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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학 동문 중에 나만큼 출세한 사람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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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학 동문 중에 나만큼 출세한 사람 없어"

[후진타오 성공비결]<3> 때를 기다려라

절망에서 희망이 보인다. 후진타오 인생에서 가장 큰 절망은 감숙성에서 육체노동에 종사하던 시절이었을 것이다. 아무리 애국심이 강하다 해도 그렇지, 누가 뭐래도 힘든 것은 힘든 것이다.

당시 후진타오와 같이 유가협(劉家峽)댐에서 일했었던 고위 기술자(高級工程師) 왕신무(王信茂)는 이렇게 증언한다.

"그 때 지도자들은 '먼저 생산하고 나중에 생활하라(先生産, 後生活)'고 외쳤어요. 우리는 사실상 사생활도 없이 오직 생산만 했죠. 우리가 먹은 것은 푸석푸석한 소 없는 찐빵이었어요. 기름, 채소, 고기는 소량으로 공급받았고, 모두 토굴이나 흙집에서 살았는데, 겨울철 그 토굴 속 온도가 영상 2도였어요. 남방 사람이 견디기 어려운 조건이었죠."

1999년 4월 하순, 후진타오를 비롯한 청화대학 수리학부 졸업생 80명이 수리수력과학연구원에 모였다. 입학 40돌을 기념하는 모임이었다. 이 때 후진타오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유가협에서 일할 때는 정말 생활이 말이 아니었지. 공사가 한창 진행될 때 현장 일꾼이 2만 명이었어."

후진타오는 그 때 자신이 어떤 고생을 했는가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그 경험이 후진타오에게 지울 수 없는 인상을 남겨 주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1985년 11월초 토요일, 후진타오는 귀주대학과 귀주사범대학으로 와서 학생들과 같이 학생식당에서 직접 밥을 퍼서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학생들이 젊은 성(城) 서기를 둘러싸고 이런 저런 질문을 많이 했다. 개혁, 대외개방, 학교생활, 과외활동, 직장분배 등등. 후진타오는 즐거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한 사학과 학생이 이렇게 말했다.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은 출세하기 어려워요."

이 학생은 절망하기 시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후진타오는 이렇게 대답했다.

"출세와 성공, 그 확률은 모든 사람이 같습니다. 출세……핵심은 '사람 하기 나름(事在人爲)'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자기 이야기를 했다. "나는 수리학을 배운 사람이다. 그런데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수리와 관계없는 일이다. 지금도 수리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내 학우들은 나만큼 출세하지 못했다" 이런 이야기를 했다. 일리 있는 말이다.

사회생활에서 전공은 중요하지 않다. 특수 전문분야가 아니라면, 대부분 현장에서 직접 부딪치며 얼마든지 배울 수 있는 것들이다. 사실 일반 회사에서 하는 일은 대부분 고등학교만 나오면 누구나 잘 할 수 있는 일들이다. 물론 아무리 해도 안 되는 일이 분명 있지만, 대부분 '사람 하기 나름'이라는 말이 들어맞는다. 절망할 필요 없다. 모든 것은 자기하기 나름이고, 위기는 위험한 기회다.

외국에서 3년 이상 매일 열심히 살면 뜻하지 않은 새로운 것을 만난다. 만나지 않으면 새로운 생각이 난다. 이것은 이 나라에서 흔한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 없다. 또는 이것은 한국에 흔한 것이다. 그런데 이 나라에 없다. 바로 이런 것을 만나거나 생각이 난다. 외국에서 혼자 외롭고 힘들게 살고 있었는데 새 희망을 발견한 것이다.

필자가 갖고 있는 중국어 자료 중에 이런 콩트(那根繩子)가 있다.

오직 세계 최고봉에 오르려는 등산가에 관한 이야기.

여러 해를 준비한 뒤 드디어 정상정복에 나섰다. 이 사람은 혼자 영광을 누리고 싶어 단독도전에 나섰다.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어느덧 해가 저무는데, 이 사람은 야영하지도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갔고, 이제 사방팔방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칠흑 속에서, 이 사람은 계속 자일과 로프에 의지한 채 정상을 향해 나아갔다.

이제 조금만 더 올라가면 된다. 오! 이런. 암벽에서 미끄러져 넘어지며 까마득한 아래로 떨어졌다. 가슴이 멈추는 소리가 들렸다.
"철렁!"
까마득한 절벽에서 자일 하나에 의지한 채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자일 한 줄이 등산가 목숨을 살려주고 있었다. 이 사람이 울부짖었다.
"하느님! 살려주세요!"
하느님이 말했다.
"나를 믿느냐?"
"믿습니다!"
"그럼 그 줄을 끊어라."
공포의 고요함 속에서, 이 사람은 번뇌했다. 그리고 어렵게 결심했다. 끝까지 이 줄을 붙잡아 죽지 않기로.

다음날, 구조대가 시신 하나를 발견했다. 자일 하나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얼어 죽어 있었는데, 그 시신 발과 작은 평지 사이 거리가 10㎝였다.

한국어에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서다'라는 숙어가 있다.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나 이제 죽는구나! 이렇게 내 인생 끝나는구나!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방법이 없다. 번뇌가 온 몸을 휘감고, 지금까지 살아온 나날이 영화 한 편으로 순식간에 지나간다.

