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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지수의 '골수기증' 사연, 그 뒷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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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배우 김지수의 '골수기증' 사연, 그 뒷 얘기

[기고] 사라지는 '골수기증 희망자'들…누가 그들을 탓하는가?

#. 배우 김지수(42) 씨는 지난해 한 TV방송 프로그램에서 조혈모세포(골수)를 기증한 사연을 소개했다. 2005년 장기기증 단체를 통해 골수기증 의사를 밝힌 김 씨는 6년 뒤인 2011년 10대 남학생에게 골수를 기증했다. 그는 이후 학생 아버지로부터 장문의 편지를 전해 받았다. 그 아버지는 "어디선가 누군지 모를 당신을 본다면 알아볼 수 있는 지혜가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 씨는 "아버님의 말씀에 마음이 뭉클했다"고 말했다.

#. 올해 3월 급성골수성백혈병 판정을 받은 효진(5세)이의 어머니 김현경 씨는 반 년 넘게 딸 아이와 유전자가 일치하는 기증자를 찾고 있다. 발병 당시 (기증자와 환자를 연결해 주는 조정기관으로부터) 12명과 유전자가 일치한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9명은 기부 의사를 철회했다. 나머지 3명도 정밀검사 결과 골수이식이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그 사이 효진이의 증세가 악화돼, 이식을 받지 못할 경우 생명이 위태로워 질 수 있다.

▲ 배우 김지수 씨는 지난 2011년 10대 남학생에게 조혈모세포(골수)를 기증했다. 그는 방송에서 학생 아버지에게 편지를 받은 사연을 소개하며 당시 받은 감동을 전했다. ⓒSBS
김지수 씨는 조혈모세포기증 제도를 통해 이름 모를 남학생에게 새 생명을 안겼다. 그러나 이 같은 '해피엔딩'은 아주 드물다. 대부분은 효진이의 경우처럼 기증자가 마음을 바꾸거나, 유전자가 일치하지 않아 이식을 받지 못하고 있다.
조혈모세포(골수)이식을 기다리고 있는 환자 수는 2815명(2014년 9월 현재). 현재 기증희망등록자 수는 27만4547명이다. 보건복지부가 당초 목표했던 30만 명에 가깝지만, 문제는 이들 중 상당수가 기증 후보에서 이탈한다는 점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현숙 의원이 지난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기증희망자의 56%가 마음이 바뀌었거나(20.44%) 가족의 반대(10.30%)로 기증 의사를 철회했다. 15.68%는 주소·전화번호가 바뀌어 연락이 두절됐다.

조혈모세포기증 제도는 백혈병, 골수형성이상증후군, 재생불량성빈혈 등 보다 많은 혈액암 환자들이 이식을 받을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마련됐다. 그러나 기증희망자의 절반 이상이 중도에 포기하거나 사라져버리는 현실에선 제도의 본래 취지를 살릴 수 없다.

문제점이 무엇일까. 대안은 없을까.

▲ 2009~2013.6 골수 기증거부․중단 사유별 현황(단위: 개, 명, 건) *회사규정 등 다른 사유로 인해 기증의사를 철회한 경우 **기증자의 상태 변화로 인해 중단하는 경우(임신, 간염 등 결격사유, 유학 등) (출처: 보건복지부)

"12명이 유전자 일치한다더니 9명이 기증 의사 철회"…모녀는 왜 울었나


"조정기관에서 기증희망자 한 명 한 명에게 연락을 시도할 때마다 그 결과를 기다리는 심정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12명 중에 9명이 정밀 검사를 받지 않겠다고 했어요. 기증희망자가 기증하기 위해 입원한 당일 '못 하겠다'고 하신 분도 있습니다. 봉사활동 점수 때문에 등록했다 취소하신 분도 있고요. 이럴 땐 마음이 미어집니다."

▲ 백혈병 투병중인 5살 효진이 어머니 김현경 씨가 지난 14일 환자단체연합회에서 개최한 ‘환자샤우팅카페’에서 기증 등록자들이 조혈모세포(골수) 기증을 거부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고 있다. 지난 3월 급성골수성백혈병 판정을 받은 효진이는 아직까지 조혈모세포(골수) 기증자를 찾지 못했다. 유전자가 일치하는 희망자 12명 중 9명이 기증 의사를 철회했고, 3명은 정말 검사 뒤 이식 불가 판정을 받았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효진이의 어머니 김현경 씨가 가장 안타까운 것은 적지 않는 사람들이 기증 의사를 도중에 철회했다는 점이다.

