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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미술학원 알바계의 '골품제'를 아시나요?

[알바 수기] 미술 학원 보조 강사 아르바이트 이야기

'알바연대' 대변인이었던 고(故) 권문석 3주기를 맞아 아르바이트 노동자 수기 공모전이 진행됐다. 우수상 2편과 장려상 2편이 선정됐다. <프레시안>이 이들 작품 가운데 일부를 독자에게 소개한다.

나는 미술 학원에서 보조 강사로 일하고 있다. 미술 학원에 가서 고등학생이 낼 수 없는 퀄리티의 그림을 그리고, 학생들에게 이렇게 저렇게 그리라고 조언을 해주는 일이 내가 하는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술 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이 '꿀알바'라고 생각한다. 대부분 학원 강사의 임금이 편의점보다는 높고, 노동 강도도 낮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에게 미술 학원이라는 공간은 단순히 내가 일을 하고 돈을 버는 곳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고등학생 때부터 미술 학원 아르바이트라는 존재를 보아왔고, 이제는 2년차가 된 기간 동안 그 일을 하면서 많은 사회적인 문제를 깨닫게 해준 공간이라는 것을 미리 적어둔다.

나는 고등학교 2학년부터 미술 학원을 다녔다. 집 형편이 좋지 않았음에도 부모님을 설득해 다니기 시작한 미술 학원은 나에게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왔다. 매달 부모님은 학원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고 동시에 나에게 미안해했다. 고3이 되고 수능이 끝나자 나는 겨울방학 특강비를 내야했다. 실기 고사를 보는 날까지 모두 더해 계산해서 한번에 500만 원이 넘는 돈을 내야 학원을 다닐 수 있었다. 그 때 나는 돈을 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학원을 관두려고 했다.

그것이 분명 슬픈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히려 통쾌했다. 지금까지 나에게 '집이 어려워도 의지만 있으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고, 꿈을 이룰 수 있다'고 말했던 미술 학원 원장님과 선생님들에게 한방 날리는 기분이었다. 내가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 다 해결 될 것이라고, 다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와 노력만으로는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결국, 당시 나에게 기대를 많이 하셨던 학원 담임선생님은 내 특강비를 내주셨고, 나는 무사히 정시를 마치고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었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나서도 학원은 비슷한 말들로 나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을 마음대로 부리곤 했다. 지금까지도 미술 학원은 나에게 사람이란 얼마나 쉽게 돈에 의해 휘둘리는 존재인지를 직접 체감하게 해주는 곳이다.

어찌되었든 이제는 똑같은 그림을 그려도 돈을 받으며 그린다고 생각하니, 나는 기분이 무척 좋았다. 최저 시급 이하의 돈을 받는 수습 기간도 견딜 수 있었다. 재수생이 아닌 합격생이 바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 개학날까지는 정식으로 대학생이 아니므로 제대로 된 시급을 받을 수 없었다. 하지만 아무려면 어떤가, 드디어 내 손으로 돈을 벌 수 있게 되었는데. 그것도 내가 잘 하는 일을 하면서. 나는 기쁜 마음으로 보조 강사 일을 시작했다.

▲ 학원 풍경. (기사에 소개된 학원은 아닙니다.) ⓒ연합뉴스

나의 첫 시급은 8000원이었다. 입시를 마무리하느라 특강 기간 때 바짝 나갔던 홍대 지점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고, 지점마다 시급 계산이 조금씩 달랐다. 학원 원장님은 나의 첫 근무 시간에 나에게 시급을 책정하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수업 시간은 4시간이 한 타임이고, 아침·점심·저녁 세타임으로 하루를 나누었다.

그런데 두 타임을 근무하면 한 타임은 시급의 70%만 지급하고, 세 타임을 근무하면 한 타임은 70%, 나머지 한 타임은 50%가 되어 오래 일을 할수록 시급이 깎이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50%인 타임의 시급은 당시 최저임금보다 낮은 4000원밖에 되지 않았다.

왠지 눈치 보이는 기분을 무릅쓰고 왜 이렇게 계산하는지 물어보니, 평일에 한 타임씩 여러 날 오는 사람과 주말 하루에 몰아서 세 타임씩 근무하는 사람의 식비·교통비를 고려한 결정이라고 했다. 뭔가 이상했지만, 더 붙일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날부터 나는 평일 4시간, 주말 8시간을 일하게 되었다.

