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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부짖음에 귀 막은 대통령 말고, '마트를 터는' 시장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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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부짖음에 귀 막은 대통령 말고, '마트를 터는' 시장을 바란다!

[혁명의 마을 마리날레다] <우리는 이상한 마을에 산다>

스페인의 작은 마을 마리날레다 이야기를 처음 접한 것은 <녹색평론> 132호였다. 주민들과 함께 귀족의 땅을 점거하고 대형 마트에서 쇼핑카트를 밀고 유유히 계산대를 빠져나와 물건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직접 나눠주거나 푸드 뱅크에 전달하는 시장, 후안 마누엘 산체스 고르디요(Juan Manuel Sanchez Gordillo)는 스페인의 로빈 후드였다. 자신이 누구 편에 서야 하는지를 잘 아는 이 편파적인 시장의 이야기는 딴나라의 대통령과 함께 사는 우리를 부럽게 만든다. 댄 핸콕스(Dan Hancox)의 <우리는 이상한 마을에 산다>(윤길순 옮김, 위즈덤하우스 펴냄)는 외부인이 들려주는 마리날레다 이야기이다.

▲ 후안 마누엘 산체스 고르디요 마리날레다 시장. ⓒHispanicallySpeakingNews

이 책에서 핸콕스가 많이 얘기하는 바는 스페인 특유의 아나키즘 전통이다. 산체스 고르디요가 마리날레다에서 30년 이상 시장직을 맡아왔고 혁명의 중심이지만 그가 마리날레다의 모든 것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어떤 사건에는 맥락이 있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마리날레다가 속한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은 악명 높은 산적들이 귀족지주, 그들의 폭력배들와 대결했던 땅이다. 그리고 1873년에는 "전통적인 상명하복의 위계적 권력구조를 자유로운 집단과 사람들의 수평적 합의체로 대체하려고 한" 프란시스코 피 이 마르갈(Francisco Pi y Margall)의 스페인 연방공화국 역사도 있다. 또한 스페인은 아나키즘이 대중운동으로 성공한 나라이고, 아나키즘 계열의 전국노동조합(CNT)은 한때 조합원이 100만 명을 넘은 적도 있다. 그러면서 이 지역에는 "그저 권위주의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권위에 반대"하는 전통이 자리를 잡았고, 중앙정부나 정치인의 힘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 삶을 변화시키려는 '직접행동'의 전통이 뿌리를 내렸다.

▲ <우리는 이상한 마을에 산다>(댄 핸콕스 지음, 윤길순 옮김, 위즈덤하우스 펴냄). ⓒ위즈덤하우스
특히 안달루시아 지역에는 푸에블로(pueblo)의 전통이 유지되었다. "마을이나 읍 또는 시를 뜻하지만 동시에 사람들도 뜻하는 멋진 말"인 푸에블로는 각기 다른 지역의 정치와 문화, 언어, 전통을 고집하려는 심성을 만들었다. 중앙정부와 귀족, 자본가의 간섭에도 푸에블로는 자기 전통을 고집했고 "노동자 계급이 자신을 지역의 부자들과 구별해서 부르는 '서민', '대중'을 뜻"하는 말로 푸에블로를 사용하기도 했다. 이 "푸에블로 사람들은 '소농의 궤도에서 벗어나 현대 국가의 삶에 빠지는' 일이 거의 없었"고, 자기 지역에 대한 관심을 유지했다. 프랑코가 공화국을 무너뜨리고 독재정권을 수립하고 난 뒤에도 푸에블로의 저항은 계속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프랑코가 죽고 스페인에서 권력공백이 생겼을 때, "마리날레다에서는 대부분 토지 없는 농장 노동자들의 작은 공동체가 그들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이행'을 준비하기 시작했"고, 이들은 "정당을 만들고 노동조합을 결성해 토지와 자유를 위해 싸우기 시작했다. 1980년 8월, 마리날레다의 주민 700명이 아흐레 동안 음식을 거부하며 '굶주림에 맞선 굶주림 투쟁'을 벌였다. 그리고 "그들은 1980년대에 100번도 넘게 우모소 농장을 점거했다. 90일 동안 밤낮으로 그곳에서 야영한 적도 있었다." 마리날레다의 주민들은 쉼 없이 투쟁하며 공항과 기차역, 정부청사, 농장, 궁전을 점거하고, 단식투쟁을 하고, 길을 가로막고, 행진하고, 팻말 시위를 벌였다. 그리고 수없이 구타당하고 체포되고 재판을 받았다. 그러다 1991년, 이들의 저항에 진이 빠진 안달루시아 주정부가 귀족의 소유지 1200헥타르를 매입해서 그들에게 주었다. 마리날레다의 싸움은 단지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에게 목숨을 유지할 땅을 달라는 시위가 아니었다. 그 싸움은 농작물을 기르는 땅에 대한 권리가 주민에게 있음을 밝히는 선언이었다.

