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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수제햄 만드는 사람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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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수제햄 만드는 사람 없나요?

[살림이야기]장터‧③ 얽히고설켜 이야기가 있는 장

수확한 양이 많지 않고, 판로가 마땅찮은 농부들은 고민이 많다. 어디 팔 데가 없을까? 만들어 먹자니 기술도 시간도 안 되지만, 농부들도 가끔 맛있고 건강한 빵을 먹고 싶다. 어디 살 데가 없을까? 방석을 만드는 건 쉬운데, 나무로 무언가를 다듬는 건 힘이 든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내가 하고, 내가 못하는 건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면 되는 거다. 그래서 모였다. 지난해 4월 장흥에서 '마실장'이라는 이름으로 귀농한 사람들이 모여 처음으로 작은 마을장터를 열었는데 벌써 전라도 각 지역에 7개의 장터가 열린다. 즐거운 일에 전염되는 속도는 정말 빠르다.

▲ 해남 모실장은 매월 셋째 주 토요일마다 읍내 서림공원에서 열린다. ⓒ김세진

햇살에 반짝이는 주홍빛이 고와 살구잼을 하나 집었다. "그건 비추(천), 맛이 좀 시어요." 물건을 팔려는 사람이 맞나, 실소를 터뜨리는 내게 대신 바질페스토를 추천하며 팔고 있던 호박전과 막걸리 한 잔을 권했다. '~인 듯, ~아닌, ~같은' 관계, '썸'이 마치 지혜로 여겨지는 시대에 '이렇게 솔직한 장사꾼 보쇼'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9월 25일과 26일, 전남 해남 모실장과 장흥 마실장에 좌판을 연 다른 장사꾼들도 비슷했다. 돈 벌려는 생각보다 즐기러 나온 듯 보였다. 장을 둘러보다가 괜스레 농으로 "장 닫을 때 오면 이거 '떨이' 가격에 주세요?" 물었더니 "지금 줄게요. 얼마에 드릴까요?"라고 묻는다. 자기 좌판을 두고 옆 좌판에 가서 수다를 떨기도 하고, "마침 필요했다"며 서로 가지고 온 물건끼리 바꿔 가기도 했다. 말을 건넸을 뿐인데 반갑다며 팔던 음료를 선뜻 건네기도 했다. 어머니가 해서 보내주었다는 파김치를 괜스레 들고 와 거저 나눠주면서 "잘못 풀었다"고 농을 하기도 했다. 고구마순을 산 사람들이 그 자리에 빙 둘러앉아 바로 손질하기 시작했다. 집에 가서 혼자 하면 하기 싫다나. 천연염색해 일일이 기워 만든 가방을 내놓았지만 그보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를 의미하는 노란 리본 고리를 만드느라 바쁘기도 했다. 지난달 해남에서 모실장이 열렸을 때 리본 300개를 내놓았고, 오늘 또 300개 내놓고 다음에 더 내놓아 전부 1000개를 사람들에게 나눠줄 거라고 했다.

▲ 햇살 아래 어른들은 어른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신이 났다. ⓒ김세진

손수 담근 효소, 텃밭 채소, 바느질 소품

지난해 4월 전남 장흥에 있는 오래된 고택에 사람들이 바리바리 짐을 싸 들고 모였다. '오래된 숲'이라는 민박집 마당이었다. 모인 사람 대부분은 이곳 장흥으로 귀농해 작은 규모로 농사짓는 사람들이었다. 자기가 팔려니 판로도 마땅찮고, 사 먹자니 그저 어떻게 농사지었는지 아는 이웃들의 것을 먹고 싶던 사람들이다. 마실장은 지역신문 <마실가자> 창간 기념행사에 맞춰, 처음으로 장을 열었다. 바느질을 좋아하는 귀촌 14년차 김승남 씨는 "젊을 때부터 벼룩시장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고 했다. 한 지역에 짧지 않게 살면서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 각자 자기만의 재주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같은 마을의 이웃들과 얘기 나누면서 '모두 한자리에 모여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발단이었다. 그저 장소를 마련했을 뿐인데, 준비되어 있던 사람들이 장을 펼쳤다. 김유리 씨는 "마실장이 마치 서울 혜화동에서 일요일마다 열리는 필리핀장과 비슷한 느낌"이라고 했다. 도시에서 시골로 이주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고, 아직은 뭐든 서투르지만 모여서 교류하면서 '나만 못하고 있는 게 아니라 다들 비슷하다'는 것을 느끼고 힘을 얻는 장소라는 점에서 말이다.

