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예의바르게 아픈 어떤 청년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예의바르게 아픈 어떤 청년들

[시민건강논평] '우리건강 지킴이단'에서 만난 청년여성의 이야기

올 초부터 우리 연구소는 다른 시민단체들과 함께 청년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우리건강 지킴이단'을 운영하고 있다. 한 해 동안 참가자들과 정기적인 소모임을 갖고, 아프면 쉴 권리와 건강할 권리를 소개하는 강좌를 열면서, 청년여성이 일상생활과 일터에서 겪는 다양한 건강문제와 청년기 삶의 모습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정부의 고용동향통계나 청년실태조사에서 '역대 최대치 쉬었음 청년'이나 '2배 증가한 고립∙은둔 청년', '몸보다 마음이 아픈' 모습으로 뭉뚱그려지는 이들이 실제로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사정을 좀 더 가까이서 들여다 본 바를 소개하고자 한다.

아프다는 것이 약점인 사회에서 부유하는 청년들

뉴스에서는 가끔 자신의 집을 온갖 물건들로 가득 채우고 사는 저장강박증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 보도한다. 하지만 청년들이 밖으로 표가 나지 않게 집안에 쓰레기를 쌓아놓고 있다면? 그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한 상황의 한 단면이기 쉽다. 하지만 심신의 건강이 청년의 표준으로 여겨지는 사회에서 '골골대며' '세상의 기준에 맞춰 살지 못하는' 청년들을 비정상으로 보는 시선때문에 이들의 신체적, 정신적 고통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청년이 아프다고 말하는 것은 자신을 나약한 사람이자, 사회구성원으로서 잘 기능하지 못하고 조직의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결함있는 존재로 드러내는 일이고, 심지어 인격적 판단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런 사실을 인지하고 나면 가족 자원이나 사적인 지지체계가 없는 청년들은 더욱 열심히 공적 지원 프로그램을 탐색하고 참여한다. 하지만 한 지역사회 활동가는 많은 청년이 사회생활을 하기에 너무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적응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찾지 못한 채 '부유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들은 어떻게 아픈가

청년기에는 통상 취업으로 이행되는 생애적 과업을 기대한다. 하지만 산업과 고용구조의 변화, 노동시장의 이중화는 청년들의 좋은 일자리 진입과 미래 계획에 대한 전망 자체를 매우 어렵게 한다.

그런데 '우리건강 지킴이단'에서 만난 청년여성은 가족이나 친구들과 이런 취업고민이나 건강의 문제, 관계갈등의 어려움 등을 공유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자신의 힘들고 약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부정적인 감정이 전염되고, 나와 마찬가지 처지인 친구를 지치게 하는 '민폐'이기 때문에 서로 부담되지 않는 수준을 지키려고 한다고도 했다. 이것은 나 또한 정신건강이 안 좋거나, 내가 의지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친구관계를 회피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더욱이 한 당사자는 또래 청년여성 집단의 경우 높아진 사회적 기준에 따라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도덕적 강박'을 가진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지적이지 않은 환경에서 자신이 그런 실천의 주체로 나섰을 때 받게 될 평가에 대한 두려움이나 선뜻 행동하지 못했을 때의 자책도 자기 몫이기 때문에 이중의 강박에 놓인다.

내가 위로받고 환대받아 본 경험이 없는 청년들은 '타인과 함께 사는 삶은 고통'이라거나, '사람과 사람 사이에 기대가 없는 사회' 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닫고 있었다. 특히 청년여성은 전통적 젠더규범을 더 이상 수용하지 않고,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각자도생의 삶을 롤모델로 삼고 있었다(오늘 자세하게 다루지는 못하지만, 청년여성의 이런 정신적 고통이 신체화 증상으로 나타나는 양상들도 중요하게 살펴야한다). 이들이 가족이나 친구들의 안부를 챙기고 소통하는 빈도로만 봐서는 고립이나 은둔과는 거리가 있다. 그러나 자신의 생각과 말에 대해 조절하고 평가하며, 누군가로부터 완전히 이해받거나 누군가를 충분히 공감해보려는 마음을 차단한 채 지내는 이 공허한 마음은 과연 건강한 것일까.

