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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다, 잡초야"

[작은것이 아름답다] 자연순환농법, 자연의 질서대로…

우리 농장은 돌투성이 산기슭을 개간하여 만든 것이라 보통 말하는 농사가 아주 힘든 곳이다. 흙 속에 돌이 너무 많이 박혀 있어 삽질이 불가능할 지경이다. 10여 년 전 처음 이곳을 개간할 때 도저히 방도가 없어 인근 도로공사장 절개지에서 흙을 실어와 일정한 두께로 덮고서야 작물을 심을 수 있었다. 하지만 공사장에서 나온 흙에 무슨 영양소가 있으랴! 자연농업을 한답시고 비료도 안 주니, 작물은 난쟁이에 홀쭉이 신세를 면치 못했다.

농사를 하는 듯 마는 듯 어느덧 10년 세월이 흘렀다. 그 10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나? 가장 박한 땅에서 자란다는 칡과 억새, 가시딸기, 쑥, 망초 따위가 농장을 뒤덮었다. 처음에 밭을 일굴 때 이들을 몹시도 원망했다. '잡초도 잡초 나름이지. 어찌 이리 질기고 독한 잡초들만 가득한가' 하고.

그러나 이내 그들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지 알게 되었다. 그 질긴 잡초 줄기를 틀어쥐고 흔들어 뽑아내자 후드득 떨어지는 흙이 그렇게 보드라울 수가 없었다. 땅속 사방으로 뿌리를 뻗으면서 굳은 흙들을 아주 잘게 부숴 놓은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표토(表土)에는 이들이 나고 죽고를 반복하면서 쌓인 유기물질이 마치 양탄자처럼 푹신했다. 내가 없는 동안 잡초가 농사를 짓고 있었던 것이다.

▲ 잡초와 쑥. ⓒ황대권

뒷마당 빨래 너는 곳에 마구 밟고 다니는 작은 공터가 하나 있다. 오며 가며 상추라도 뜯어 먹으려고 밭을 만들어 놓았다. 땅이 워낙 딱딱한데다 영양분도 별로 없어 고랑에다 뒷간에서 나온 똥을 묻고는 상추씨를 뿌려놓았다. 일주일 정도 지나자, 그 박한 땅에서도 싹이 텄다. 하지만 놓아 기른 닭이 달려들어 쪼아대는 통에 다시 평지가 되고 말았다.

다른 일로 바빠 거들떠보지도 않다가 얼마 전 몇 가지 채소를 옮겨 심으려고 가봤더니, 세상에나! 쑥이란 놈이 군데군데 치솟아 있고 그 사이를 바랭이가 빽빽하게 뒤덮고 있었다. 호미를 하나 들고 쭈그리고 앉아 놈들을 뽑기 시작했다. 먼저 바랭이를 한 줌 쥐고 호미로 땅을 찍었다. 쑤욱, 하고 뿌리째 올라오는데 밑에 흙이 그렇게 보슬보슬할 수가 없다. 어떤 곳은 지렁이가 다 튀어나왔다. 쑤욱 뽑고 털고, 쑤욱 뽑고 털고, 겨우 한 평 남짓 뽑았는데 놈들의 시신이 산을 이룬다.

하루쯤 지나 뿌리가 말라버리면, 다시 흙 위에 덮어둘 것이다. 쑥은 덩치가 커서 뽑는 데 약간 힘이 들었다. 행여 흙이 덩어리째 나올세라 살살 흔들어가며 뽑았더니, 엄청나게 발달한 뿌리가 올라온다. 누런 본 뿌리에서 굵고 흰 뿌리가 사방으로 뻗쳐 나온 모습이 마치 먹을 것 달라고 아우성치는 아이들의 흰 팔뚝 같았다.

사실 이 흰 뿌리는 땅속을 달리는 굴착기와 같다. 딱딱한 땅속에서 먹이를 찾아 이리저리 굴을 뚫고 다니며 자신의 맑은 수액을 채워놓으면 그 사이로 개미란 놈이 파고들어 와 집을 짓고 산다. 쑥 뿌리를 뽑으면 유독 개미가 많이 나오는 걸 보면 아마도 개미가 쑥 뿌리의 즙액을 좋아하지 않나 싶다. 쑥은 덩치가 큰 만큼 흙을 갈아놓는 면적도 크다. 바랭이가 주로 표토를 간다면, 쑥은 심토(深土)까지 갈아놓는다. 거기에 지렁이와 개미, 굼벵이, 땅강아지까지 합세하니 아무리 굳은 땅이라도 잡초가 무성해지면 저절로 땅은 갈아놓은 상태가 된다.

풀을 다 뽑고 이랑을 만드는 일은 아주 쉬웠다. 흙이 너무도 보드라웠기 때문이다. 밭이랑을 다 만들고 그 위를 걷어낸 풀로 다시 덮는 이유는 직사광선을 막아 흙 속의 작은 생물들을 보호하고 습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나중에 풀들이 썩으면 좋은 거름도 될 것이다. 기존 농법에서는 이것을 녹비(綠肥)라고 한다. 녹색 비료란 뜻이다. 이른 봄에 논이나 밭에 자운영이나 호밀 또는 키가 작고 잎이 무성한 녹색식물 씨를 잔뜩 뿌려 싹을 틔운 뒤 본격 파종을 하기 직전에 로터리(흙을 갈아엎고 고르는 일)를 치며 갈아버림으로써 잡초도 없애고 거름 효과도 보자는 것이다.

