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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는 잉여적 행위…노는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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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는 잉여적 행위…노는 시간이 필요하다"

[언론 네트워크]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윤성근

이곳은 헌책방이다. 나이가 지긋한 주인이 자리를 지키고 좁은 통로마다 켜켜이 쌓인 책 위의 먼지를 털어내는 곳을 상상했다면, 틀렸다. 이 헌책방에는 젊은이가 앉아 있다. 책과 어울리는 음악이 흐르고 영화가 나온다. 마음을 파고드는 그림도 전시 중이다. 헌책방으로만 칭하기 아까운 곳, 서울 녹번동에 있는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이하 이상북)'이다. 이곳의 젊은 주인장 윤성근(41) 씨를 만났다.


# 책과 사람을 잇다

"블로그와 공책에 글을 쓰는 것 중 어떤 게 더 오랫동안 남을까요? 생각할 필요도 없이 종이입니다. 컴퓨터에 남긴 건 오래갈 수 없어요."

윤성근 씨는 '아날로그'의 가치를 강조하는 것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SNS, 블로그 상에 쓰인 수많은 글보다 종이나 돌에 새겨진 문자가 더 오래가고, 더 가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서버가 폭발하거나 회사가 문을 닫으면 웹상에 저장한 기록은 쉽게 날아가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헌책방을 좋아했다. 원하는 책을 사기 위해 가는 새책방과 달리, 헌책방은 '어떤 책을 만날까'라는 궁금한 마음으로 들른다. 헌책방은 '책을 만나는 곳'인 셈이다. 그렇게 수없이 헌책방에 드나들며 소중한 책들과의 만남을 이어온 그는 직접 헌책방을 내기로 결심했다.

2007년 '이상북'을 오픈한 그는 "책을 만나기 위해 발걸음 한 독자들을 위해선 자신이 읽은 책으로 이야기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이상북' 안에 있는 모든 책들은 그가 읽은 책들로만 배치돼 있다.

▲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의 주인장 윤성근 씨를 만났다. ⓒ뉴스컬처(이혜란)

# 책으로 문화 나누는 '지상낙원'


책을 좋아하는 윤 씨는 작가이기도 하다. 그동안 '북바이북' '책이 좀 많습니다' '헌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 침대 밑의 책'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등을 출간해왔다. 내달 출간을 앞둔 그의 6번째 책은 여태껏 그가 읽은 책 가운데 멋지다고 느낀 첫 문장을 바탕으로 집필한 에세이다. 책으로 책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책으로 만들 수 있는 건 책 뿐만이 아니다. 책을 바탕으로 꾸린 공연, 전시, 영화 상영 등 다양한 문화 행사를 '이상북' 안에서 펼치고 있다. 헌책방은 밥집이 아니기 때문에 손님들에게 맨날 오라고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윤 씨는 "독자들에게 책방에 방문할 만한 계기를 마련해주면 자주 들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의 헌책방은 때로는 극장, 때로는 전시장으로 변신한다.

그렇다고 아무 작품이나 초대되는 것은 아니다. 책을 주제로 한 문화 콘텐츠만 '이상북'의 문턱을 넘어올 수 있다. 영화의 경우 찰리 채플린의 작품을 상영하는 날에는 그의 자서전을 소개한다거나 '모리사키 서점의 나날' 같은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을 상영하는 식이다. 공연 역시 책에 대한 지식이 있는 뮤지션을 초청해 청중들과 책을 주제로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기획한다. 그렇게 선정된 가수 김목인과 싱어송라이터 남재섭 등이 앞선 무대를 꾸몄다.

"사람들이 다양한 문화를 통해 책을 접했으면 좋겠어요. 공연이나 전시, 영화만 보러오던 사람들이 책에도 흥미를 느껴 자연스럽게 책 한 권을 사 가는 것처럼요. 느리긴 하지만 책에 관심을 갖게 하고, 한 번쯤 읽어 보게끔 했잖아요. 그게 중요한 거죠."

▲ 헌책방 내에서 공연, 전시, 토론, 영화 등 문화행사가 진행되는 모습.(뉴스컬처)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물론 '매출'을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아무리 좋은 걸 보여줘도 수익이 나지 않으면 헌책방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윤 씨는 책방 안에서 이뤄지는 문화 행사들이 자연스럽게 매출로 이어질 수 있는 방향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예를 들어 뮤지션 공연이 무료로 진행돼도, 청중들이 입장료 대신 책을 사야겠다고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상북'이 특별한 또 다른 한 가지는 '심야책방'이다. 한 달에 두 번 이상, 자정이든 새벽 1시든 손님이 남아 있는 늦은 시간까지 문을 열어 놓는 것. 어느 날 문 닫는 걸 잊어버린 채 새벽까지 원고를 쓰고 있었는데 손님이 들어오는 걸 보고 심야책방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무인카페 형태로 음료와 티백을 준비해 놓기도 한다. '이상북'은 내쫓는 주인장도 눈치 보는 손님도 없는 곳으로,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공연, 전시도 보고 차도 마시면서 밤 늦게까지 독서도 할 수 있는 지상낙원이다.

# '책아일체'의 사나이

사람들이 좀 더 많이 책을 읽었으면 하는 것이 헌책방 주인의 바람이다. 하지만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13년 국민 독서 실태조사'에 따르면 1년에 책을 1권도 읽지 않은 성인이 28.6%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인 10명 중 3명이 1년에 책을 1권도 읽지 않는다는 것.

윤 씨는 "한국인들은 책을 안 읽는다기 보다는 못 읽는 것에 가깝다"면서 그 이유로 '긴 통근 시간'을 꼽았다. 실제로 서울시가 발표한 e- 서울통계에 따르면 직장인의 통근 소요 시간은 1시간 35분 가량으로, OECD 국가 평균인 40분을 한참 넘어선다.

"독서는 잉여적인 행위에요. 하지만 긴 통근시간으로 여유를 즐기기 힘든 한국인들은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죠. 독서를 장려하려면 무엇보다 국민들에게 잉여시간을 만들어 줘야 해요. 아무 것도 안 하고 노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죠. 남는 시간이 많아진다면 동네 서점을 들를 기회도 많아지지 않을까요?"

윤 씨의 모든 시간은 책과 함께 흘러가고 있었다. 그에게 책은 모든 것을 시작하는 '뿌리'와도 같았다. 책으로 책을 만들고 공연과 전시를 열고 영화를 튼다. 나아가 책을 통해 인간과의 관계, 사회 문제까지 고민하고 있다. 책아일체(冊我一體)의 사나이, 그가 책을 통해 앞으로 또 어떤 것을 세상에 내놓을 지 기대되는 이유다.

▲ 윤성근 씨는 "한국인들은 책을 안 읽는다기 보다 못 읽는 것에 가깝다"면서 "사람들에게 여유 시간이 많이 늘어나 동네 서점을 찾는 기회가 늘어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뉴스컬처(임희정)

프레시안=뉴스컬처 교류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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