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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민들레] 놀이·③ 우리의 방학은 언제?

놀기 위해 구매한다?

국내의 모 자동차 회사가 지난 여름에 제작했던 광고. 몰래 카메라 형식으로 제작된 이 광고는 한 무리의 회사원들을 모아놓고 업무 적성 테스트를 한다. 각자 머리를 짜내며 시험을 보던 중에, "(당신) 아이와 친한 친구들 세 명의 이름을 적어주세요"라는 질문을 두고 사람들은 머리를 긁적이기 시작한다. "아이의 키와 몸무게를 적어주세요"와 같은 질문에서는 도무지 가늠이 되지 않는지 서로 얼굴만 쳐다볼 뿐이다. 그리고 등장한 모니터 화면에서 아이들은 해맑게 말한다. "아빠, 저희와 놀아주세요!" "주말에 잠만 자지 말고 저랑 놀러가요!" 당황한 아버지들 사이로 문이 열리며, 아이들이 저마다 자기 아빠를 찾아가 안긴다. 그리고 이어지는 화면에서 뻥 뚫린 도로를 깨끗하게 질주하는 SUV 차량 한 대. 가끔은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는 아빠가 되어 달란다. 이걸 사람들은 '감성 광고'라고 부른다.

이제 등 떠밀린 아버지는 대출이라도 받아서 SUV를 사야 할 판이다. 자본은 그렇게 아버지를 또 다시 희생시킨다. 아이들과 놀아주기 위해 SUV 차량을 사면, 그 비용을 위해 아버지는 더욱 혹독한 노동의 최전방으로 달려가야 한다. 세련된 광고는 이를 감춘 채 소비로 얻어지는 휴식,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하는 아버지의 판타지를 그려낸다.

▲ 배우 송일국 씨와 아들 삼둥이가 출연한 K 회사의 SUV 광고.

최근 불어 닥친 캠핑 열풍도 그 공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힙(HIP)한' 캠핑족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용품은 땅에서 파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구매해야 하는 것이다. 쉬기 위해서는 캠핑을 가야하고, 캠핑을 가려면 더 열심히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무엇을 위해 일을 했고, 또 무엇을 위해 쉬려고 했던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게 되면서 고민은 시작된다.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우리나, 그 대상이 되는 그들이나, 괴롭기 그지없다. 노는 데 뭐가 그리 많이 필요하나? 우리는 노는 방법을 잊어버렸나? 우리 어렸을 때는 엄청 잘 놀지 않았나?

생각해보면 우리를 모두 묶어 '잘 놀았던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세대 차이뿐만 아니라, 도시와 농촌이라는 거주 공간의 차이가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때 그 시절이 더 즐거웠을 것이라 단정 짓는 이유는 그게 인간 기억의 작동 방식이기 때문이다. 지나간 모든 것은 아름다워진다. 어린 시절 받았을 스트레스가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 것은 그 스트레스가 가짜여서가 아니라, 우리의 기억이 굳이 그것을 남겨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는 지난날의 여름으로 돌아간다. 2002년에 뒤늦게 개봉한 이 영화를 볼 때만 해도 동시대를 살아가는 일본인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했지만, 또 그로부터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 보니 '그때 그 친구들'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진다.

놀아주지 말고, 같이 놀기

아홉 살짜리 꼬마 마사오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할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다. 같이 놀던 친구들은 여름방학을 맞아 저마다 휴가를 떠나지만 그럴 수 없는 마사오는 할머니께 온 소포의 주소를 보고, 멀리 살고 있다는 엄마를 무작정 찾아 나서기로 한다.

제대로 출발도 하기 전에 불량배들에게 걸려 돈을 빼앗길 위기에 처하는데, 이때 나타난 것이 친절한 옆집 아주머니와 그의 남편. 과거 야쿠자였다는 이 아저씨는 오히려 불량배들의 돈을 빼앗으려 들 정도로 '무대포'다. 하지만, 옆집 아줌마는 무슨 속내인지 엄마를 찾아간다는 마사오를 아저씨에게 부탁한다.

물론, 아저씨(배우 겸 감독 기타노 다케시)는 엉망진창이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윽박지르기와 억지 부리는 것밖에 없어 보인다. 예컨대 호텔에서 숙박한 후 호텔비가 비싸다며 깎아달라고 진상을 부리고, 또 막상 깎아주니 "너희가 내 돈을 빼앗아 갔으니, 차를 태워 달라"며 기발한 요구까지 해댄다.

그런데도 이 문제투성이 아저씨는 확실히 재미나다. 영화는 이 아저씨가 만들어내는 얼토당토 않는 문제 상황을 만화적 상상력으로 보여준다. 기타노 다케시 감독은 코미디언 출신답게 전형적인 슬랩스틱이나 상황을 반전시키는 효과를 익숙하게 사용하고 있다. 뻔한 코믹 소품이 될 수도 있었을 이 작품의 진가는 영화가 시작되고 70여 분이 지나서야 발휘된다. 마사오가 엄마를 만나는 데 실패한 그때부터다.