그래서 토지를 되찾은 것은 혁명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되찾은 땅에는 마을자급의 기반인 우모소 농장이 세워졌고, 이윤이 아니라 일자리를 가장 많이 만들 수 있는 농작물을 심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웃과 함께 카시타(casita)라는 주택을 짓고 협동조합방식으로 관리했다. 필요하다면 매일, 거의 1주일마다 열리는 총회는 마을생활의 심장이 되었고 농장에서 언제 어떤 농작물을 기를지를 결정하며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했다. 고난만이 아니라 기쁨도 공유하도록 공원과 유흥시설이 만들어졌고 전통축제인 페리아가 부활되고 록페스티벌도 열렸다. 전 세계에서 찾아온 사람들이 마을에 벽화를 그렸고, 이 벽화들은 마리날레다의 다양한 정체성을 표현하는 수단이 되었다.

이런 활력을 바탕으로 산체스 고르디요는 스페인의 기득권을 끊임없이 위협했다. "2012년 8월에 그는 40도의 열기 속에서 시작된 일련의 행동으로 새로운 수준의 악명을 얻었다. 군용지를 점거하고, 귀족의 궁전을 점령하고, 3주간 남부 전역을 행진하며 동료 시장들에게 빚을 갚지 말자고 했고, 좌파 공산주의 노동조합인 농업노동자조합-안달루시아노동자조합의 동료 조합원들과 함께 슈퍼마켓을 터는 행동을 주도하면서 악명은 절정에 이르렀다."

산체르 고르디요가 여러 이유로 주춤거리고 있는 지금 시점에도 변화는 계속되고 있다. 힘겹고 어려운 투쟁이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조직화이다. 산체스 고르디요가 모든 과정의 중심에 있었지만 그는 지도자이자 조직화의 매개이다. "토지 점거에 앞서, 집단농장에 앞서, 경제민주주의에 앞서, 사실상의 무료주택에 앞서, 암살기도에 앞서, 슈퍼마켓 습격에 앞서, 유토피아에 앞서 조직이 있었다. 격렬했던 1970년대의 파업과 시위가 고스란히 운동의 토대가 되었다." 로빈 후드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기에, 그에게는 도적'떼'가 필요하다. "우리에게서 훔쳐 간 존엄을 되찾자!", "경작자에게 토지를", "우리는 계속 싸워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우리는 수탈자를 수탈하고 싶습니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는 이 무리와 마을은 분명 기득권의 가장 강력한 적이다.

그렇다면 마리날레다는 21세기의 유토피아인가? 분명 유력한 대안이지만 모든 이에게 행복을 주는 유토피아는 아니다. 마리날레다에서도 힘든 일은 여전히 힘들고 농업은 젊은이들에게 매력적이지 않다. 그럼에도 여기에는 큰 차이가 있다. 핸콕스는 그 차이에 주목한다. "일이 지루하거나 피곤하거나 단조롭다는 한탄 뒤에 언제나 '그러나'가 왔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는 여기에 일이 있잖아. 그러나 적어도 우리는 지금 일이 있잖아. 그러나 적어도 우리는 다 같이 일이 있잖아. 그러나 적어도 우리는 스스로 싸워 이겼잖아."

유토피아는 아니지만 마리날레다 사람들은 자신이 이런 삶을 살고자 하는 이유를 잘 알고 있다. "마치 일 자체에 어떤 고귀한 것이 있는 양 '분투하기 위해 분투하는 것'이 아니라 자율을 위해, 인간이 자신의 생존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을 때 오는 인간의 존엄을 위해 분투한다는 것이다. 자율이 이 지역 철학의 핵심에 있다." 삶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마리날레다의 주민들은 '빨간 일요일'이라는 의식을 치르기도 한다. 한 달에 한 번 마을 사람들이 노동조합에서 모여 "저마다 개인의 능력에 따라 모여서, 주민투표를 통해 가장 시급히 할 필요가 있는 일이 무엇인지 결정"하고 자발적으로 일하는 의식이다. 이런 의식을 통해 마리날레다는 게으른 노동자들이라는 보수주의자들의 비난을 반박했고 공동체의 감수성과 마을주민들의 신뢰를 강화시키고 있다. 무엇보다도 자부심이 생긴다. 우리는 돈이 아닌 다른 이유로도 일할 수 있다는 자부심 말이다.

스페인은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우리는 좌도 우도 아니다. 우리는 밑에서 오고 있고 맨 위로 가고 있다"라고 선언한 '분노한 사람들' 운동이 시작된 곳이다. 자본주의에 항의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다른 삶을 살고자 하는 이들에게 산체스 고르디요는 희망이다. 그리고 고르디요는 "다른 세상을 믿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마치 그런 세상이 이미 와 있는 것처럼 사는 용기가 필요한 때"라고 이야기를 건넨다.

스페인만의 특이한 일은 아니다. 전 세계 어느 곳에나 위기는 있고, 그런 위기는 새로운 삶을 살게 한다. 충청북도 옥천군도 한국 사회에서 새로운 운동의 흐름이 시작된 곳이다. 1989년 9월 30일에 창간한 <옥천신문>은 200명의 주민주주를 모아 창간된 군민신문으로 올해로 창간 25주년을 맞이했다. 옥천군의 인구가 5만 명을 조금 넘는데, 발행부수가 4000부 이상이니 그 영향력을 알만하다. 그리고 1990년 3월에는 옥천군 농민회가 만들어져 농민이 주인 되는 세상을 위해 다양한 투쟁을 벌이고 있다.

