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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좀 때본 人, 화덕을 말하다

[작은것이 아름답다] 조화로운 삶을 위한 기술, 생활 적정기술을 되살릴 때

이 글을 쓴 이재관 씨는 공업도시 노동자로 살다가 촌살이 13년차에 접어든 농사꾼이다. 다덧 식구가 와글바글 힘모아 비료, 농약, 비닐, 농기계, 제초제 쓰지 않는 제철 농사를 짓고 철 따라 살며 여럿이 재미지게 지속가능한 삶을 살자며 뜻을 모아 '항꾸네협동조합'을 꾸렸다. 자신이 농사를 지으며 고민하고 생각한 바를 글로 옮겼다. 편집자

우리 선조의 삶 속에 녹아 있는 적정기술

'적정하다'는 어감이 주는, 차고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와 호감이 버무려졌을 것 같은 기술. 적정기술이란 말을 몇 년 전 처음 들었어요. 그동안 지켜본 적정기술은 그 이름에 걸맞지 않게 '적정기술'을 구현하는 '특별한 기술'을 습득한 기술자들만의 적정기술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품게 하더군요. 가만 생각해보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술은 본디 복잡하지 않았습니다. 굳이 슈마허나 위나르스키를 들지 않더라도, 적정기술은 수천 년 이어져 온 우리 선조들의 삶 속에 녹아 있다고 보았습니다. 주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사람이 만들고 고치고 통제할 수 있는 규모를 가진 기술이 적정기술이 아닌가 싶어요.

▲ 가마솥과 아궁이는 대표적인 생활 적정기술이다. ⓒ연합뉴스
어렸을 때 마을공동체에는 기술자가 따로 없었습니다. 대장장이나 목수, 석수, 구들장이처럼 전문 분야에서 나름 생활 기술을 발전시킨 사람들도 있었지만 누구라도 자연에서 나는 소재를 써서 집을 짓고 옷을 짓고 먹을거리를 충당했거든요.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어렸을 때 곁에서 지켜본 제 아버지는 가장 완벽하고 훌륭하게 적정기술을 구현하는 기술자였습니다. 집짓고 농사짓는 것은 물론 살아가는 데 필요한 거의 모든 도구를 손수 만들어 썼지요.

제가 농촌을 떠나 도시에서 밥벌이를 하게 되었듯 농촌 젊은이들은 모두 도시로 나갔고 그 바람에 수백수천 년 이어 내려오던 생활 속 기술들은 한순간에 맥이 끊기고 말았습니다. 대를 물려오던 적정기술자들은 후대를 양성할 기회를 박탈당했고 '노인'이라는 고령화 사회 대명사로 쓸쓸하게 황혼을 보내고 있어요. '노인 한 사람을 잃으면 도서관 하나를 잃는 것과 같다.' 어느 나라 속담인지 기억이 가물거립니다만, 지혜가 대물림되지 못하는 현실이 참으로 아쉽고 안타깝기 짝이 없습니다. 시골로 들어와 살면서 버려놓은 장롱을 주워와 햇빛건조기를 만들고 칡넝쿨을 걷어다가 바구니를 엮고, 수숫대와 댓가지로 빗자루를 매면서 문득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적정기술'이라는 단어 앞에 '생활'이라는 말을 붙여야겠구나. '생활 적정기술', 더 가까워지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좀 더 다양한 생활 적정기술이 필요한 때입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자연, 환경, 이웃과 함께 조화로운 삶을 위한 기술 역시 되살려야 할 가치 있는 일입니다. 지속가능한 삶을 가능하게 할 생활 적정기술의 가치. 우리 앞에 놓인, 절박하면서도 즐거운 숙제라 생각합니다.

연소효율 높은 이동용 화덕 이야기

저는 아궁이에 불을 지펴서 밥을 짓고 국을 끓이고 처마 밑 화덕에 솥을 걸어 고구마와 메주콩을 삶고 소죽을 끓이던 시골에서 나고 자란 세대입니다. '불 좀 때봤다'는 얘기지요. 그런데 적정기술 공부를 하면서 연소 이론을 배우고 하향 연소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도대체 내가 불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진을 제 블로그와 카페에 올렸더니 반응들이 대단했습니다. "60년 불을 지폈는데 처음 안 사실이다." "정말 신기하다. 나는 지금까지 거꾸로만 불을 지폈네."