▲ 일본 영화 '기쿠지로의 여름' 중 한 장면. ⓒ튜브엔터테인먼트

그 즈음하여 아저씨와 마사오의 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티 없이 순수한 마사오와 한없이 불순한 아저씨 사이에 동질감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마사오는 아저씨의 농담에 처음으로 웃어 보인다.

"너희 엄마 이쁘지? 그럼, 내가 네 아빠가 되면 어떨까? 넌 내 아들이 되고. 자, 그럼 아빠라고 불러봐."


마사오는 이 장면 전까지 아저씨를 향해서는 항상 시무룩한 얼굴이었다. 아저씨와 아버지가 동일시되는 상황이 오면서, 이제 마사오는 벙긋 웃기 시작한다. 둘 다 엄마의 얼굴 한번 만져보지 못했다는 공통점을 안고, 이제 같이 놀 때가 온 것이다. 그리고 영화의 후반부는 온통 노는 이야기다. 마사오와 놀아주는 아저씨의 이야기가 아니다. 마사오와 함께 노는 아저씨의 이야기다.

9살이 놀기 위해 필요한 것은 친구뿐이지만, 29살이나 39살이 놀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하지만, 아홉 살의 마음을 먹는다면 그리 어렵지 않게 놀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마음가짐에 걸맞게 이들이 노는 이유는 매우 간단하게도 '심심해서'다. 엄마를 얻지 못한 마사오를 위로해주는 것이면서, 또한 자기도 심심하기 때문에 같이 놀기 시작한다. 그러다보니 그들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만으로도 한없이 즐겁다. 춤을 추고 노래를 하고, 줄타기를 하고 연극놀이를 한다.

보통의 영화들이 후반부에 갈등을 배치하고 그것을 해소하는 방식을 택함으로써 기승전결의 '전결'을 해치우지만, 이 영화는 그런 것이 아예 없다. 그저 여름방학을 맞이한 아홉 살들이 노는 모습을 '처언처언히' 보여주는 것뿐이다. 그 위에 히사시 조(Hisaishi Joe)가 맡은 메인 테마곡 '썸머(summer)'가 흐르는데, 이 상황이란 내가 이들의 놀이를 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나의 어린 시절이 그 스크린에 펼쳐지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같이 놀고 싶어 움찔하는 걸 참아내 보자. 우리는 옛 추억을 되돌아보고 있는 중이다.

우리들의 여름방학

무엇도 이룬 것 없지만, 마사오의 방학은 그렇게 즐거운 추억을 남긴 채 막을 내린다. 다시 돌아온 도쿄에서 마사오는 비로소 아저씨의 이름을 묻는다. 그렇게 같이 놀아 놓고 친구의 이름도 몰랐다니 서운할 법도 하지만 아저씨는 크게 소리친다.

"기쿠지로야, 이 바보야!"


영화 제목이 <기쿠지로의 여름>이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여름의 주인공은 마사오와 재미나게 놀았던 돼먹지 못한 아저씨, 기쿠지로였던 것이다. 마사오의 여름방학만 즐거웠던 것이 아니라, 기쿠지로 아저씨의 여름 또한 즐거웠다. 이 영화는 그러므로, '50대 아저씨 기쿠지로의 여름방학 이야기'다.

재미나게 놀기만 한 이 영화가 오래도록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것은 분명 친구들과 더 놀지 못하고 집에 끌려 들어온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해서다. 어른이 되어서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여름방학을 대신 즐겨준 기쿠지로를 부러워하며, '우리도 언제 방학을 맞이할까'를 기대하게 된다. 우리는 다시 그 시절의 즐거운 놀이를 할 여유를 가질 수 있을까?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런 용기를 가질 수 있을까?

우리는 어딜 가지 않아도, 뭔가를 구매하지 않아도 놀 수 있다. 인간의 근원적인 즐거움은 어린이들이 즐기는 놀이에 모두 함축되어 있다. 어린 인간에게는 다양한 감각이 열려 있으므로, 그들은 즐길 수 있는 모든 요소들을 스스로 구성해내서 놀 수 있었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놀이가 전 세계적으로 이름을 달리해 널리 퍼져 있는 것은 분명 그것이 인간이 가진 원초적인 즐거움과 관련이 깊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어른들이 그 시절의 놀이를 잊어버린 것은 나이를 먹고 머리로만 생각하게 됐기 때문이다. 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를 생각할 필요는 없다. 9살 때 충분히 즐거웠던 놀이는 19살에도, 29살에도 즐겁다. 현대인이 제대로 즐기지 못하게 된 것은 어린 시절을 너무 빨리 잊어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격월간 교육전문지 <민들레>와 함께 대안적인 삶과 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민들레>는 1999년 창간 이래,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교육'을 구현하고자 출판 및 교육 연구 활동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교육은 곧 학교 교육'이라는 통념을 깨고, 어른과 아이가 함께 성장하는 '다양한 배움'의 길을 열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바로 가기 : <민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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