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여름은 수박과 물놀이의 계절이 아니라 사람의 생명과 안전이 위협받는 공포의 계절로 변하고 있다. 올여름에도 많은 일하는 시민들이 건설현장에서, 택배기사와 배달노동자들의 일터인 도로에서, 제초 및 측량작업을 하던 야산과 공사현장에서, 논과 밭에서, 작업 도중 쓰러지고 사망하였다.
폭염노동 잔혹사를 주제로 한 초록발광 지난 칼럼이 쓰러지는 노동자에 대한 얘기라면, 이 글에서는 이들을 일으키려 애쓰는 의료기관에 대한 얘기를 하려 한다. 온열질환과 같은 기후재난에 따른 시민들의 건강 문제가 심각해질수록 이들을 치료해야 노동자들의 업무량이 늘고 의료기관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 반복되는 폭염 노동 잔혹사…작업중지권이 핵심)
폭염으로 더욱 북적이는 응급실
폭염일수가 길고 평균기온이 높을수록 온열질환자 수는 눈에 띄게 증가한다. 기상청에 따르면, 2023년 5~9월 전국 평균 폭염일수는 14.2일이었다. 2022년(10.6일)과 비교할 때 3.6일 늘었다. 2023년 6–8월 전국 평균기온은 24.7℃로 평년(과거 30년) 23.7℃와 비교하여 1.0℃ 높았다.
이 변화는 온열질환자 통계로 그대로 드러난다. 질병관리청의 '온열질환 응급실감시체계 신고현황’을 보면, 2023년 온열질환자는 2818명으로 2022년(1564명) 대비 1.8배 많았다. 같은 기간 온열질환 추정 사망자는 총 32명으로 2022년(9명) 대비 3.6배 많았다.
올해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지난 5월20일부터 8월12일까지 약 3달간 누적 온열질환자는 3404명이었다. 2024년 같은 기간(2428명)보다 1.4배 많은 수치다. 그만큼 의료기관 응급실을 찾는 온열질환자가 증가하였다는 얘기다.
쓰러지는 시민들도 문제지만, 이들을 일으키는 의료기관 노동자들의 안전과 건강 역시 문제다. 응급실은 기후위기의 최전선이지만, 정작 의료기관 자체가 기후위기의 영향에서 자유로운지도 점검해야 한다.
기후재난 최일선, 병원은 안전한가?
응급실 현장은 폭염·재난의 영향을 그대로 받는다. 동시에 의료기관 자체도 기후위기의 한 원인인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주체다. 보건의료부문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전 세계 순배출량의 약 5%로, 발전·산업·수송·건물 부문에 이어 다량 배출 부문으로 꼽힌다.
무엇보다 기후변화로 인한 건강 위협이 커질수록 의료기관의 부담은 더욱 늘어난다. 폭염, 가뭄, 홍수, 산불 등 극단적 기상은 심혈관 질환, 호흡기 질환, 감염병 확산 등 다양한 건강 피해를 불러온다. 이에 대응하는 재난 의료체계는 필수이며, 병원 시설 파괴나 자원 부족이 발생해도 필수 서비스를 유지할 수 있는 준비가 필요하다.
또한 의료기관은 환자를 치료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보건 형평성을 높이며 기후로 인한 건강 불평등을 줄이는 사회적 책무를 지닌다. 국제보건기구(WHO)가 기후변화를 이번 세기 최대의 건강 위협으로 지목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히 저소득 국가와 취약계층에 대한 의료 접근성을 보장하려면 탄소중립적인 시스템 구축이 필수적이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일은 의료기관의 지속가능성 확보와도 직결된다.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탄소 배출을 줄이면 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이는 병원이 재정적·운영상 안정성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나아가 지역사회와 협력해 '지구와 인류 건강의 통합적 접근(One Earth, One Health)’의 관점에서 기후 적응과 건강 증진을 함께 추진하는 것은 의료기관이 사회적 모범을 실천하는 길이기도 하다.
영국 NHS 넷제로 실천과 노조의 역할
이 점에서 2022년, 보건의료 및 사회돌봄법 2022(Health and Care Act 2022) 제정을 통해 넷제로를 법률에 포함시킨 최초의 의료시스템이 된 영국 NHS 사례를 참고할 수 있다. 영국은 NHS에 대해 △2040년까지 직접 배출량 넷제로(2028년부터 2032년까지 80% 감축) △2045년까지 (scope 3를 포함한) 전체 배출 넷제로(2036년부터 2039년까지 80% 감축) 달성 목표를 설정하였다. 넷제로 달성 목표 시점만이 아니라 과정 관리를 위해 80% 감축 달성 시점까지 명시한 것도 특징이다.
넷제로 NHS 보고서에서는 이 목표 달성을 위해 각 NHS 병원이 실천해야 할 항목과 그 내용도 제시하고 있다. 시설/인프라(건물 리모델링, 단열 개선, LED 조명 교체, 재생에너지 확대), 교통(직원 전기차 충전소 설치, 자전거 출퇴근 장려, 구급차 무공해화), 임상(저탄소 의약품으로 대체, 불필요한 처방 줄이기), 구매/공급망(저탄소 납품업체 우선, 계약 시 탄소배출량 보고 의무화), 교육(모든 직원 대상 기후역량 교육 프로그램 운영), 거버넌스(병원 이사회 산하 지속가능위원회 운영), 모니터링(연간 배출량 모니터링, 외부감사) 등과 같이 실천 내용은 병원 운영 전 영역을 포괄한다.
이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NHS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있는 UNISON, RCN과 같은 노동조합의 역할도 크다. 노조들은 각 병원을 상대로 넷제로 정책 추진에 더욱 속력을 낼 것을 촉구하는 한편 이 과정에서 고용안정(병원 에너지시설 개보수·통폐합 시 고용 유지 의무화), 출퇴근 정책(직원 교통수단 전환 시 교통수당, 주차비 보조 등 협의), 근무형태 전환(원격진료 도입 시 임금·근무시간 보호 협약), 정의로운 전환(저탄소 기술 도입으로 직무 변경될 경우 재교육/재배치 보장), 참여구조(Green Plan 수립 시 노조 대표 의무 참여) 등 노동권 보호 조치를 단체협약 조항으로 포함시키기 위해 교섭을 진행 중이다.
올여름 폭염이 소강상태에 접어들더라도 기후재난은 언제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위협할지 모른다. 기후재난으로 쓰러지는 노동자를 살리는 의료기관이, 스스로도 기후위기 속에서 쓰러지지 않도록 지금 정의로운 전환의 길을 열어야 한다. 기후위기 대응은 선택이 아니라, 의료기관과 그 안의 노동자들이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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