3년 전 겨울 우리 집 마당에서 펼쳐진 적정기술 한마당. 빈 고추장 통과 빈 드럼통, 가스통과 연통을 써서 뚝딱 만들어낸 화덕과 난로입니다. 거꾸로 타는 불을 보면서 신기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아궁이에 불을 지펴 취사와 난방을 하던 시골살이를 겪은 세대로서 불을 다시 보는 계기가 되었지요. 지금도 시골 대부분 집에서는 화덕을 쓰는데 벽돌이나 돌을 그냥 대충 쌓거나 드럼통을 반 자르고 앞부분을 잘라내서 솥을 얹어 씁니다. 이 화덕들은 모두 맨바닥에 땔감을 밀어 넣고 불을 지피지요.

땔감을 가득 넣어 일부는 타고 일부는 가열한 상태에서 제대로 타지 못하고 연기로 날아갑니다. 특히 구들방 아궁이에 불 한 번 붙이려면 눈물 콧물 다 흘립니다. 연소 효율은 고작 30퍼센트(%). 100%를 투자해 30%밖에 건질 수 없다니…. 참으로 턱없이 낮은 효율의 화덕입니다. 교육내용을 바탕으로 연소효율이 높은 화덕을 만들어보기로 했습니다. 땔감을 크게 줄이면서도 연소효율은 최대로 끌어올릴 수 있도록 로켓스토브 원리를 적용한 L자 화덕인데, 옮겨 다닐 수 있다 하여 이동용이고 열을 고리 안에 가두어 제대로 써먹자 '열기고리'라 해서 'L자형 이동용 열기고리 화덕'이라 이름지었습니다.

여기에 조금씩 고치고 불편한 땔감 투입 방법을 개선해 J자형 열기고리 화덕을 선보였습니다. 이것을 널리 보급할 방법을 찾다가 교육 기회를 만들기로 했죠. 지난해 협동조합을 꾸렸고 적정기술을 실현하기 위한 공방을 지었거든요. 그동안 받아본 교육방식은 4~5명이 조를 짜서 화덕이나 난로 한 대를 만들어보는 방식이었는데 이렇게 되면 만드는 방법은 알되, 다시 만들려고 하면 자재를 구하기도 어렵고 또 금세 까먹게 되더라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참가자들이 화덕 재료비를 지불하고 화덕을 하나씩 만들어갈 수 있도록 했는데 반응이 아주 좋았습니다. 적정기술 전반에 관한 이야기와 불-연소이론에 대한 교육을 한 뒤 용접 기초교육을 하고는 곧장 화덕 만들기 실습에 들어간 겁니다. 스스로 용접을 해서 화덕과 난로를 만들게 되면 자신감도 붙고 그 자신감을 바탕으로 저마다 사는 곳에서 화덕이나 난로에 대한 적정기술을 보급하기도 하고 관심을 갖게 될 것이라는 계산이었는데 다행히 잘 맞아 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2013년도 겨울에 두 차례에 걸쳐 58명을 교육했고, 이 중 57명이 화덕을 스스로 만들어 가져갔으며, 올해는 화덕과 난로까지 손수 만드는 교육을 했습니다. 또 서천, 음성, 울산, 화천 등지로 나가 적정기술 워크숍을 열기도 했지요.

▲ 하향 연소 방식으로 타는 모습. 일반 난로에 땔감을 가득 넣어 태우면, 연소 효율이 30퍼센트이다. 거꾸로 타는 하향식 연소 방식은 연소 효율이 높다. ⓒ이재관
▲ 이동용 L자 화덕과 J자 화덕 내부. L자 화덕은 땔감을 적게 쓰면서 연소효율이 높은 로켓스토브 원리를 적용한다. 열을 고리안에 가두어 제대로 쓰자고 하여 '열기고리' 화덕이라 이름 붙였다. J자 화덕은 L자형 화덕에 땔감 투입 방법을 고친 것이다. ⓒ이재관

다양하고 폭 넓게 생활 적정기술로 되살려야

"'항꾸네협동조합'이죠? 난로 좀 만들어주세요." 요새는 난로에 대한 문의와 주문이 많습니다. 손님들이 끊임없이 공방에 찾아옵니다. 지난해까지 화덕을 만들다가 올해는 두 가지 모델의 난로도 만들고 있습니다. W자로 불길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W난로와 오븐 기능을 추가한 오븐 난로입니다. 애초 화덕이나 난로를 만들어 파는 것보다 적정기술을 써서 스스로 만드는 방법을 알려드리려던 우리는 농사 말고도 '철공소'처럼 돌아가는 공방을 운영해야 하는 문제가 생겼습니다. 직접 용접을 할 수 없거나 만들기 어려운 분들의 부탁을 거절하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고 협동조합 겸 마을기업으로 운영을 지속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년 6~7회 정도 생활 적정기술 워크숍도 빼놓을 수 없는 일입니다.