이 괴상한 책정 방식의 문제는 학기 중에 근무를 할 때보다 방학 때 더 심하게 드러났다. 학기 중에는 대부분의 보조 강사들이 학과 생활과 과제를 소화해내면서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기 때문에, 주말이라도 세 타임을 근무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내가 학원을 다닐 때 형편이 어려웠다는 것을 아는 선생님은 '네가 열심히 해서 대학도 잘 들어갔지 않느냐, 학기 중에도 노력만 하면 과제하면서 알바 충분히 할 수 있다'라든가 '방학 때 열심히 하면 네 스스로 학비도 보태고 여행도 갈 수 있다' 등의 말을 했다. 물론 내가 이제까지 학원에서 번 돈은 생활비로만 써도 턱없이 모자랐다. 고등학교들이 방학을 하자 학원에서는 '특강 기간이라 한창 바쁠 때인데 많이 좀 와서 일을 도와야 되지 않겠느냐', '할일 없는 방학 때 바짝 벌어놔야지' 등의 말을 하며 압력을 넣었다.

방학이 되자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보조 강사들이 일주일에 3~4일 정도를 세 타임 종일 일하게 되었다. 내가 하루에 버는 돈은 8000*4+5600*4+4000*4=70400원이었다. 12시간이 넘게 일하니 시간당으로 계산하면 나의 시급은 5800원 정도로 당시 최저 임금이었던 5210원을 겨우 넘기는 정도였다. 12시간 일한 것으로 하루치 임금을 계산하면 어쨌든 최저 임금보다 많이 주는 것이니 문제제기를 하기도 어려웠다.

학원이 둘러댄 이유도 변명에 불과했다. 결국은 특강 기간에 채용하는 인원도, 고용 시간도 배 이상으로 늘어나는데 임금을 제대로 줄 수 없으니, 이상한 제도를 만들어 더 효율적으로 보조 강사를 착취하는 것이었다. 교통비는 교통비대로 식비는 식비대로 들고, 입시 때로 돌아간 것처럼 학생들과 스트레스를 나눠받으며 일을 하다 보니 보조 강사 알바가 편할 거라는 선생님이 원망스러웠다.

아예 임금을 주지 않는 업무를 시키는 일도 빈번했다. 보조 강사들은 새 학기 즈음마다 '보조 강사 테스트'라는 이름으로 학원에 나와서 고등학생 때와 똑같이 실기 시험을 보듯 그림을 그려야 했고, 이 때 필요한 그림 도구와 재료도 개인이 준비하게 했다. 시험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 보조 강사 배치에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다고 하니 바쁘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해마다 '강사 공모전'이라는 것도 진행했는데, 이것 또한 열외 없이 참가해야했다. 공모전 우수작 선정 시 상금을 수여한다고 명시되어있었지만, 대부분 한 반의 보조 강사가 그림마다 전부 달라붙어 그림을 그렸고 때문에 상금을 못 받는 경우도 허다했다. 이 같은 학원의 강압적인 행사는 학원 선생님들끼리 자신이 키운 보조 강사들로 실력 경쟁을 하는 장, 혹은 학원 마케팅에 지나지 않았다.

해가 지나고, 보조 강사들끼리 서로 자신이 받는 시급 이야기를 종종 나누게 되면서 학벌에 따라 임금을 차등지급하는 학원에 대한 불만이 매우 커졌다. 상위권 대학에 다니는 보조 강사와 아닌 보조 강사들의 시급 차이는 생각보다 컸다. 높게 받으면 15000원에서 적게 받으면 7000원까지 두 배 이상의 차이가 났다. 심지어 최상위 대학 한 곳이 15000원, 상위권대학 두세 곳이 8000원, 나머지가 모두 7000원으로 극심한 차이를 보였다. 여기에 학년이 올라갈수록 붙는 금액, 재수생일 때 붙는 금액, 지점 별로 다른 시급 등을 모두 계산하면 각자가 하루에 받는 임금은 천차만별이었다.