녹비를 이용하는 것은 확실히 좋은 유기농법이기는 하나 무거운 트랙터가 다니며 갈아엎기 때문에 녹비식물이 잘게 부숴놓은 흙을 다시 눌러버리는 단점이 있고, 무시무시한 쇠바람개비로 갈아놓은 흙과 오랜 시간에 걸쳐 풀의 미세한 뿌리로 갈아놓은 흙은 큰 차이가 있다. 그래서 자연농법에서는 로터리를 치지 않는다. 대신 풀의 생육주기에 맞추어 작물을 심는다. 무슨 말인가 하면, 풀이 전성기를 지나 쇠해 갈 즈음에 작물을 파종하거나 옮겨 심는다. 따라서 자연농법에서는 작물의 파종시기에 쇠하는 잡초를 선별해서 남겨두거나 키운다. 식물의 생태 특성을 고려한 순환농법이다.

보통 순환농법이라고 하면 가축의 분뇨나 음식물 찌꺼기를 퇴비로 사용하는 농장 내, 또는 지역 내 순환으로 이해하지만 자연농법의 순환은 경작지 내 순환을 의미한다. 이것은 살아 있는 식물의 생태 특성을 오랜 시간에 걸쳐 관찰하고 연구해 자체 순환하는 농법이므로, 훨씬 순수하고 차원 높은 수준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정직하게 말해 농약이나 비료 없이 키운 사료를 먹는 가축이 얼마나 되는가? 도시의 음식점에 들어가는 식재료 가운데 완전 유기농 재료는 얼마나 되는가? 모르긴 모르되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따라서 이미 오염된 가축분뇨와 음식물찌꺼기를 작물에 주는 것은 재활용의 의미는 있지만 자연 순환과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다. 순수한 의미의 순환을 잘 볼 수 있는 곳은 강변이나 개활지 또는 야산이다. 그곳에는 거름 하나 없이 온갖 풀과 나무들이 무성하게 잘 자란다. 뿐만 아니라 그곳은 무수한 벌레와 작은 생물들의 보금자리이기도 하다. 자연순환농법은 자연의 이러한 생태적 질서를 경작지에 실현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물론 나는 아직 이곳에서 자연순환농법의 작부체계를 갖고 있지 못하다. 그러한 작부체계를 가지려면 최소한 10년은 족히 걸릴 것이다. 끊임없이 땅의 유기질 농도를 높여가야 하고, 경작지에 자라는 잡초의 생태 특성을 연구해야 하고, 이어짓기(윤작) 또는 사이짓기(간작)하는 작물의 연계체계를 개발해야 하고, 잡초와 작물의 상호작용을 알아야 하고, 농약이나 비료에 오염되지 않은 종자를 확보해야 한다.

언젠가는 이러한 일을 체계 있게 수행할 자연농업연구소를 설립하는 것이 내 꿈이다. 일본 자연농업의 창시자인 후쿠오카 마사노부의 책을 보면 그가 40년 동안 연구한 끝에 정리한 자연농업작부체계가 나와 있는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본 토양에서 일본인들이 즐겨 먹는 작물로 이루어진 것이다. 우리는 우리 토양에서 이 땅의 기후에 맞는 작부체계를 개발해야 한다.

뒷마당에 코딱지만 한 밭뙈기 하나 만들면서 너무 거창한 얘기를 한 것 같다. 풀을 한 포기 뽑더라도 그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해야겠다는 다짐이다. 실제로 밭에 가득한 풀을 뽑으면서 절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초봄에 땅이 하도 딱딱하여 과연 여기에 작물을 심을 수 있을까 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던 터라 더욱 그러하다.

"고맙다 얘들아. 땅을 그만큼 갈아주었으면 됐다. 이제 너희들의 에너지는 다른 형태로 거듭날 것이니 기쁘게 호미날을 맞아주었으면 좋겠다. 하긴 네게 호미날을 들이대고 있는 나라고하여 별 다른 삶이 있겠니? 이렇게 죽을 동 살 동 열심히 해봐야 결국은 뒤에 올 누군가의 거름이지." - <고맙다 잡초야>(도솔 펴냄) 중

월간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1996년 창간된 우리나라 최초 생태 환경 문화 월간지입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위한 이야기와 정보를 전합니다. 생태 감성을 깨우는 녹색 생활 문화 운동과 지구의 원시림을 지키는 재생 종이 운동을 일굽니다. 달마다 '작아의 날'을 정해 즐거운 변화를 만드는 환경 운동을 펼칩니다. 자연의 흐름을 담은 우리말 달이름과 우리말을 살려 쓰려 노력합니다. (☞바로 가기 : <작은 것이 아름답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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