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누군가는 기록해야 할 사태였다. 2008년 두산그룹이 대학을 인수한 후 중앙대에서 벌어진 구조조정과 그에 맞선 학생들의 투쟁기. 아직 끝나지 않은 이 역사의 증언자로 노영수보다 적합한 이는 없으리라. 중앙대 구조조정 과정에서 그는 늘 사태의 한복판에 있었고, 언제나 가장 선두에 나서 싸움을 벌였다. 그는 전략가라기보다 행동파였고, 분위기를 살펴 행동을 주저하는 법이 없었다. 그로 인해 퇴학이라는 가장 가혹한 처벌을 받았고, 함께 하던 이들이 피로감에 젖어 숨을 고를 때에도 혼자서 두산과의 고독한 싸움을 계속했다. 이 책은 그 투쟁의 기록이자, 모순적인 대학의 현실을 온 몸으로 살아낸 한 대학생의 성장기이기도 하다.
▲ <기업가의 방문-어느 기업 대학에서 생긴 일>(노영수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 ⓒ후마니타스
책은 흥미롭게도 아직 '기업가가 방문'하기 전인 2008년 무렵, 저자가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쌍끌이 어선에 올라탄 일화로부터 시작된다. "바다를 향한 남자의 도전"이라는 경쾌한 소제목을 달고 있는 이 장은 섬세한 묘사와 문학적 필치가 어우러져 마치 잘 쓰인 르포르타주 소설을 연상시킨다. 진중한 투쟁의 기록이 담겨있으리라 예상한 독자에게 뜻하지 않은 독서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부분이다.
언뜻 낭만적인 뱃사람들의 삶의 터전으로 보이는 쌍끌이 어선의 세계는 폐쇄적이고 냉혹한 착취공장이기도 하다. 그 곳에서 수개월을 생활하며 겪은 모순과 착취의 현실은 이후 기업화한 대학의 초상에서 종종 소환된다. 뒤렌마트의 희곡 <노부인의 방문>에서 모티브를 얻어 돈의 힘으로 대학을 지배하려는 기업가의 행태와 공동체의 파괴를 읽어내는 서문의 서술도 인상적이다. 늘 행동이 앞서는 투박한 '사나이'지만, 독문학도로서 내면에는 풍부한 문학적 감수성이 흐르고 있었던 것일까. 저자를 주변에서 지켜봐 온 필자로선 책의 서두를 읽으며 그의 문학적 소양에 내심 적잖이 놀랐다.
이후 중앙대에서 그가 겪은 일화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펼쳐지는데, 2003년 중앙대에 입학한 노영수의 이십대는 2008년 '기업가의 방문' 이전과 이후로 극적인 대비를 그린다. 농활 가서 사람들과 어울리고 엉뚱한 장난을 벌이기 좋아하던 평범한 대학생은 졸지에 구조조정 대상 학과의 학생이 되었고, 교수를 비롯한 학과 구성원들과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싸움을 벌이게 된다.
당시 중앙대의 사정은 언론을 통해 이미 널리 알려진 바 있다. 총장직선제가 폐지되고 교수들에 대해선 성과에 따른 연봉제가 도입되었다. 77개 학과를 40개로 줄이고 경쟁력이 약한 학과를 통폐합해 경영대 정원을 늘리는 학과 구조조정이 시행되었다. 일방적인 구조조정을 비판한 학내 교지는 강제 수거 되었고, 학교 방침에 비판적인 의견 표명만으로도 징계사유가 되었다. 박용성 이사장과 학교본부는 "구조조정에 있어 대화는 없다"는 태도를 공공연히 취했고, 이러한 노골적인 태도는 학내 구성원들을 더욱 분노케 했다.
정상적인 의견수렴 절차가 무시되자 수차례에 걸친 집회, 교수와 학생이 함께 한 천막농성 등 실력행사도 해보았으나 돌아오는 것은 더한 탄압과 징계뿐이었다. 한때 학내 구성원들의 제반권리를 함축하는 듯했던 '학내 민주주의'와 '자치'라는 기표는 헌신짝처럼 내팽개쳐져 공허한 울림으로 캠퍼스를 떠돌았다….
▲ 4년 전, 노영수 씨는 중앙대학교 공사장 타워크레인에 올라 중앙대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고공 시위를 벌였다. ⓒ프레시안(허환주)
노영수의 대학생활뿐만 아니라 인생을 바꾸게 된 사건이 터진 게 바로 이 시점이다. 2010년 4월 8일 구조조정안에 대한 최종 승인 절차인 이사회가 열리던 날, 그는 지인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학교 공사장의 타워크레인에 올라 고공 시위를 벌인다. 학생들의 그 어떤 형태의 몸부림도 허용하지 않는 학교 측의 태도에 그는 "질식해 버릴 것만 같았다"고 한다. 그는 이 사건으로 약 25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와 퇴학 조처를 받았다.
