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가 침몰한 지 100일을 목전에 두고 아직도 가족들 곁으로 돌아오지 못한 희생자들이 차가운 바다 속에 남겨져 있지만, 우리 사회는 세월호 사건 이후를 살아내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 어떻게 그 위험한 배가 아무런 제재도 없이 감히 인명을 싣고 바다 위를 떠다니게 되었는지, 사고 후 정부 구조는 왜 그렇게 무능할 수밖에 없었는지, 정부가 사고와 자신의 무능에 대해 제대로 밝히기보다 유권자들 입단속에 더 급급한 이유는 무엇인지, 왜 이 나라 일부 정치인들은 피해자와 국민들의 슬픔과 분노에 공감하기는커녕 세 치 혀로 또 다른 가해를 하게 되었는지, 언론이 사실을 보도하기보다 제2, 제3의 가해자가 되어야 했던 이유는 또 무엇인지….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여러 주체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이런 물음들을 던지고 있는 중이다.
국회 국정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이 일에 대해 서로에게 묻고 숙고하는 일은 제도로 마련된 일회성 의례로 끝나서는 안 된다. 각자가 속한 공간에서 일이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된 과정을 자유롭게 묻고 답하는 과정 자체가 사건 이후 '잊지 않겠다!'는 다짐의 표현이 되어야 한다. 하루빨리 '수습하고 대책을 마련'할 게 아니라, 오래도록 한국 사회를 비춰주는 거울로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거울에 비친 우리사회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면서 구석구석에 담긴 의미를 오래도록 되새김질할 수 있을 때, 문제도 제대로 보이고 합의된 대안도 가능해질 것이다.
그러기 위해 지금 필요한 일 가운데 하나는, 이 사건 이전에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할 수 없었던 모든 사람들에게 자유롭게 말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다. 왜 사태가 이렇게 되었는지 궁금한 모든 이가 공개적으로 그들의 말을 듣고 또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기회를 갖는 것이다. 그리하여 각자가 바라본 한국 사회라는 거대한 코끼리의 모습을 모두 함께 그려내는 것이다. 사태 이후 우리를 가장 괴롭게 만든 것은, 각자가 선 분절된 자리에서는 대체 이 엄청난 일을 설명해낼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아마 사건 이전 우리 사회가 더 자유롭게 말할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행동할 수 있는 사회였다면, 이 불행한 사태는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이미 우리 사회의 어느 누군가로부터 수많은 경고음이 계속해서 울렸을 것이고 우리는 함께 그 경고 신호를 주시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한 지난 4월께 진도 팽목항 모습. 이때만 해도 '모두 살아 돌아올 수 있으리라' 희망했다. ⓒ프레시안(최형락)
왜 경고음은 울리지 않았을까?
이 사태를 지켜보는 국민들을 정말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은, 무책임하고 무능한 정부와 고귀한 생명을 두고 도박을 해온 기업을 모른 채 방치했다는 죄의식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몰랐을까? 이런 참담한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었던 정부와 기업의 행태에 대해 어떻게 모르게 되었을까? 정말 이 사회에는 이런 위험을 경고해줄 용감한 동료시민들이 하나도 없었던 것일까?
그건 아니었다. 우선 전·현직 승무원들이 있었다. 전직 청해진해운 소속 직원은 청와대에 이런 위험을 알렸으나 아무런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고 했다. 사고 선박의 원래 선장이었던 이는 선박 안전의 위험에 대해 회사에 문제제기를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했다. 아마도 지금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는 사고 선박의 생존 승무원들 역시 이런 위험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생존 승무원들은 마땅히 해야 할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죽어간 수백의 생명에 대한 합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데 다른 측면에서 보면, 무엇이 그들을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나 측은지심조차 사라지게 만들었을까? 그들은 사고선박의 위험을 이미 알고 있었고 사고가 나더라도 정부가 구해주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었을지 모른다. 누구도 자신의 생명에 대해 책임져주지 않을 것이라는 경험에 근거한 생존본능이, 그들을 수백의 생명을 팽개친 채 본능에 따라서만 움직이도록 한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만약 청해진해운의 문제를 청와대에 알린 이가 전직 직원 한 사람이 아니라, 청해진해운 현직 승무원 노동조합이었다면 어땠을까? 만약 사고선박의 안전문제를 회사에 제기한 이가 선장 개인이 아닌 현직 승무원 노동조합이었다면? 승무원들은 선박안전에 문제가 생기면 생명을 걸어야 하는 직접적인 당사자들이며, 회사의 위법행위에 대해 가장 잘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이들이 자유롭게 노조를 결성할 자유를 가지고 회사가 무시할 수 없는 발언권을 법으로 보장받을 수 있었다면, 아마도 사고 이전에 회사는 스스로 위법행위를 정정했거나 관련 규제기관이 회사의 위법행위에 대해 처벌을 했을 수 있다. 만약 회사와 규제기관이 이를 모두 방치했더라도 최소한 언론에라도 보도가 되어 사회적 이슈가 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노조결성의 자유를 원천적으로 제약받는 비정규직들이었고 회사와 기관, 언론에 발언을 하려면 해고를 감당해야 했기에, 그들의 집단적 목소리는 결코 우리에게 들려올 수 없었다.
