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사람이 자본을 고용하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사람이 자본을 고용하다

[생협평론] 한국택시협동조합

협동조합 정신을 만나다

2012년 국회 사무총장 재직 당시였다. 민주화운동의 오랜 동지인 '한국협동조합연구소' 정재돈 이사장이 찾아왔다. 국회의 정책연구자금을 지원받는 일로 방문한 것인데, 나는 정재돈 이사장이 공의로운 사람일 뿐만 아니라 국민 세금을 한 푼도 낭비하거나 부당하게 사용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얼마 지나 그가 국회의 지원금으로 번역하고 출판한 스테파노 자마니 교수의 <협동조합으로 기업하라>(송성호 옮김, 북돋움 펴냄)를 보내왔다. 집무실에서 이 책을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엄청난 감동을 받았다.

때마침 '월 스트리트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는 구호 하에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이 거세게 일어나면서 우리 뉴스 시간에도 각국의 경제 양극화에 대한 저항의 목소리가 하루가 멀다고 전해지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경제적 양극화 현상은 심각한 지경을 넘어선 지 오래였다. 골목상권까지 장악한 대기업 등쌀에 적은 자본으로 창업할 수 있는 분야가 제한되었고, 괜찮은 일자리는 점점 사라지고 시간제 아르바이트형 일자리만 남게 되었다.

우리 사회의 허리라고도 할 만큼 국가 경제를 지탱해주는 힘의 근간인 중간계층이 취약해지면서 경제성장과 국민 통합에 근본적인 장애를 가져오게 되었다. 경제적 양극화에서 나타나는 병폐를 치유하여, 선진국 진입의 문턱에서 정체된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을 이어가고 사회의 안정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이 가능할까? 유엔과 각 나라 그리고 많은 경제학자들이 새롭게 제시하는 해결 방안 중 하나가 사회적경제, 공유경제이며 그 유효한 대안이 협동조합임을 알게 되었다.

나의 새로운 삶―협동조합 운동

2012년 내 나이 60세가 되었다. 생각해보면 20년 학창시절, 20년 재야활동, 20년 정치생활로 정확히 구분되었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20년은 무엇을 할까? 좀 더 보람차고 의미 있는 일을 찾고 싶었다. 협동조합운동은 이러한 내게 아주 딱 들어맞는 과제라고 생각됐다. 협동조합 실천운동 중에서도 파급력 좋은 모범적인 협동조합 기업을 상상하니 자신감도 생기고 힘도 솟았다. 협동조합운동에 뛰어들려면 우선 공부도 해야 하고,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도 규합해야 했다.

무엇보다도 협동조합운동에 대해 이념성으로 비춰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백담사 조오현 스님의 책 <벽암록(碧巖錄)>(불교시대사 펴냄)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이 '이념의 위험성에 대한 경각'이었다. 이념은 사람을 규정짓고 낙인하며, 이념의 잣대로 미워하며 비난하고, 심지어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죽이기도 하는 자연계에서 인간만이 가지는 위험한 것이 이념의 잣대였다. 사람이나 자연이나 무상(無常)한 것인데 말이다. 협동조합운동이 좌파라거나 진보 성향이라는 이념성으로 비치면 똑같은 위험성에 빠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협동조합에 관한 국내의 글을 접하면서 가끔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는 내용을 종종 발견하곤 했다. 또한 어떤 학자는 '사회적경제기본법'에 대해 '사회적기업이나 돕겠다는 정치권, 시장을 왜곡해 좀비 기업만 양산할 뿐'이라거나, 사회적기업이나 협동조합이 지속 가능하지 않은 기업을 나랏돈으로 연명시키면서 기존 영세업체에게는 피해만 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협동조합의 성공적 모델은 협동조합에 대해 이러한 우려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인식 전환의 계기를 제공할 것이라 기대해본다.

시장 경쟁력이 있는 협동조합 기업은 무엇일까?

협동조합은 시장을 존중한다. 그렇다면 치열한 경쟁을 뚫고 기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경쟁력 있는 협동조합 기업을 선택하는 데 있어 중요한 점은 무엇일까?

