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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 3년간 뭐 했나" 눈물 섞인 분노 터뜨린 이태원 참사 외국인 유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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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 3년간 뭐 했나" 눈물 섞인 분노 터뜨린 이태원 참사 외국인 유족

윤석열 정부 이태원 참사 외면 눈물 질타 "왜 아직 진상을 모르나"… 여전한 고통·우울증 호소

10.29 이태원 참사 유족 카자흐스탄인 다미라 셰르니아조바 씨는 지난해 5월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통과된 사실도 제때 알지 못했다. 정부는 어떤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지, 참사 진상 조사는 되고 있는지, 한국 사회는 참사를 기억하고 있을는지 등의 질문만 가슴에 남은 채, 고립된 섬처럼 카자흐스탄에서 지난 2여 년을 보냈다.

다미라 씨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마디나 셰르니아조바 씨의 언니다. 그의 가족은 올해 1월이 돼서야 참사와 관련해 한국과 처음 연결됐다. 당시 우연히 출장차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었던 아버지가 한국어로 된 이태원 참사 유가족 협의회 홈페이지를 겨우 찾아내 협의회에 메일을 보냈다. 그게 최초의 접점이었다. 참사 발생 2년 3개월 후다.

다미라 씨는 28일 <프레시안>에 "그 전엔 아무 소식도, 정보도 알 수 없었다"며 "특히 한국 정부로부턴 어떤 것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참사 발생 후 3년 가까이 참사 피해자에 대한 알 권리를 도외시해 온 한국 정부의 안이한 태도를 두고 외국인 유족들의 질타와 비판이 28일 터져 나왔다. 유족들은 이날 오후 서울 적선동 한 건물에서 열린 '10.29 이태원 참사 외국인 유가족 내외신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처음으로 공식 단체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이들은 지난 24일 정부의 첫 공식 초청으로 방한했다.

노르웨이에서 온 에릭 이벤슨씨가 첫 발언에 나서 철저한 진상 규명을 촉구했다. 그는 "참사 당일 충분한 경찰이 배치됐는지, 대체 왜 아름다운 청년들이 세상을 떠나야 했는지, 그런 참사가 벌어지는 걸 막을 수 있었는지, 그날 저녁 신고 전화가 진지하게 받아들여졌는지, 과거에 발생하지 않은 이런 참사가 왜 3년 전엔 발생했는지, 나는 그 점이 궁금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에릭 씨는 잠시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이어 그는 참사 9일 후 노르웨이에 도착한 딸의 시신이 방부처리가 됐던 점과 관련해 "왜 방부처리가 됐는지, 이게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시신에 대해 처리되는 절차인가"라고 물으며 "나는 시신을 그렇게 처리한다는 걸 들어본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란에서 온 유족 마흐나즈 모기미네자드 씨도 "내 동생 시신 역시 방부처리돼 고국에 돌아왔는데, 사망한 지 10일이 지났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들었지만 납득하기 어렵다"며 "일반적인 방식이라 생각되지 않는데 한국은 원래 이렇게 시신을 처리하는가"라고 물었다.

그러면서 "참사가 발생했다는 걸 왜 정부가 희생자 가족에게 직접 연락하지 않고 우리 유족이 이란 텔레비전 뉴스를 보고 알 수밖에 없었나"라며 "(한국 정부는) 지난 2주기 때 이란 유족들이 한국을 방문하고자 했으나, 방문하려면 별도 비자를 신청해야 한다는 사실을 불과 출국 1주일 전에야 알려주기도 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당시 유가족 협의회와 10.29 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는 연락처를 알던 외국인 유족들에게 2주기 방문 의사가 있으면 여비를 지원한다고 알렸고, 이에 이란의 유족 다섯 가구가 방한 준비를 마치고 출국만 남겨둔 때 비자 문제로 입국하지 못한 적이 있다. 사회를 본 이미현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공동상황실장은 "당시 주이란 한국대사관의 협조를 받지 못해 비자를 발급받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28일 서울 종로구 별들의집에서 열린 10.29 이태원참사 외국인 유가족 기자간담회에서 노르웨이인 희생자 고 스티네 로아크밤 에벤센 씨의 아버지인 에릭 에벤센 씨가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쌓아 온 울화 쏟아내 "참사 3년인데 정부 뭐 했나"

러시아인 김잔나 씨는 참사 발생 이후 자신의 딸이 어느 병원에 있는지, 상태는 어떠한지를 전혀 알려주지 않은 정부 기관을 질타했다. 그는 "그때 밤새 소식을 기다렸다. 우리 옥사나 상태가 안 좋다고 들었다. 한국에 있던 큰딸과 조카가 밤새 옥사나를 찾아다녔는데 못 찾았다"며 "아침에야 사망한 걸 알게 됐다"고 밝혔다.

