을 느껴서일 것이다. 문제는 결코 줄어드는 법이 없다. 'OECD 국가 중 1위'를 차지하는 항목은 늘어만 간다. 다들 아실 테니 구태여 덧붙일 필요도 없겠지만, 항목은 단 하나의 예외 없이 나쁜 것뿐이다. 문제는 한둘이 아니고, 간단한 문제라곤 하나도 없으며, 문제가 쌓여온 시간은 너무도 길다. 그에 비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미약하기만 하다. 무기력감은 쉽게 슬픔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슬픔을 주는 대상을 피하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성이라지 않던가. 그렇게 해서 사람들은 문제에서 돌아선다. 물론 그 마음이 편하기만 할 리는 없다. 나 역시 이런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고자 문제로부터 출발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원하는 그림으로부터 출발하는 사람이 있다. 첫 번째 종류의 사람은 동기를 유지하기 위해 끝없이 문제를 떠올려야 할 것이다. 그 과정이 고통스럽지 않기란 어렵다. 고통은 큰 동력이 될 수도 있지만, 어느 순간 그 사람을 망가뜨릴 수도, 혹은 문제로부터 도망가게 내몰 수도 있다. 두 번째 종류의 사람은 끝없이 원하는 것을 떠올리며 끈기를 지켜낸다. 원하는 것을 이루면 얼마나 좋을지, 어떤 기쁨을 누릴지 상상하는 것이 힘든 과정을 버텨낼 수 있게 도울 것이다. 물론 자신이 목표 삼은 것이 과연 현실적인지, 회의에 휩싸이는 나날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원하는 것을 상상하는 건 적어도 문제를 되새기는 것보다 훨씬 즐거운 과정이 아닐까. <소셜 픽션>에는 그렇게 '원하는 것'을 상상하는 데서 출발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겼다.
온라인 신발 쇼핑몰 자포스의 창업주 토니 셰이는 하나의 도시를 창업해냈다. 자포스의 사옥을 라스베이거스 구시가지로 옮기면서 개인 자금 3억 5000만 달러를 '도시 창업'에 투자했다. 그가 꿈꾸었던 건 자포스와 지역사회의 경계가 사라지고, 사람들 간의 '우연한 만남'으로 일상이 채워지는 도시였다. 자신만의 스토리를 지닌 사람들이 직접 꾸리는 작은 자영업체들이 도시에 자리 잡도록 돕는 데 자금이 쓰였고, 그 덕에 자포스가 자리 잡은 라스베이거스 구도심은 새로운 문화로 넘실거리고 있단다. 그런데 한 사람의 상상으로 출발했다고 하기엔 '개인 자금 3억 5000만 달러'가 좀 걸리긴 한다. 한 사람이긴 한데, 보통의 한 사람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런 사례는 어떨까? 의대생이던 '무영'과 공동체 운동을 펼치던 활동가 '어라'는 결혼하지 않은 여성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려 살 수 있는 사회를 원했다. 그래서 혼자 사는 사람들이 서로를 돌보는 마을, 보살핌의 관계망을 품은 마을을 상상했다. 그 상상에서부터 살림의료생협이 탄생했다. 2012년 2월 출범한 살림의료생협은 그런 마을을 목표 삼아 나아가는 첫 번째 발걸음이었다. 그로부터 1년 반가량이 지난 2013년 7월에는 마을 건강 활력소 다짐(다-gym)을 열며 보폭을 넓혀가고 있다. '어라'와 '무영'의 상상은 아직 많은 부분이 상상으로 남아 있긴 하다. 구현된 것보다는 구현해야 할 것이 크다.
그래서 충분히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다면 제주도의 올레길이 나무랄 데 없는 사례이지 싶다. 언론인으로 오랜 시간 일했던 서명숙은 1년 남짓 월급을 모아 산티아고의 '순례자의 길'로 떠났고, 그곳에서 사람을 품어주는 길을 고향 제주도에 놓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그 꿈을 안고 돌아온 서명숙은 상상을 현실로 옮기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 결과 첫 번째 올레길이 2007년 9월에 열렸고, 제주도를 한 바퀴 빙 도는 422킬로미터의 길이 2012년 11월에 완성되었다. 그 후, 흔하고 뻔한 '관광지' 중 하나였던 제주도가 언제나 다시 찾아 '걷고' 싶은 각별한 장소로 새로이 자리 잡은 것은 올레길 덕이었다. 올레길이 제주도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고, 제주도에서 여행하는 방식을 바꾸고, 그를 통해 제주도 사람들의 삶까지 바꾸었다는 사실에 토를 달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제주도의 올레길은 나에게도 각별한 기억을 준 이름이었지만, 이 책을 읽기까지 올레길이 한 사람의 상상에서 출발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진 못했다.
이들이 애초에 '세상을 바꾸겠다'는 의지를 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그건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닐 것이다. 그들은 원하는 미래를 상상했고, 그 상상을 구현해보겠다고 시도했고, 그 시도가 결과적으로 사회의 모습을 바꾸었다. 그 변화가 충분히 크지 않다고, 근본적인 게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들의 마음에 싹튼 상상이 일으키는 변화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에 모처럼 기분 좋은 희망이 흘렀다. 여기서 소개한 것 외에도 <소셜 픽션>은 세계 곳곳에서 현재진행형인 다양한 상상과 구현의 사례를 보여준다. 공유 경제와 협동조합, 디지털 화폐와 직접민주주의, 로봇노동까지,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어떤 미래를 원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는 것도 이 책의 매력이다.
과거의 언젠가에는 우리 모두가 미래를 상상했다. 어릴 적 유치원의 합동 생일잔치에서는 아이들이 마이크를 잡고 "나는, 나는 될 터이다. OOO가 될 터이다"하는 노래를 부르곤 했다. 그 노래 속에서 우리는 미래의 교사이거나 의사, 대통령이거나 배우인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다. 소셜 픽션이 '사회에 대한 상상'이라지만, 나는 그것이 결국 자신의 미래에 대한 상상과 다르지 않다고 믿는다. 어린 시절, 자신의 미래에 대한 상상은 같은 세상이 계속될 것을 가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울 만큼 급변하는 시대, 현재의 지속을 가정하는 상상은 아무런 소용이 없어져버렸다.
미래의 나에 대한 상상이 의미 있으려면, 그 배경이 되는 사회에 대한 상상이 함께 가야 한다. 미래의 사회가 지금과 같을 것이라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이제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배경이 되는 미래의 사회를 그저 예상하거나 추측할지, 아니면 기꺼이 상상할지는 각자가 선택할 몫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우리는 상상을 멈추고, 예상과 추측만을 일삼는다. 그리고 그 예상과 추측에 대처할 뿐이다. 그게 현실을 직시하는 '철든 어른'의 방법일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원하는 사회를 상상하고, 그 상상을 배경으로 자신의 미래를 창조하는 '철없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의 상상은 힘이 셌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