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봄부터 가을까지 끝없는 가뭄이 계속되었습니다. 주말이 되어서야 들여다보는 도시텃밭에는 물이 따로 없습니다. 웅덩이가 하나 있는데 올해는 그마저도 말라있기 일쑤였습니다. 산과 들은 빨갛게 타들어가고 예년에 보지 못했던 낯선 벌레들이 밭을 점령해 버립니다. 시설재배를 하는 농부들은 관정을 새로 팝니다. 지하수가 동나고 먹을 물이 부족한 판이지만 심어 놓은 작물들이 말라가는 것을 손 놓고 볼 수 없는 것이 농부의 심정입니다. 그렇게 애쓴 보람도 없이 절단 나 버린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닙니다.
다행히도 토종텃밭의 작물들은 살아남았습니다. 모양을 보면 파란 사과 같고 잎을 보면 오이를 닮아 모두가 궁금해하던 사과참외는, 순을 치지 않아도 그저 풀을 베어 덮어준 것만으로도 풍성한 수확을 거둬들이게 했습니다. 참외는 모두 노랗다는 고정관념을 깬 토종참외로 인해 도시농부들은 토종씨앗의 우수성에 대해 놀라기 시작했습니다. 토종씨앗은 최악의 기상조건에 견뎌내며 환경에 잘 적응하여 토착화된 종자를 말합니다. 사실 수많은 세월 동안 이 땅에 살면서 이런 가뭄을 처음 겪진 않았을 것입니다. 성장은 더디나 끈덕지게 살아남는 방법을 가장 잘 아는 토박이 식물을 조상들이 작물로 선택해 심어 왔던 덕분이지요. 이들은 병에 걸리더라도 고유의 특성으로 살아남는 수평 저항성을 갖고 있습니다. 풀과의 경쟁에도 밀리지 않고 병충해에도 강해 유전자원으로 이용되는 성질이 있으니, 이런 보물이 또 어디 있을까요.
석유를 채굴해 짓는 농사
사실 도시농부들이 처음부터 토종작물을 심은 것은 아닙니다. 종자도 공산품처럼 수입산이 있고 국내산이 있나 보다 하는 것이 전부였고, 친환경이니 유기농이니 하는 경계가 모호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내가 한 번 직접 키워보자는 생각으로 무작정 시작한 농사였습니다.
밭을 얻고 믿을 만하다고 생각되는 농협과 화원에서 씨앗을 구입했습니다. 자신이 없는 것은 키워진 모종을 사다 심었지요. 부지런히 물도 주고 비료도 사다가 주고 풀도 뽑았습니다. 밭에 풀이 있으면 게을러 보인다고 핀잔을 주시던 부모님의 말씀도 떠올랐습니다. 풀은 죄다 뽑아서 멀리 던져 버립니다. 제 밭에서 난 풀이야말로 작물에게는 가장 좋은 거름이라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 도시농부의 시행착오는 계속되었습니다. 피 속에 잠자던 경작본능이 꿈틀거리더니, 흙을 만지고 밟고 흙냄새를 맡는 일에 익숙해졌습니다. 바람에 실려 오는 비냄새를 알아채기도 하고 일기예보에 귀 기울이며 하늘을 보는 일도 많아졌습니다.
농사는 책으로만 배워서 짓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경험이 선생이라는 말처럼 가장 좋은 스승은 농사를 평생 지어 온 분이겠지요? 봄부터 경운기도 빌려서 밭을 갈고 부지런히 쫓아다니면서 언제 무엇을 심는 것인지도 배웠습니다. 검은 비닐을 사다가 흙을 덮으면서 독한 제초제보다는 훨씬 안전할 거라며 스스로를 설득하였습니다. 병충해가 생기면 얼른 달려가 그분들이 권하는 약도 사서 뿌리고 비료도 뿌려 보았습니다.
그래도 한 번 발생한 병충해는 잡기 어려웠고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화학농약을 사용해야 했습니다. 같은 진딧물이 발생하더라도 서로 다른 농약을 번갈아 가며 사용해야 했고 쓰다가 남은 약은 다음 해에는 쓸 수가 없었습니다. 많이 얻으려 하면 할수록 투입해야 하는 석유로부터 나온 것들로 인해 고민이 깊어지기 시작합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폭탄을 제조하던 공장이 화학비료를 생산하고, 무차별적인 살상을 위한 독가스가 농약으로 탈바꿈했다는 사실도 충격적이었고, 밭을 가는 농기계며 비닐을 비롯한 모든 것들, 심지어는 유기농업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비싼 유기자재의 과다하고 지속적인 투입과 지하수의 고갈, 토양으로 유입되고 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화학비료의 사용은 '석유를 채굴하여 짓는 농사'라는 말을 떠오르게 했습니다.
