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글에서 ‘스포주의’라는 말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결말을 알아버린다면, 영화를 관람하는 재미가 감소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은 스포일러의 습격을 피하고자 다분히 노력한다. 그런데 독특하게도 누구나 다 아는 결말을 가진 영화 한 편이 일찍부터 화제를 모았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교과서와 위인전 그 자체가 스포일러가 되는 영화, 1597년(선조 30년) 9월 16일에 발생한 명량대첩을 그린 영화, ‘명량(감독 김한민)’이다.
명량해전은 살라미스 해전, 칼레 해전, 트라팔가르 해전 등 세계적 해전과 비견되며 오늘날까지 회자되는 위대한 전쟁이다. 단 12척으로 330척의 왜선을 무찌른 전투다. “명량에서 패배했다면 일제 식민지가 300여 년 앞당겨졌을 수도 있다”는 끔찍한 의견도 존재하며, 일본 해군 제독 도고 헤이하치로는 “이순신 장군이 만약 나의 함대를 갖고 있었으면 그는 세계 해상을 지배했을 것이다”고 단언하기도 했다.
“‘어떻게 12척이 330척과 싸울 수 있었을까?’하는 궁금증과 호기심에서 시작됐다. 두려움에 맞섰던 충무공 이순신의 기적 같은 승리가 오늘날 우리에게 희망과 용기가, 깊은 감동과 울림을 주길 바란다.” 김한민 감독이 밝힌 연출 의도다. “잘해야 본전이지만, 이런 작품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참여하게 됐다.” 최민식이 이순신 역을 맡은 이유다. 두 사람의 뜻만 봐도 ‘명량’은 여느 상업 영화와는 다른 방향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명량’은 흥행과 성공을 배제하고, 지금의 대한민국을 지키고자 힘쓴 조상의 뜻을 전하기 위해 완성된 작품이다.
그렇기에 김 감독은 무엇보다 해전에 무게를 더했다. 이순신 장군의 삶에 집중했을 수도 혹은 그 외 인물들에게 초점을 맞췄을 수도 있지만, ‘명량’은 오로지 해전 하나를 향해 달린다. 해전을 중심으로 영화가 크게 두 단락으로 나뉘는 셈이다. 128분의 러닝타임을 지닌 본 작품의 해전은 무려 61분이나 된다. 과장을 덧붙여 영화의 반을 해전으로 사용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61분의 해전이 관객들에게 공감되지 않으면 실패할 영화라고 생각했다”고 걱정스러운 마음을 전한 김한민 감독은, 다행히도 긴 해전 장면에서 관객들에게 큰 공감을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화려한 배우진도 적재적소에 잘 활용했다. 김한민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 과감한 선택을 보여, 연출가로서의 능력을 다시 한 번 뽐냈다. 영화는 이순신 역의 최민식을 중심으로 삼는다. 이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민식 외에도 많은 스타 배우가 출연했다. 대표적인 예가 왜군 용병 구루지마 역의 류승룡과 왜군 장수 와키자카 역의 조진웅이다. 이 외에도 김명곤, 진구, 이정현 등의 배우가 출연하니 아마도 김 감독의 머리는 아팠을 터.
스타 배우진 캐스팅은 화려함으로 개봉 전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지만, 자칫 모든 등장인물이 뒤엉켜버리는 실수를 범할 수 있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하지만 김한민 감독은 이순신 외 등장인물의 설명은 과감히 잘라냈다. 이순신을 중심으로 그를 돕거나 경계하는 모습으로 살짝 얼굴을 비치는 다양한 캐릭터는 오히려 영화의 맛을 살렸고, 이순신 캐릭터를 빛나게 하는 데 더욱 큰 도움을 줬다. 중심은 이순신이지만, 영화의 주인공은 모두가 되는 놀라운 결과를 만든 것이다.
‘명량’은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잡았다. 실감 나는 해전은 짜릿함을, 이순신의 굳은 신념은 뜨거운 애국심을 느끼게 한다. 영화 말미, 이순신과 함께 용감하게 싸운 이름 모를 병사들은 왜군을 무찌르는 데 성공하고 한숨 돌리면서 서로 농담을 주고받는다. 그중 누군가가 갑자기 이런 말을 꺼낸다. “우리가 이렇게 고생한 거, 후손들은 알겠지?” 그간 조상들의 희생을 잊고 살지는 않았는지, 관객을 반성하게 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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