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신임 서울시장의 파격적이고 신선한 행보가 연일 화제다. 인터넷과 SNS 공간에서 "서울 시민 부럽다", "역시 잘 뽑았다"는 찬사가 쏟아질 정도다.
그도 그럴 것이 전임 시장들과 확연히 대비되는 탈권위적인 면모가 일단 돋보인다. 숨돌릴 틈도 없이 바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개혁정책은 목말랐던 젊은 유권자들에게 단비처럼 느껴질게 분명하다.
시립대 반값 등록금이 그랬고, 서울시와 산하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검토 소식 역시 강력했다. 자신에게 표를 준 시민들이 원하는 바를 압축하고 있는 두 이슈, 등록금과 일자리 문제에 신속한 사인을 보낸 것이다. 8일 발표된 12세 이하 필수예방접종 무상정책 역시 궤를 같이 한다. 어느새 복지 논쟁의 상징이 된 '무상'이라는 기표. 뒤따르는 열광.
필자 역시 박원순이 만들어 갈 새로운 서울을 기대하며 하루가 다르게 전해지는 뉴스를 관심을 가지고 지켜봤다. 하지만 이번 무료접종 정책을 보며 이건 좀 아닌데, 이런 식은 곤란한데, 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왜 그럴까? '무상'에 조건반사적으로 환호하기에 앞서 우선 이 정책이 어떤 정책인지 꼼꼼이 살펴 볼 필요가 있다.
한 명의 아이가 태어나면 일정 기간에 걸쳐 접종받아야 하는 백신들이 있다. 국가가 지정한 필수예방접종이다. 예컨대 어릴 때 우리를 겁나게 했던 '불주사' 같은 것이 그 중 하나인데, 요즘은 불에 달궈서 접종하지 않는다. 8일 나온 기사들을 보면, 그동안 이런 국가 필수 지정 항목을 접종하는데 개인당 60만 원이 들었는데 서울시의 새 정책으로 무상이 되었다는 식 일색이다. 그러니 그에 대한 반응 역시 환영 일색이고.
하지만 이 접종 항목들은 원래부터 무상이었다. 무슨 소리냐고? 아이를 키워 본 사람이면 안다. 보건소에서 접종했을 경우에 모두, 이미 무상이었다. 아이 둘을 키우며 우리 부부는 매번 보건소를 찾았다. 그래서 예방접종에 한 푼도 들지 않았다. 보건소에서 몇 년에 걸쳐 여러 항목의 접종이 제 때 잘 이뤄질 수 있도록 관리수첩도 주고 문자메시지로 때가 되면 알려주기까지 한다. 보건소에 가서 30분 이상 대기한 적도 없다.
그렇다면 이번 무상접종은 무엇인가? 보건소가 아니라 동네 개인병원에서 돈을 내고 접종하는 어린이들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병원에 내는 비용을 이제 서울시가 내주겠다는 얘기다. 이게 과연 획기적이라 할 만한 정책인가?
이 정책은 사실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 공약에서 내놓았지만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앞서 전임 시장이 바로 이 예산을 놓고 시의회와 갈등을 빚어 소란하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이번 선거 과정에서 별다른 검토없이 전임 시장과 차별성 부각을 위해 공약에 올랐을 것으로 짐작된다. 선거 이후에는 공약 중에 바로 실행할 수 있는 게 뭘까 하는 와중에, 비교적 접근이 쉬워서 채택돼지 않았을까, 이 정도를 추론해 볼 뿐이다.
과연 이 정책이 시민들의 건강 증진이나 가계에 큰 도움이 될까? 결국 항상 보건소로 상징되는 공공의료 서비스 확대에 신경을 곤두세워왔던 개원의사들의 주머니만 채워주게 되는 것은 아닐까?
지난 8년간 아이 둘을 키웠고 이 달에 셋째의 출산을 앞둔 입장에서 내가 기대했던 건 이런 무늬만 무상 정책이 아니었다.
