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군의 한국전쟁 참전과 양국 수도 중심에 있는 상대국 이름을 딴 공원(서울엔 앙카라 공원, 앙카라엔 서울 공원)을 만들어놓고 '형제의 나라'라고 부를 정도로 양국의 친연성은 남다르다.
그런데 두 나라는 더 깊숙한 유사점을 갖고 있다. 지난 7일과 9일 터키의 경제사회 중심인 이스탄불의 터키기자작가재단과 정치행정 중심인 수도 앙카라의 토브 경제공과대학(TOBB-ETU)에서 각각 '민주화와 언론', '민주주의와 헌법'에 관한 워크숍은 이런 '다른 접점'에 대한 집중 탐구였다. 이 두 워크숍은 한국과 터키 단체들의 공동주최로 양국 전문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한국과 터키 두 나라는 각각 동북아와 중동권에서는 경제발전과 정치적 민주주의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잡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점이 그렇고 그 근원도 유사하다. 한국전쟁과 미국의 지원을 통한 군부세력의 급성장, 그로 인한 군의 정치 개입 전통이 완전히 닮은 꼴이다.
터키 군부는 1960년 이래 세 차례의 쿠테타 경험을 갖고 있다. 서울대 사회학과 장덕진 교수는 "두 나라의 지정학적 위치는 냉전시기 소련 턱밑인 동북아와 중동이라는 두 전략적 요충지였고 이로 인해 상당히 유사한 정치·외교적 경로를 밟아왔다"고 풀이했다. 두 나라에는 아직도 미군기지가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한국과 터키의 현재적 고민은 또 다르다. 한국의 경우 진보와 보수의 치열한 정치적 논쟁과 공방에도 불구하고 군부의 정치개입 우려는 사실상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외려 정치세력에 대한 군 상층부의 줄서기가 문제가 될 정도다. 반면 100만 병력을 유지하고 있는 터키 군부는 여전히 정치의 주요 축이다.
터키에서는 지난 2월에도 전 해군과 공군 참모총장을 비롯한 전현직 군간부 133명이 쿠테타 모의 혐의로 체포된 바 있다. 이들에 대한 수사와 재판은 현재 진행형이지만 수감자 중 일부는 내달 총선에 옥중출마를 할 준비까지 하고 있다.
이런 까닭에 12.12 쿠테타를 주도한 신군부 세력에 대한 법적 단죄를 포함한 한국의 군부정치 청산과 과거사 정리는 터키인들에게 매력적 벤치마킹 대상이다. 이번 워크숍은 이같은 맥락에서 준비된 것이다.
공화국 건립이념, 민주주의, 이슬람주의의 충돌
| ▲ 지난 7일 이스탄불에서 열린 터키기자작가재단 초청 워크숍ⓒ프레시안 |
7일 이스탄불 터키 기자작가재단 워크숍에서 터키 칼럼니스트 아르단 젠투륵은 지난 1923년 공화국 설립 이래 90여 년 간 터키의 역사를 '공포와 안정'이라는 키워드로 풀이했다.
케말 아타튀르크(아타+튀르크, 國父라는 의미)가 공화국 수립을 주도할 때부터 지금까지 터키는 그리스로부터, 공산주의로부터, 이슬람 원리주의로부터 위협을 느껴왔고, 그에 대한 방어가 국가의 존망을 좌우해왔다는 말이다. 이 과정에서 동원체제와 터키 특유의 군부 정치 전통이 수립됐다는 것.
그는 "터키는 1989년까지는 군부독재, 2003년까지는 군부의 영향에 의한 정치가 진행돼왔다"고 전했다. 터키 최대 일간지 자만(Zaman)의 칼럼니스트 케림 발히는 "하지만 경제발전과 더불어 신중산층이 등장했고 언론 환경, 정치환경의 변화가 나타났다"면서 "점차 군부, 민간정치엘리트, 기업집단, 관료집단의 관료주의적 과두체제가 진행되면서 군부의 영향력이 서서히 축소됐다"고 전했다.
총선을 한달 앞둔 이들은 서울대 사회학과 장덕진 교수가 트위터와 소셜미디어가 한국 선거에 미친 영향력을 실증적으로 설명하자 깊은 관심을 보였다. 터키에서도 페이스북, 트위터 등이 점점 확산되고 있다는 전언도 뒤따랐다.
군부에 대한 태도로만 터키의 정치지형을 일도양단하기도 힘들어보였다. 터키 여당인 정의개발당(AKP)에는 과거 헌법재판소에 의해 해산된 이슬람정당 인사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고 1야당인 공화국민당(CHP)은 이슬람주의에 대당하는 세속주의의 강력한 옹호자인 군부와 가까운 편이다.
실질적 민주주의가 확대되면서 이슬람주의적 전통이 오히려 부활하면서 대중의 지지를 얻는 반면, 터키 공화국의 이념에 충실하고자 하는 세력은 오히려 군부와 결합하는 듯한 모습을 띄고 있었다.