누구는 텃밭에서 난 작물을 가져오고, 직접 담근 장이나 효소를 가져오고, 누구는 떡을 만들어 오고, 누구는 방석을 만들어 오고 누구는 그냥 왔다. 단지 대기업에서 만드는 두부를 사 먹기 싫어 온 사람도 있었다. 모이니 예상외로 흥겨웠다. 어차피 이집 저집 돌아가며 만나기도 했는데 장을 빌미로 한자리에서 보게 되었다. 한 달에 한 번 열리던 마실장은 지난해 9월 장소를 용산면 읍내에 있는 용산장터로 옮겼고 올 6월부터는 한 달에 두 번 열기 시작했다. 오일장이 열리는 날짜(1일, 6일)와 겹치는 주말에 열린다. 장이라는 터가 지닌 힘이 있는지 새 공간에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 해남의 '미세마을' 젊은 농부들이 거저 내미는 호박전 과 막걸리를 냉큼 받았다. 한 젓가락 들다가 잠시 돌아다니다 왔는데 그새 내 것만 빼고 호박전이 모조리 동났다. ⓒ김세진

스무 살 때부터 50년 넘게 이곳에 살았다는 김기채 할아버지는 예전엔 용산장에 사람이 너무 많고 복잡해 아이들은 못 들어오게 막을 정도였다고 했다. 지금은 전설일 뿐이다. 1980년부터 시장이 줄더니 1990년대 3분의 1이 줄고 또다시 3분의 1이 줄어들었다고. 지금은 어물전과 과일전이 하나 남았다. 텅 빈 장터에 마실장이 들어오면서 활기를 되찾았다. 할아버지 말대로 "홀로 심심하고 외롭고 그란디. 장날에라도 이렇게 오면 막걸리도 마시고 지분이 확 풀려 버리"게 된 것이다. 정보도 교환하고 수다도 떤다.

페달은 장에 올 생각을 하면 설렌다. 남편 하얼과 "이번엔 무슨 옷을 입고 장에 갈지 열흘 전부터 미리 생각"할 정도다. 녹색연합과 여성환경연대에서 일하면서 만나 귀농했고 인기척이 없는 숲 속에 '전기도, 수도도, 가스도 없는 집'에서 생활하고 있어 "때로 외로운데 마실장에 와서 사람들을 만나서 정말 좋다". 부부는 마실장에서 번 돈으로 한 달을 생활한다. 하얼은 비자나무로 숟가락을 깎아 만들어 팔고 페달은 텃밭에서 캐낸 작물을 들고 온다. 지난달 마실장에서 이들 부부는 '입덧 극복 프로젝트' 공연을 했다. 얼마 전에 임신한 페달이 입덧이 심할 때마다 노래를 불렀고, 그렇게 절로 연습이 된 노래를 장터에서 발표했던 것. 답례로 사람들이 저마다 푸성귀를 안겨 줬다.

▲ 농부 동이가 토종배추 모종을 가지고 왔기에 관심을 기울였더니 "서울에 심기엔 이미 늦었"단다. 아쉬웠지만, 지역에 맞는 것들이 오가는 이게 지역장의 묘미 아니겠는가. ⓒ김세진
현미발효종을 이용해 우리밀로 먹음직스럽고 건강한 빵을 파는 황정희 씨는 그저 혼자 빵 만들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마실장에 재미 삼아 한번 빵을 가지고 나가 보았는데 인기가 좋았다. 시골에서 우리밀로 만든 건강한 빵을 먹기가 쉽지 않았던 터였다.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내가 좀 잘하나 보다' 하는 자신감을 얻었다. 그는 이것저것 다양한 빵을 만들어 냈고 읍내에 '빵잼 프로젝트'라는 작업실도 얻었다. 그날 파는 빵은 그날 만들어야 하는데 집에 가지고 있는 작은 오븐으로는 한계가 있어 밤을 새우기 일쑤였다. 작업실에 있는 큰 오븐에는 빵이 여러 개 들어가지만 그래도 장이 서는 날에는 새벽 3시에 일어나서 빵을 만든다. 황정희 씨는 "마실장 덕에 재능을 발견했고, 이전에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며 "별것도 아닌 걸, 장터에 가지고 가면 사람들이 격려해 주니 재미도 있고 힘이 난다"고 했다.

강화에 있는 산마을고등학교에서 만난 친구들과 함께 장흥으로 귀촌해 '카페 자응'(장흥을 지역민이 부르는 발음대로 표기한 것)을 연 조희주 씨도 마실장에 나와 커피를 팔았다. 이들과 같은 학교를 나온 딸이 추천해 주어 장안숙 씨도 마실장에 오게 되었다. "여기 오면 활력이 넘쳐. 며느리랑 사위도 오면 데리고 오고 그랴." 그가 들고 나온 멸치액젓과 흑미유과도 활력에 한 보탬 했음은 물론이다. 슬로푸드에서 '맛지킴이 두레'로 선정된 토종 수공예차인 '장흥돈차'도 한 곳에 자리를 차지하고, 누구나 먹을 수 있도록 차 기부를 하고 있었다.