김 씨는 "우리 질문은, 이런 문제들과 관련해 왜 3년 동안 아무 조사도 하지 않았고, 왜 진상을 밝히지 못하고 있는지"라며 "왜 (경찰 등은) 정해진 대로 안 했는지 궁금하고, 진실을 알고 싶다. 진짜 누구 잘못으로 이리 됐는지 알고 싶다"고 말했다.

이란의 마흐네크 파라칸드 씨도 "경찰 등 관련 기관이 신경을 안 쓴 게 분명히 있는데, 사고 가능성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는데도 조치를 취하지 않은 이유가 궁금하다"며 "이제 특별조사위가 꾸려져 조사를 하는데, 그동안은 뭐했는지 정말 이상하다"고 꼬집었다.

유족 대부분은 이태원 참사 특별조사위가 조사를 시작한 지난 6월에야 정부 기관으로부터 참사 관련 정보를 전달받을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에릭 씨는 "참사 발생 사실도 딸의 친구가 알려줘서 알았고, 우리가 소통을 조금이라도 했던 건 주한 노르웨이 대사관, 딸이 다닌 대학, 노르웨이 해외 유학생 등을 관리하는 기관 정도였다"며 "유족협의회를 만난 이후 유족을 통해 일부 정보를 접했고, 특조위 조사 후엔 조사 관련 정보도 전달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미현 상황실장은 이와 관련 "이번 공식 방문 6박7일 일정 중에도 유족은 질문받는 일정만 있지, 자신들의 질문에 답을 듣는 일정은 없다"며 "정부는 보통 문제가 있으면 브리핑을 하는데, 내국인도 외국인도 모든 유족이 그런 식의 설명을 들은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28일 서울 종로구 별들의집에서 열린 10.29 이태원참사 외국인 유가족 기자간담회에서 노르웨이인 희생자 고 스티네 로아크밤 에벤센 씨의 어머니 수산나 로아크밤 씨가 눈물을 닦고 있다. ⓒ연합뉴스

이태원 특조위 유족 조사... 우울증 호소도

이태원 참사 특조위는 지난 27일, 방한한 외국인 유족들을 조사했다. 마흐나즈 씨는 "참사 소식을 어떻게 누굴 통해 접했는지, 유족은 어떤 목적으로 입국했고 현재 원하는 게 무엇인지, 조사위가 확보한 사진이 유족이 가진 사진이 맞는지 등을 묻더라"며 "특조위가 진상을 정확히 조사해 결과를 유족에게 전달하겠다는 말도 들었다"고 전했다.

이날 간담회 자리에선 훌쩍임과 목메임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첫 줄에 앉아 발언을 이어 나가던 유족들은 발언 도중 목이 메어 자주 눈을 감고 쉬었고, 휴지를 들고 눈을 계속 꾹꾹 찍어 눌렀다.

이란인 다부드 라스트메네쉬 씨는 "참사 이후로 가족의 일상은 끝이 났다. 심장이 뛰지 않는 느낌, 모든 게 공허한 빈 공간인 것 같은 느낌이 자주 든다"며 "만약 그때 나도 거기 있었으면, 같이 참사에 휘말리고 싶다는 생각까지 든다. 충격이 아직 가시지 않았다"고 힘겹게 말했다.

노르웨이의 이벤슨 부부는 딸의 사진이 앞뒤로 출력된 티셔츠를 입고 참석했다. 티셔츠 뒤엔 어느 궁궐 문에서 한복을 입고 웃고 있는 20대 여성의 사진이 담겨 있었다. 에릭 씨는 "아직도 매일 아침 악몽을 꾼 듯이 일어난다"며 "전 한국이 안전한 나라인 줄 알았다"라고 말을 삼켰다.

아내인 수산나 로아크밤 씨는 한국 유족과의 연대를 말할 때 많이 울었다. 그는 "서로가 같은 상황에 있기에 함께 있었던 것이 저희에게 큰 도움이 됐다. 노르웨이는 너무나 멀리 있어 우리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 없다"며 "한국에서 이어진 여러 활동을 유족들이 전달해 줘 연결됐다고 느꼈다. 유족 외엔 아무도 한국 상황을 알려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3년째 추모를 위해 한국을 방문해 온 호주인 조안 라쉐드 씨는 "올해는 특조위 조사 과정을 통해 정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싸우기 위해서라는 목적으로 더 한국을 방문했다"며 "특조위 조사원이 좋은 질문들을 해줬다. 그에 대해 우리가 한 답변이 우리가 원하는, 정의를 실현하는 그런 결과로 나아가길 바란다"고 밝혔다.

▲28일 서울 종로구 별들의집에서 열린 10.29 이태원참사 외국인 유가족 기자간담회에서 프랑스인 희생자 고 리바세 게네고 씨가 발언 중 딸의 손을 잡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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