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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인권사무소 국내 설치, 준비되지 않은 한국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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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인권사무소 국내 설치, 준비되지 않은 한국 정부

[황재옥 칼럼] 북한 인권 개선, 우리의 역할이 없다

유엔이 운영할 북한인권사무소가 연내 한국에 설치된다. 북한인권 문제와 관련한 국제사회의 관심과 개선 노력은 우리 정부보다 항상 앞서거나 적극적이다. 이번 북한인권사무소 국내설치에 대한 유엔의 요청도 이 같은 범주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북한인권과 관련한 우리의 소극적 자세와 굼뜬 행동을 탓할 일만은 아니다. 국제사회의 입장과 우리의 입장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해 남북한 화해와 협력을 우선해야 하는 우리의 입장이 이해 안 되는 바는 아니다.

마이클 커비 전 북한인권조사위원장은 지난해 북한인권에 대한 우리의 무관심을 지적했었다. 우리 사회와 정부의 무관심에 반해, 북한인권 개선에 지속적이고 적극적인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 온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에 깊은 감동과 감사를 느낀다. 북한주민의 절박한 인권상황, 그리고 현재로선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은 상황에서 유엔의 북한인권사무소 설치 결정은 북한인권 개선을 위해 큰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인권사무소 한국 내 설치와 관련해 생각해 볼 문제가 있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달리 북한주민의 인권과 관련한 우리의 입장, 어쩌면 북한인권 개선의 당사국으로서의 우리 정부의 고민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북한주민은 헌법상 우리 국민이다(대한민국 헌법 제3조, 영토조항의 해석상 북한주민은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간주된다). 대한민국 국민으로 간주되고 있는 북한주민들을 보호해야 할 책무가 우리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무관심했거나, 남북 간 교류와 협력의 부침에 따라 인권문제가 거론되는 것을 회피하기도 했다. 또한 자국의 인권상황에 대한 외부의 문제 제기를 체제전복 전략이라며 민감한 반응을 보여 온 북한의 반발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북한인권법이 당리당략에 따라 몇 년 동안 국회에서 표류되어 온 이유도 이 중 하나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남북관계에서 북한인권 문제는 말도 꺼내 보기도 전에 슬며시 사라지는 의제였다.

▲마이클 커비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위원장이 지난 2월 17일(현지시각) 제네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에 반인도적 범죄 관련 책임을 물어 북한의 반인권 범죄를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할 것을 권고하는 내용의 보고서를 들고 있다. ⓒAP=연합뉴스

북한인권사무소는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의 1년여에 걸친 북한 인권실태 조사결과를 토대로 유엔 인권이사회가 지난 3월 채택한 결의안에 근거해서 설치되는 것이다. 북한인권보고서가 발표될 당시에도 북한은 민감한 반응을 보였었다. 그리고 지난 4월 북한인권사무소 설치에 대해 "우리의 존엄과 체제를 직접 겨냥한 극악한 도발"이라며 강경한 대응을 했다. 또한 지난 5월 북한은 "박근혜 정부와는 할 일이 없을 것이다"(로동신문 논평)라며 엄포를 놓았다. 모두 북한인권사무소 문제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외교부 당국자들은 "우리가 유치한 것이 아니라 유엔이 설치를 결정한 일이다. 따라서 우리 정부로서도 어쩔 수 없다"는 식의 설명을 곁들였다. 북한의 반발을 의식한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인권과 관련한 대남비난과 북한의 적대행위를 막지 못할 것이다. 이미 지난 4월 10일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여의도연구원 세미나에서 '유치라는 용어를 쓴 적이 있고, 이 때문에 뒤늦게 유엔 결정 논리로 얼버무릴 수도 없게 되었다.

우리가 발휘할 역할이 없다는 것이 문제

유엔의 일방적 결정이 됐건 한국정부가 부득이하게 유치하는 결과가 됐건, 유엔 북한인권사무소가 한국에 설치되면 남북관계가 영향을 받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로 인해 남북관계가 경색될 가능성이 큰데, 이와는 무관하게 우리가 북한인권 문제를 주도적으로 풀지 못하는 형국이 됐다는 지적을 피해갈 수도 없게 되었다. 북한인권법도 제정되지 않은 현재의 상황, 남북교류가 꽉 막혀 있는 현 상황에서 우리가 북한인권 개선을 위해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일지에 대해 생각해봐도 딱히 답이 잘 안 나온다.

