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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도시에서 검은도시 된 후쿠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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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도시에서 검은도시 된 후쿠시마

[살림이야기] 체르노빌, 후쿠시마 다음은? ②

후쿠시마(Fukushima, 福島)는 '복된 섬'이라는 뜻이다. 모두 복되게 여긴 이곳이 5년 전인 2011년 3월 11일, 핵발전소 폭발사고가 나면서 참혹하고 불행한 지역이 되어 버렸다. 산과 들이 오염되고, 사고는 여전히 '수습 중'이고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지난 2월 나는 일본 후쿠시마의 한 마을, 도미오카에 다녀왔다. 지금은 인적이 끊긴 곳이다.

살 수 있는 곳과 없는 곳, 경계는 낮은 울타리

세상에서 가장 성가신 물건, 사용후핵연료. 핵발전 역사가 60년이 넘었지만, 아직 처분은커녕 보관조차 여의치 않다. 핵발전소는 마을과 도시가 통째로 피난할 만큼 엄청난 대형 사고를 네 번이나 냈다. '초대형 핵발전소 사고 10년 주기설'이라는 말도 생겼다. 미국 쓰리마일(1979년 펜실베니아 쓰리마일 섬에서 발생한 원전 사고), 옛 소련 체르노빌(1986년 우크라이나 북부 체르노빌에서 발생한 원자력 발전소 화재 사건), 일본 도카이무라(1999년 일본 아키바라 현 나카군과 도카이 촌에서 발생한 방사능 유출 사고)에 이어 후쿠시마에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 일본 후쿠시마 현 도미오카의 '아톰' 초밥집. 아톰은 핵발전소를 홍보하는 만화영화 주인공으로, '플루토늄을 먹어도 괜찮다'며 견학단을 세뇌시키는 데 쓰였다. 핵발전소를 10기나 끼고 있는 후쿠시마에 어울리는 간판인지도 모르겠다. ⓒ김복녀

후쿠시마의 한 마을 도미오카는 내년부터 이른바 살 수 있는 집과 살 수 없는 집으로 갈린다. 처음엔 귀환 불가 판정을 받은 구역에 살던 사람들이 고향에 돌아가지 못해 탄식했으나, 이젠 귀환 예정 구역으로 돌아가라고 통보받은 사람들이 탄식하고 있다. 그 고향은 생활 기반이 무너진 지 오래다. 무엇보다 극심한 오염으로 살 수 없어 '귀환 불가'인 집이 바로 앞에 있는데 그 빈집을 마주 보면서 들어가 살라는 것인가. 경계라고 해봐야 가드레일처럼 낮게 친 울타리가 전부다.

도미오카는 특별히 내세울 만한 산업은 없었지만, 자연이 그만큼 더 풍요로운 곳이었다. 어른 셋이라야 안을 수 있는 벚나무는 철 따라 어김없이 화사하게 피어난다. 다른 벚꽃들도 봄이면 분홍빛으로 출렁였다 한다. 지금은 방사성 쓰레기를 담은 검은 포대가 여기저기 언덕을 이뤄 검정으로 넘친다. 그야말로 분홍도시에서 검정도시가 되어 버렸다.

이곳 주민들은 대부분 3~4세대가 함께 살았기에 가재도구도 많았다. 그날 이후 귀한 물건조차 대형 방사성 쓰레기 포대 신세다. 경황없어 챙기지 못한 돈과 귀금속은 진즉 도둑맞았다. 피난처로 배정받은 임시 주택에서 사는 생활이 길어지자, 젊은 세대는 대부분 집을 새로 짓거나 얻어 나갔다.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손자, 손녀들은 우리 집에 놀러오라고 하지, 함께 살자고는 하지 않는단다. 이재민 신세에 다세대가 함께 어울려 사는 건 이제 사치스러워졌다.

나카야마 히로코 씨가 도미오카에서 살던 집을 보여 주었다. 공원처럼 예쁜 정원이 딸린 드넓은 집이다. 담이 없고, 개울이 흐르는 예쁜 뒷마당은 동네 자랑거리였으리라. 가족이 대를 이어 110년이나 살면서 여기저기 손때를 묻히며 고쳐왔던 그 집은 쓰나미 피해도 입지 않고, 초대형 지진에도 건재했다. 가게를 운영하느라 멀리 떠나 본 적 없는 아버지는 정원 가꾸기가 유일한 취미였다고 한다. 그런 아버지도 귀환을 포기했지만, 그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귀환 포기는 위자료와 주택 지원금도 포기한다는 뜻이다. 대를 이어 살아온 곳, 골목 하나 돌면 축제 때마다 사람들이 모이던 정든 학교가 있고, 봄이면 벚꽃이 화사하게 피어나는 곳, 조금 걸으면 바다가 보이는 곳. 풍광이며 인정이며 교통까지 빠지는 것 없는 동네. 포기할 수 없지만 돌아가도 답이 없다. 휴대전화와 지갑 정도만 들고 황망히 떠난 피난길에서, 그날 모든 걸 빼앗기리라는 사실을 누구도 예감하지 못했으리라. 집과 가재도구는 물론 일터와 고향과 일상, 서로 어울려 살던 단란하고 행복했던 관계까지도….

