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2월 11일 새벽,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 내 보호실에서 발생한 화재로 10명의 보호 외국인이 사망하였고 수십 명이 다치는 참사가 일어났다. 여수참사가 당시 한국사회에 준 충격은 상당하였다.
정책과 행정이 부른 열 명의 죽음
우선 화재에 대한 초기대응이 너무나 미흡하였고 화재예방에 대한 대비 역시 너무나 부실하였다. 당시 CCTV 화면에 잡힌 영상들을 보면 화재가 일어나자 보호 외국인들이 일어나서 소리를 지르고 쇠창살을 두드리는데도 10분 가까이 아무 직원도 나타나지 않았다. 연기가 보호실 복도까지 차오를 때가 되어서야 용역경비직원들이 소화기를 들고 나타났으나 이미 불은 그 이상 커지고 있었다. CCTV를 감시하고 있어야할 직원들은 숙직실에서 잠을 자고 있었음이 드러났다. 설상가상으로 보호실 내 바닥재와 천장재 등은 화재에 취약한 소재로 만들어져 있었고 스프링클러 같은 장치도 없었다.
그렇지만 이때까지도 피해를 훨씬 줄일 수 있는 기회는 있었다. 보호실 철창을 한꺼번에 개방하여 보호 외국인들을 대피시켰다면 이렇게 많은 생명이 허무하게 죽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직원들은 보호 외국인들의 도주를 우려해 보호실 철창을 한꺼번에 개방하지 않고 한 개의 보호실씩 열어 그 안의 보호 외국인들을 다른 곳으로 옮긴 후 다시 돌아와 다음 보호실을 여는 식으로 대응하였다. 그 결과 화재가 발생한 3층의 경우 301호실만 개방되어 보호 외국인들을 대피시켰고 나머지 5개의 보호실은 소방관들이 출동하고 나서야 열렸다. 그나마 피해가 더 커지지 않았던 것은 수건을 물에 적셔 코와 입을 막고 있던 보호 외국인들의 침착한 대응 덕분이었다.

다음으로 여수참사가 한국사회에 준 충격은 외국인보호소라는 존재 그 자체였다. 여수참사 이전에는 외국인보호소라는 말을 들어본 한국인들이 거의 없을 정도로 외국인보호소는 매우 낯선 곳이었다. 그리고 명칭에 포함된 '보호'라는 단어의 원래 의미와는 사뭇 달리 외국인보호소가 감옥과 거의 다르지 않게 지어졌고 운영되고 있었다는 사실도 충격이었다. 보호 외국인들은 형사범죄자가 아님에도 철창으로 차단된 좁은 방에서 열 명 이상이 함께 지내며 공중전화와 면회 외에는 외부와의 연락도 할 수 없는 등 교도소에 수감된 재소자와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당시 참사로 사망한 피해자들을 포함하여 많은 보호 외국인이 짧은 기간 내에 출국하는 것이 아니라 몇 달 내지 몇 년 동안 장기간 보호소에 구금되어 있었음이 드러났다. 그 원인들은 대부분 임금체불이나 미지급된 임대보증금이나 채권채무관계 등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한 것들이었다.
마지막으로 여수참사가 한국사회에 준 충격은 단속과 추방으로 일관해온 한국의 미등록이주민에 대한 정책의 민낯이었다. 특히 2004년에 외국인근로자 고용허가제도를 도입하면서 고용허가제의 조기안착을 위해 대대적인 미등록이주민 단속추방 정책을 시행하였고 그 과정에서 많은 이주민들이 죽거나 다치는 일이 벌어졌다. 여수참사는 그러한 과정의 연장에서 벌어진 가장 비극적인 사건이었던 것이다.
여수참사 10년, 여전한 편견과 적대
1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우리는 다시금 한국사회에 묻지 않을 수 없다. 여수참사 때 확인했던 한국사회의 이주민들에 대한 야만적인 폭력이 지금은 멈춰졌느냐고. 그리고 우리는 이 질문에 부정적인 대답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 앞에 다시금 절망하게 된다.