첫째로 협동조합 기업의 효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소득 증대 효과이다. 둘째로 불신사회에서 '신뢰와 정직'을 다시 경쟁력으로 삼을 수 있는 사업 형태가 유리할 것이다. 셋째로, 개선 효과가 명확하고 뚜렷한 분야여야 할 것이다. 넷째로, 조합원이나 협동조합 기업의 직원이 안정적으로 봉급을 받을 수 있는 수익성이 보장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기준으로 볼 때 막상 할 수 있는 사업은 많지 않았다. 택시협동조합을 포함해 장례협동조합, 도시농업협동조합, 청소용역협동조합, 화물협동조합 등에 대해 시장조사와 타당성을 검토한 후 택시협동조합을 하기로 결론지었다.

1999년에 서울의 '금구상운'에서 11개월 동안 택시기사로 일한 경험이 계기가 되었다. 새벽 3시와 오후 3시를 기준으로 하루에 12시간씩 운전대를 잡았던 경험으로 택시회사와 택시기사들의 상황에 대해 나름의 인식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17대 국회의원이 되고서는 택시에 부과하던 특별소비세 폐지 법안을 내게 되었다. 이 법안의 관철을 위해 당시 2만 명의 법인택시 기사들과 1만 명의 개인택시 기사들이 여의도에서 집회를 열었다. 안타깝게도 그 법안은 2표 차이로 부결되었지만, 이후 부가가치세 90% 환급과 이 환급금이 전액 기사들의 봉급으로 사용되도록 하는 조치가 마련되었다. 택시협동조합을 운영하는 데 있어 이러한 경험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자산으로 택시기사들의 신뢰를 얻는 데 있어서도 결정적으로 중요한 요소가 될 것임은 자명한 일이었다.

믿음과 신뢰는 협동조합을 하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무형의 자산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협동조합에서 신뢰는 얼마나 중요한가? 사실상, 협동조합운동 초기 이탈리아나 스페인에서도 주교와 같은 성직자나 사회적으로 신뢰받는 정치인들이 협동조합을 이끌었다. 출자금을 내는 조합원들의 입장에서 보면 출자금의 안전성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는 협동조합이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 신뢰는 무형의 사회적 자산(Social Asset)인 셈이다. 이런 면에서 택시협동조합과 관련하여 나는 비록 넉넉한 초기자본금을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택시 문제와 택시기사들의 어려움은 물론 기대와 희망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므로 사회적 자산을 조금은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 택시업계의 실정

'택시협동조합'은 개선 효과가 매우 큰 사업이다. 택시기사들이 사업주의 '선이익 보장제'와 다름없는 사납금제에서 해방되기만 한다면, 그것 하나만으로도 막장 노동자처럼 인식되고 있는 택시기사라는 직업의 가치가 달라질 것으로 생각한다.

현재 택시기사들은 하루 12시간 동안 일해 12만5000원에서 14만5000원의 사납금을 납입하고, 만근(輓近)을 하면 한 달에 120만 원 안팎의 기본급을 받는다. 장시간 노동인데 반해 최저생계비는 물론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금액이다. 이보다 좀 더 소득을 높이기 위해서는 사납금 액수보다 초과 달성해 사주와 6대 4로 배분되는 금액을 더 받아야 한다. 안타까운 것은 경미한 접촉사고로 인한 차량의 부품 파손의 경우에 당연히 회사가 처리해야 할 운송비조차 기사들에게 전가하고, 사고에 대한 보험 처리 비용도 전부 또는 일부를 기사에게 부담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월급은 적고 들어가야 할 돈은 많다 보니 택시기사들이 교대근무 없는 '일차'나, '휴무 승차'라는 살인적 노동으로 내몰리고 있다. 막심 고리키는 '일이 즐거우면 인생이 낙원이지만, 일이 의무이면 인생은 지옥'이라고 했다. 택시협동조합은 이러한 현실을 명쾌하게 해결할 가장 좋은 방법임이 틀림없었다. 사납금을 채우기 위해 때로는 신호 위반, 과속 운전을 하고 더러는 승차 거부, 부당 요금도 일삼는 일은 없어야 한다. 승객에게 불친절하고 승객을 불안하게 하는 일도 없어져야 한다. 다시 말하면, 협동조합이야말로 택시의 열악한 현실을 타개하는 개선 효과가 가장 뚜렷하고 명확한 영역이라 생각했다.

