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이라는 비현실적인 사태에 대한 헌법재판소에 의한 법률적 판결과 대통령 선거에 의한 정치적 탄핵을 무사히 건넌 2025년 여름은 예년과 다를 바 없는 익숙한 편안함으로 돌아가고 있다. 헌재 판결문에서 설명된 바 있듯이, 지금의 평화는 상부의 명령을 거부했던 군경과 한겨울 혹한을 이겨냈던 시민들의 저항 덕분이다. 이렇게 한국의 민주주의는 많은 이들의 희생 덕분에 또 한 고비를 넘기고 있다.
결과적으로는 윤석열 대통령의 독단적 계엄 선포 덕분에 권위적인 정부가 임기를 못 채운 채 3년 만에 종결되었으며, 그 무렵 정치적 위기에 직면했던 이재명 대통령은 '별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점성술에서 유래해서 별자리가 사람의 인생을 결정한다는 서양인들의 믿음이, 독일에서 유학한 바 있는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2021년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에게 조언하면서 알려지게 되었던 결정적 순간이 2024년 12월 3일에 다시 한번 만들어졌다. 결과적으로 이재명 대통령 개인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도 위기가 기회로 전환된 것이다.
사실 한자에서 '위기(危機)'는 위험과 기회라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독일의 사회학자인 울리히 벡은 바람직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위험이라는 요소가 포함된 개념으로 'risk'라는 단어를 유사하게 설명한 바 있다. 같은 맥락에서 미국의 풍운아 같았던 케네디 대통령도 기회가 포함된 중국의 위기 개념을 선호했다고 한다. 실제로 재임 기간에 소련이 핵미사일을 쿠바에 배치하려고 시도하면서 3차 세계대전의 위기에 직면하기도 했지만, 다행히 큰 분쟁 없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한국 사회도 비상계엄의 위기를 국가 발전의 기회로 전환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아직 취임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은 신생 정부이지만, 첫 단추를 잘 시작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돌다리도 두드리며 건너야 할 것이다. 특히 장기적 국정 과제인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난제를 잘 해결해 나갈 수 있는지, 즉 탄소중립의 기회로 바꿔낼 수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역사적으로 올해보다 한발 앞서 탄핵 사태를 겪으며 출범했던 문재인 대통령은 사실 기후변화 이슈에 대한 관심이나 방향도 잡지 못한 채 임기를 시작했었다. 이후 집권 3년 차인 2020년에 맞이했던 또 다른 위기인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유럽과 미국에서 유행이던 그린뉴딜을 받아들이며, 2050년 탄소중립이라는 담대한 목표를 대내외에 천명할 수 있었다. 다만 임기 하반기의 뒤늦은 각성으로 인해 실행력이 제한적이었다. 이후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에 대한 반발 덕분에 정치인으로 급조되었던 윤석열 대통령도 취임 직후에는 기후변화 정책을 승계하겠다고 선언했었다. 다만 전임 정부의 무모한 기후정책이 아니라 실현 가능한 사업으로 목표를 달성하겠다고 포부를 밝힌 바 있다. 그렇지만 정작 임기 3년 동안에는 탄소중립에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았으며, 실천력도 보여주지 않은 채 퇴장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제 한국 사회는 21대 대통령과 함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특히나 지난 대선 기간에 진행되었던 공중파 토론회에서는 2차 주제에 기후변화 안건이 포함되면서 전환의 조짐을 보여주었다. 다만 당시 방송은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하지 않았다는 잘못된 정보와 태양광 확대가 중국 친화적인 정책이라는 음모론이 난무하며 실망만 남기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레시안>은 선거 직전인 6월 2일 기사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을 '기후산업', 권영국 민주노동당을 '기후정의', 김문수 국민의힘과 이준석 개혁신당을 '기후악당'으로 규정했다. 물론 지금은 선거가 끝났고, 실용주의 노선의 이재명 대통령이 집권한 상태이다. 그렇다면 국민들은 기후변화와 관련해서 어떤 철학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을까?

작년 국회의원 총선에서는 <뉴스민>이라는 언론사가 유권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바 있다. 당시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시민들은 강제적 국가규제, 자발적 지원선호, 개인적 생활실천이라는 인식 유형을 지닌 것으로 확인되었다. 물론 이들 세 가지 유형 모두는 지구온난화의 심각성 및 기후변화 대책의 필요성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다만 이들 중에서 현 정부의 철학과 가장 부합되는 집단은 자발적 지원선호 유형이다. 즉, 국가에 의한 강압적 온실가스 규제에 강력히 반대할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의 실천성이 결여된 세계관을 지닌 사람들과 이재명 대통령의 기후산업주의가 어울릴 가능성이 가장 높다. 다만 국가 예산이 제한적이고 기후변화 기금이 부족한 상황에서, 재정적인 지원과 보조금에 의해 감축을 유도하는 전략만으로는 탄소중립이라는 목표의 달성이 요원할 수밖에 없다.
돌아보면 전임 윤석열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의 무모한 탄소중립 정책의 실현 가능성을 높이겠다고 말한 뒤, 온실가스 감축 관련 아무런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 그리고 새로 출범한 이재명 대통령은 진보와 보수를 포괄하는 실용주의 노선을 표방하고 있으며, 기후변화를 새로운 시대의 성장동력 및 산업 기회로 간주하는 성향을 지니고 있다. 이때 실용주의는 특별한 철학이나 정파에 연연하지 않고, 결과의 유용성만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19세기 미국에서 시작된 사상을 가리킨다.
비상계엄과 탄핵 이후 한 단계 성숙한 민주주의에 도달한 것으로 평가되는 한국 사회가, 사실 기후변화 관점에서는 새로운 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 영국의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은 "낙관주의자는 위기 속에서 기회를 보고, 비관주의자는 기회 속에서 위기를 본다"라는 말을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그는 2차 세계 대전이라는 혼란을 해결하고 지금의 전후 체제를 구축하는 데 기여한 바 있다. 한국도 내란을 극복하고 지금은 평화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제 정치 선거의 잔치는 끝났다. 대한민국은 현재의 기회와 성과에 만족하지 말고 미래 탄소중립의 위기를 감시해야 한다. 지금의 민주시민에게 필요한 건, 바로 기후 비판적 관점과 참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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