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인간을 집어삼키는 그 파멸의 기계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인간을 집어삼키는 그 파멸의 기계들

[프레시안 books] 에밀 졸라의 <인간 짐승>

에밀 졸라(1840~1902)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프랑스 작가 중의 한 명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예전부터 <제르미날>(1885)과 <목로주점>(1878)이 유명했고, 최근에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 <박쥐>가 졸라의 <테레즈 라캥>(1867)을 원작으로 삼았다고 하여 화제가 되었다. 사실 그는 스무 개의 소설로 이루어진 '루공 마카르' 총서, 그리고 그 외 다수의 작품을 남긴 왕성한 창작력의 소유자였다.

문학 활동 외에도 언론인으로도 활약했는데, 초기에 예술적 이단으로 취급되었던 인상주의 회화를 적극적으로 옹호한 미술 비평이 일찍이 그의 이름을 알리는 데 기여한다. 덕분에 마네, 르누아르, 피사로 등과 친분을 맺게 된다. 고향 친구인 세잔과는 오랫동안 수많은 편지를 주고받으며 두터운 우정을 쌓지만, 1886년 졸라가 실패한 화가의 이야기를 주제로 삼은 <작품>이라는 소설을 발표하자 둘의 사이가 멀어진다.

▲ <나는 고발한다>(에밀 졸라 지음, 유기환 옮김, 책세상 펴냄). ⓒ책세상
또 졸라는 19세기말부터 프랑스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드레퓌스 사건 당시 드레퓌스의 편을 들어 정부의 결정을 공개적으로 비난함으로써 파란을 일으킨다. 진보적인 일간지 <오로르>(새벽)에 실린 "나는 고발한다…!"라는 글(이는 <나는 고발한다>(유기환 옮김, 책세상 펴냄)에서 읽을 수 있다.-편집자 주) 때문에 졸라는 재판과 실형 선고를 받게 되었고, 오늘날에도 불의에 맞선 참여 지식인의 전형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의 대표작 '루공 마카르' 총서는 "제2제정 하 한 가족의 자연사와 사회사"라는 부제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제2제정이 시작하는 1851년부터 나폴레옹 3세가 보불 전쟁 패배 후 퇴위한 1870년까지의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그 가운데 한 가족의 여러 구성원들이 20권의 소설 속에 흩어져서 각자 걸어가는 운명의 길을 서술한다.

졸라는 철학자 이폴리트 텐느와 의사 클로드 베르나르의 영향으로 인간사의 모든 일들이 자연적인 환경, 종족, 그리고 역사적인 상황이라는 3요소에 의해 결정된다는 이론을 받아들이고 소설 창작에 적용하고자 했다. 특정한 유전인자를 타고난 개인들이 주어진 환경에서 어떤 삶을 살게 되는지, 마치 실험 결과를 관찰하는 과학자처럼 기록하겠다는 포부를 <실험소설론>(1880, 이는 <실험 소설 외>(유기환 옮김, 책세상 펴냄)에서 읽을 수 있다.-편집자)이라는 에세이에서 밝힌다.

이렇게 스탕달, 발자크의 사실주의를 심화시켜서 과학적인 치밀함까지 도입한 문학에 '자연주의'라는 라벨이 붙는다. 모파상, 플로베르와 같은 작가들도 흔히 여기에 분류되고, 한때는 졸라를 중심으로 결성된 자연주의 작가 모임에 왕래도 했지만, 현실에 대한 냉철한 시선을 공유한다는 점 외에 실제로는 그와는 판이한 문학 세계를 보인다.

그리고 엄밀히 말하자면 과학적인 원리의 억지스런 적용은 오히려 졸라 소설의 단점이자 한계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까지 그의 작품이 널리 읽히는 이유는 이런 어설픈 과학주의가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인간의 본성, 욕망에 대한 통찰력, 그런 인간들이 형성하는 사회, 군중의 역동적인 묘사, 그리고 여기서 뿜어져 나오는 무한한, 신화적이라고 형용할 수 있는 상상력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 <인간 짐승>(에밀 졸라 지음, 이철의 옮김, 문학동네 펴냄). ⓒ문학동네
'루공 마카르' 총서의 주제를 한두 가지로 요약할 수는 없겠지만 전체적으로 배금주의와 쾌락주의가 지배하는 제2제정기의 사회가 잘 나타났다고 할 수 있겠다. 졸라는 전 작품에서 어떤 계층에 속하든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본능들, 즉 탐욕, 폭력성, 그리고 육체의 가장 동물적인 욕구들까지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있다. 그래서 당대에 '외설적이다', '지저분하다'는 등의 비난이 쏟아졌다.

