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의 소위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 부정 사태와 지난해 이석기 의원의 '내란 음모' 사건 이후 한국 사회의 진보정당 운동은 그야말로 초토화됐다. 통합진보당을 장악한 소위 '경기동부연합'의 행위들에 대한 정당성이나 지지 여부를 넘어 그러한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 자체가 한국 사회의 진보정당 운동의 방향을 잃게 만들어 버렸다.
한때는 희망적인 느낌을 갖게 했던 '진보'라는 단어는 이제 구태와 비상식을 상징하는 단어로 타락해버렸다. 아니, 차라리 거기에서 그치면 다행이다. 이미 '진보'는 '종북'과 동의어다.
인터넷으로 생중계되고 있는 회의장에서 폭력을 사용해 단상을 점거해 의사진행을 마비시키고도 이를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 통합진보당 내 특정 계파의 활약상을 지켜본 사람들은 진성당원제와 당내민주주의를 자랑처럼 내세우던 진보정당의 속살이 여과 없이 노출된 것에 그야말로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진보정당 운동에 깊숙이 결합하고 있던, 그러니까 진보신당(지금은 노동당) 당직자 출신인 나 같은 사람들도 이 사태에 놀라움을 표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다만, 우리가 놀란 지점은 이들이 상식을 뛰어넘는 행위를 벌였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들이 이런 식으로 행동한다는 건 진보정당 운동에 특별한 관심을 가져본 사람이라면 대개 이미 알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가 놀랍다고 생각한 것은 오랫동안 '우리들'끼리만 공유하고 있던 '경기동부'라는 이름이 마치 악의 근원을 부르는 주문처럼 메이저 일간지에 오르내리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 2012년 봄,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부정 경선 의혹이 드러나면서 이 정당과 정당의 특정 계파에 전 국민적 관심이 집중됐다. 사진은 당시 부정 경선을 조사 중이었던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가 통합진보당 당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도하고 있는 가운데 당원들이 압수수색에 반대하며 경찰과 충돌하고 있는 모습이다. ⓒ연합뉴스
당시 경기동부라는 이름을 앞에 두고 온라인상에서는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다. 경기동부의 기원과 역사에 대한 설명에서부터 그들에게 입은 피해에 대한 고백 등이 끝없이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경기동부들'(굳이 이렇게 호명하고 싶다)에 대한 평가도 조금씩 다르게 나타났다. 어떤 사람들은 이들을 종북주의자 그 자체로 비난하는 데 열을 올렸지만 또 어떤 사람들은 이들이 전통적인 의미의 종북 주사파와는 다르다며 감싸는 모습을 보였다. 이들이 NL 학생운동 내부 계파로 볼 수 있는 '비선'과 대비되는 '혁신'에 가까운 인물들이며 진보정당 운동에 상대적으로 적극적이었고 주체사상의 핵심 개념 중 하나인 '수령론'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맹목적인 종북주의자와는 그 결이 다르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내가 아는 한 경기동부들로 통칭되는 이들 사이의 소소한 차이는 결코 이른바 NL 전체가 공유했던 사상적 지향과 조직론으로서의 통일전선론의 범주를 벗어난 일이 없다. 인터넷 상의 분분한 경기동부에 대한 논의는 내가 보기에 차라리 장님 코끼리 만지기에 비유하는 것이 적절할 정도였다. '경기동부'라는 말에서 제각기 직간접적으로 갖고 있는 'NL 운동권 경험'을 상기하고 이를 통해 사태를 해석하는 상황이 돼버렸기 때문이었다.
▲ <경기동부>(임미리 지음, 이매진 펴냄). ⓒ이매진
오늘 소개하려는 책인 <경기동부>(이매진 펴냄)의 저자 임미리가 작성한 '경기동부연합의 기원과 형성, 그리고 고립'이라는 제목의 논문 역시 당시 장님 코끼리 만지기의 한 요소로 SNS 공간 등에서 회자됐다. 이 논문이 주목받은 맥락은 보수언론이 보도하는 것처럼 종북, 주체사상, 혁명 등의 개념으로만 경기동부의 정체성을 설명할 것이 아니라 '광주 대단지 사건'으로 요약되는 경기동남부 지역의 비극적 특수성에 대해서도 고려해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즉, 진보정당 운동을 자멸의 길로 인도한 이 무시무시한 '경기동부'들 역시 시대의 피해자에 다름 아닌 것으로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그런 좋은 얘기다.