막걸리 빚어 강진에서, 나무 깎아 해남에서, 대나무 엮어 나주에서

인근 지역에서도 마실장을 찾아온 사람들이 있었다. 박성용 씨는 강진에서 우리밀 누룩으로 가양주를 빚어 마실장에 들고 왔다. 안주 인심도 푸짐해 부침개와 단호박찜은 그저 펼쳐 놓았다. 한 사발, 한 사발 마시다 보면 돈을 누가 냈는지 안 냈는지 서로 모르고 넘어가기도 한다. 귀촌하기 전에 일부러 막걸리 제조 기술을 배웠다는데, 훌륭한 선택이었다.

해남 목수 이세일 씨는 직접 깎은 멋스러운 나무 그릇을 들고 30분 거리인 장흥 마실장에 왔다. 흙부대생활기술네트워크를 통해 적정기술을 연구하는 장흥 귀촌자 김성원 씨와 이세일 씨는 관심사가 비슷해 일찍이 교류하고 있었다. 김성원 씨 좌판에 있는 작은 베틀도 이세일 씨가 만든 것이란다. 두 사람은 '손베틀을 이용해 수공예를 비롯한 전통기술에 대해 연구'하는 행사인 '베틀베틀'에도 같이 참여했다. 장터에서 수다를 떨면서 이런저런 일을 작당하기도 한다.

장흥의 젊은 청년들은 여든이 넘은 김막동 할아버지를 나주에서 모시고 왔다. 대나무공예를 배우러 평소에 나주까지 오가던 장흥 제자들은, 나이 많은 할아버지를 모시러 장날 아침에 나주에 다녀왔다. 김막동 씨는 "돈만 아는 게 아니고 인간답고 시골 냄새가 나서" 마실장이 좋다고 했다. "오손도손 이렇게 주고받으면서 사는 게 인간이지. 끼리끼리 사는 사회가 되았어. 대나무공예를 배우려는 사람이 없어서 아깝지. 플라스틱으로 뭘 만들면 재료비가 들잖아. 대나무는 그저 근처에 널린 걸로 거저 만들 수 있는 거야. 기억에 남기려고 애를 쓰는데 다들 관심이 없어. 그런데 이렇게 관심을 가지니께 좋지."

▲ 산적 주정필 씨가 연주를 하자 아이들이 모여 들었다. 팬플룻은 지천에 널린 신우대(조릿대)로 직접 만들었다. 멋스러운 소리에 이끌려 한번 불어 보았는데 전혀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해 구매 포기. ⓒ김세진
왠지 시골장터에 안 어울릴 것 같지만 어찌된 일인지 제법 흥을 돋우는 팬플룻 소리는 화순에서 온 '산적과 아낙네' 주정필 씨가 내는 소리다. 그는 악보도 없이 이런저런 노래를 연주한다. 악기도 직접 만들어서 판다. 아내 양선자 씨는 직접 덖은 야생차와 둘이 같이 여행한 이야기가 담긴 기행기를 묶어서 판다.

한쪽에는 <살림이야기>가 전시되고 있었다. 자연농으로 지은 농산물을 가지고 나와 파는 김유리 씨는, 취재 온다는 소식을 듣고 집에 있는 잡지를 들고 나와 뚝딱 전시회를 열었다. '좋은 잡지'라는 손글씨와 함께. 그는 지난달에 핀란드 작가 토베얀손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그의 동화책을 들고 나왔다. 그걸 구하러 전라남도에 있는 공공도서관 네 군데나 다녀왔다니 보통 정성이 아니다.

하고 싶은 걸 뭐든 할 수 있는 열린 장

전시회를 하고 싶으면 하고, 공연을 하고 싶으면 하고, 팔고 싶은 물건이 있으면 팔고, 지난번엔 이걸 팔았지만 이번엔 저걸 팔고, 피곤해서 준비를 못했다면 아무것도 안 들고 가도 되고 그렇게 뭐든 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 바로 이 장터다. 어린아이부터 여든 넘은 할머니까지 나이 상관없이, 평소에 무슨 일을 하든 이 날만은 장사꾼으로 만나는 열린 공간이다. 김승남 씨는 "거창하지 않아서 시작하기 쉽다"고 한다. 대단한 것을 팔거나 하려고 하면 시도도 못할 텐데, 그저 돗자리 하나만 가지고 와서 펼치면 누구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것이다. 좌판 하나에도 아이디어가 만발이다. 누군가는 문짝을 떼어 와 천을 깔고 탁자로 쓴다. 가격표는 상자에 손글씨로 쓴다. 좌판 이름도 느림보, 율과 쪼, 산적과 아낙네 등 다양하다.

