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이들이 소비 놀이에 빠져 있다고, 걱정들이 많다. 학교 현장에서 들여다보면, 무엇이든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관계로 치환해버리는 습관과 문화가 참 무서운 현실임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자본이 만들어놓은 욕망과 질서 앞에 무력했던, 그래서 속속들이 돈의 논리만으로 설득하고 설득당하며 살았던 어른들에 대한 뼈아픈 반성이 필요한 지점이기도 하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은 5월쯤 되면, 학교에 자기 물건을 가지고 와 친구들에게 환심을 사려고 한다. 남들이 없을 것 같은 수첩, 색종이, 스티커, 젤리 등. 2주 정도를 지켜보다 아이들과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니, 못 가지고 있어 속상했다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색종이랑 스티커는 교실에 있는 것을 하루에 한 장씩 꺼내서 쓰자고 하고, 자기 물건을 가져와 몇몇 친구에게만 나눠주지 말자고 했다. 물건으로 친구에게 환심을 사려고 하는 것보다, 같이 놀고 힘들 때 도와주는 게 더 좋은 친구라는 이야기도 해줬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어머니가 아이가 자꾸 지갑에 손을 댄다며 상담하러 왔다. 1학년 여자아이들의 경우 2학기가 되고 관계가 어느 정도 만들어지면, 친구에게 집착하는 경향이 강해지기 때문에 친구들에게 먹을 거나 물건을 사주는 용도로 사용했을 것 같다고 얘기했다. 실제로 아이도 그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어머니께는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 흔히 나타나는 일'이고, '오히려 지금 나타난 것이 더 다행일 수도 있다'고 안심시켰다.
다음날 '친구'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어떤 친구가 좋은 친구인지, 나쁜 친구인지 단박에 답이 나왔다. 어떤 물건 있다고 자랑하는 친구, 내 말 잘 들으면 뭐 해주겠다고 하는 친구, 자기가 좋아하는 친구에게만 뭐를 주거나 사주는 친구, 자기 맘대로 하려고 하는 친구…. 아이들은 생활 경험으로 바로 알고 있었다. 여덟 살, 초등학교 1학년이 된 지 겨우 몇 달이지만, 무엇이 관계를 힘들게 하고 어렵게 하는지 이미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거치면서 다 알고 있었던 거다.
그래서 '그런 친구들에게 정말 참된 의미의 친구가 생기겠느냐?'라고 물었더니, 아이들은 모두 '아니'라고 했다. '그럼, 너희들은 그런 친구가 되겠느냐?'고 물었더니, '아니'라고 했다. 친구는 돈이나 물건을 통해서 살 수 있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맺어지는 것이고, 돈이나 물건을 통해 만들어진 친구는 나한테 그런 게 없어지면 금방 사라지는 친구라고 했더니, 아이들은 공감하고 이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시험지처럼 답으로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눈빛으로 확인할 수 있는 그런 공감이었다.
보통 아이들이 친구들에게 제일 먼저 듣는 따돌림의 말이 '너하고 안 놀아!'다. 보육시설에 맡겨진 아이들이 서너 살이 되면 듣게 되는 말이다(보육시설에 맡기면 안 된다는 것이 아니라, 보육시설에서 아이들이 맺는 관계의 질이 전적으로 지지받는다는 보살핌의 느낌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제도적·구조적 현실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바꾸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다).
'너하고 안 놀아!'에 상처받는 아이들이 또 그 말을 누군가에게 한다. 이때만 해도 위계 관계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누구네 집에 뭐가 있고, 누구는 뭘 했고'와 같은 것으로 우위를 점하려 한다. 이런 관계 속에 상처받은 아이들이 제 맘대로 만들었다 부수고 다시 만들 수 있는 장난감에 열광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또 한편으로는 그런 아이를 달래기 위한 수단으로 새로운 시리즈의 레고, 미미인형을 사주며 부모의 역할을 다했다고 자족하는지도 모른다.