사실 관행농법이라고 하는 대단위의 농사법은 국내에서건 외국에서건 여러 가지 환경문제를 안게 되는 법이지요. 녹색혁명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가지고 시작된 대단위의 농사는 화학농약, 화학비료, 관개농업, 기계화를 통해 생산성을 높이는데 목적을 두었습니다. 거기서 작물은 상품으로만 존재합니다. 상품성이 있는 것만 골라 재배하다 보니 다양성이 사라집니다. 상품성을 떨어뜨리는 벌레를 잡기 위해 살충제 사용이 늘어갑니다. 생태계의 살생제나 다름없는 살충제의 개발은 악마와의 거래라고 불리기도 한다지요?
그만큼 관행농법은 석유에너지를 사용해야 하며 비용이 많이 들고 자연친화적이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게 합니다. 사람의 건강을 위해서 작물을 제외한 모든 생명체를 쓸모없는 것으로 단정하고 없애려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하는 양심이 일깨워지는 것이지요. 자연의 입장에선 농약으로 없애야 하는 해충도 없고 잡초라는 이름으로 전멸시켜야 할 그 어떤 풀도 없습니다. 어떻게 농사를 지어야 제대로 된 농사를 짓는 것인지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과연 농사를 짓는다는 것이 단순히 '삼시세끼'를 해결하기 위한 생산 활동에 불과한 것일까요?
농사의 시작은 흙 짓기 그리고 씨앗
이제 농부들은 농사의 시작은 '흙 짓기'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무언가를 짓는다는 말은 생명을 지키는 일입니다. 밥을 짓고 집을 짓는 것은 거기에 사는 생명을 보듬고 먹여 살린다는 뜻입니다. 작물을 키우는 일은 작물이 자라는 밭의 흙이 집이고, 그 안에 사는 뭇 생명들의 밥을 지어 먹여 살리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작물도 사람도 건강해지니까요. 더불어 농부도 건강을 지킬 수 있겠지요. 그래서 농부는 사람을 살리고 자연도 살리는 사람입니다. 뭇 생명의 살림꾼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자연을 스승으로 모시기로 합니다. 밭에 비료를 주려고 하다가 숲을 바라봅니다. 오래된 숲에는 아무도 비료를 주지 않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한 자리에 수십 년간 서 있는 상수리나무에 연작의 피해가 있겠구나' 하고 누가 옮겨 심지도 않습니다. 떨어진 낙엽은 상수리나무가 필요로 한 모든 영양소가 고스란히 남겨진 영양덩어리입니다. 다음 해를 위하여 흙으로 돌려주었다가 봄이 되면 다시 쓰게 될 테니까요. 자연에서 배운 지혜대로 농부들은 밭에서 나온 것은 밭으로 돌려주기로 합니다. 수확하고 남은 잔사며 잎이며 병든 과실까지 모조리 그 자리에 남겨둡니다. 일부러 긁고 태우고 버리는 일에 애쓰지 않습니다. 흙은 흙대로 일하게 하고, 하늘이 하는 일에 간섭하지 않아도 시간이 흐르면 사람이 개입하지 않아도 흙 짓기는 완성됩니다. 추운 겨울 동안 흙 속에는 많은 미생물이 농부가 차려 놓은 다양한 식단을 먹고 흙을 거름지게 만들어 놓습니다. 흙은 잠을 자면서 살이 찝니다. 그 살로 다음 해에 많은 생명을 키워내겠지요.
흙 짓기가 완성되면 농부는 이른 봄부터 머리맡에 씨앗주머니를 놓고 잔다는 말이 있을 만큼 흙이 녹기를 기다립니다. 씨앗은 생명입니다. 씨를 먹어야 온전히 먹은 것이고 온전한 씨앗은 온전히 자랍니다. 머리맡의 콩 주머니는 도리깨로 털지 않은 것입니다. 콩 눈이 다칠까 일일이 손으로 까고 가장 실한 놈으로 고르고 골랐습니다. 돌아가신 친정어머니는 6.25 전쟁통에도 씨앗만큼은 챙기셨다고 합니다. 총 맞아 죽는 사람보다 굶어 죽는 사람이 더 많았다고 하시면서 시집올 때 할머니께서 주신 혼수품목에도 있었다는 씨앗주머니는 끝까지 지키셨다고 합니다.