(<경기동부>는 당시 논문에 민주노동당 내에서의 정파 투쟁과 이후 통합진보당 사태 등에 대한 글들을 덧붙여 단행본의 형태로 출간된 것으로 보인다. 단행본에서 어느 부분이 추가됐고 수정됐는지 정확히 비교해보고 싶으나, 서평을 쓰는 지금은 그러한 작업을 진행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독자 여러분의 용서를 바란다.)
<경기동부>는 서론, 본론 5장, 결론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데, 본론의 1장과 2장의 핵심 내용이 바로 앞서 언급한 성남지역의 특수성에 관한 것이다. 1971년 정부의 무계획적인 도시정책으로 인한 강제이주와 졸속행정에 주민들이 들고 일어난 광주대단지 사건은 이후 성남시 주민들에게 차별과 배제의 기억으로 남게 됐는데, 이것이 1980년대의 학생운동과 결합해 하나의 주체로 형성돼 경기동부의 기원이 됐다는 게 이 장에 실려 있는 주장이다.
처음 이러한 주장을 접했을 때 나는 이게 일종의 '물타기'가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경기동부들이 모두 성남시 사람으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 내의 정파 갈등은 안산, 수원, 의정부, 성남, 구리시 등에서 제각기 일어났는데, 이 모든 경우에 성남시 출신 인사들이 개입해있는 것은 아니었다. 모두가 성남시 출신이 아닌데도 그들의 행동양식은 거의 똑같았다. 소위 '이석기 내란 음모 사건'의 발단이 된 합정동 RO모임 역시 다양한 출신 지역의 사람들이 모인 자리였으며, 거기서 확인할 수 있는 건 이들의 생각과 행동양식이 성남시 출신들만 모인 자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놀랄 만큼 동질하다는 것이었다.
개인적으로 진보정당 운동을 하며 이들과 부대낀 경험을 돌아봐도 이들의 공통분모가 성남시 출신이라고는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이들 스스로 강력하게 만들어 놓은 조직적 질서는 '사상'과 '조직론'에 의한 것으로 보는 게 좀 더 타당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경기동부들의 핵심이 성남과 수원 등 경기 동남부권 도시들을 활동 기반으로 한 경우가 많았고, 그들에 대해 자기들끼리도 '정도가 심하다'는 평가를 하기도 한 것은 사실이다. 아주 오래 전 민주노동당의 서울 지역 모임에서 한 자주파 활동가를 만난 일이 있다. 그는 내가 평등파에 속하는 인사라는 것을 알고서 고향이 어딘지를 궁금해 했는데, "수원"이라고 답하자 미묘한 웃음을 지으며 "그럼 고생 많이 하셨겠네요"라고 말했다. 경기동부들의 핵심 지역 중 하나에서 자칭 평등파가 활동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고 있다는 투였다. 참고로 이 자는 지금 통합진보당 소속의 국회의원이 돼 어느 새 경기동부들의 일원으로 분류되고 있다.
물론 <경기동부>의 1, 2장에서 드러난 통찰들은 경기동부들의 핵심인 이석기 의원과 성남 출신 인맥들의 특수성에 포커스를 맞춘 연구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러한 해석이 경기동부들에 대한 '장님 코끼리 만지기'의 맥락과 연결되면 '우리 모두의 잘못' 등의 일반론적 결과로 이어져 통합진보당과 경기동부들에 대한 문제를 파악하고 이에 대한 해결을 모색하는 과정을 왜곡시킬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남는다.
하지만 <경기동부>의 3장, 4장, 5장은 이런 우려를 나름대로 불식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민주노동당 정파갈등의 사례,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부정경선 사태, 이석기 의원에 대한 자격심사를 둘러싼 단체들의 태도 등에 대한 분석을 통해 애초에 경기동부들의 핵심이 성남 지역 출신이라는 데 초점을 맞췄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를 드러내주고 있기 때문이다.