그러나 이것은 싸움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싸움의 서막일 뿐이었다. 강제로 자유로운 신분이 된 그는 본격적으로 '기업가'에 맞서기 시작했다. 두산그룹 본사를 찾아가 항의 퍼포먼스를 벌이고, 두산이 주도하는 국토대장정 프로그램을 따라 13일간 55킬로미터에 이르는 '삼보 일배' 투쟁을 펼쳤다. 후자는 특히나 미련하기 짝이 없는 계획이었지만, 그는 이 과정에서 진보정당 및 노동자와의 연대라는 값진 무기를 얻게 된다. 당시 그가 적을 두었던 진보신당의 지역 당직자들은 삼보 일배의 여정마다 물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삼보 일배 투쟁의 목적지였던 두산중공업 공장의 해고 노동자들은 회사의 탄압으로부터 그를 지켜주었다.
아마도 이 부분은 그의 여정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마지막 삼보 일배의 시작점은 '배달호 열사 추모비', 목적지는 두산중공업 공장이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매우 뜻 깊을 뿐만 아니라 상징적인 선택이었다. 지난 2002년 사측의 일방적인 단체협약 폐지로 두산중공업 노조는 파업에 돌입했다. 두산은 기다렸다는 듯이 파업에 가담한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징계를 내린 데서 모자라 65억 원에 달하는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손해배상 청구와 가압류로 노동자들의 삶은 벼랑 끝으로 내몰렸고, 이에 분신 자결로 항거한 이가 고(故) 배달호 열사였다.
몇 년이 지나 대학에 침투한 두산의 기업가는 구조조정 반대시위를 한 학생들에게 징계와 25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며, 노동자만이 아니라 학생들마저 기업의 노예로 만들고자 시도한다. 따라서 노영수와 두산중공업 해고 노동자들의 만남은 필연적인 것이었다. 기업가는 그들을 학교와 공장에서 내쫓았지만, 노예의 삶을 거부한 그들에게 기업가의 명령은 일말의 정당성도 가질 수 없었다. 그들은 제지하는 두산의 청원경찰들을 뚫고 함께 "학생은 학교로, 노동자는 공장으로"라는 구호를 외쳤다. 공동체에서 쫓겨나야 할 쪽은 기업가이며, 학교와 공장의 주인은 자신들이라는 결연한 선언이었다.
두산중공업의 박용성 이사장은 중앙대 구조조정을 진행하며 "학생들과 대화를 해보면 두산을 대환영하는 분위기다. 솔직히 말하면 자본주의의 논리가 어디 가나 통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고 소회를 밝힌 바 있다. 이것이 비단 기업가의 자신만만한 허풍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해야겠다. 노영수가 점차 극단적이고 고립된 투쟁 수단을 취하게 된 것은 그가 이상주의자거나 돈키호테식의 기질을 지녀서가 아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학교 발전에 대한 기대로 재벌기업을 환영하고 학내 비판적인 교수들마저 몸을 사리면서, 구조조정에 저항하는 이들은 학교 발전을 저해하는 불순세력으로 낙인찍히고 학내 공론장에서 배척당했다. 학내 여론이 비우호적이고 더 이상 함께 싸우는 이들마저 사라진 상황에서 그는 극단적인 퍼포먼스를 통해 사회적 여론을 환기시킬 수밖에 없었다. 다만 남다른 점이 있다면, 그가 대학에 들어와 새내기 새로배움터에서 교수들에게 맨 처음 들은 교훈, 즉 '대학은 그 담장 안에서만큼은 자유롭고 평등한 공동체'라는 진리에 충실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 <기업가의 방문>을 쓴 노영수 씨, 퇴학에 맞서 시위를 벌이는 모습이다. ⓒ프레시안(선명수)
노영수의 경험은 한국 대학의 모순을 한데 집약하고 있다. 국가의 지원 하에 기업의 이윤 추구 수단이 되어버린 대학, 독립적인 연구자에서 종업원의 지위로 격하되어 재단과 본부의 눈치를 살피는 교수들, 신자유주의적 경쟁의 논리와 학교발전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한 학생들, 힘겹게 민주주의와 자치의 가치를 지켜가고자 하는 일군의 고립된 운동권들…. 현재 대학가에 예고되어 있는 대대적인 구조조정 과정에서도 이 모순은 고스란히 반복될 것이다. 그렇다면 중앙대와 노영수의 경험은 그 패배마저 예고하는 것일까?
이 책은 패배의 기록이 아니라 투쟁의 기록이라는 점을 다시 상기하자. 기업가는 손해배상 청구와 징계, 사찰과 감시 등 모든 수단을 동원했지만 진리에 충실한 단 한 명의 주체를 끝내 굴복시키지 못했다. 기업가와 학교본부의 끝없는 탄압 시도는 지배의 견고함이 아니라 오히려 그 취약성을 드러낼 뿐이다. 노영수가 온몸으로 증언한 것이야말로 바로 이 단순한 명제 아니던가. '자본주의의 논리는 이곳에서 결코 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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