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고등학교 야간자율학습이 '자율'이 아니었던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름에는 '자율'이 들어가지만 야간자율학습에는 청소년의 자율 따위는 들어있지 않았다. 오랫동안 학교가 강제하는 것이 당연했다가, 일부 지역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되고 인권의식이 높아지면서 점차 바뀌었다.
지금은 그런 경우가 많이 줄었지만, 아직도 야간자율학습이 자율이 아닌 학교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내가 살고 있는 대전 지역에 있는 대전고등학교를 뽑을 수 있겠다. 대전고는 강제 야자 외에도 여러 인권 침해가 일어나는 곳으로 알려졌다. 지난 2024년 9월 대전고에서 강제 야자, 두발 제한, 휴대폰 사용 금지 등 인권 침해를 당하고 있다는 학생들의 제보가 있어, 여러 청소년인권단체가 대전시교육청 앞에서 대전고의 인권 침해 문제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후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도 했지만, 대전고는 국가인권위의 개선 권고에도 불구하고 별로 달라진 점이 없다고 한다.
청소년의 자유가 없는 것은 야자만이 아니다. 또 다른 경우를 이야기해 보자면 최근 일어난 SKT 해킹 사태로 인한 유심칩 변경 문제가 있다. 유심 정보가 대규모로 유출된 것으로 알려져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많은 SKT 이용자들이 유심칩을 교체하고 있는데, 청소년인 이용자들은 이런 상황에서도 유심칩을 자신의 마음대로 변경할 수 없었다. 변경하기 위해 대리점을 찾아갔더니 법정대리인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답을 들었던 것이다.
그 외에도 청소년들은 정부 기관에 정보공개 청구를 온라인으로 할 수 없고, 은행에서 계좌와 카드도 마음대로 만들 수 없다. 정신건강의학과 병원들 중에는 청소년 혼자 방문하여 진료 및 치료를 받는 것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법적으로는 청소년의 의료 이용을 제한해서는 안 됨에도, 부모에게 항의를 받거나 문제가 될까 봐 법정대리인의 동행이나 동의를 요구하는 것이다. 이처럼 한국에서 청소년의 '자율', 자유는 전혀 보장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청소년에게 자유가 없는 이유
청소년의 자유는 왜 침해당하는 것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청소년은 미숙하다는 사회적인 인식과 청소년 보호주의적인 관점, 나이에 따르는 권위주의적 문화를 원인으로 뽑을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한국의 법체계는 청소년이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부모 등 법정대리인의 대리 결정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청소년을 위해서라며 야간자율학습과 같이 무언가를 강요, 금지해도 괜찮다고 생각하기 일쑤이다.
편의주의적인 제도 설계와 오래된 고정관념이 낳은 문제도 있다. 예를 들자면, 시에서 시민이라면 필수적으로 보장해 주는 '시민 안전 보험'이라는 제도가 있다. 하지만 만 15세 미만의 청소년은 사망보험 적용을 무효로 한다는 '상법' 조항 때문에 가입되어 있지 않다. 문제는 이로 인해 (서울의 '따릉이' 등 극소수를 제외하면) 만 15세 미만 청소년의 공공자전거 이용이 불가능해진다는 것이다.
방금 말한 사례와 같이, 개인정보 동의 등 청소년의 법적 행위를 아예 금지시키거나 막아 놓는 법 제도 때문에 청소년들의 서비스 이용과 사회적 활동이 가로막히는 경우가 있다. 즉 법정대리인 동의를 무조건 받게 하고, 보험 가입이나 개인정보 동의에 연령 제한을 두는 등 제도로 인해, 청소년이 자율적으로 뭔가를 할 수 있는 것이 없게 되는 것이다.
이런 불합리한 상황이 적지 않지만 청소년의 권리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관심 밖에 있다. 이처럼 대한민국 청소년은 살아가며 시민으로서 존중받지 못하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유를 인정받지 못한다.

그들이 말하는 '자유민주주의'에 청소년은 없다
최근 12.3 내란 이후 극우 세력들의 행태가 큰 주목을 받았다. 그들은 법원에 들어가서 공공재를 파손했고, 일상적으로 혐오와 차별을 표출했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본인들이 한 행위가 모두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것이라고 말하였다. 윤석열 대통령 또한 위헌·위법한 비상계엄을 선포하며 '자유민주주의'를 내세웠다. 우리 '아이들', '청년들', '미래세대'들을 위한다며, 자유를 지켜야 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저들이 말하는 자유민주주의에서 청소년은 빠져 있는 것 같다. 오히려 청소년의 자유를 부정하고 억압하려 하고 있다. 예를 들어 보자면, 윤석열 정권은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밀어붙였다. 학생인권조례가 불러온 가장 큰 변화는 부당한 두발·복장규제를 완화·폐지하고 학생들의 표현의 자유를 신장한 것이었다. 이러한 일상적이고 실제적인 자유에 반대하면서 외치는 자유는 무엇일까?
또 다른 예로 청소년의 참정권의 문제도 들 수 있다. 국민의힘은 청소년 참정권 확대에 계속 반대해 왔고, 극우 세력들은 청소년들에게 정치 활동의 자유를 보장해선 절대 안 된다고 외치곤 한다. 관련 언론 기사에는 선거권 연령 하향에 반대한다며 "어리니까 뭘 모르고 선동당해서 공산당 뽑는다"는 댓글을 달고 다닌다. 그러는 한편에서는 어린이·청소년들에게 자신들의 생각과 왜곡된 정보를 주입하고 자신들의 집회에 동원하고 싶어 한다. 그들이 말하는 자유는 우리가 생각하는 자유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자유'가 중요하다고 내세우는 이른바 보수·우파 세력들이 사람들의 자유를 억압하고 싶어 하는 이런 역설적 모습은 청소년 같은 소수자들의 자유가 더욱 보장되기 어려운 이유를 보여주는 것 같다.
우리는 헌법을 무시당하는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민중가요 중 '불나비'라는 곡이 있다. 12.3 내란 이후 광장에서 곧잘 들은 노래이기도 하다. 노랫말 중 "불을 찾아 헤매는 불나비처럼, 밤이면 밤마다 자유 그리워"라는 구절이 있다. 이 노래를 들으며 공감을 느꼈지만, 어찌 보면 청소년들에게는 밤에 자유를 그리워할 시간조차 없다. 어떻게든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입시에 매진해야 하기 때문이다. 청소년에게는 애초에 스스로 결정할 자유가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청소년의 자유를 제약하는 불합리한 법들은 여럿 남아 있는데도, 청소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법은 제정되지 못하고 있다. '강제 야간자율학습'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이유는 학생인권조례도, 학생인권법도 없어서이다. 실제로 위에서 말했던 대전고 역시 학생인권조례 미제정 지역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37조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 그러나 청소년의 자유는 너무 쉽게 경시된다. 우리는 헌법을 무시당하는 삶을 살고 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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