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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날 좋아해주기에, 난 행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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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날 좋아해주기에, 난 행운아"

[후진타오 성공비결]<5·끝> 겸손하라

겸손해야 한다.

겸손하지 않으면 "나 잘났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른다. 겸손하게 경청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나는 국민을 이해할 필요가 없다. 국민이 나를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이명박이 된다.

후진타오는 분명 똑똑한 사람이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후진타오의 가장 큰 장점은 위아래 사람 모두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다는 것이었다. 1983년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를 같이 다닌 벗 하도구(夏道球)가 북경에서 공청단 중앙 제2서기를 맡고 있던 후진타오를 만났을 때, 후진타오가 이렇게 말했다.

"어떤 사람은 조직을 잘 이끄는데 사람들이 싫어한다. 어떤 사람은 사람들이 좋아하는데 조직을 잘 이끌지 못한다. 나는 행운아다. 조직도 잘 이끌고 사람들도 나를 좋아한다."

후진타오가 감숙성 건설위원회 설계처 부처장으로 일할 때, 동료들은 후진타오라는 사람을 이렇게 봤다.

첫째, 예의가 바르며 사람들 의견을 존중한다.
둘째, 기억력이 탁월하며 이야기가 논리적이어서 설득력이 있다.
셋째, 머리가 좋고 완력도 있다. 게다가 결단력도 있다.
넷째, 동료에 대해 언제나 겸손하다. 또 각 부서와 연락을 긴밀히 해서 일처리가 자연스럽다.

후진타오는 겸손하다. 그와 접촉한 사람들 모두 인정하는 사실이다. 강택민(江澤民)은 총서기가 되기 전 가장 좋은 텔레비전을 등소평에게 바친 다음 바닥에 꿇어앉아 텔레비전 채널을 맞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총서기가 되고 등소평이 죽은 뒤 등소평 부인 탁림(卓林)의 전화도 받지 않았다. 후진타오는 누구에게나 겸손하게 대했다. 이런 실례가 있다.

하루는 후진타오의 비서 친구가 전화했다. 물론 자기 친구인 후진타오의 비서를 찾았다. 그런데 마침 사무실에 후진타오 밖에 없었다. 후진타오가 직접 받았다. 후진타오는 매우 조용한 목소리로 그분은 지금 계시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그럼 당신은 누구요?"
"저는 진타오라고 합니다."
"누구라고요?"
"저는 진타오 입니다."
"잘 들리지 않는데요. 조금 크게 말하면 안 되겠습니까?"
"저는 진타오 입니다."

목청이 커졌지만 어투는 변화가 없었다. 그 사람은 그제야 누가 전화를 받았는지 알고 미안하다는 말을 남긴 뒤 전화를 끊었다.

이렇듯 우리가 후진타오로부터 배워야 할 가장 큰 교훈이 겸손일 것이다. 세상에 겸손한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이 없다. 물론 겸손도 지나치면 자기혐오로까지 발전할 수 있다. 그러나 겸손은 좋은 것이다.

재능이 칼이라면 겸손은 칼집이다. 재능만 있는 사람은 현재완료형에 머문다. 겸손을 겸비한 사람은 미래진행형으로 발전한다. 자신을 한 발 더 나가도록 해주는 힘이 겸손이다. 자신을 낮추고 비웠을 때 다른 사람과 더불어 성장하고 행복해지는 슬기가 생긴다. 회사 생활하는 사람에게 최고 덕목이 겸손이다.

다만 후진타오를 "시류에 편승하며 자기 목숨을 보존한 사람"이라 폄하할 수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 일상생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도 어쩔 수 없는 속세인 이고, 이른바 성공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시류에 편승할 줄 알아야 한다.

학생은 선생님 기분 상하게 하지 말라! 회사원은 직장 상사 기분 상하게 하지 말라! 적당한 애교와 아부로 처신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어쩔 때는 자신이 너무나 비참하다. 직장생활 하면 누구나 겪는 일이다. 물론 지나치면 안 된다. 그러나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 이것이 지나친 것일까? 지나치지 않은 것일까? 이 판단이 매우 어렵다. 책에 나오는 것도 아니다. 그냥 직접 인생을 살면서 터득하는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 남자가 군대에서 배우는 명언이 있다.

"벗어날 수 없다면 그 안에서 즐겨라."

벗어나는 것이 가장 좋다.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 것은 고문이다. 그래서 군대생활과 감옥생활이 고달픈 것이다. 직접 겪어봐서 안다. 그러나 벗어날 수 없다면, 별 수 없다. 그 안에서 즐기며 사는 것이 최선이다.

후진타오 인생은 황제운을 타고 났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세상에 이런 사람은 소수 중의 소수다. 따라서 '내가 후진타오처럼 살더라도 대통령이 될 수는 없잖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바로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사회에서 성공 못한다. 비관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후진타오가 걸어간 길을 한 마디로 설명하자면, 흐름을 거스르지 않았다. 자기 맡은 일에 충실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 처세다. 후진타오는 이렇게 정치인생을 살았다.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 것이 좋다. 시내에서 운전할 때 전체 차량흐름을 따라주지 않으면 사고 난다. 나 혼자 하늘을 날아다니는 자동차를 운전하고 있다면 차량흐름 무시하고 그냥 혼자 날아갈 수 있다. 이때는 흐름을 무시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극히 드물다. 신나게 춤추며 놀고 있는데 나 혼자 슬픈 노래를 부르면 안 되는 것이다.

