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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복귀한 이후 모든 게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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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복귀한 이후 모든 게 달라졌다"

[기고] 비리로 쫓겨났던 이사장 복귀 이후 세종대학교와 세종호텔

내가 고등학생 때 한창 광우병 촛불시위가 이슈였다. 학교에서 매일 아침 친구가 가져 온 신문들을 보면서 의아했다. 분명 같은 촛불시위를 보도하고 있는데, 1면에 걸린 사진부터 기사에 채워진 글들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어느 신문은 군홧발에 짓밟히는 시민을 보도했고, 다른 신문은 경찰차를 부수는 시위대를 보도했다. 같은 일에 대한 양극단적인 반응에 혼란스러웠다. 현장에 있으면 진실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기자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기자가 돼서 진실을 직접 보고 싶었다.

언론학과가 아닌 경영학과에 진학했다. 전공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고, 같은 학교에 먼저 진학한 누나가 경영학과를 추천했기에 딱히 원치 않는 전공이었지만 괜찮다고 생각했다. 대신 학교 신문사에 들어갔다.

우리 학교엔 생협(소비자 생활협동조합)이 있었다. 생협은 학교 안의 복지 시설/서비스를 담당했다. 그런데 내가 1학년 때, 학교는 생협을 쫓아내려 하고 있었다. 이에 대한 기사를 내가 맡게 됐다. 기사를 쓰기 위해 양쪽 모두를 만나 이야기했다.

생협 직원을 만났다. 그는 "학생을 위해 우리는 없어져선 안 된다. 생협이 있기 때문에, 학생들은 싼 값에 양질의 복지를 누리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학교 직원을 만났다. 그는 "학생을 위해 생협은 없어져야 한다. 생협이 있는 공간에 임대료를 받으면 장학금을 더 줄 수 있다"고 했다. 양쪽은 모두 '학생을 위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결론은 서로 정반대였다. 혼란스러웠다.

기사를 쓰는데 애먹었다. 어느 쪽 말이 맞는지 판단이 제대로 서지 않았다. 신문사 주간교수는 학교에 하나뿐인 언론사인 만큼 민감한 일에 대해서는 중립적으로 기사를 쓸 것을 요구했다. 나는 교수의 의견에 동의했고, 양측의 입장을 똑같은 분량으로 기사에 실었다. 주간교수는 나를 칭찬했다. 왠지 칭찬이 달갑지만은 않았다.

2학년 때, 비리로 쫓겨났던 주명건 전 세종대 재단 이사장이 선임한 이사가 정당하다는 법원판결이 나왔다. 학생들은 이에 반발하며 시위에 나섰다. 나도 이것이 잘못됐다고 느꼈다. 그래서 학생들의 반발을 강조하며, 판결에 비판적인 기사를 썼다. 그러자 주간교수가 제동을 걸었다. 지난해와 같은 이유였다. 결국, 기사의 헤드라인은 판결 내용을 그대로 썼고, 이에 대한 학교본부와 학생들의 입장을 똑같은 분량으로 썼다. 중립적으로. 그런데 어쩐 일인지 내 기사를 항상 마음에 안 들어 하기만 하던 학교의 처장들이 내게 기사 잘 썼다며 칭찬을 해댔다. 어딘가 모르게 불쾌했다.

나는 학내에 민감한 문제를 도맡아 기사를 썼다. 그래서 기사를 쓸 때마다 주간교수와 학교와 승강이를 벌여야 했다. 신문사 운영비를 쥐고 있는 그들은, 기사를 중립적으로 쓰지 않으면 신문을 내지 않겠다고 했다. 덕분에 발행이 미뤄진 적이 몇 번 있기도 했다. 내 기사는 고쳐지지 않은 채 실린 적이 없다. 반복된 실랑이 속에 타협에 익숙해지고, 그게 당연한 거로 생각하게 됐다. 그렇게 3학년에 편집국장이 됐다. 내가 편집국장이었던 1년 동안, 단 한 번도 늦게 발행된 신문은 없었다. 제대로 싸우지 못했고 언제나 타협했다. 신문엔 항상 처음 쓴 기사와는 전혀 다른 기사가 실려 있었다. 나는 그런 편집국장이 되어 있었다.