▲ 임미리의 책 <경기동부>가 한 지역에서 공통된 배제의 기억으로 주목하고 있는 광주대단지 사건. ⓒ서울시-서울의 기록(출처 : opengov.seoul.go.kr/seoul)
즉, 이 책을 통해 임미리가 주장하고 싶은 바는 경기동부들의 사례가 우리의 일상과 완전히 유리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하위주체'라는 개념으로, 다른 피지배계층의 행동 양태와 같이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경기동부들과 성남시'라는 특수성을 '하위계층'이라는 보편성에 연결 짓고자 하는 것이다.
정치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통치를 받는 사람의 입장에 서서 통치를 하는 방법을 스스로 재구성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현대 사회에서의 정치는 현재의 시스템을 통한 통치가 정의롭지 않거나 효율적이지 않다는 문제의식으로부터 시작되는 게 일반적이다. 이때의 정치는 통치를 받는 사람의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정치를 통해 일정한 성공을 거두고 통치를 직접 하는 입장이 되면, 통치를 받는 입장에서 상상하던 세계는 그 어디에도 없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통치를 해본 일은 없지만 내 생각엔 그럴 것 같다). 우리가 말하는 수많은 '변절자'들은 아마 기성정치에 합류해 이런 문제에 직면했을 것이다.
<경기동부>가 제시하는 틀을 통해 해석할 수 있는 통합진보당의 경기동부들은 통치를 당하는 입장에서 한 치도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다. 임미리는 이것을 민족주의자로서 민족이 겪은 고통과 저항에 광주대단지로부터 유래된 고통과 저항이 집단적 기억을 형성하고 경기동부들의 정체성을 강화시킨다고 해석했다. 문제는 이런 식의 집단적 기억이 오직 경기동부들의 전유물은 아니라는 것이다. 정도와 양상의 차이가 있을 뿐 하위주체들은 대개 이런 식의 집단적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5·18과 광주는 어떤가? 4·3과 제주는?
따라서 지배계급이 경기동부들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보다 광범위한 차원에서 임미리가 말하는 '하위주체'들이 하나의 저항적 연대를 구성할 수도 있다는 게 이런 주장의 결론일 것이다. 좀 더 세부적인 논의를 진행한다면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물론 있지만 그런 주장이 가능하다는 것은 인정할 만하다.
하지만 진보정당 운동의 진지한 참여자라면 여기서 논의를 한 번 더 뒤집어 파멸에 이른 자신들의 미래에 대해 다시 한 마디의 말을 보태야만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경기동부들이 되어야 하는가? 경기동부들이 되어 다른 수많은 경기동부들처럼 탄압을 받을 때까지 기다리면서 저항의 전선에 함께 나서기를 꿈꿔야 하는가?
▲ 2013년 여름, 경기동부연합의 이른바 'RO 산악회' 회의 녹취록 일부가 언론을 통해 공개되어 큰 파장이 일었다. 녹취록 당사자인 김근래 경기도당 부위원장(가운데), 김홍열 경기도당 위원장(왼쪽)이 국회 기자회견을 마친 후 인사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나는 진보정당 운동이 이 물음에 대해 '그렇지 않다'는 대답을 내놓는 것에서부터 다시 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진보정당 운동은 결국 통치를 받는 입장에서 통치를 하는 방법을 재구성해내는 데 성공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이런 논의를 할 때 당의 노선이 얼마나 좌측에 치우쳤는가, 혹은 현실정치에 얼마나 친화적인가를 놓고 말하는 것은 '논점 이탈'이다. 경기동부들과 그들을 억압하는 지배적 이데올로기 사이에 진보정당 운동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이를 통해 성공하는 길이 아주 좁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이 길을 어떤 방법론을 통해 지나갈 것인가에 성공의 조건이 달려있다.
물론 그 답을 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결국 또다시 진보정당 운동은 다음에는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또 다른 실패를 반복하는 근본적 고민의 시간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됐다. 이 시간이 언제 끝날지 아직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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