효진이는 기증자 찾기에 실패한 뒤 항암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얼마 전 6차 항암치료 중에 백혈병이 재발했다. 이제 조혈모세포(골수) 이식만이 효진이를 살릴 유일한 희망이다.

어떻게든 기증자를 찾아야 하지만, 한국에도 해외에도 유전자가 일치하는 기증희망자가 없다.

"아이가 깊은 물에 빠져 있는데 나는 그냥 쳐다볼 수밖에 없네요.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도와주시는 분도 없습니다."

김 씨는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기증하고 싶은데 회사는 어쩌죠?"…제도개선은 언제쯤

기증희망자의 상당수가 도중에 마음을 바꾸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 번째는 희망자의 변심이다. 등록한 뒤 실제 기증이 이뤄지기까지 보통 오랜 시간이 걸린다. 애초 의지가 약해지거나, 결혼이나 취업으로 주변 상황이 바뀔 가능성이 높다. 배우 김지수 씨도 "6년 만에 (유전자가) 일치하는 환자가 나타났다고 연락이 왔는데 처음엔 솔직히 겁이 나고 무서웠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중도 포기 비율이 높은 것을 기증희망자의 변심 탓으로만 돌릴 순 없다. 이들이 기증을 포기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환경적 요인 역시 주목해야 한다.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 김명희(50세) 연구부장은 "(기증을) 안 하는 건지, 못 하는 건지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기증을 하기 위해선 여러 절차가 필요하다. 정밀 검사를 위해 피검사를 다시 받아야 하고, 골수유도촉진제를 닷새 간 맞아야 한다. 또 실제 이식을 위해선 2박 이상의 입원이 필요하다. 직장인이나 학생들이 저 정도의 시간을 내는 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나 또한 기증 과정에서 불편함을 겪었다."

지난 2012년 20대 여성에게 조혈모세포(골수)를 기증한 김 부장의 설명이다.

지난 2011년 조혈모세포 기증희망자로 등록한 이기연 붉은천사단 단장 역시 현실적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 단장은 "지난해 유전자가 80%이상 일치하는 환자가 있다고 해서 정밀 검사를 받은 적이 있다"며 "검사 결과 일치하지 않아 이식을 하진 않았지만, 당시 (이식이 결정될 경우) 휴가를 내는 문제로 고심이 많았다"고 전했다.

현재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제32조 장기등기증자 등에 대한 지원 등)'에 따르면 기증자가 근로자인 경우 사용자측이 유급 휴가를 제공하고 기증자가 공무원인 경우 병가로 처리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이는 권고일 뿐 강제 사항은 아니다. 정부에서 유급 휴가 비용을 지불하는 등의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김명희 부장은 "지금 여건에선 기증자가 회사에 유급 휴가를 요청하는 게 쉽지 않다"며 "기증자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요구해선 안 되며 기증자를 배려하는 방향으로 제도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기증자 모집에만 열 올리는 단체들…1회성 모집 행사가 '이탈' 부추긴다

기증희망자의 이탈을 줄이기 위해선 모집 과정에서 양질의 희망자를 찾는 것 또한 중요하다. 다시 말해, '진짜' 기증을 할 사람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조혈모세포(골수) 기증자를 모집하는 곳은 대한적십자지사, 천주교한마음한몸운동본부, 불교생명나눔실천봉사, 가톨릭조혈모세포은행, 한국조혈모세포은행협회(KMDP) 등 총 5군데다. 1년에 1만9000명의 기증희망자를 늘리는 것을 목표로 5단체가 모집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들 단체에 대한 평가가 주로 모집 인원 달성 여부에 따라 이뤄지다 보니, 축제 등 행사를 통해 한꺼번에 기증희망자를 찾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문제는 일회성 행사에서 등록한 희망자의 경우 이탈율이 높다는 점이다. 조혈모세포(골수) 기증자 모집 단체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한 관계자는 "학교 축제나 군대에 가서 기증자를 찾기도 하는데, 평소 기증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은 이들이 분위기에 휩쓸려 등록을 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이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이 차후 기증 의사를 철회한다"고 전했다. 좋은 일에 동참한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등록을 했다가, 막상 실제 이식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겁이 나 물러서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기증희망자의 이탈을 줄이기 위해선 모집 방법과 대상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명희 부장은 "기증희망자를 얼마나 모집할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누구를 모집할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며 헌혈을 여러 번, 정기적으로 하는 '다회헌혈자'를 주요 모집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장기 기증에도 긍정적인 경우가 많다. 다회헌혈자인 이기연 단장 역시 "누가 권해서가 아니라, 헌혈을 여러 번 하다 보니 자연스레 조혈모세포(골수) 기증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주소·전화번호 바뀐 '연락 두절' 기증희망자, 찾을 방법이 없네

