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매스컴에서는 귀농하여 성공한 사례, 시골의 여유, 행복 등 좋아 보이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적응하지 못하면 깊은 골짜기에 내던져질 수도 있다고 말해 주는 것은 거의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사실 나도 숨 쉴 틈 없이 보냈던 공장 생활을 뒤로하고 도망치듯 대전을 떠날 땐 비슷한 생각을 한 것 같다. 내 손으로 가재도구들도 만들고, 집도 꾸미면서 가족들과 알콩달콩 사는 것을…. 귀농 3년이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공장 생활 때만큼이나 여기도 바쁘게 산다. 달라진 건 작업지시를 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생각하고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지리산 산내로 내려올 때 이렇다 할 귀농 계획을 세우지는 않았다. 땅을 좀 더 구입해서 농사를 지으며 가족들과 살면 된다는 막연한 생각만 가지고 내려왔다. 하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계획이고 힘이었다. 막상 내려와 보니 농사로 먹고산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농사 규모가 크든지 시설(비닐하우스 등) 농사를 짓든지 해야 경제적인 어려움을 덜 받을 수 있었다.
그만한 시설과 땅이 없었던 터라 바로 농사를 시작하진 못하고, 옆 마을로 귀촌한 또래 친구를 만나 1년 가까이 목조 주택이라는 것을 지으러 다녔다. 기초에서 마감까지 완성되어 가는 집을 보며 성취감과 새로운 것에 대한 만족감도 있었고, 정기적인 수입으로 가계 운영에도 도움이 되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왜 여기로 왔지?'란 생각이 들었다. 새벽부터 나가 일을 하고 저녁이 되어서야 집에 들어오는 일상이, 공장 생활과 다르지 않아서였다. 그렇게 집 짓는 일도 하고 농사 조금 지으면서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농사를 제대로 해 보고 싶었다. 그 뒤로 집 짓는 일을 접고 망치 대신 삽과 괭이, 호미를 들고 밭으로 나갔다. 농사 지식도 없고 농사와 함께 농산물 가공 일도 해 보고 싶어 남원시에서 운영하는 농업 대학에 가 공부도 했다.
충남 금산에서 자란 촌놈이긴 하지만 학창 시절의 대부분을 대전에서 보내 촌놈 아닌 촌놈이기에, 언제 어떤 작물을 심어야 할지 또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 아무것도 몰랐다. 먼저 귀농한 형님들과 동네 어르신들에게 물어물어 가며 도움도 받고, 양파·마늘·고추·감자·배추 등 참 많은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거기에 귀농 길라잡이 역할을 해 주던 오랜 지기 하상모가 NGO활동으로 아프리카 말라위로 떠나게 되면서, 2000평 가까이 되는 오미자·산마늘· 고사리 등의 농사도 맡게 되었다. 덤으로 영농조합 대표까지 맡게 되면서 농산물도 팔아야 했다.
초보 농사꾼에게 3000평 가까이 되는 밭농사와 영농조합 대표직은 알고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동트면 밭으로, 해 지면 집으로'를 반복하며, 없는 농사 기술을 몸으로 대신했다. 이웃들은 산내에서 제일 부지런할 거라며 치켜세우지만, 농사를 모르니 몸이 고생하는 것뿐이다. 그렇게 한 해 농사가 끝나고 겨울에 좀 쉴 수 있을 줄 알았다.
아…, 겨울이 농사철보다 더 바빴다. 절임배추를 시작으로 곶감, 메주, 겨우살이, 이른 봄엔 고로쇠 채취, 한숨 좀 돌리고 농사 준비를 하려니 봄은 이미 와 있고 산마늘은 겨울을 뚫고 올라와 나를 보며 웃는다. 뒤를 이어 고사리가 고개 내밀며 산골 농사의 시작을 알린다. 농토가 부족한 산골에서 수십 평생을 살아온 동네 어르신들이 존경스러울 뿐이다.
어느 날 어린이집에 다니던 큰딸 수정이가 "아빠, 회사 다니면 안 돼? '한생명'을 다니든지…" 한다. 딸의 요지는 아빠는 너무 바빠서 자기와 놀아 줄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회사라도 다니면 아빠와 여행도 갈 수 있다며 귀농 직전 함께한 일주일간의 여행 이야기를 한다.
또 어느 날은 "아빠, 달력에 망치 그려 놨으니까. 망치 그려 놓은 날은 쉬어. 아빠는 일을 너무 많이 해"라고 한다. 글을 모르는 수정이가 나의 휴일을 지정해 준 거다.
가족들과 좀 더 시간을 보내고, 아이들과 더 많이 놀아 준다고 내려왔는데, 정작 장소만 바뀌었지 중요한 할 일은 하지 못하고 농사에만 매달리고 있는 꼴이다. 오미자, 산마늘, 배추에 쏟은 열정에 10분의 1이라도 아이들과 아내에게 돌렸다면 이런 이야기는 안 들었을 텐데 다시 한 번 고민에 빠진다. 아내도 말은 하지 않지만 수정이와 다르지 않다. 한 날은 나를 보고 '워커홀릭(일 중독)'이라고 했다. 칭찬과 서운함이 묻어 있는 말이다.
이제 농사일이 두 바퀴를 돌고 있다. 올해는 지난해 말부터 시작한 농산물 가공일도 함께해야 하고, 학교며 농사 공부도 해야 한다. 일은 점점 늘어나 걱정이긴 하지만 바빠도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니 행복한 일이다. 수정이한테 달력에 망치를 그리게 하는 일은 없어야 하는데….
도시든 시골이든 다들 고만고만하게 살아간다. 욕심낸다 해도 그 욕심을 채운다 해도 거기서 거기다. 사는 데 기준을 어디에다 두느냐에 따라 삶의 만족도는 달라질 수 있는 것인데 가족들과 나의 기준이 약간은 벗어나 있는 것 같다. 대화를 통한 합의와 실천이 필요한 시기이다.
그래도 다행인 건 산내라는 곳이 젊은 귀농 인구가 많아 형님들이며 아우들이며 한 식구처럼 도와 가며 살고, 실상사와 한생명의 영향으로 초등학교 학생이 100명이나 될 정도로 젊은 귀농 인구가 많아 아이들도 친구들이 많다. 실상사 어린이집에서도 얕은 지식보다는 모든 생명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가르친다. 반은 지역사회가 아이들을 키워 줬다.
씩씩하고 건강하게 잘 자라는 아이들을 보면 귀농을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만들면, 나도 성공한 귀농 사례 중 하나가 될 듯하다. 일곱 살, 다섯 살이 된 수정이와 희경이에게 회사에 다니는 아빠보다 '농부 아빠'가 더 좋을 수 있도록 하고 싶다. 잠든 아이들과 아내를 바라보니 마냥 흐뭇하다. 나는 지리산에 사는 행복한 농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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