또 경고음을 울릴 수 있었던 사람들 중에는 관련기관 공무원들이 있었다. 만약 해경과 해양수산부, 안전행정부 소속 공무원들이 자유롭게 노조를 결성할 수 있고 해고와 징계의 위험이 없이 발언할 자유가 보장되어있었다면 어땠을까? 이들 공무원노조에서는 현 정부의 재난관리 시스템이 작동 불가능한 상태라는 것을 사고 이전에 알려 수정할 기회를 만들 수도 있었다. 해경과 해양수산부 공무원노조에서는 규제담당 고위직과 선박업체의 결탁 및 비리에 대해 미리 세상에 알려 공론화함으로써 기업의 무절제한 사익추구 행위와 규제기관의 타락을 방지할 기회를 마련했을 수 있다. 이들의 사회적 발언권이 보장되어 있었더라면 고위직들의 탁상행정의 문제는 조기에 공론화되었을 수 있고, 소중한 생명을 구할 가능성은 조금 더 커졌을지 모른다.
일선 공무원들은 규제대상 기관과 결탁하여 타락할 수 있는 지위에 있기도 하지만, 동시에 정부의 타락을 경고하는 훌륭한 알람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선박회사 승무원들이 회사의 비리에 대해 가장 잘 알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처럼, 일선 공무원들도 정부의 타락을 가장 먼저 알아차릴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 역시 해고와 징계의 위협 없이 사회적 발언을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서울지방경찰청장의 수사압력을 외부에 알려 공론화를 가능하게 했던 수서경찰서 권은희 전 수사과장이 그 이후 받은 처우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공무원 사회의 내부 고발자가 어떤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지 잘 보여준다.
또 언론사 직원들이 있었다. 사태 이후 여러 언론사 종사자들은 자신들의 보도행태에 대해 반성문을 썼고 공영방송 KBS 노동조합은 파업을 결의했다. 이전 정부에서도 여러 언론사 노동조합들이 파업과 공개적인 행위로 정부나 사측의 부당한 압력에 대해 저항을 한 바 있었다. 하지만 그 대가는 가혹했다. 공개적으로 문제제기를 했던 많은 기자들이 해직과 강제전직을 당했으며, 지금까지도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번 사건 보도에서도 청와대와 방송규제기관, 언론사 사측의 부당한 개입과 압력이 있었음이 드러났다. 권력을 동원해 불공정보도를 강압했던 이들은 노동조합의 폭로 이후에도 당당했는데, 이는 이런 위법행위가 얼마나 일상화되어 있었는지를 잘 드러내 준다. 청와대가 방송국 인사에 직접 개입하고 사장이 보도지침을 내리꽂는 체제에서 일선 기자들의 자율성은 이미 사태 이전에 질식당해 있었던 것이다.
언론은 사회의 다양한 결사체들과 함께 일상적인 시기에 시스템의 문제를 경고해줄 수 있는 핵심주체다. 민주주의와 공정한 시장경쟁에 이상이 발생했을 때, 이를 사회에 알리는 것이 직업윤리가 되어야 하는 공적 제도다. 그러기에 국민들의 세금으로 이들의 행위에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일부 권력자와 그들이 임명권을 좌우하는 규제기관들의 전횡으로, 이미 언론은 그 알람기능을 상실하고 있었다.