군자는 중용하고, 소인은 중용을 거꾸로 한다.

중용(中庸)! 쉬우면서 어려운 말이다.

중(中)은 세 가지 뜻이 있다. 첫째, 평면이나 선의 '가운데'를 뜻한다. 둘째, 입체의 '속'을 뜻한다. 셋째, 동사로 '들어맞는다', '적중시킨다'는 뜻으로도 쓴다.

입체의 '속'이라는 뜻이 변해서 사람 '속마음'을 뜻하기도 한다. 평면이나 선의 가운데라는 뜻으로 쓰는 중(中)은 단지 한 가운데 고정지점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수평을 유지하면서 전체를 들어 올릴 수 있는 지점이어야 한다.

이런 까닭으로 세상사에서 중(中)은 나아가는 것과 물러나는 것, 사는 것과 죽는 것, 남을 위하는 것과 자기를 위하는 것, 생산자와 소비자, 파는 자와 사는 자, 사용자와 노동자 등 두 상반입장 중 어느 한쪽을 고집하지 않고 조화롭게 포괄하는 것이다.

파는 자가 200을 불렀고 사는 자가 100을 불렀을 때 서로 타협한 가격, 이것을 중(中)이라 말할 수 있다. 이 '중간자를 취하는 상태가 바뀌지 않는 가장 평범한 진리'가 용(庸)이다. 따라서 중(中)이 곧 용(庸)이 된다.

그런데 이 중용도 때와 장소에 따라 다르다. 그래서 '시중(時中)'이라는 개념이 나온다. 시중이라는 개념 안에서는 중용도 극단으로 나타날 수 있다. 아무리 성인군자라도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가 키스를 원할 때 "그것은 성인의 도리가 아니오"라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때는 열렬히 키스하고 서로 몸을 비비며 황홀경에 빠지는 것이 중용이다.

사마천(司馬遷)이 택한 중용은 궁형(宮刑)이었다. 우리는 이것을 높이 평가해야 한다.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중용도 극단으로 나타날 수 있다. 겉보기에 극단이다. 그러나 중용이다. 나아갈 때 나아가고 물러나야 할 때 물러나며 살아야 할 때 살고 죽어야 할 때 죽는 것이 중용이다. 욕심을 갖고 모든 일에 임하며 이익을 취하고 아무리 더러운 일이라도 거리낌 없이 하는 것은 소인(小人)이 하는 반중용(反中庸)이다.

중국공산당은 높으신 분이 한 이론을 만들면 좋든 싫든 겉으로는 열렬히 환호해야 한다. 이것을 비웃는 한국인도 있다. 그러나 최소한 한국 직장인은 비웃지 말아야 한다. 우리나라 보통 회사를 보라. 민주주의로 운영하는가? 그렇지 않다. 높으신 분이 명령 하나 하면, 그것을 신의 계시로 알고 무슨 일이 있어도 이행해야 한다.

대한민국도 일반 사회생활은 대부분 독재체재다. 학술적으로 논하자면, 아버지와 어머니도 대표적인 권력이다. 가출하는 청소년은 대부분 실패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자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기 힘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별 수 없다. 부모님 말 잘 들으며 살아야 한다. 가정을 감옥으로 느끼고 있는 젊은이들이여! 일단 참아라. 스스로 돈을 벌 수 있을 때 가출하라. 그러면 성공한다. 이것은 어른도 마찬가지다.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들어라.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 한 회사에서 오랫동안 근무해서 꾸준히 승진하는 사람 중에 정말 유능한 사람이 많지 않다. 정말 유능한 사람은 참지 못하고 일찍 나가버린다. 신입사원으로 회사에 들어와 1년 정도 지나면 깨닫기 시작한다.

'어! 저 사람은 실력이 대단하지 않은 사람이야.'

그럴 수밖에. 회사라는 독재체재에서 높으신 분에게 미운 털 안 박히게 자기 처신 잘하며 모나지 않게 살았기 때문이다.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바로 이런 사람을 높이 평가해야 한다.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대단한 사람이다. 그리고 이렇게 살아남은 사람 중에 매일 자신을 갈고 닦은 사람이 기회를 얻는다.

기회를 얻는 그 날이 언제 올지 아무도 모른다. 그 때까지 흐름을 따르며 겸손하게 자신을 갈고 닦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날이 와도 이것이 기회라는 것조차 모른다.

그런데 중생은 대부분 이렇게 산다. 그것이 기회라는 것을 알더라도 평소 자신을 갈고 닦지 않았기 때문에 잡지 못한다. 세월은 화살과 같고, 어느덧 얼굴에 주름이 늘어나며, 자신이 늙은이가 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하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다. 이런 사람이 "내가 옛날에……"라는 단서를 달며 자기 자랑을 한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인생 실패한 사람이다.

매일 자신을 갈고 닦으며 때를 기다릴 줄 아는 겸손의 미학. 이것이 후진타오다.

잔 대가리 굴리지 말자. 그냥 묵묵히 자기 길을 걸어가자. 그러면 결국 풀린다. 그리고 후진타오가 지금까지 살아온 길을 생각하며 '겸손' 하나 만이라도 확실하게 배우자. 겸손한 사람은 언행이 법도에 어긋나지 않고, 언제나 자신을 갈고 닦는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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