총서 17권에 해당하는 <인간 짐승>(이철의 옮김, 문학동네 펴냄)은 알콜 중독자 어머니(<목로주점>의 제르베즈)와 게으름뱅이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건실하게 살아가는 주인공이 결국 유전적인 성향 때문에 살인자가 되는 비극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기차 기관사인 자크 랑티에와 프랑스 북서부 도시 르 아브르 역(驛) 부역장의 아내 세브린이 나누는 불륜이 이야기의 중심축을 이룬다. 랑티에가 모는 기차 안에서, 세브린은 그녀를 어릴 적 성추행했던 철도 회사 사장을 남편과 함께 살해한다. 조사를 받는 과정 중에 처음 만난 랑티에와 세브린은 연인 사이로 발전하고, 곧 세브린의 남편 루보의 살인까지 계획하게 된다. '피'에 대한 언급만으로도 랑티에를 사로잡는 광기는 어딘지 부자연스럽다는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나, 인간이 멈출 수 없는 기계처럼 괴물이 되어가는 작품의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인간 짐승>의 또 다른 주인공은 바로 기차-자크 랑티에는 자신의 기관차에 '리종'이라는 이름을 붙여 애마처럼 아끼고 사랑한다-이다. 모네의 유명한 '생 라자르 역' 연작(1877)도 있지만, 19세기 후반 많은 문학-미술 작품들이 새로운 기술문명의 상징인 기차를 소재로 삼았다. 이 시기에 과학의 발달은 인간에게 물질적인 풍요와 편리를 가져다주며 무한한 진보를 약속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어느덧 주객이 전도되어 기계가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오히려 그를 종속시키고 지배하는 괴물로 변하고 있다.

▲ 클로드 모네의 <생 라자르 역>. ⓒWikimedia Commons

'루공 마카르' 총서에는 이처럼 인간을 노예화하여 파멸시키는 기계들이 다수 등장한다. 광부들을 집어삼키는 <제르미날>의 광산 장비들, <목로주점>의 제르베즈를 중독에 빠뜨리는 증류기, <패주(La Débâcle)>의 살인적인 전쟁 무기들 등. 산업화의 도구들이 생명을 띠면서 인간을 위협하는 동시에, 인간은 기계화되어 거대한 조직체의 부품으로 전락하거나 그 자신이 제어할 수 없는 충동에 의해 벼랑을 향해 달리는 증기 기관차가 되어버린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실증주의적인 정신에 힘입어 과학과 학문이 첨단화될수록 짐승 상태에서 멀어져야 하는 인간이 오히려 점점 더 원시적인 본능의 포로가 되어간다. 자연을 자신의 목적에 따라 굴복시키고 변화시키며 의기양양하게 만물 위에 우뚝 섰건만 그 자연적인 본성이 바로 억압되었던 것에서 다시 회귀하는 꼴이다. 문학적 창작에서 '과학주의'를 표방한 졸라이기에 더욱 역설적으로 느껴진다.

작품 속 표현들에 따르면, 자크가 사로잡히는 살인의 욕망은 단지 한 집안의 내력에서만 연유하는 것이 아니라, "옛날 옛적 서로 투쟁했던 기억의 잔존", 즉 원시 시대부터 인류의 피 속에 흐르는 충동이다. 온갖 문명의 장치들로서 제압하고 밀어낸 결과 원시적인 야만성은 '정상인', '문명인'으로부터 멀어진 듯하지만 그것은 또 하나의 자아처럼 내면 깊숙한 곳에서부터 솟구쳐 올라와 자신마저 경악하게 만든다.

▲ 장 르노아르의 1938년 영화 <인간 짐승>. ⓒParis Film

이렇게 보았을 때, 졸라의 '인간 짐승'이라는 표현은 프로이트가 그로부터 약 30년 후에 개념화하게 될 '두려운 낯설음(unheimlich)'의 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기계라는 것은 그 자체로는 선의도 악의도 없는 무생물에 불과하지만, 그것이 괴물로 변할 수 있는 이유는 인간의 폭력, 맹목, 탐욕 등이 투사되기 때문이다. 역자 이철의 교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 마지막에 거침없이 질주하는 기관차의 이미지가 "역동적이고 긍정적인 기술", "죽음의 본능이 삶의 에너지로 변화하는 순간"의 잠재성을 암시한다고 해설하고 있지만, 독자에 따라서, 특히 오늘날의 독자라면, 여기서 훨씬 암담한 예견력을 감지할 수 있을 것 같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