민간영역이든 공공영역이든 우리 사회에서 개인은 사회적 발언권을 행사하기에 너무나 약한 존재다. 직장에서 해고의 위협뿐 아니라 몇 년에 걸친 소송이나 엄청난 손해배상액으로 거리로 나앉아야 할 수도 있는데, 이는 가족의 생계가 걸린 문제로, 개인의 용기와 선의로만 감내하기엔 그 고통이 너무 크다. 이때 공동의 이해관계를 가진 노동조합이나 결사조직의 존재는 개인이 감당해야 할 비용을 나눌 수 있는 보루가 된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이마저도 너무나 약하다. 노동조합이 정당한 파업을 해도 해고뿐 아니라 엄청난 손해배상의 위협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노동조합 간부가 되려면 해고와 징계, 손해배상 가압류를 각오해야 하는 사회는 결코 건강할 수 없다. 지난 세월 정규직들의 노동조합은 높은 연봉을 받는데도 자신의 이익만을 주장하는 '귀족노조'로 낙인찍혀왔고, 비정규직 노동조합은 결사 자체가 원천적으로 봉쇄되는 불법세력으로 취급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노동자들이 자신의 이익을 주장하는 것은 권리다. 노동조합은 그 자체가 공익적인 목표를 지향하기 때문에 공익에 기여하는 조직이 아니라, 사익을 추구하려는 다양한 노력의 결과로 공익에 기여하는 것이다. 연봉이 많든 적든, 정규직이든 아니든, 공무원이든 민간 고용인들이든 간에 결사하고 자신의 이익을 주장할 권리는 보장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사회적 인식을 바꾸어야 하고 법제도를 바꾸어야 한다. 그럴 때만이 생활세계에서 이 사회시스템을 위한 건강한 알람기능이 작동할 수 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왜 아이들은 … 탈출하지 못했을까
승객들이 탈출하지 못했던 것은 물론 승무원들의 제대로 된 구조행위가 없었고 초기 구조과정에서 해경과 정부가 잘못 대처했기 때문이다. 마땅히 합당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런데, 그래도, 왜 금쪽같은 우리 아이들은 탈출하지 못했을까? 주민등록증이 나오고 운전면허도 가질 수 있으며 민법상 권리행사가 가능하고 다른 나라 같으면 투표권도 행사했을 나이, 18세다. 누군가의 말에 순응하기보다 내 생명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판단하도록 충분히 훈련되었어야 할 나이. 그런데 왜 더 많은 아이들이 갑판으로 나와보지 않았을까? 이 사회의 어른들이, 이 사회의 교육제도와 시스템이 무언가 잘못한 결과가 아니었을까? 만약 어른인 우리가 어릴 때부터 아이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것을 먼저 묻고 그들의 판단을 존중하고 그들의 권리요구를 당연하게 받아들였다면, 그 상황에서 좀 다른 판단을 했을 아이들의 수가 조금은 더 늘어나지 않았을까? 배가 기우는데도 그 자리에 가만히 있으라는 이치에 닿지 않는 어른들의 말에 그저 순응하며 기다리는 대신, 야단을 맞더라도 갑판으로 오르는 아이들의 수가 조금은 더 늘어나지 않았을까?
이건 '이제 아이들에게 어른의 말을 불신하라고 가르치겠다!'는 분노와는 다르다. 18살 혹은 그보다 훨씬 어린아이들도 독립적인 판단을 할 수 있고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행동하는 건 당연하며 그 자체로 어른의 존중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좀 더 일찍부터 반복해서 알려주었더라면, 그 순간 어른들의 말을 불신해서가 아니라 그저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좀더 독자적인 판단을 하고 행동을 할 가능성이 늘어나지 않았을까 생각해보는 것이다.
수학여행에서 문제가 발생했으니 이를 금지하고, 물놀이가 위험하니 물가에 못 가게 하는, 아이들을 위험상황에서 무조건 격리시키려는 발상은 당연히 대안이 될 수 없다. 사회의 모든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해도, 궁극적으로 안전 위협을 0%로 만들 방법은 지구상에 없다. 위험상황에 대처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그 이전에 자신의 생명, 신체의 안전, 더 나아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권리를 지키기 위한 판단과 행동을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독려해주고 반복적으로 훈련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과 문화가 필요하다. 아이들을 이런 문화 속에서 키우려면 어른들이 먼저 그러해야 한다. 나의 권리를 스스로 지키고 타인의 권리를 존중하며 타인의 자유와 권리가 침해받는 일에 대해서는 함께 연대해서 저항하고 바로잡는 것이 일상이 된다면, 그 속에서 아이들은 좀 더 당당하게 권리를 주장하고 안전을 위한 스스로의 행동을 결정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아직도 남은 수많은 의문들을 위해
위에서 제기한 의문들은 세월호 사건이라는 거울이 담은 한국 사회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이제부터 우리 사회는 아직도 제 본모습을 알 수 없는 거울 속의 거대한 코끼리를 모두 함께 그려내야 한다. 그 방법은 각자 선 자리에서 서로에게 질문을 건네고 답을 찾는 일상을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누군가 마이크를 들면 귀를 기울이고, 내가 필요할 때 언제든 마이크를 들 수 있는 자유를 위해 연대하는 일상을 만드는 것이다. 특히 이 사회의 다수이지만 힘이 없어 지금까지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이들의 다양한 소리가 내 귀에까지 이를 수 있도록, 그 다수의 한 사람인 내 목소리가 서로에게 들려질 수 있도록 정치사회 환경을 바꾸고 법제도를 바꾸는 일에 함께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이 사건의 희생자와 희생자 가족들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그 곁에 함께 하는 것이다. 그분들은 지금 이 순간 코끼리를 그려낼 가장 많은 단서들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이다.
*대안교육 격월간지 <민들레> 93호 "잊을 수 없는, 세월"에 실린 글을 재편집했습니다.(☞ <민들레>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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