전국적으로 옥천이라는 이름을 알린 사건은 2000년 초반부터 시작된 안티조선 운동으로, 지역 내 조선일보 구독율을 절반 이상 줄였고 이 과정은 <옥천전투>라는 다큐멘터리로 정리되기도 했다. 그리고 2003년 2월에는 안남면의 할머니들이 한글을 배우고 재능을 뽐내는 '안남 어머니학교'가, 2005년 4월에는 금강의 생태계를 지키는 대청호주민연대가, 2006년에는 옥천군의 한 면인 안남면에 주민들이 지역발전계획을 직접 짜는 지역발전위원회가 만들어졌다. 2007년 7월에는 지역 아이들과 할머니들을 위한 안남배바우작은도서관이, 2008년 3월에는 친환경농민과 어린이집/학교급식을 연계하고 군민에게 꾸러미를 전달하는 옥천살림 영농조합법인이, 2013년 12월에는 선한 옥천 사람들의 따뜻한 연대로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자는 옥천순환경제공동체가 만들어졌다. 심지어 2005년에는 풀뿌리옥천당이 만들어져 한국 최초로 실정법이 금지하는 상태에서 지역정당 실험을 하기도 했다. 마리날레다 정도는 아니지만 옥천에서도 상당한 정도로 자치와 자급의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 옥천의 안티조선 운동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옥천전투>의 한 장면.

그렇지만 옥천은 한국의 마리날레다로 불리지 않고 반자본주의 전선의 희망이라 불리지도 않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사건과 여러 조직이 있음에도 옥천이 마리날레다의 혁명을 이루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겉으로 드러나는 가장 큰 차이는 마리날레다에는 고르디요가 있고 옥천에는 그만한 군수(郡守)가 없다. 그렇지만 군수가 없을 뿐 고르디요와 비교될 만한 인물들은 옥천에도 여러 명 있다.

그렇다면 시장(市長)이라는 자리의 문제일까? 고르디요 한 사람에게만 집중하면 분명히 그 차이는 무시될 수 없다. 하지만 조직화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큰 차이가 아닐 수 있다. 어떻게 보면 마리날레다에서보다 훨씬 더 다양한 조직들이 옥천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옥천에서도 안티조선 운동을 비롯한 다양한 직접행동이 벌어졌다. 다만 그런 활동이 고르디요라는 반란의 구체적인 상징과 우모소 농장이라는 자율적인 노동의 협동체를 만들지 못했을 뿐이다. 주민의 절박함이 달라서였을까? 마을의 저항방식이 달라서였을까? 아나키즘이라는 대안과 푸에블로라는 지역전통의 차이였을까? 공공연하게 反국가, 反자본주의 노선을 주장할 수 있는 정치, 문화의 차이일까?

이런 면들은 이 책에서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아무래도 마리날레다를 제대로 보려면 산체스 고르디요라는 제도와 삶을 넘나드는 정치를 주도하는 인물과 이를 뒷받침하는 정치세력인 좌파연합, 우모소 농장을 비롯한 마을의 협동조합들, 더 깊이 들어간다면 마리날레다에 뿌리내린 아나키즘과 푸에블로의 전통이 어떻게 서로 맞물려 있는지를 봐야 한다. 핸콕스는 여러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활동을 따라다니며 그 단초들을 보여주는데 맞물려 있는 구조를 분명하게 드러내지는 못한다.

그렇지만 분명하게 드러나는 부분도 있다. 한국의 진보세력이 '내부정치의 과잉과 외부정치의 부재'라는 늪에 빠져 있다면, 마리날레다는 '내부정치의 강화와 외부정치의 활용'을 통해 다양한 접속의 지점들을 만들었다. 고르디요는 언론을 적절히 활용하며 스페인과 전 세계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 <카탈로니아 찬가>(조지 오웰 지음, 정영목 옮김, 민음사 펴냄). ⓒ민음사
물론 마리날레다의 실험이 언제까지 성공할지는 알 수 없다. 딘 핸콕스는 <카탈로니아 찬가>를 썼던 조지 오웰을 얘기하며 결론을 맺는다. "산체스 고르디요가 이룬 것은 토지와 주택, 생계수단과 문화만이 아니다. 그것들도 물론 놀라운 업적이지만, 거기에 있는 것은 이상하고 가슴 뭉클한 경험이고, 오웰이 말한 대로 잊을 수 없는 경험이다."

이 책을 읽으며 꿈을 서로 공유한다는 것의 의미에 관해 묻게 된다. 우리는 정말 꿈을 꾸고 있는 걸까? 꿈을 꾼다면서 현실에만 집착하고 있는 건 아닐까? 꿈을 꿈으로 만들어버리는 건 체제인가, 우리 자신인가? 더구나 꿈을 함께 살아간다는 것의 중요성을 우리는 얼마나 믿고 있을까? '살고 싶다'고만 이야기하지 '살아간다'의 의미를 놓치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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