▲ 지난 7월14일 '한국택시협동조합' 출범식에 참석한 박원순 서울시장. ⓒ연합뉴스

'서기운수'의 인수에 나서다


협동조합을 꾸리기 위해 택시회사 물색에 나섰다. 택시회사의 거래는 업계 안에서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관행이다. 인천, 부산 등 지역에서 몇 개월에 걸친 '밀당'이 진행되었으나 매매 협상은 번번이 실패였다. 거래도 어렵지만 이런 사적 거래도 경험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또한 거래에서 위험한 요소도 많다. 그중에서도 거래가 종료된 후에도 종종 문제가 되는, 어음 거래 같은 장부 외의 부채, 소위 말하는 부외부채(簿外負債)가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2014년 11월 17일 자 <매일경제>에 공시된 서기운수의 법원 M&A 방식 매각 공고를 접하면서 사적인 거래에 비해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입 절차가 매우 복잡하고 까다로워서 법원 M&A 전문 법무법인의 조력을 받기로 했다. 문제는 돈이었다. 입찰금액 40억 원 중 계약금 4억 원을 선(先) 예치하고 잔금 36억 원에 대한 잔고 증명서와 통장사본을 제출해야 했다. 계약금 마련을 위해 나는 눈물을 머금고 집을 팔았고 '한국협동조합연대'의 이사들도 힘을 보탰다. 지인들에게 정치할 때도 해보지 않던 아쉬운 소리를 하면서 난생처음 사방에서 돈을 끌어모았다.

그러나 자금이 절대 부족한 상태에서 협동조합의 정신이 옳다는 믿음 하나로 벌인 일은 피를 말리는 과정이었다. 안 그래도 삐끗하면 전 재산을 날릴 판국인데, 잔금 납입 일을 이틀 앞두고 청천병력이 떨어졌다. 돈을 빌려주기로 했던 대주(貸主)가 자신들은 정치인에게는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며 갑자기 안 되겠다는 것이었다. 정치인 출신이란 게 사업자금을 모을 때 그렇게 발목을 잡을 줄 몰랐다. 소식을 전해 들은 아내는 충격으로 병원응급실에 실려 갔다. 예순 넘은 나이에 알량한 재산마저 홀랑 날려먹고 알거지가 되게 생겼으니, 버틸 재간이 없었을 거다.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 모든 종류의 금융 즉, 은행·저축은행·캐피털·대부업 할 것 없이 모두 찾아다녔지만 돈은 냉정했다. 은행은 담보 없이 단 한 푼도 빌려주지 않았다. 울며 겨자 먹기로 인수자금 상당액을 사채시장에 의존해 간신히 잔금을 치르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나는 '울트라 을(乙)'이 돼야 했다. 17대 국회에서 정무위원회 소속으로 금융권 관련 법률 심의를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멋모르고 했던 것만 같다. 시장통에서 일수하는 사람들도 개개인의 정보를 잘 알고 돈을 꿔주는데 반해서, 고급 인력이 모인 은행은 산업적 기능이 없는 단순한 대부업에 불과한 현실이 개선되어야 함을 온몸으로 절감했다. '가난한 사람들이 더 많은 이자를 물어야 할까? 우리나라에서는 왜 가치와 윤리를 생각하는 은행이 없을까? '보노보 은행'은 없고 '침팬지 은행'들만 있을까?' 하는 한탄이 절로 나왔다. 이틀 만에 36억 원이라는 거액을 마련하면서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게 되었다.

사람이 자본을 고용하는 협동조합

2015년 1월 5일 '한국협동조합연대'는 서기운수의 법원 M&A 우선 협상자로 선정되고, 1월 7일 자로 본 계약체결이 완료됐다. 이때부터는 최단기간 내에 출자조합원을 모집해야 했다.