이같이 지켜온 종자들은 지금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옛날부터 대대로 심어왔던 씨앗은 사라져가고 이제 농부들은 해마다 종자회사로부터 씨앗을 새로 사서 심어야 합니다. 농부권의 중요한 요소인 '종자 주권'이 사라졌기 때문이지요. 최근 조사에 따르면 국내의 종자산업 규모는 약 4억 달러이며, 외국에 지급한 농작물 종자 로열티가 2010∼2014년에만 총 798억 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종자 시장의 약 50%를 외국업체가 점유하고 있고 2020년에는 해외 종자의 로열티 지급액이 7900억 원 규모로 급증할 것으로 농촌진흥청은 전망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우리 조상들은 씨앗을 사서 농사를 짓는 일은 생각하지도 않았지요. 우리나라는 다양하고 우수한 토종종자가 가장 많았던 나라이기도 합니다. 특히나 콩의 경우는 콩의 종주국이라 할 만큼 셀 수 없을 정도로 품종이 다양했다고 하네요. 미국은 원래 콩이 없었는데, 미국 농무부에서 우리나라에 조선 농작물 종자 확보를 위한 농업탐사원정대를 보내 1000여 종의 종자를 미국으로 가져갔다고 합니다. 이때가 1930년이었으니 우수한 종자를 확보하기 위한 불법적인 일이 얼마나 공공연하게 이루어졌을까요? 미주리주는 대표적인 콩 생산지인데 콩 종자 보관소에는 2만 종이 있고 그중에서 5000여 종이 우리 것이라니 정말 안타까운 일이지요. 게다가 1997년 IMF 때 대부분의 종자회사들은 외국계 종자회사로 주권을 넘기게 되었으니, 우리 씨앗을 사서 쓰면서도 로열티를 지불해야 하는 현실입니다.
이들이 공급하는 씨앗을 보니 예쁘게 약으로 코팅되어 있습니다. 씨앗에 묻은 약이 흙의 미생물을 죽이고 그것을 먹은 벌레들도 죽입니다. 씨앗 값이 비싸지면서 생기는 일이지요. 한 알은 하늘의 새가 먹고, 한 알은 흙 속의 벌레가 먹고 하나는 농부가 먹는다는 조상들의 넉넉함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진화의 과정을 뛰어넘은 GMO는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이 수입되고 있고, F1(잡종 1세대)종자이거나 터미네이터종자(불임성 종자)가 대부분입니다. 첫 수확은 보기 좋으나 그다음 세대는 쭉정이가 되고 3대 가서는 벌레를 이기지 못하고 4대에 가서는 모양이 변형되는 일이 벌어집니다. 즉, 형질변경이 되는 것이지요. 그런 이유로 해마다 종자를 새로 구입해야만 상품다운 작물을 키워낼 수 있습니다.
이런 종자를 보급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 나라의 토종씨앗을 말 그대로 말리기 위한 것이지요. '종자 주권'이 없으면 '식량 안보'는 어렵습니다. 토종종자를 지켜야 하는 이유입니다. 농부들은 이제 힘든 농사를 지으면서 안보까지 지키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건강한 먹을 것을 얻는다는 건
이제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흙과 강과 하늘이 건강해야만 건강한 먹을 것이 나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농부가 애써 키우지 않아도 절로 자라는 자생초는 작물을 가뭄으로부터 지켜주며 거센 바람에 쓰러지지 않도록 지지해 줍니다. 적당히 벌레에게 먹힘으로써 작물을 보호하기도 합니다. 풀거름을 쓰면 줄기가 튼튼해져서 바람에 쉽게 쓰러지지 않게 해 줍니다. 화학비료 대신에 부엽토를 이용한 미생물액비나 음식물퇴비는 뜻하지 않게 많은 손님이 찾아오게 합니다. 최근 몇 년간 창궐하는 미국선녀벌레를 먹이로 하는 무당거미는 아주 유능한 텃밭지기입니다. 가뭄으로 산에서 밭으로 내려온 수많은 벌레들이 작물로 달라붙습니다. 토종텃밭에는 이를 먹이로 하는 거미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밭의 가장자리를 에워싼 코스모스는 기피제가 됩니다. 흙은 손으로 쉽게 뭉쳐지고 손으로도 팔 수 있도록 부드럽습니다. '에구머니!' 하는 소리에 돌아보면 손가락 굵기만 한 지렁이가 기어 나오고 곰실곰실한 굼벵이도 나옵니다.
빨갛게 익은 고추는 종류별로 말렸습니다. 건조기에 말린 것은 종자로 쓸 수 없기에 여기저기 해바라기를 해 가며 말린 씨앗을 모았지요. 인천에서 처음 열린 도시농부축제에서는 토종씨앗과의 만남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씨앗나눔행사를 했습니다.
토종고추 시식행사를 통해 한 개를 다 먹은 사람에게 고추씨앗을 나눠 드렸습니다. 흙 놀이를 하는 아이들에게는 사과과 참외 씨앗도 주었습니다. 지금 토종텃밭에는 토종배추들이 가뭄을 이기면서 무럭무럭 자랍니다. 수백 년 전 조상들이 담갔던 김장배추가 이것일까요? 그 맛은 어떨까요? 무척이나 궁금합니다.
월간 <함께 사는 길>은 '지구를 살리는 사람들의 잡지'라는 모토로 1993년 창간했습니다. 사회적 약자와 생태적 약자를 위한 보도, 지구적 지속가능성을 지키기 위한 보도라는 보도중점을 가진 월간 환경잡지입니다. (☞바로 가기 : <함께 사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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