서너 살 아이들은 아직 언어 발달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해서 자기 경험에 대해 불쾌한 느낌은 있지만, 언어로 논리적인 설명을 하지는 못한다. 그냥 짜증을 내거나 불만을 표출한다. 어린이집에 다녀온 아이가 그냥 짜증을 낸다면, 먼저 눈을 맞추고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줘야 한다. 그런데 부모가 충분히 들어주지 못해 아이들의 마음을 풀어주지 못하고, 아이가 겪은 상황에 대한 문제의 근원을 객관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공감이 필요한 아이에게 소비를 통해 불만을 잠재우고 욕구를 충족시키려 하는 순간 모든 것을 대상화하는 생활 문화, 즉 괴물이 탄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요즘 청소년이 하는 놀이를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마을공동체교육연구소 문재현 선생님은 요즘 아이들의 놀이 문화에 주목해 다음과 같은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우리 때와 다른 것은 먼저 놀이대장, 짱이 있어서 그 아이가 놀이에서의 역할과 규칙을 정하고 다른 아이들은 일방적으로 따른다. 그런 아이들은 유치원 때부터 아주 인기 있는 모습으로 어른들 눈에 비친다. 그 아이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놀이에 참여할 수 없기 때문에 아이들은 필사적으로 그 친구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또 하나의 문제는 아이들 사이의 권력관계를 바탕으로 심각한 괴롭힘이 놀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다는 것이다. 지난 몇 년간 일진 아이들 중심으로 요즘 아이들 놀이를 조사해 보니 다음과 같았다.
● 인증샷 놀이 : 얼굴에 낙서를 하거나 알몸 상태에서 동영상 및 사진을 찍어서 돌려보는 놀이. 심하면 성매매 사이트 등에 올려서 원조 교제하는 아이로 누명을 씌우고 소문을 냄.
● 동전 놀이 : 동전에 구멍을 뚫은 후 낚싯줄에 매어 목 안에 밀어 넣고 꺼내기를 반복하는 놀이.
● 기절 놀이 : 숨을 참게 하고 목이나 가슴을 눌러 기절하게 한 후, 뺨 등을 때리거나 물을 끼얹어서 깨우는 놀이.
● 수술 놀이 : 칼 등으로 배, 팔, 다리 등을 그어 공포심을 조성하는 놀이. 칼빵이라고도 함.
● 사채 놀이 :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터무니없이 요구하며 갚지 않는다고 폭행, 협박함. 예를 들면 500원을 빌려준 뒤 1주일에 이자가 천 원이고, 빚을 갚지 못하면 10원에 한 대씩 폭력을 휘두르기도 함.
● 로또 복권 놀이 : 로또를 만들어 팔아서 당첨되면 소원을 들어주거나 하루 노예가 되어 시키는 대로 하는 놀이. 비슷한 것으로 펫 놀이나 노예 놀이가 있음.
● 왕따 놀이 : 같이 놀다가 한 아이를 왕따시키자고 하며 소외시키는 놀이. 놀이 과정에서 왕따를 만들어낼 수 있는 위험한 놀이.
● 몰카 놀이 : 텔레비전의 몰래 카메라를 모방한 놀이. 여러 아이들이 약속하고 한 아이를 놀림감으로 삼아 놀린 뒤 '몰카였어'라고 하는 놀이. 아이들을 왕따 시키거나 이간질할 때 주로 하는 놀이.
● 심기 놀이 : 농구 점수 내기에서 진 사람을 골대 밑에 세워 놓고 공을 맞게 하는 놀이. 강자가 진 경우는 대부분 맞지 않고 넘어가지만 후배나 서열이 낮은 아이는 피할 수 없음.
● 콜로세움 : 일진 아이들이 서열이 낮은 아이들을 맞짱 뜨게 부추기고 강요하면서 평범한 아이들을 관람하게 만드는 검투사형 놀이.
● 아바타 놀이 : 서열이 높은 아이들이 서열이 낮은 아이들을 아바타로 지정하고 뒤에서 팔을 잡고 조정하며 대신 싸우게 하는 놀이.
● 쫄 게임 : 얼굴 앞으로 주먹으로 치는 시늉을 하여 상대가 눈을 감거나 고개를 돌리는 등 쫄면 때리는 놀이.
● 셔틀 놀이 : 빵, 우산, 스타킹, 숙제 등 강제 심부름을 시키는 것으로 와이파이 셔틀, 아르바이트 셔틀도 있음.