나는 '협동조합택시 우리사주 조합원 모집 안내'라는 전단지를 들고 택시기사들이 모인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갔다. 서울역과 서부역에 늘어선 택시들, 그리고 김포공항의 국제선과 국내선, 삼표에너지, 연일가스 등의 가스충전소 등에서 택시기사들에게 홍보전단을 나누어 주었다. 세 차례의 택시협동조합 설명회와 수차의 택시회사별 방문 간담회를 열었다. 반응은 뜨거웠다. 열흘 동안 157명의 조합원 가입신청서를 받았다. 조합 가입 희망자들이 출자금을 현금으로 가지고 있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해 은행권에서 기사들에게 출자금을 대출해주는 방식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그러나 신용불량자와 대출이 불가한 저신용자가 예상보다 너무 많았다. 조합원 가입서를 제출한 사람 중에서 현금 출자가 가능한 사람은 전체의 5%에도 미치지 못했으며, 저신용자가 거의 70%에 가까웠다. 은행에서 대출이 불가능한 이분들을 위해서 비상한 돌파구를 마련해주지 않는다면, 택시협동조합은 해보지도 못하고 망하게 될 처지였다. 또다시 입이 바짝바짝 마르고 밤잠을 설치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궁하면 통한다고, '신용보증기관에서 이들을 보증해준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서울신용보증'에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서울신용보증에서는 택시회사나 택시기사들에게 보증을 해준 적이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서울보증보험의 경영진과 실무진을 오가면서 설득에 설득을 거듭했다. 현재 법정관리 상태에서 40%대의 가동률로도 흑자를 내고 있으며, 협동조합의 조합출자금은 조합이 관리하기 때문에 원리금 상환에도 문제가 없음을 입증하기 위해 현재 서기운수의 재무제표와 각종 자료를 동원하여 설명해나갔다. 내가 국회의원이던 때와는 갑과 을이 바뀌었다. 나는 알고 있었다. 진심을 다한 지극한 정성은 반드시 통한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자 서울보증의 분위기가 서서히 바뀌고 점차 긍정적인 반전이 이루어졌다. 결국 '한국택시협동조합'과 '서울보증보험', 그리고 '하나은행'의 3자 협약이 성사되었다. '택시근로자 중 한국택시협동조합의 조합원이 되기 위하여 조합의 추천을 받은 자'에 한해서 출자금 2500만 원을 6개월 거치 5년 균등분할상환 방식으로 신용등급 7등급 이상인 자는 전원 대출이 가능하게 되었다. 안전장치로 '한국택시협동조합'의 회계는 서울보증과 하나은행이 지명하는 회계법인에 의해 전표 하나도 남김 없이 처리하도록 하고, 조합원이나 은행 또는 서울시든 누가 보더라도 항상 투명한 경영이 되도록 하는 장치를 다짐했다.

그래도 문제가 남았다. 신용등급 8~9등급과 신용불량자에 대해서는 또 다른 대책이 있어야 했다.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서울시 사회경제과와 서울시 산하기관인 '서울신용보증재단'을 찾았다. 중소기업지원자금 8억 원을 지원해주면, 택시협동조합이 이 돈으로 저신용자와 신용불량자들에게 재대출을 해주는 방안에 대해서 문의했다. 그나마 신용불량자들이 취업해 일할 수 있는 곳이 유일하게 택시업계뿐인데, 서울시마저 이들을 외면한다면 이들은 곧바로 빈곤층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누차 강조했다. 더군다나 협동조합에서 신용불량자를 외면한다면, 이는 의사가 돈이 없어 죽어가는 환자의 치료를 거부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냐고 설득했다. 우여곡절 끝에 빠르면 9월 중으로 보증이 가능한 방향으로 협상이 이루어졌다. 이로써 자본이 사람을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자본을 고용하는 협동조합의 정신이 구체화되는 하나의 사례가 만들어진 것이다.

