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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욱의 간이역 여행] 중앙선 철로에서 사라지는 동화역을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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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욱의 간이역 여행] 중앙선 철로에서 사라지는 동화역을 찾아

"추억의 간이역으로 시간 여행 떠나요"

플랫폼이 붐비는 3월의 셋째 주 일요일 아침. 청량리 역에서 동화역으로 가는 무궁화호 기차 안.

마지막 봄을 보내는 태백산맥 서편. 동화마을로 가는 내 마음은 동화 속의 주인공 같았다.

동화를 쓰고 싶을 만큼 역 이름이 순수한 어린아이의 눈으로 보아야 제대로 느낄 것 같은 간이역. 어쩌면 올 겨울이면 평창동계올림픽으로 가는 원강선(원주∼강릉)이 개통되면 이곳을 오가던 수많은 사람들의 눈 속에서 영원히 사라질 동화역이기에 나는 <동화역의 마지막 봄>을 담고 싶었다.

▲올 겨울이면 원강선 신설로 사라지는 동화역 풍경. ⓒ프레시안(서정욱)

차내에서 눈 한 번 깊이 감기도 전에 기차가 도착한 동화역은 쓸쓸한 봄의 운명곡이었다. 차창 안에 들어 논 플랫폼 너머 풍경은 손바닥 만 한 작은 난장이들이 오순도순 정겹게 모여 앉아 살 것 같은 역이다.

▲하루 4번 다니는 기차에서 내리는 동화마을 사람들. ⓒ프레시안(서정욱)

이제 얼마나 더 탈지 모를 동화역 마을 사람들과 함께 플랫폼을 빠져 나왔다.

동화역은 겨울올림픽을 위해 놓는 원강선 철길을 마무리 정리하느라 분주한 공사장 소리만 요란하다.

역 대합실에는 동화역의 과거를 지우고 째깍거리는 벽시계가 현재 진형으로 진행할 뿐이다. 그리고 수많은 동화마을 사람들이 앉아서 기차를 기다렸을 긴 낡은 나무 의자가 마지막 봄을 보냈고 있었다.

그리고 맞은편 한 켠에는 ‘동화역’이라는 이름을 떠올리게 하는 책들이 책꽂이에 꽂혀있다. 어쩌면 간이역에 사는 이곳 마을 아이들이 원주시내에 나갔던 아버지와 어머니를 기다리며 읽었을 동화들이었으리라는 상상을 하며 역 광장으로 나갔다.

▲역 앞 문닫은 가게. ⓒ프레시안(서정욱)

내 어릴 적 고향마을 간이역 광장에 있던 늙은 고목이 있었고, 마을 사람들이 기차에서 아이들에게 줄 선물 과자를 샀을 가게 하나가 문을 닫은 채 눈사람처럼 회색 슬레이트 지붕을 우산처럼 쓰고 앉았다.

또 가게 옆에 놓인 툇마루 서너 개는 더 이상 찾지 않고 떠나는 간이역의 역사를 먼지로 층층이 쌓고 있었다.

나와 함께 내린 동화마을 사람들. 아이를 안은 젊은 부부와, 시내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학생들이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고 있다.

▲동화역에서 내린 마을 사람들을 태우고 떠나는 마을버스. ⓒ프레시안(서정욱)

그리고 한참 후, 마을 마을버스가 그들을 싣고 떠나자 동화역은 텅 빈 간이역이 되었다.

그들이 떠나자, 나는 원주에 또 하나 남은 간이역인 반곡역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차창 밖, 마지막 봄을 보내는 동화역을 이곳 아이들의 동화처럼 눈으로 읽어주었다.

▲내년 봄이면 더이상 기차가 서지않는 치악산 자락의 반곡역. ⓒ프레시안(서정욱)

내가 버스에서 내린 반곡역은 치악산자락을 품은 작고 아름다운 성냥갑 같은 간이역이었다. 가끔 제천 영월에서 시멘트를 실은 화물차들의 굉음이 치악산을 울리고 간다.

반곡역을 지키는 역무원은 “그래도 반곡역은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역은 그대로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원주~제천간 신설 철로가 다 완공되는 내년 봄이면 이곳에서 기차를 더 이상 탈 수 없다”며 아쉬워했다.

혁신도시로 내려온 공기업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하루 4번 서울을 오가며 출퇴근하기 때문에 아직 간이역이 문을 닫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역은 동화역 보다는 몇 달 더 오래, 내년 봄까지는 봄 손님을 태운다.

광장에는 이 역의 오랜 역사를 말해주는 늙은 고목이 간이역 만큼 굵은 허리를 둘렀고, 고목 옆에는 갱목으로 만든 길 위에 과거 일본인들이 이 역을 지으며 석회암으로 된 치악산을 철길로 뚫었던 국내에는 하나밖에 없다는 ‘또아리굴’과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다는 ‘백척 철교’의 낡은 사진이 담장에 걸려 있었다.

지금은 ‘중앙선’이라 부르는 이 노선을 80여 년 전 일본인들은 서울로 가는 철길을 내며 ‘동경선’으로 불렀다.

어쩌면 태백산맥 중서부. 이곳 치악산 자락에 살았던 원주사람들이 일본인들로부터 슬픈 역사의 흔적을 지우는 마지막 철길과 간이역 두 곳인지 모른다.

저물녘 역에서 서울로 가는 마지막 기차를 기다렸다. 그리고 반곡역을 대신할 혁신도시 너머 저 아래 손톱만큼 작게 보이는 웅장한 서원주역을 내려다 보았다.

인구 50만을 꿈꾸는 강원 제1의 도시 원주. 그리고 내 어릴 적, 검정교복을 입고 자전거를 타고 구불구불한 길을 씩씩대며 페달을 밝고 올라오던 치악산 자락의 간이역의 기억이 막 올라온 새싹처럼 싱싱하다 어둠에 사라진다.

새뮤얼 헌팅턴의 말처럼 '문명의 충돌로 남는 건 강한 것만이 남는다'는 말을 떠올리며, 이제 내년 봄이면 총알처럼 달릴 KTX가 원강선과 중앙선 두 곳을 점령하면서 사라지는 동화역과 반곡역의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발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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