● 베이스볼 게임 : 서열이 낮은 아이의 머리가 공이 되고, 다른 아이들의 주먹이 배트가 되어 야구하는 놀이. 팔로 방어할 수 있지만 막지 못할 경우 주먹으로 얼굴을 맞게 됨.
- '공동체를 살리는 대안적 교육과정은 어떻게 가능한가?' 강의록 1강 중(문재현, 2014)
우리가 보기엔 놀이가 아니라 심각한 폭력이다. 그런데 아이들은 "이거 노는 거예요. 그렇게 하자고 같이 약속한 거예요"라고 항변한다. 그런 문화를 형식적 혹은 비형식적으로 가르치고 보여주고 있는 우리 어른들은 공감 받지 못하고 공감해보지 못한 아이들의 놀이를 '폭력적'이라고 단정 짓고, '인성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서 절감하는 것은 아이들이 놀 시간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이미 놀고 있는데 그 놀이가 바로 우리 사회 문화를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점을 먼저 철저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그래서 뭐 어쩌라고!' 되묻고 항변하는 아이가 있다면, 오히려 희망의 씨앗이다. 항변 속에는 대안에 대한 갈증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최근 놀이와 놀이터 담론이 살아나고 있다. 그러나 경쟁의 틀을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징후는 도처에 만연하다. 세월호 참사나 윤 일병 구타 사망 사건, 임 병장 총기 난사 사건 등 말을 꺼내는 것조차 힘들다.
이런 갈증에 다양한 답이 있겠지만, 아이들의 놀이 경험과 생활 경험을 재구성하는 것을 하나의 답으로 이야기하고 싶다. 돈을 주고 배워서 하는 베이비 마사지가 아니라 할머니에게 배우는 아이 어르는 소리와 자장가, 돈으로 사서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 아니라 친구와 가까워지기, 책이나 영상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부대끼고 놀면서 함께 규칙을 만들어가고 배우는 학습을 생각한다. 이런 전통이 우리 민속 문화에 고스란히 잠자고 있으며, 이런 것들이 강력한 사회 통합과 생활 문화의 주요 기반이 될 수 있다.
놀이는 온전한 발달에 필수적인 과정이다
핀란드와 스웨덴 교육정책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비고츠키의 이론에서는 아동 발달의 각 시기에 알맞은 선도활동이 필요하다고 한다. 0~3세의 영아기에는 정서적 의사소통,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이에게는 놀이, 초등학교에서는 학교에서의 학습활동, 중고등학교에서는 동료와의 상호작용이 중점적인 활동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중 놀이는 어린이의 근접발달영역을 창조하고, 행동과 대상물로부터 사고의 분리를 촉진하며, 자기조절능력의 발달을 촉진하다는 점에서 발달에 필수적인 과정이다. 놀이는 그냥 놀이가 아니라 상징적이며 사회적인 활동이고 이것이 언어 발달과 고등정신기능 발달의 기저를 이룬다. 이 단계가 결핍되면 온전한 발달이 이루어지기 어렵다고 말한다.
이런 비고츠키의 인식은 우리 전통사회의 육아, 아이 어르는 소리에서 아이들의 놀이로, 아이들의 놀이에서 대동놀이로 발달해가는 과정과 일맥상통한다. 놀이는 노는 것 그 자체로 즐겁고 재미있는데 그 과정이 발달과정에 꼭 필요한 요소라는 점에서도 아이들의 놀이와 놀이를 통한 관계 형성은 중요하다.
제대로 놀아본 아이들은 현실에서도 갈등 해결 능력이 탁월하다. 일방적인 우세로 편을 가르면 축구가 재미없다는 것도 안다. 그걸 알고 나면, 스스로 조정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이것은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지만, 자기 경험을 반추하면서 언어화(대화, 글쓰기 등)하고 의미를 부여하면서 자기 경험을 객관적으로 재구성해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것이 '경험주의'의 순진함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 과정은 자기를 객관화시키고 타자화시켜 보는 아주 중요한 공부이다.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격월간 교육전문지 <민들레>와 함께 대안적인 삶과 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민들레>는 1999년 창간 이래,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교육'을 구현하고자 출판 및 교육 연구 활동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교육은 곧 학교 교육'이라는 통념을 깨고, 어른과 아이가 함께 성장하는 '다양한 배움'의 길을 열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바로가기 : <민들레>)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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