▲ 문전옥답(門前沃畓)에 방사성 쓰레기 포대가 쌓여가고 있다. '벚꽃이 아름다운 고장'이라는 표현은 과거 이야기일 뿐이다. ⓒ김복녀

귀환정책은 기민정책

동네 확성기에서 오후 3시 전에 여기를 떠나야 한다고 계속 안내한다. 제염(除染)을 해도 사고 전에 비하면 열 배, 스무 배 오염된 곳. 이런 곳에 내년이면 들어와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본 정부는 체르노빌에 비하면 별거 아닌 사고라면서 30년 전부터 적용한 체르노빌 기준보다 4배나 높은 오염지에서 살라 한다. 피난민들은 귀환(歸還)정책을 '사지에 버리는' 기민(饑民)정책이라 부른다. 깨끗한 고향으로 되돌려놓고 살게 하라며 술렁이고 있다. 아니 싸우고 있다.

제염 노동자인 오카자키 히사시 씨는 "방사능을 피할 수 없다"는 말을 연발했다. 어느 농가에서 만난 할아버지 얘기도 들려준다. 집 주변을 제염하면서 입구인 과수원 갓길도 정리하려는 그에게 "풀 한 포기 건들지 마라. 30년 동안 가꾸어서 맛있는 복숭아를 얻어 냈다"며 고함을 쳤다고 한다. 할아버지 농부의 외침을 바로 앞에서 듣는 것 같아 내가 다 움찔했다. 핵발전소 폭발사고 한 번에 어쩔 도리 없이 견뎌야 하는 사연들은 차고 넘친다. 심근경색으로 돌연사하는 젊은이가 부쩍 늘었고, 비탄과 무상함을 감당하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 소식도 끊이질 않는다. 방사능만 아니라면 다 되돌릴 수 있는데. 방사능만 아니라면 지진으로 건물 더미에 깔린 사람들도 도와줄 수 있었는데…. 방사능만 아니라면 밝은 미래도 꿈꿀 수 있는데…. 방사능만 아니라면 어느 날 갑작스레 모든 것을 빼앗기지는 않았으리라. '핵발전소만 없었다면…'이란 유서를 남긴 농부의 무력감, 핵발전소 폭발사고 앞에서 느낀 참담함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많은 피해자들이 일본정부의 몰인정한 처사가 원통하다고 했다.

돈만 벌고 책임지지 않는 자본

핵발전소 모두 멈춰도 전기는 남아돈다. 일본은 '핵발전소 제로 사회'로 4년을 지냈다. 원자로 제조사인 '히타치(HITACHI)'가 내년까지 풍력발전기 생산을 2배로 늘리려고 공장을 신설한다는 뉴스를 도쿄행 열차 전광판에서 보았다. 자본은 참 얄밉다. 핵발전소 급증 때도 돈을 벌고, 사고 뒤처리할 때도 돈만 벌고, 책임은 지지 않은 채 재생가능에너지 시장에서도 돈을 번다.

오늘 한국에는 고장 나거나 정비하느라 멈춘 것을 빼고 핵발전소 20기가 운전 중이다. 새벽엔 60% 이상, 최대 소비 전력 시간대조차 남는 전기가 30%나 되는데, 전력거래 수급현황 안내판은 '정상'이라고만 나온다. 넘침, 과잉(過剩)이란 말을 모른다.

핵발전소는 한 번 돌리면 어쩔 수 없이 100% 출력으로 질주한다. 얄궂지만, 핵발전소는 운명상 그게 정상이다. 2000킬로미터(km) 떨어진 후쿠시마에서 핵발전소 사고가 나자 방사능 낙진을 걱정했던 우리는 고작 멀어 봐야 200km대 안에 있는 국내의 핵발전소를 용인하고 있다. '한국의 핵발전소는 괜찮겠지?'라고 믿고 싶어 하는 마음은 정상일까? 후쿠시마 제염노동자가 되뇌던 "피할 수 없다"는 말은 "(핵발전소가 도는 한 사고를) 피할 수 없다"는 말로 내게 남아 있다.

▲ 피난도, 가축 살처분도 거부한 목장이다. '치외법권'과 '핵발전소에 맞서 봉기'라는 간판을 걸었다. 그간 죽은 소 해골도 보인다. ⓒ김복녀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우리나라 대표 생협 한살림과 함께 '생명 존중, 인간 중심'의 정신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한살림은 1986년 서울 제기동에 쌀가게 '한살림농산'을 열면서 싹을 틔워, 1988년 협동조합을 설립하였습니다. 1989년 '한살림모임'을 결성하고 <한살림선언>을 발표하면서 생명의 세계관을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살림은 계간지 <모심과 살림>과 월간지 <살림이야기>를 통해 생명과 인간의 소중함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바로 가기 : <살림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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