그럼에도 살아내려는 노력들

건강이 좋지 않다는 것이 사회생활에서 마이너스 요인이라고 인식한 청년들은 부단히 자구노력을 계속한다. SNS는 오프라인과 달리 자신이 겪고 있는 취약함을 비교적 있는 그대로 공개하고, 자조그룹을 찾는 통로이다. SNS에서 우울증, 자해, ADHD 등의 키워드로 만나 아픔과 고통을 말 그대로 동병상련하고, 약물과 부작용 정보를 구하며 대화상대를 찾는다. 서로 지지하고 안전하게 연결되고 싶다는 마음은 종종 오프라인으로 이어진다.

각자도생의 삶에서 가족이나 친구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복잡하고 무력한 마음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다른 조력자를 찾는 것이다. 청년여성들은 외롭고 돌봄받고 싶은 마음이 채워지지 않았을 때, 마음건 강문제를 '전문적으로' 상담하는 사람에게 쉽게 향했다. 친구에게도 보일 수 없는 마음을 상담사에게 감정의 바닥까지 '쏟아 내며' 컨디션을 관리하는 것은 뜻밖에도 사려깊은 친구에게 기대되는 조건처럼 보였다. 만일 상담을 통해 자기의 상태를 객관화하고 설명 가능한 '문제적 지위'를 부여받을 수 있다면, 이것은 시간과 돈을 들일만한 충분히 합리적 행동이기도 하다.

실제로 마음건강센터를 찾는 청년이 많아졌다. 20∙30대 연령의 우울 위험군 비율이나 우울증∙조울증∙조현병 초진 환자 증가 등 정신건강의 어려움을 겪는 청년의 수치가 확인되면서 그들을 대상으로 하는 정책사업도 마련되었다. 제2차 정신건강복지기본계획(2021-2025)과 제1차 청년정책 기본계획(2021-2025)을 근거로 지역사회기반 청년정신건강서비스 체계를 구축하고 현재 광역과 기초지자체에서 17개 청년마음건강센터를 운영 중이다.

이렇게 청년마음건강센터를 찾는 사람은 많지만, 양질의 상담서비스가 개인의 상태를 호전시킬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제공되고 있는지에 대한 이용자들의 평가는 긍정적이지 않다. 우선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청년마음건강센터의 서비스들은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하여 신청이 조기 마감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자신을 이해하고 습관과 생각이 바뀌고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지 못했는데 일률적인 프로그램에 따라 상담서비스가 중단되기도 한다. 극도의 '자기경영적' 마음건강관리 트렌드때문에 민간의 상담서비스가 비약적으로 늘어났으나, 개인들은 상품화된 서비스 가운데 신뢰할 만한 제공자를 찾아야하는 또 다른 노력을 들여야 한다.

마음건강상담이 답해줄 수 있는 영역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누구나 짐작하듯이, 삶의 여건들을 개선하기 위한 추가적인 자원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이를 연계해 줄 사회서비스가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 노동시장, 빈곤, 가족갈등, 젠더규범과 같은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영향에 개입하지 않으면 청년들이 이 위축되고 불안한 삶과 싸우느라 자신의 빛을 찾기 전에 소진되고 말 것이다. 정부의 조치가 청년마음건강센터 설치에서 머물러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청년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자기의 고유하고 찬란한 삶을 만날 수 있도록 당사자의 경험과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개인의 아픔을 사회의 과제로 받아들이는 '예의바른'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시민건강연구소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시민건강연구소

(사)시민건강연구소는 "모두가 건강한 사회"를 지향하는 건강과 보건의료 분야의 싱크탱크이자, 진보적 연구자와 활동가를 배출하는 비영리독립연구기관입니다. <프레시안>은 시민건강연구소가 발표하는 '시민건강논평'과 '서리풀 연구通'을 동시 게재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