나는 달리는 기차 위에 있었다. 알고 있었다. 신문사에 있으면서 배웠으니까. 달리는 기차 위엔 중립이 없다고 배웠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선 똑같이 심판을 보는 게 중립적이지 않다고 배웠다. 그런데 배운 대로 하지 못했다. 싸우는 데 지쳤고, 힘들어 하는 후배들의 표정을 견디기 어렵다는 핑계였다. 중립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 언론의 책임을 외면했다. 3년간의 학생기자 활동이 남긴 것은 부끄러움과 후회였다.

2016년 현재, 생협은 사라졌다. 학생들은 돈을 지불해야만 복지시설을 이용할 수 있게 됐고, 학내 물가는 부쩍 올랐다. 장학금은 되레 줄어들었다. 비리로 쫓겨났던 주명건 전 이사장은 이사로 복귀하고, 그의 친척도 이사가 됐다. 재단에서 학교로 지원해 주는 돈은 더 줄어들었다. 또한, 학교의 직간접적 방해로 총학생회가 없는 해를 두 번이나 보냈다. 두 번의 공백을 보낸 학생회는 더는 제대로 된 기능을 하기 어려울 만큼 역량을 잃어가고 있다. 쫓겨났던 비리 이사장이 학교에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며 학교는 서서히 학생의 학교가 아닌 그의 학교가 되어갔다.

주명건 전 이사장은 세종대에만 복귀한 게 아니었다. 세종대 재단이 간접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세종호텔에도 회장으로 복귀했다. 그가 복귀한 뒤 세종호텔도 세종대와 마찬가지로 많은 변화를 겪었다.

주명건 회장은 기존에 멀쩡히 운영되던 노동조합을 두고 새로운 노동조합을 만들어 기존 노동조합을 무력화시켜 나갔다. 그런 뒤 정규직 직원들을 수없이 해고하고, 그 자리를 비정규직으로 채워 나갔다. 남아 있던 노조원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회사에 불이익을 당했다.

주명건 회장이 복귀하기 전, 세종호텔은 호텔업계에서 선진적인 노동여건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돌아온 뒤 세종호텔의 노동여건은 급속도로 퇴보했다. 세종대도 세종호텔도, 주명건의 것이 되어 가고 있다. 더 나은 세종호텔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노동자들은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노동자는 회사가 원하면 언제든 갈아치울 수 있는 톱니바퀴가 아니다. 회사의 손익을 따져가며 장부에서 지워진 숫자는 단지 숫자가 아니다. 사람이다. 그들도 세종호텔의 구성원이다. 세종호텔의 구성원을 내치는 일이 세종호텔을 위한 일이 될 수 있을까? 이는 노동자를 세종호텔을 구성하는 '사람'이 아니라 세종호텔을 구성하는 '물건' 정도로 봐야 가능한 발상이다. 사람을 사람으로 대해 주길 바라는 게 어려운 일인가.

중립을 지킨다며 한발 물러선 태도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누군가 나서서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이 기분 나쁜 변화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세종대도, 세종호텔도 많이 변해 버렸지만, 그래도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남아 있다. 사측의 부당노동행위 속에서도 아직 노조원들은 싸우고 계시다. 나도 세종대에서 목소리를 내기 위해 독립 언론을 만들었다. 더 이상 기분 나쁜 변화를 원하지 않는다.

여기에 크진 않더라도 목소리 하나 보태고 싶다. 부끄러움과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다. 노동자와 함께하는 세종호텔을 원한다. 학생들을 위하는 세종대를 원한다. 이를 위해 나는 주명건을 반대한다.

"세종호텔 노동자들을 지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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