"그래! 집착을 버리자."

그리고 그 백척간두에서 한 걸음 더 앞으로 내딛는다. 이제 나는 낭떠러지에 떨어져 산산조각 나서 죽는다. 용기와 실천력 없는 사람은 절대 못 한다. 그런데, 세상에 이럴 수가! 죽으려고 한 걸음 더 앞으로 나갔더니 바로 그곳에 내가 몰랐던 새로운 길이 있을 줄이야!

이런 일 한 번 겪으면 사람이 달라진다. 욕심이 사라지며 세상사에 초연해진다. 감정이 심하게 흔들리지도 않는다. 어차피 죽었어야 하는 목숨인데 계속 살고 있으니 더 이상 무슨 집착이 있겠는가. 그래도 자기가 좋아하는 일 하면서 살지만 조급함이 없다. 이때부터 모든 일이 잘 풀린다.

후진타오는 청화대학에서 우수한 학생이었다. 세상이 평화로웠다면 기술자로 평생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문화대혁명이 벌어졌고, 후진타오는 다른 학생들처럼 변방으로 가서 육체노동하며 살았다. 자신이 원한 삶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 절망을 받아들였다.

극과 극은 통한다. 이 절망에서 희망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절대 좌절하지 말자. 때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정말 올까?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굳은 신념이 있다면 때를 기다리며 자신을 갈고 닦는 것이 좋다. 만에 하나 실패하더라도 그 준비과정 자체가 자신에게 행복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 다시 한 번 음미하자. 그 날은 언제 올지 아무도 모른다. 자신을 갈고 닦으며 때를 기다려야 한다.

후진타오도 인생에서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길이라도 묵묵히 자기 길을 걸었다. 후진타오는 때를 기다릴 줄 알았다. 기다리지 않아도 묵묵히 한 길을 걸어가면 뜻하지 않은 행운이 찾아온다.

세상 법칙이 그렇다. 모든 것은 때가 있다. 모든 것은 순서가 있다. 순서가 틀리면 안 된다. 서예를 익힐 때 처음부터 초서(草書)를 배우면 안 되는 것이다. 힘들고 괴로워도 기초부터 한 걸음 한 걸음 나가야 한다. 이 기간이 길다. 포기하고 싶다. 이것을 이겨내면 어느 순간 일취월장(日就月將)한다.

존 그레이(John Gray)가 쓴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Men Are From Mars, Women Are From Venus)>는 남녀심리학의 성전(聖典)이다. 그런데 이 책을 쓴 존 그레이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같은 책이 왜 진작 나오지 않았는가에 대한 대답은 간단하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50년 전, 아니 불과 25년 전만 해도 이런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먹혀들지 않았다. 1980년대 초반 내가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에 대한 강연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강연 내용을 오해하고 화를 냈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 다르면서 둘 다 똑같은 소중한 존재라는 내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어서였다. 사람들은 남자와 여자가 서로 다르다면 둘 중 하나는 분명히 더 우월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강연하는 내가 남자이므로, 내가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쪽은 남자일 것이라고 이해했다.

그러나 15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는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일반적인 상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전 세계에 걸친 사고의 변화가 이루어진 셈이다. 한 세대에게는 혁신적인 주장으로 보이던 것이 그 다음 세대에게는 일반적인 상식이 될 수 있다.

이렇게 소중한 이야기가 처음에는 환영받지 못했다니! 그렇다. 모든 것은 때가 있다. 때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탤런트 장서희(張瑞希) 씨는 아역배우 출신이다. 장서희 어린이가 어느 어린이 프로그램 사회를 보던 모습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참 깜찍하고 생기발랄하고 예쁜 어린이탤런트였다. 지금은 귀여운 얼굴이 아니다. 독한 분장크림도 많이 발라 민낯은 주름살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인생을 달관한 눈빛이 보인다. 더 이상 깜찍하고 생기발랄한 얼굴이 아니지만 성숙한 아름다운 인간의 얼굴을 갖고 있다. 이 분은 어렸을 때 속된 말로 '잘 나갔다'. 그러나 청소년기를 거친 뒤 10년 이상 단역연기자로 고생했다.

이렇게 인생 끝날 줄 알았는데 <인어아가씨>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장서희 씨가 2009년 3월 25일 MBC가 방영한 <무릎팍도사>에 출연해서 이렇게 말했다.

"단역만 맡다 열심히 해서 중요한 조연을 맡았는데, 타이틀촬영 이틀 전까지 연락이 없었어요. 조감독에게 연락했더니 '서희야, 미안하다. 다른 연기자로 바뀌었다'는 말을 들었어요. 이런 일이 계속 일어났어요. 서울 여의도 MBC 지하에 구석진 화장실이 있어요. 사람들이 잘 드나들지 않아서 혼자 있기 편한 곳이에요. 그곳이 제 아지트였고, 이곳에서 많이 울었어요. 10년이 넘는 단역시절은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같았어요. 그 전에는 신세한탄도 하고, 피해의식도 있었는데, '다 내 탓이다' 생각하니까 마음이 편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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