또한 학원이 상위권 대학에 합격시킨 학생의 수로 판단되는 곳이다 보니, 학원 선생님들은 '이 선생님이 어느 대학에 갔다'라는 것을 입버릇처럼 이야기했다. 자신이 붙인 학생들을 추켜세우는 것이 곧 자신의 실적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보조 강사가 맡는 업무 또한 어느 대학에 붙었느냐에 따라 구분되었다.

상위권 대학에 간 보조 강사들은 '똑똑한 선생님'으로 불리며 학생들에게 1 대 1 과외 식으로 수업 지도를 하는 일이 많았고, 대학 간판이 낮아질수록 수많은 그림들을 옮기고 정리하고 교실을 청소하는 등의 일을 맡았다. 이것이 대학 실기 유형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과 상관없이, 선생님들은 이것을 개인의 노력 여부로 평가했고 학생들에게 '노력하면 이렇게 될 수 있다'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어떤 보조 강사는 '학생 때 조금만 더 열심히 했으면 힘쓰는 일 안했겠지 않냐', '너희들도 열심히 안 그리면 저 사람 정도의 대학을 가서 이런 일을 하는 거다' 식으로 계속되는 언행에 견디지 못하고 어느 날 아르바이트를 때려 쳤다.

또 더 심한 문제는 '내가 다니던 학원, 학생 때부터 나를 가르쳐준 친한 선생님에게 감히 이런 문제들에 대해 얘기를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다. 선생님들도 각자가 가르쳤던 보조 강사들과 친분이 있으니 보조 강사 알바를 노동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배운 능력을 활용하면서 학원도 돕고, 용돈도 버는 상부상조라고 생각한다.

아니면, 대부분의 보조 강사들이 대학교 3학년 즈음이 되면 인턴이나 유학을 가면서 일을 그만두게 되고 보조 강사를 할 학생들은 매년 생겨날 터이니 별 신경을 쓰지 않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결국은 4학년이 되어 졸업 작품을 준비하느라 바쁜 시기에도 선생님의 압박 또는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미술 학원을 벗어나지 못하고, 부당한 처사에 대해서 이것은 어쩔 수 없는 관례라고 설명하게 되는 경우까지 이르게 된다.

지금 나는 시급 10000원을 받으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경력이 2년차가 되어 처음에서 2000원이 더 붙은 금액이다. 최저 임금 만원을 외치는 지금, 나는 어찌 보면 참 좋은 환경에서 알바를 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더 좋지 않은 상황과 여건 속에서 알바 노동자의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이 있는 것을 이유로 미술 학원의 문제들을 방관하고 싶지는 않다. 여전히 나는 주말 근무 동안, 특강 기간 동안 시급이 깎이고, 여전히 세 타임을 근무하면 최저임금보다 못한 돈을 받는다.

학생들이 그림을 열심히 안 그린다는 이유로 선생님이 저녁 시간을 주지 않으면 똑같이 나도 밥을 먹지 못하고, 내가 학과 생활이 바빠서 방학 때만 근무하겠다고 하는 동안 학원은 '책임감이 없다'거나 '가르쳐줬더니 은혜를 모르고 자기 맘대로 군다'는 식으로 나를 흉봤을 것이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 중 누군가는 내가 처음 보조 강사를 할 때와 마찬가지로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고 일을 할 것이고, 일하는 동안 쓰는 붓과 물감을 사느라 입시를 할 때만큼의 지출이 생길 것이다.

이런 문제들은 기업 수준의 대형 학원과 소규모의 이름 없는 학원을 가리지 않고 일어나는 일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시급을 타임별로 깎아먹는 일이나 학벌로 차별하는 일들은 거의 모든 곳에서 일어난다. 하지만 미술 학원 아르바이트를 하는 과 동기들, 다른 과 친구들은 스트레스를 정말 많이 받지만 그래도 돈은 벌어야 하고 보조 강사 일이 다른 알바보다 낫다고 여겨 문제에 대해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디자인, 혹은 그 외 분야의 길을 걷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조차도 미술 학원 알바를 인턴, 교환 학생, 스튜디오 입사 등의 과정 전의 반짝하는 용돈 벌이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들 중 누군가는 새로운 전임 선생님이 되고 결국 또 다시 학원에서의 학벌 구조와 이상한 임금 제도를 재생산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들이 과연 미술 학원에서만 나타날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위해 공부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더 이상 절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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