공화국의 설립 이념, 이슬람주의적 전통, 표현의 자유, 자유선거에 기반한 민주주의가 서로 혼재하고 충돌하면서 터키적 진보와 보수의 모자이크를 형성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특별한 제약 없었던 反군부적 정치행사
| ▲ 9일 이스탄불에서 열린 워크숍을 방청하는 터키의 학생, 지식인들이 한국의 군부독재 청산과정을 경청하고 있다ⓒ루미포럼 |
터키 언론인들은 "군부에 대한 비판적 기사를 쓰기가 쉽지 않다. 군부는 아직도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토로했지만 터키 지식인 사회에서 강력한 그림자가 느껴지진 않았다.
반정부라기 보단, 반군부에 가까운 시민단체와 접촉에도 제한은 없었다. 서울대학교에서 유학한 경험이 있는 한국기업 터키 현지법인의 직원은 기자와 시민단체 인터뷰에 배석해 도움을 주기도 했다.
9일 앙카라 토브 경제공과대학(TOBB-ETU)에서 진행된 2차 워크숍도 마찬가지였다. '군부 정치 종식'에 대한 한국의 경험을 듣는 이 워크숍에는 변호사, 교수, 학생 등 지식인 청중 200여 명이 참석했고 국영, 민영TV방송과 신문사들이 열띤 취재경쟁을 벌였다. 7만 회원을 거느린 터키변호사협회장이 참석해 축사를 하고 한국 참석자들에게 감사패를 전달할 정도였다.
입 조심을 하거나, 혹여 신분을 숨긴 정보기관원이 깔려있지 않을까 두리번거리는 비밀스러운 분위기가 전혀 아니었다.
이 자리에서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김태일 교수는 군부에 저항한 한국 정치사를 전달했고 김대중내란음모사건 재심 변호인이었던 최재천 변호사는 5.18 특별법이 어떻게 제정됐고, 신군부 세력은 어떤 과정을 거쳐 법정에 서게 됐는지를 설명했다.
청중들의 몰입도는 높았고 터키 측 발제자인 하세테페 대학교 레벤트 코르쿠트 헌법학 교수는 "터키와 한국이 비슷하게 시작했는데 우리의 민주주의는 한국에 비해 너무 느리다.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인 한국에게서 열심히 배워야 한다"고 강조해 한국 측 참석자들의 낯을 뜨겁게 만들기도 했다.
터키 대학생들은 아주대 로스쿨 오동석 교수에게 "한국헌법에는 군부의 배타적 권한을 보장하는 조항이 없는가", "군인은 군사법정에서만 재판을 받는가"는 등의 질문을 던졌다.
"다른 방향의 한류도 가능하다"
| ▲ 터키에서 판매부수가 가장 큰 일간 Zaman에 소개된 워크숍 기사ⓒ프레시안 |
하지만 민주주의와 결합한 이슬람적 전통과 공화국의 설립 이념이 충돌하고 경쟁하는 터키가 결국은 더 많은 민주주의를 향하고 있다는 점을 느끼긴 어렵지 않았다.
워크숍의 한국 측 좌장 격인 최재천 변호사는 "정치적으로 유사한 경험을 갖는 터키에 한국의 민주주의 경험을 전달하고 터키인들에게 그것이 도움이 된다면 양국 관계를 더 풍부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면서 "이런 경험이 축적되면 한국의 국제적 리더쉽이 고양되지 않겠나? 또 다른 방향에서의 한류를 형성할 수 있는 것이다"고 전했다.
최 변호사는 "향후 터키 측 인사들을 한국에 초청해 민주주의에 대한 상호교류를 이어갈 계획을 갖고 있다"면서 "예컨대 5.18재단이나 아태평화재단과 실질적 교류프로그램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소장인 장덕진 교수는 "OECD 통계를 보면 한국과 터키가 아주 유사한 점이 많다. 사실 두 나라가 여러 통계 순위의 끝에 위치한다"면서 "정치 부분은 터키가 다소 뒤떨어질지 모르지만 사회복지 투자는 한국보다 터키가 훨씬 앞선다"고 지적했다.
장 교수는 "터키를 비롯해 오스트레일리아, 칠레, 멕시코, 대만 같은 나라들과의 상호 연구가 우리에게도 많은 자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터키인들이 '정치 선진국'인 미국이나 유럽보다 한국의 경험을 듣고자 한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한국이 과연 '민주주의의 교사' 노릇을 할 준비가 되어있는지는 짚어볼 일이다.
16일은 한국의 군사쿠테타 50주년이다. 5.16을 전후로 일부 언론에서는 당시 군부 쿠테타가 불가피한 일이었다면서 '짙은 향수'를 드러내는 기사도 썼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