한국 최초로 택시협동조합 출범하다

지난 7월 14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한국 최초의 택시협동조합 출범식이 이뤄졌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서울시 도시교통본부장을 비롯한 서울시 관계자들과, 멀리 부산에서 온 송기인 신부님, 팔만대장경연구소장 종림 스님, 협동조합운동의 대부 황민영 선생 등 내·외빈, 그리고 협동조합택시의 큰 힘을 보태주신 서울신용보증, 하나은행 관계자들이 출범식에 참석했다. 무엇보다도 조합원들의 눈물 글썽이는 환희의 얼굴들이 서울광장을 가득 메웠다.

노란 협동조합택시의 트렁크가 일제히 열리면서 알록달록한 '희망 풍선'들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이 모습은 주요 공중파와 방송과 신문사 등 거의 모든 언론 매체들에 의해 전국에 보도됐다. 인수 후 한 달 만인 7월 말에 첫 배당이 이루어졌다. 조합원들에게 기존 월급보다 55만 원이 많은 배당금이 주어졌다. 택시 가동률이 70%가 넘을 경우 기존 회사택시 월급에 70만 원의 추가 배당을 기대하는 것이 허황한 꿈이 아니라 가능한 현실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연말이 되면 또 다른 추가배당을 약속했다. '사람이 자본을 고용한' 결과다.

예상했던 대로 협동조합의 효과가 새로운 곳에서도 나타났다. 아직은 기간이 짧지만 회사택시 시절, 한 달에 7~10건씩이던 교통사고가 협동조합 인수 후 한 달 동안 단 한 건도 없었다. 이것이야말로 협동이 경쟁력이 되는 것을 실증하는 예이다. 협동조합이 출범하고 서기운수 시절부터 있었던 노동조합이 해산함에 따라 노조에 들어가던 경비가 연간 1억 원가량 절약됐다. 서울시 포상금 8000만 원, 보험료 절감액 1억 원 등 약 3억 원의 개선 효과도 모두 조합원들에게 돌아갈 것으로 예상된다.

협동조합택시에는 사납금 대신 월수입 계산을 위한 기준 금액이 있을 뿐이며 기준금액을 초과하는 금액은 전액 기사의 몫이다. 하루에 번 돈을 모두 조합에 납입하면 조합의 공통비용과 경비 등을 제외한 이익 모두를 조합원에게 추가로 배당한다. 그동안 밥값이나 담뱃값 등을 위해 하루하루 푼돈으로 써버리던 문제점을 없애고자, 월 정산을 원칙으로 50만 원의 복지카드를 선지급한다. 사고 처리 비용은 전액 조합에서 보험으로 처리한다.

한국택시협동조합이 소재한 서울 마포 부근의 택시회사들에 비상이 걸렸다. 그렇지 않아도 기사가 모자라 택시 가동률이 낮은 중에 기사들이 집단적으로 퇴사하여 협동조합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협동조합 소속 기사들과의 수입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한 회사는 벌써 사납금을 20만 원 낮추었다고 한다. 택시기사들에게 불리했던 택시업계의 편파적인 조건들에도 변화가 보이는 것이다. 그 역시 반가운 소식이다. 이제 전국적으로 택시협동조합이 확산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택시협동조합에는 이미 교사, 수의사, 외교관 근무자 같은 전문직 종사자나 공무원 대기업 간부 등에 이르기까지 안정적 일터에서 은퇴한 사람들이 다수 참여하고 있다. 택시협동조합이 이제 막장 직장이 아닌 인생 이모작의 품위 있는 일터가 되도록 여러 면에서 힘써나갈 것이다.

계간지 <생협평론>은 (재)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가 펴내는, 협동조합을 다루는 본격적인 전문잡지로서 협동경제·나눔·평화에 대한 의견들이 교환되는 공간입니다. 정보지이자 실천적 교육서로서 협동조합 활동가뿐 아니라 협동조합에 관심 있는 모든 이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전달하고, 협동조합을 둘러싼 다양한 사회·경제·문화적 이슈를 다룹니다.(☞ 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 바로 가기)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