지난해 전환기술 사회적협동조합에서 꾸렸던 창업자과정에 참여해 비전력 펌프와 난로에 대해 교육을 받았는데, 지금 활발하게 벌어지는 적정기술은 에너지 분야 비중이 크고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생활 적정기술이 널리 퍼져나가기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 이를테면 건축·에너지·농사·농가살림·재활용과 같이 폭넓은 쪽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대가 끊겼거나 사라질 위기에 있는 우리 삶 속 생활 적정기술을 되살리고 배우려는 노력을 병행하는 것도 아주 중요한 숙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기름값 무서워 보일러 대신 전기장판 하나 깔고 겨울을 나는 어른들이 늘고 있습니다. 고효율 난로나 화덕, 개량구에도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는데요. 갈수록 치솟는 기름값, 그마저도 언제 바닥을 드러낼지 모르는 화석연료에 대한 불안과 난방비가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오기 때문이겠지요. 적정기술 워크숍에서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우리 세대는 정말 풍족하게 살고 있습니다. (돈만 있으면) 석유에 기반을 둔 먹을거리일지언정 지천에 널려있고 기름도 가스도 마음대로 씁니다. 그러나 우리 다음 세대에서는 돈이 있다 해도 할 수 있는 것들이 없는 상태가 올 게 분명합니다. 그때 스스로 삶을 지속해 나갈 수 있는 적정기술을 익히지 않는다면 큰 고통을 받게 될 겁니다. 우리는 생활 속 적정기술을 익히고 더 나아가 우리 후대에 전해줄 의무가 있습니다."

도시는 말할 것도 없겠습니다만 시골에 살면서 스스로 만들고 고쳐 쓸 수 있는 기술을 갖지 못하면 돈이라는 도구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됩니다. 돈을 마련하기 위해 시간을 투자하고 그러다 보면 스스로 기술을 배울 틈이 없습니다. 악순환이 되풀이되겠지요. 그래서 우리 협동조합에서는 시골로 들어와 터를 잡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분들이 용접을 배우고 필요한 연장을 다룰 수 있도록 하는 자리를 자주 만들기로 했습니다.

▲ J자 화덕과 내부 착화 모습. 화석연료에 대한 불안과 난방비가 부담으로 다가오는 시절이다. 스스로 삶을 지속해 나갈 수 있는 생활 속 적정기술을 익히고 후대에 전해줄 의무가 있다. ⓒ이재관

모두가 다 적정기술의 발명가나 개발자가 될 필요는 없겠지요. 이미 소개된 기술들을 자신의 삶에 접목하는 시도부터 했으면 좋겠습니다. 도구를 쓰고 몸을 부려서 만들고 고치던 문화가 거세당하고 이젠 직접 무엇인가를 만들거나 시도해 볼 용기를 갖지 못합니다. 현대 산업문화는 사람들을 단지 소비자 자리에 머물도록 요구하며 삶에 필요한 대부분 기술은 모두 전문가들에게 의존하도록 만들어 버립니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직접 시도하고 실행하려는 의지 아닐까요? 생태를 바탕으로 한 삶이란 우리의 삶에 필요한 것을 직접 만들고 갖출 용기를 내면서 시작된다고 봅니다.

* 월간 <작은것이 아름답다>는 1996년 창간된 우리나라 최초 생태환경문화 월간지입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위한 이야기와 정보를 전합니다. 생태 감성을 깨우는 녹색생활문화운동과 지구의 원시림을 지키는 재생종이운동을 일굽니다. 달마다 '작아의 날'을 정해 즐거운 변화를 만드는 환경운동을 펼칩니다. 자연의 흐름을 담은 우리말 달이름과 우리말을 살려 쓰려 노력합니다. (☞ <작은것이 아름답다>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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