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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의 수상 소식에 '분노'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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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국민연금의 수상 소식에 '분노'해야 하는 이유

[시론] 홍콩발 '올해의 아태 최우수 연기금' 선정 속사정

국민연금기금이 해외 기관으로 부터 최우수 연기금으로 선정되었다는 기사가 각 언론에 일제히 보도됐다. 지난 6일 홍콩에 있는 투자연금관련전문지인 아시아 에셋 매니지먼트(AAM)가 한국의 국민연금기금을 '올해의 아시아, 태평양 최우수 연기금'으로 선정했다는 것이다.
  
  이에 고무된 김호식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언론과 인터뷰에서 '향후에도 국내외 언론과의 유대를 강화해 가입자들로부터 신뢰받는 최고의 사회보장기관이 되겠다'는 소감을 밝혔다.
  
  국제적 위상이야 어찌되었든 외국 잡지로부터 상을 받았다니 그리 나쁜 일은 아닐 터인데, 수상 이유가 그리 탐탁하지 않다. 외국 투자전문잡지가 국민연금기금에 러브콜을 보낸 속내가 뻔히 들여다 보이기 때문이다.
  
  복지투자는 0.1%인데 주식투자는 24%
  
  AAM은 국민연금기금이 최우수 연기금으로 선정된 배경으로 기금운용전략, 운용수익률 증진, 기금운용체계 개선, 가입자와 신뢰 제고 등을 꼽았다. 수상 이유의 실체를 살펴보자.
  
  첫째, 국민연금기금의 자산운용전략 변화가 높이 평가됐다. 최근 국민연금기금은 국내 채권 중심에서 벗어나 주식, 해외부문, 대체투자 등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한마디로 '공격적 투자'를 강화하고 있단 이야기다.
  
  2004년 전체 기금의 9%에 불과하던 국내주식투자 비중은 2006년 10.9%로 늘어나다가 작년엔 무려 15.1%로 급증하였다. 금액으론 2006년 20.7조원, 2007년 33.1조원이다.
  
  올해는 더 숨가쁘다. 국민연금기금의 전체 규모는 2007년 말 기준 220조원이었고, 올해 251조원으로 31조원이 늘어날 전망이다. 증가분 중 2/3인 21.1조원(국내주식 9.5조원, 해외주식 11.6조원)이 주식 부문으로 간다.
  
  먼저 국내 주식부문을 보면, 전체 기금의 17%로 확대되어 42.6조원이 배정됐다. 작년 33.1조원에 비해 9.5조원이 증가한 것이다. 만약에 투자허용범위 ±5%를 적용하면 전체기금의 22%(55조원)까지 국내주식 투자가 가능하다. 올해 초 경제부처가 침체에 빠진 주식시장 부양을 위한 국민연금기금의 조기 집행을 이야기한 배경에는 주식시장의 큰 손으로 성장한 국민연금기금이 있었기 때문이다.
  
  해외주식 투자도 심상치 않다. 2006년 전체 기금의 0.7%(1.3조원)에 불과하던 해외주식 부문은 2007년 2.5%(5.4조원)으로 4배 늘어났고, 올해엔 6.8%(17조원)으로 다시 약 3배 증가한다. 정신 차리기 힘들 정도의 빠른 속도이다.
  
  작년에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는 중기 자산배분안(2008~2012년)을 확정한 바 있다. 2012년에 국내주식 비중 20%, 해외 주식 비중 10% 등 기금의 30%를 주식부문에 운용한다는 것이다. 당시도 주식투자 확대가 너무 빠르다는 문제를 안고 있었는데, 첫 해인 올해에 벌써 주식 비중이 24%(국내 + 해외)에 달하고, 투자허용범위까지 감안하면 거의 30%에 도달할 수도 있다.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가 주식투자 확대를 향해 달려가는 모양새다.
  
  참고로, 현행 국가재정법은 각 기금에게 '안정성·유동성·수익성 및 공공성을 고려하여 기금자산을 투명하고 효율적으로 운용'할 것을 요구하고 있고, 국민연금법도 국민연금의 재정 안정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복지사업 투자를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국민연금기금 중 복지부문 투자는 0.1%에 불과하다.
  
  기금운용위원회에서 가입자단체를 내쫓는 이유가 뭘까?
  
  둘째, 국민연금기금의 수익률에 대하여 후한 평가를 내렸다. 지난 3년(2005~2007) 국민연금기금의 평균 수익률이 6.64%였다. 이는 국민연금기금이 설정한 벤치마크 수익률에 0.09% 높은 수준이다. 자산운용기관으로서 벤치마크 수익률을 달성했고, 이 과정에서 주식부문 호황이 수익률 달성에 기여했다.
  