평소에 누가 어떻게 농사짓는지 잘 알고 있으니 무얼 사도 안심이 된다. 정성스레 농사지은 작물을 그날 아침에 따서 가지고 온다. 유기농이나 자연농하는 이들만 모이자고 한 적 없는데 저마다 '자급자족'의 꿈을 안은 사람들이 모여 색깔이 비슷하다. 분위기가 이러니 점차 사람들이 더 건강하게 닮아간다. 처음에 비닐봉투를 쓰던 이도, 다른 이가 비닐 대신 종이를 쓰는 것을 보고 더 이상 비닐을 사용하지 않기도 하고, 일회용을 가져오는 대신 각자 컵과 장바구니를 가져온다.

각자 작은 규모로 농사를 짓고 있고, 저마다 있는 것은 있지만 없는 것은 없고, 이런 기술은 있지만 저런 건 할 줄 모르고, 그래도 살면서 필요한 것들이 있는데 모두 모이니 해결이 된다. 물건끼리 바꾸기도 한다. 떨어진 양말로 인형을 만들어 온 김정옥 씨는 이날 방석과 인형을 판 돈으로 대나무 바구니를 샀다며 재미가 쏠쏠하단다. 종일 바구니를 들고 다니며 싱글벙글이다.

▲ 장흥 마실장은 시내 용산면에 있는 기존 장터에서 열린다. 원래 열리던 오일장(1일, 6일)과 날짜가 겹치는 주말에 열린다. 한 달에 두 번 열린다. 좌판은 많지 않아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해 시간이 후딱 지난다. ⓒ김세진
▲ 고구마순을 산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그 자리에서 다듬었다. ⓒ김세진

지난해 4월 장흥에서 마실장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시작한 '작은 마을장터'는 해남(모실장), 강진(정거장), 곡성(오진장), 구례(콩장), 고흥(미치고 환장), 벌교(녹색살림장) 등으로 번졌다. 곧 여주에도 장이 열린다. 각 지역 작은 마을장터의 촉발점이 된 장흥 마실장을 함께하고 있는 김승남 씨는 "각 지역에서도 다들 사람들이 이미 준비되어 있었는데 다만 사례가 필요했을 뿐"이란다. 이렇게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고 각 지역에서 저마다 창조적으로 시장을 열고 있다. 서로 장을 오가며 교류하고 물건을 팔기도 한다.

작은 마을장터는 여행에 새로운 사례가 될 수도 있단다. 얼마 전엔 어떤 친구가 장터에서 고양이 그림을 그려서 팔고 여행경비를 충당해 다른 지역으로 건너갔다. "기타를 메고 다니면서 연주하거나, 이발 기술이 있는 이는 가위 하나 들고 머리를 잘라주면서 전국 여행을 해도 되겠어요. '장 끼고 여행' 어때요?" 말만 들어도 매력적이다. "장에서 장으로 가는 길의 아름다운 강산이 그대로 그리운 고향"이었다는 <메밀꽃 필 무렵>의 허생원이 생각났다. '난 뭘 할 수 있나'를 궁리하는데 김유리 씨의 목소리가 들린다. "어디 수제햄 만드는 사람 없어요? 나타나면 정말 인기짱일 텐데…."

▲ 나주에서 온 대나무공예 장인 김막동 씨 좌판은 늘 인기가 좋다. ⓒ김세진

* 직접 가는 게 제일 좋아!

페이스북에서 '작은마을장터'를 검색하면, 각 지역 장터 일정과 지역 소식을 볼 수 있다. 참여자들이 자발적으로 블로거 글을 모으고, 일정을 정리해서 올려놓은 것인데 그때그때 지역의 사정에 따라 장소나 시간이 바뀌기도 한다. 오후에 열리기로 했다가도 더우면 오전에 열리기도 하고, 돌연 장소가 다른 데로 바뀌기도 한다. 도시처럼 온라인 정보가 즉각 바뀌지 않을 수 있으니, 그 점 감안하자. 장터에는 직접 가보면 제일 좋겠다. 같이 나눌 것을 가지고 가면 더욱 좋고!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우리나라 대표 생협 한살림과 함께 '생명 존중, 인간 중심'의 정신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한살림은 1986년 서울 제기동에 쌀가게 '한살림농산'을 열면서 싹을 틔워, 1988년 협동조합을 설립하였습니다. 1989년 '한살림모임'을 결성하고 <한살림선언>을 발표하면서 생명의 세계관을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살림은 계간지 <모심과살림>과 월간지 <살림이야기>를 통해 생명과 인간의 소중함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살림이야기>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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