실제로 외교부 당국자는 "사무소 운영 예산도 100% 유엔에서 충당될 예정이다. 따라서 정부가 관여할 수 있는 것은 북한 이탈주민과 사무소를 연결해주는 수준에 그칠 것"이라는 설명을 하고 있다. 북한인권 문제에 대해서 일찍부터 정치권이나 정부가 좀 더 관심을 가지고 대처했더라면 이런 구차하고 옹색한 언급은 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역대 정부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북한인권에 대해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지 못했다. 군사정권 시절은 국내 인권문제 때문에 '제 코가 석자'라 북한인권 문제를 거론할 겨를이 없었다. 오히려 북한의 역공에 대해 국제사회에 해명하느라 바빴다. 민주화된 1990년대는 북한인권 문제를 거론할만한 여유와 자격도 갖추었지만, 북한주민들의 탈북이 늘어나면서 탈북자 관리에 주력하느라 북한인권 문제를 제기하거나 해결책을 찾으려는 여유를 갖지 못했다. 그리고 햇볕정책 추진 이후에는 모처럼 해빙 모드로 바뀐 남북관계가 북한인권 문제 제기로 악화될까 두려워 당국차원에서 공식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기 어려웠다. 이명박 정부 이후 남북관계가 막힌 상태에서는 수시로 발생하는 안보문제 때문에 역시 북한인권 문제는 정책적 우선순위에서 빠져 있었다. 그런 점에서 북한인권 문제에 대해 우리는 지속적이고 일관성 있는 자세로 임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지난해 유엔 북한인권특별조사위원회(COI)는 조사결과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한국이 중국과 더불어 북한인권 악화에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탈북자 북송으로 북한인권 악화를 방조한다는 비판을 받았고, 한국은 북한인권 문제에 아예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는 비난성 지적을 받았다. 분명히 부끄러운 일이다.

미국과 일본, 유럽국가들은 그것이 대북압박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든 아니든, 북한인권법을 제정해 놓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몇 년째 북한인권법을 국회에 상정만하고 막상 법을 제정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유엔이 우리 영토 내에 직접 북한인권사무소를 세우고 운영하겠다고 할 때 그걸 거절할 명분도 딱히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유엔이 주도하고 우리가 끌려가는 것은 옳지 않다.

우리의 주도적인 역할이 요구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북한인권사무소 한국 내 설치를 일단 환영해야 할 것이다. 명분상 거절할 수가 없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의 주도적인 역할이 발휘되지 않는 상황에서의 북한인권사무소 설치는 남북관계에 득보다 실을 가져올 것이 우려된다. 인권이란 인도적 문제에 무슨 득·실을 논하는 것이냐고 반발할 수 있다. 그러나 인권문제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해쳐서는 안 된다.

즉 북한인권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면서 향후 남북관계 진전을 위한 방안도 동시에 강구해야 한다. 인권문제가 남북한의 교류와 협력에 장애가 되어서는 안 되고 오히려 인권문제가 남북간 교류와 협력의 촉매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북한의 반발을 사지 않으면서 남북간 교류에서 인권문제가 의제로 상정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북한인권과 관련해 우리가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유엔이 주도하는 북한인권사무소가 설치된다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준비되어 있었다면 유엔의 북한인권사무소 설치는 우리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 되었을 것이다. 국제사회에서의 한국의 위상, 남북관계에서의 역할도 달랐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늦지는 않았다. 우리는 그 기관의 역할과 위상을 고려해 우리가 해야 할 사안들을 따져보고 설치를 결정하는 것이 좋겠다.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유엔과 함께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노력을 우리가 주도했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회에 계류 중인 북한인권법부터 제정하고 그 이후에 북한인권사무소를 설치해도 늦지 않다. 그리고 그때까지 북한인권 문제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 할 일, 국내 시민단체가 할 일, 국제기구가 할 일들을 나누어 보는 것이 필요하다. 유엔이 결정한 일이고 예산도 100% 유엔에서 운영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사업 내용에 대해서 잘 모른다고 발뺌할 수도 없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대한변호사협회 북한인권위원회 같은 민간단체와 함께 정부-시민단체-국제기구의 역할을 규정하는 일을 주도해 나가면 모양새도 좋고, 실질적으로 우리가 북한인권 문제를 주도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인권문제로 인한 최악의 남북관계 시나리오도 피해 갈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인권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북한과의 인권 대화를 할 수 있는 정치적 여건을 만들고, 정부-시민단체-국제기구의 활발한 대북대화와 교류를 통한 인권개선의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유엔의 북한인권사무소 국내 설치가 확정된 이상, 이제 더 이상 북한인권 문제는 안보상황에 따라 부침을 계속하는 사안이 아니다. 그럴 바에는 우리 정부, 우리가 주도적인 입장에서 역할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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