지난 10년 동안 한국사회 이주민 숫자는 계속 늘어 어느덧 200만 명 시대를 맞이하였다. 이주노동자 일색이던 이주민 구성도 결혼이주민, 유학생, 난민 등 다양해졌다. 이제 어디를 가든 이주민들을 보는 것이 어색하거나 신기한 시절은 지나갔다. 하지만 이주민들의 양적 증가와 더불어 어두운 그림자도 날로 늘어났다. '오원춘 사건' 등의 사례를 들며 중국동포 전체를 잠재적인 범죄자 심지어 인육소비집단으로 보는가 하면, 이자스민 전 국회의원이 추진하던 미등록이주아동보호법안에 대해 히스테리에 가까운 조직적인 반대 여론이 들끓기도 하였다.
사실 이주민들에 대한 반감이 증가하는 배경에는 정부의 인종차별적인 출입국‧외국인정책이 자리하고 있다. 정부는 뚜렷한 근거도 없이 이주노동자들의 증가가 내국인 일자리를 침해한다며 노동자들을 이간질해왔고 몇몇 강력사건을 이유로 미등록이주민 전체가 잠재적인 범죄자들인 것처럼 호도해왔다. 그리고 국내 무슬림들이 테러 조직과 연관되어 있다며 호들갑을 떨어댔다.
정부는 경제위기로 인한 고통을 겪고 있는 다수 대중들의 분노가 자신들을 향하기보다는 이주민들 같은 사회적 약자들로 향하기를 바라기 때문에 끊임없이 이주민들에 대한 편견과 적대를 조장하는 것이다.

기억하는 것으로부터 '우리'를 구하자
10년 전 여수참사가 우리에게 준 교훈은 이주민들에 대한 야만적인 폭력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선주민들의 인권 역시 나아질 수 없다는 점이다. 여수참사 이후 계속 이어진 용산참사, 세월호참사 등 국가권력에 의한 각종 참사들이 이를 보여준다. 한겨울에 공권력에 의해 삶의 터전에서 강제로 쫓겨나던 용산 철거민들의 모습은 공장에서 일하다가 단속되어 강제로 추방되는 미등록이주노동자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도주 우려 때문에 보호소 철문을 열어주지 않아 어이없이 소중한 생명들을 희생시켰던 공권력의 무능하고 비정한 모습은 구조의 골든타임을 놓쳐버린 세월호참사에서 다시 반복되었다.
지금도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 보호실을 비롯해 경기도 화성과 충북 청주의 외국인보호소 등 전국 각지에 외국인보호소시설이 당시와 별로 달라진 바 없이 운영되고 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미등록이주민들을 인간사냥 하듯 단속하는 야만적인 폭력이 전국 곳곳에서 지속되고 있다.
주로 가난한 이주민들에게 집중되는 이런 폭력은 정부가 이야기하듯 우리나라의 가난한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행위가 아니다. 대부분의 정부들은 가난을 발생시키는 구조와 싸우기보다는 가난한 사람과 싸우는 것을 선택한다. 한국정부도 마찬가지이다. 처음에는 ‘불법체류자’가 문제라고 하겠지만 나중에는 외국인 전체가 문제라고 할 것이다. 성소수자가 문제이고 장애인이 문제라고 할 것이다. 귀족노조가 문제이고 저성과자가 문제라고 할 것이다.
우리는 정부와 일부 보수언론의 선동에 속아서는 안 된다. 가난한 사람들이 서로 연대하여 가난을 일으키는 구조를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가난한 사람들끼리 서로를 적대시하고 분열하는 것은 지금의 구조를 지키는 것이 이득인 사람들을 도와주는 일이다. 10년 전 여수외국인보호소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이들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것은 우리의 연대와 단결을 위한 출발점이다.
미안합니다. 그리고 잊지 않겠습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