차라리 그 돈으로 보건소 시설을 확충한다면? 차라리 그 돈으로 맞벌이 부부의 접근성을 좋게한다면? 차라리 그 돈으로 유행성 독감 등의 접종을 강화한다면? 차라리 그 돈으로 로타바이러스나 폐구균 등 비지정 항목 접종을 지원한다면?
폐구균이나 로타바이러스 백신은 국가지정 접종항목에서 빠져 있는 것들이다. 그래서 보건소에서 접종이 안된다. 일반 병원에서는 엄청나게 비싸다. 폐구균의 경우 15만 원이다. 국가 지정이 아니니 안 맞추면 그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부모 마음은 또 그렇지 않다. 국가가 지정하지 않았다고 위험이 없는 것은 아니잖은가. 비교적 덜 하다는 것 뿐이지. 일반 병원에서는 부모들의 이 같은 심리를 이용해 엄청난 폭리를 취하고 있는 실정이다. 폐구균 백신 공급가가 3,4만 원에 불과한데도 접종가는 15만 원에 달하니 이 문제야 말로 심각한 것이다.
예컨대 이번 무상접종 예산으로 이 같은 비지정 항목에 대해, 보건소가 백신을 사서 5만 원 정도에 접종을 한다면? 저소득층은 이 마저도 무료로 한다면 아마 일반 병원에서도 가격을 적정하게 낮추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사실상 가격 때문에 위험이 있는데도 백신을 맞지 못하는 어린이들이 줄어들 것이다. 한정된 예산으로 다양한 계층의 가정에 선택권과 함께 혜택을 줄 수 있는 방식이다.
문제가 또 있다. 이제 이런 식으로 일반 병원에서도 무상으로 접종이 이뤄지면 보건소에는 누가가나? 보건소의 그 많은 인프라는 이제 어떻게 되나? 신생아 시기부터 무료접종을 매개로 보건소가 새로운 시민인 아기와 공공의료의 주체로서 관계를 맺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아마 내가 개원의라면 그 관계를 끊고 싶을거다. 아무래도 보건소에 드나들다보면 이런 저런 서비스에 익숙해질 것이고, 예방 프로그램의 혜택을 본 가정은 동네병원을 사흘 멀다 하고 찾지는 않을 것이니까. 하지만 이제 많은 부모들이 굳이 보건소를 찾을 이유가 없어졌다. 예방 중심의 공공의료 체계를 확립하겠다는 정책기조와는 전혀 다른 맥락이 형성되게 된 것이다.
이런 문제를 아는 사람이 없었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는 조급함이 아닐까? 뭔가 보여주어야 한다는. 전임자들과 달라야 하는데, 그걸 정책으로 보여주고 싶다는 조바심. 내가 굳이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다. "조바심을 버려주세요"
이 년 반이라는 시간은 결코 짧지 않다. 섹시한 정책도 중요하고 중앙정치를 향한 이슈파이팅 역시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대한 과제는 새로운 행정의 프레임을 만드는 것이다.
박원순에게 열광적으로 표를 던진 표심은 무엇이었나? 탈정당에 대한 기대가 무엇보다 컸다. 그런데 기존 정당 체제에서 나온 정책들이 아무런 검토없이 공약이라는 이유만으로 추진된다고? 선거 일정에 쫓겨 박원순의 큰 그림은 아직 미완성 이라는 걸 이해못 할 바는 아니다. 그걸 먼저 인정하고 그 그림부터 그려야 할 것이다.
예컨대 인터넷 서비스를 기획할 때 유저시나리오라는 걸 만든다. 어떤 이용자는 이런 니즈를 갖고 올 것이며 이런 걸 기대할 것이고, 저런 이용자는 이러 저러할 것이고... 뭐 이런 식이다. 서울시에도 이런 게 있어야 한다. 애를 키우는 30대 맞벌이 부부는, 자식들을 모두 분가시키고 둘만 사는 노부부는, 결혼을 선택하지 않고 혼자 사는 걸 즐기는 비혼자는... 어떻게 살기를 원하며 어떤 서울을 기대하는가? 우리는 한번도 이런 시나리오에 따라 운영되는 행정을 경험한 적이 없다. 박원순의 서울시가 해야할 일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나오는 것들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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