주소나 전화번호가 바뀌어 연락이 끊기는 이들에 대한 대책도 필요하다. 등록 시기와 실제 이식이 이뤄지는 시기의 차이가 크다 보니 '연락 두절 형' 이탈자들이 나오는 것인데, 조정기관이 변경된 전화번호를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이 현재로선 없다.

관련 단체에서는 법률 개정을 통해 기증희망자의 바뀐 연락처를 자동으로 갱신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새누리당 김현숙 국회의원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09년부터 2012년 6월까지 3년 6개월 동안 주소가 바뀌어 연락이 두절된 사람들의 수는 2658명이다. 이 기간 동안 전체 이탈자(9501명)의 28%에 해당한다. 이를 전체 기증희망자 수에 대입하면, 정부가 한 해 모집하는 기증희망자 1만 9000명보다 많다. 안기종 백혈병환우회 대표는 "(관련 법률이 개정돼) 연락처 자동 갱신 시스템이 마련될 경우 새로운 기증자를 찾는 것 이상의 효과가 있다"고 주장했다.

장기적 관점에서 기증희망자를 관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실제 이식으로 이어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만큼 이식희망자에 정기적으로 연락을 취하고, 기증 의사 유지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관리가 체계적으로 이뤄진다면 연락이 두절되는 사례 역시 예방할 수 있다. 가톨릭조혈모세포은행에 종사하는 한 관계자는 "과거엔 기증 희망자를 모집하는 것에 치중했다면, 2-3년 전부턴 기존에 등록된 이들에 대한 관리 업무가 강조돼 왔다"면서도 "그러나 조정과 관리 업무를 맞고 있는 코디네이터들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라고 전했다.

보건복지부 생명윤리정책과 관계자는 이에 대해 "지적한 문제점들에 대해 충분히 인식하고 공감하고 있다"며 "다른 예산이 대부분 깎인데 비해 조혈모세포기증제도에 대한 2015년도 예산(44억7600만 원)은 소폭이나마 증액된만큼 향후 관련 단체들의 의견을 조합해 개선책을 찾아나가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조혈모세포(골수) 채취 방법인 ‘골수 조혈모세포 채취법’과 ‘말초혈 조혈모세포 채취법’ 중 최근에는 무마취 헌혈방식인 ‘말초혈 조혈모세포 채취법’이 90% 이상을 차지한다. 영화배우 최강희 씨와 김지수 씨도 이 방법으로 기증했다. ⓒ질병관리본부 장기이식관리센터


성덕바우만이 1996년 한국에서 처음으로 골수를 이식받은 지 20년 가까이 흘렀다. 그 사이 3000명 이상의 혈액암 환자들이 조혈모세포(골수) 이식으로 새 생명을 얻었다. 과거엔 엉덩이 뼈에서 골수를 빼냈지만(골수 조혈모세포 채취법), 이제는 헌혈처럼 주사만으로도(말초혈 조혈모세포 채취법) 이식이 가능해졌다. 김지수·최강희 등 유명 배우들도 기증에 앞장섰다.

그러나 기증에 대한 문화는 아직도 뒷걸음치는 중이다. 장기 기증에 대한 사회 인식이 부족한 가운데, '조혈모세포이식 뒤 허리디스크가 생긴다', '임신을 못한다' 등의 잘못된 정보가 사람들의 판단을 방해한다. 기증하겠다는 자식을 부모가 말리는 경우도 많다. 김명희 부장은 "과거엔 형제·자매가 많아 가족 중에 유전자가 일치하는 사람이 나올 확률 높았지만 이제는 아니다"라며 "서로를 도와야 내 가족도 살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부장은 "장기 기증을 격려하고 칭찬하는 문화를 만들어 가야한다"고 덧붙였다.

효진이와 어머니의 이야기는, 우리 주변의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제도를 고쳐 쓰는 일도, 문화를 만들어 가는 일도 '역지사지'에서 시작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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