  이 때문에 국민연금기금의 주식 투자 확대가 잘 한 일이라는 주장도 상당히 많다. 아직도 외국 연기금에 비해선 턱 없이 부족하다는 설명도 덧붙힌다. 하지만 국민연금기금의 주식운용 절대액이 시장 상황에 따라 축소하거나 확대되는 것이 아니라 급속히 증가하는 방향으로만 치닫고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당장 올해 주식시장은 작년에 비해 약세를 보이고 있고, 미국 서브프라임발 불안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뇌관으로 금융시장을 감싸고 있다.
  
  국민연금기금은 국민의 노후예탁금을 운용하는 공적기관이다. 중장기 수익률도 고려해야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기금운용의 안정성이다. 고수익은 고위험을 수반한다는 상식을 잊지 말아야 한다.
  
  셋째, 국민연금기금 체계가 개선되었다고 한다. 이전에 비해 기금운용 심의, 평가과정 등이 개선되었다는 취지인 듯 하나 사실은 정반대다.
  
  200조 원 이상을 주무르는 기금운용위원회는 비상설 회의체에 불과하다. 복지부장관이 위원장으로 2~3달에 한번씩 호텔에서 모여 아침을 먹으며 한마디씩 하는게 전부다. 결국 보건복지부가 정한대로 국민연금기금 운용계획이 확정된다. 세계 어디에도 거대기금 지배구조가 이렇게 허술한 곳이 없다.
  
  게다가 노무현 정부가 국회에 제출하여 계류되어 있는 국민연금기금운용 관련법 개정안은 가입자 대표를 지배구조에서 내쫓고 있다. 개정안은 위원회 구성을 현재 21명에서 7명(위원장, 민간위원 5인, 기금운용공사 사장)으로 줄이면서 기존 가입자대표를 배제하였다. 지금까지 가입자단체를 회의 들러리로 활용하였지만, 이제는 아예 기금운용 심의과정에서 빠지라는 것이다. 국민연금기금 운용에서 안정성을 강조하던 가입자대표들, 국민연금기금의 주인들이 자기 집에서 쫓겨나는 꼴이다.
  
  쌍수를 들어서 환영하는 사람들도 물론 있다. 가입자대표들의 빈 자리를 차지하게 될 민간투자전문가들이다. AMM이 이를 반기는 게 당연할 일이다.
  
  국민연금을 자산시장 부양수단으로 써도 좋은가?
  
  넷째, '국민연금기금이 가입자의 신뢰를 제고했다'는데 이 역시 황당한 평가다. 국민연금기금이 글로벌 오피니언 리더들과 교류를 확대하고, 찾아가는 고객서비스를 개발했다는 주장인데, 지나가는 시민 가입자들에게 '과연 국민연금에 대한 믿음이 새록 새록 솟아나냐'고 물어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지금까지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관리공단은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을 조장해왔다. 이들은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기 위하여 '기금 고갈론'을 유포했다. 한국의 국민연금 특성 상(후세대에 일정 재원을 의지하는 수정적립방식), 미래 재정에 대한 대비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현행 국민연금법에 따라 5년마다 재정조정 조치가 이뤄지기 때문에 기금 고갈은 이론적으로만 존재하는 논리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향후 40년 후에 기금이 소진되는 '보험수리적 시나리오'를 마치 현실화될 미래 인양 주장했다. 그러면 가입자들이 보험료율을 올리거나 급여율을 내리는 개정안에 동의해 줄 것이라 기대했던 모양인데, 가입자들은 불안한 국민연금을 아예 떠나자 했다. 이 불신 조장을 도대체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상을 받는 일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어떤 상인지를 보아야 한다. 왜 홍콩에 있는 투자전문 잡지가 국민연금기금의 어깨를 두드리며 호의를 표하는 지. 이 최우수상은 국민연금기금의 주인인 가입자를 위한 상이 아니다. 국민연금기금을 자산운용시장의 부양수단으로 삼고자 하는 투자자를 위한 상일뿐이다.
  
  이 엉뚱한 표창 사건을 보며, 가입자들은 분노하고 각성해야 한다. 진정 연금주권운동을 펼치지 않으면, 우리의 노후예탁금마저 위험할 수 있다. 국민연금기금 운용과정에서 가입자들이 주체로 나서야 하며, 국민연금기금의 공공적 성격을 강화할 수 있는 대안운용전략도 세워야 한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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